"아저씨 빨리 나와요."
밖에서 재촉하는 세훈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필 오늘 늦잠을 자서 이게 뭐야, 나름 첫 데이트인데.
"미안, 세훈아. 많이 늦었지. 어제 잠을 좀 설쳐서."
"아, 또 멋진 연하남과의 데이트가 기대돼서 잠도 설치신 거예요?"
준면은 차마 아니라고는 말하지 못 했다. 거짓말이 되어버리니까.
"빨리 가자 늦겠다."
차에 타 출발하려는데 세훈이 안전벨트을 매지도 않고 준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아저씨, 뭐 해요."
"어? 아니 네가 안전벨트를 해야 출발을 하지."
"그니까, 빨리 출발하게."
"응, 그러니까 빨리 매라고."
빨리 출발해야한다며 멀뚱히 준면을 쳐다보고 있는 세훈을 보며 준면이 답답했다.
"아니, 아저씨가 해줘요."
"어?"
"아저씨가 해달라고."
준면이 상체를 빼 세훈에게 다가갔다. 안전벨트를 빼는데 갑자기 세훈이 준면의 이마에 입술을 댔다.
순간 준면의 행동이 멈춰졌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지.
"빨리 하죠. 좀 위험한 거 같은데."
"어? 그래야지!"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안전벨트를 빼는 준면을 보며 세훈이 작게 웃었다. 준면의 얼굴은 준면의 몸에 있는 피가 다 몰린 것 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아저씨."
"그래, 세훈아. 진짜 다 왔으니까 그만 물어봐."
"아니요, 그거 말고."
"그럼 뭔데?"
"아, 씨... 자존심 상해서 말 안 하려고했는데."
"왜 그래, 말해봐."
진짜 자존심이 상했는지 세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오늘은 왜 개그 안 해요? 준비 안 해왔어요?"
세훈의 말을 들은 준면이 크게 웃었다. 너도 내 개그에 중독된 거야 세훈아.
"내가 이래서 말 안 하려고 했던 건데."
"세훈아 자꾸 들으니까 재밌지?"
"그냥 익숙해졌는데 없어서 그런 거니까 오해하지 마세요."
"해줄까?"
"아니요, 매날 하던 거 안 하길래 오늘은 아픈 줄 알았어요. 안 아픈 거 알았으니까 굳이 하실필요 없어요."
"세훈아, 너 원래 이렇게 단호한 것은 알았지만 오늘은 정말 단호박같다."
"…."
"이거는 개그 아니야 세훈아."
"네, 다행이네요."
주차장에 차를 댄 준면이 내려 조수석 문을 열었다.
"아저씨 소름."
"이게 잘해줘도 그러지."
세훈의 이마를 살짝 친 준면이 웃었다. 맞은 세훈도 웃었다.
아직까지 풋풋한 그들의 연애는 싱그러웠다.
"세훈아, 이거 하자."
"아저씨 애도 아니고 뭐 이런 거를 해요."
"너 애야 세훈아. 하자, 응?"
"애 아니거든요. 아저씨 해요.'
동물의 귀가 달린 머리띠를 준면의 머리에 씌웠다.
"귀여워."
"야, 내가 너보다 8년은 더 살았어 귀엽다가 뭐야. 너 하라니까?"
머리띠를 벗는 준면의 손을 세훈이 잡았다.
"내가 이거 하면, 아저씨도 하고 있어요. 그럼 내가 할게."
"야, 내가 나이가 몇인데 이걸 해."
"해요. 나 하는 거 보고싶다며."
고민하던 준면은 여기서 내 나이를 아는 사람이 어디있겠냐 생각한 준면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세훈에게 머리띠를 건넸다.
"자!"
"왜 난 이거 줘요?"
"마음에 안 들어?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아니, 아저씨랑 똑같은 거 할래. 나도 그거 줘."
세훈아, 남자 둘이 와서 이런 거 쓰는 것도 웃긴데 그 두 개가 같은 거면 더 웃겨. 그니까 넌 이거 해. 싫어요 나 아저씨랑 똑같은 거 할래.
세훈의 고집에 결국 준면이 꼬리를 내리고 자신과 똑같은 머리띠를 건넸다.
"자. 빨리 해."
준면을 쳐다보던 세훈이 무릎을 굽혔다.
"해줘요."
결국 세훈의 머리에 머리띠를 씌운 준면이 계산하고 나왔다.
"세훈아 무서운 거 잘 타?"
자이로드롭앞에 있던 준면이 자신의 순서가 점점 다가오자 세훈에게 물었다.
"당연하죠, 아저씨 설마 이거 못타요?"
"뭐? 아닌데? 나 진짜 좋아해 이런 거."
거짓말은 아니었는지 준면의 표정이 밝았다.
의외네, 이런 거 못타게 생겨서.뭐라고? 아니요, 아무말도 안 했는데요?
놀이기구를 탄 세훈이 손잡이를 꽉 잡았다. 자꾸 나는 땀 때문에 미끄러졌다.
"세훈아, 손 잡을래?"
올라가는 도중에 무섭지도 않은지 손잡이에서 손을 떼 세훈에게 내밀었다.
"아니요, 괜찮아요."
바지에 손을 닦은 세훈이 손잡이를 다시 잡았다. 준면의 손을 잡으면 자신이 놀이기구를 잘 못 탄다는 것을 들킬 것 같았다.
놀이기구는 점점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가다가 멈추면 어떡하지, 떨어지는 도중에 고장나면?
아니야 그래도 이렇게 큰 대기업이, 아니 옛날에도 사망자가 나왔었는데.
기구가 정상에 도착해 순간 멈췄다. 공중에 달랑거리는 다리가 위태로워보였다.
세훈이 속으로 천천히 다섯을 셌다. 오, 사, 삼, 이.
세훈이 다 세기도 전에 떨어지는 놀이기구에 세훈은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혼이 나갔다.
눈을 꽉 감고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을 더 주었다. 손 끝이 하얬다. 옆에 있는 준면은 제 속도 모르고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 웃고있었다.
"세훈아, 한 번 더 탈까?"
"미쳤어요?!"
"어?"
"아니요, 그게 내 말은. 아직 탈 놀이기구가 더 많다 이거죠. 다 돌고나서 또 타러 와요."
"아, 그래? 알았어."
결국 준면은 자이로드롭을 무려 두 번이나 더 탔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도 방지턱을 넘을 때 마다 묘하게 떨어지는 느낌이 생생하게 돌아 와 세훈은 공포에 떨어야 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준면이 자신이 놀이기구를 못탄다는 것을 눈치채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저씨 들어가요."
"그래."
"왜 안 들어가요."
"그냥, 조금 아쉽네."
준면의 말에 세훈이 미소지었다.
"세훈아, 영화보고 갈래?"
"무슨 영화요?"
"공포영화."
"갑자기 뜬금없게 무슨."
"너 놀이기구 못타잖아, 이건 잘 볼까 싶어서."
"아니요, 저 공포영화는 잘…. 네?!"
"왜 이렇게 놀라?"
"저 공포영화 잘 타요!"
"어?"
"아니요, 그게 아니고. 저 놀이기구 잘 탄다고요! 그건 잠깐 어지러워서 쉬었던 거고 사실 제 별명이 자이로세훈이거든요?"
"근데, 세훈아. 나 너 내리고 눈물 닦는 거 봤어."
"아저씨, 영화 뭐 본다고요?"
세훈은 말을 돌리며 문을 열었다. 먼저 들어간 세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준면이 웃었다.
이럴 때 보면 진짜 고등학생 맞는 것 같아.
201호의 문이 닫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