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날 정도로 해사로운 당신은 내게 벅찰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님을 바라 볼 수만 있다면, 벼랑 끝의 엉겅퀴가 되든 수평선 끝의 위태로운 바닷물이 되든 견뎌낼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바람이 살랑 살랑 불어왔다. 기분 좋게 흩날리는 택운의 머리칼은 봄의 색과는 다르게 새까맣기만 하다.
상혁은 한참동안 택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택운은, 여인들 사이에서도 확연히 눈에 띈다.
키가 커서라는 이유를 배제하면, 그의 외모 덕분일까.
싱그럽게 웃어 보일때는 하야디 하얀 백합 같다가도,
,눈을 새초롬하게 뜨고 붉은 입술을 작게 움직이는 모습은 붉디 붉은 홍련 같다.
치마를 사려는 이유는, 사랑하는 환애를 위해서일까. 택운에게도 저런 아름다운 치마를 안겨 줄 여인이 있었구나.
저토록 아름답게 생긴 택운이 사랑하는 여인은 얼마나 고운 사람일까. 왠지 모르게 씁쓸해 지는 기분이 낯설다.
"그 치마, 정말 곱구나."
"… 그래. 정말로 아름답다."
네가 더 아름다워.
하마터면 입 밖으로 내 뱉을 뻔한 말을 간신히 삼켰다. 네가 미친거지, 한상혁.
제 아무리 정택운이 답지 않게 곱다고 해도, 같은 사내가 자신에게 이런 생각을 품고 있다는 사실에 얼마나 불쾌해할까.
그것도, 그저께 처음 만난 자신의 호위무사 따위가.
네가 너무 예쁜 탓이렸다.
치마를 사 가지고 오는 택운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인다. 제 환애에게 줄 생각에 기분이 좋은 모양이지.
괜스레 옹졸해 지는 듯한 기분에 신경질이 난다. 왜 내가 이런 기분이여야 하는지.
정택운은 사내인데, 왜.
"여긴 정말 봄 냄새가 많이 나는 것 같아."
"꽃이 많이 피니까."
"온 사방에 꽃이 나는 거, 정말 마음에 들어."
택운은 길가에 활개 치는 벚꽃 나무를 빤히 응시했다. 나무의 키가 작았다.
터벅 터벅 걸어가서는 벚꽃을 한 풀 꺾는다.
상혁은 택운의 행동이 귀여웠다. 다 큰 사내가 꽃이나 꺾고 있다니. 안 어울렸지만 어쩐지 택운에게만은 잘 어울렸다.
북적이는 거리에서, 택운은 벚꽃 나무를, 상혁은 택운을 바라보고 서 있다.
시간이 멈춘 듯 했다. 그 순간만은.
…그렇게 너무나도 달콤하고, 향기롭고, 따스했다.
-
평화는 오래 가지 않는 법. 이 보다 더 쉽게 깨어질 평안함이 어디 있으랴.
"대체 어디를 나갔다 오는 것이야?!"
대문을 열고 들어 오다 놀란 택운과 상혁은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 보았다.
당황한 상혁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마님, 죄송합니다."
"상혁이 너는. 단하를 지키지 않고 뭐 하고 있어!"
"저, 그것이."
상혁의 옆에 있는 택운의 존재를 알면서도 택운을 완벽히 무시한 채 이야기를 이어 나가는 그녀는, 이 집 안주인인 듯 보였다.
눈꼬리가 앙칼지게 올라가고, 고함을 치는 목소리가 단하와 많이 닮았다.
상혁은 그녀에게 정중하게 말했다.
"단하 아씨의 호위 담당은 바뀐 줄 압니다. 저는 택운 도련님의 호위를 맡은 터라. 죄송합……."
"택운 도련님? 지금 누가 도련님이라고 하는 것이냐?"
그녀는 상혁의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말이 끝 마치기도 전에 택운을 쏘아보며 걸어 나왔다.
그 옆에는 단하까지 합세 해 택운에게 비웃음을 짓고 있었다.
상혁은 택운이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전혀 짐작을 할 수가 없었다. 무표정, 그 자체였다.
어느새 그녀들은 택운의 앞까지 당도했다.
"네가 이 집의 도련님이렸다? 언제부터더냐? 나는 너 같은 아들은 둔 적이 없는데, 그야말로 금시초문인데 말이다."
"……."
"대감께서 네 놈 따위를 양자로 들인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구나. 출신도 명확하지 않고 얼굴도 계집년처럼 생긴 요물을. 대체 왜!"
"……."
"요망한 년."
"……."
"앞으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가는, 너에게 몰매를 내릴 것이야. 함부로 나다니지 말거라. 네 놈 따위에게는 이 집 외양간 구석조차 아까우니."
택운에게 아무렇지 않게 '년' 이라는 독설을 날린 그녀가 이내 보기도 싫다는 듯 단하를 이끌고 안채로 들어 갈 때까지,
택운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상혁은 그런 택운을 보고 있었다.
한 차례의 폭풍이 휘젓다 간 느낌이었다. 지금 이 상황.
"……."
"…택운아."
"……."
택운은 맥이 탁 풀려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상혁은 택운에게 다가 갈 수 없었다. 제 자신에게 신경질이 났다.
호위무사 주제에, 택운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었다.
권력. 자신에게는 권력이 없었기에.
봄의 폭풍우가 꽤나 거셀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