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장마를 나는 생채기 투성이의 나비는 요동 치는 나뭇잎을 꼭 붙들고 오늘도 외로이 어두운 새벽을 보낸다. 악몽을 꿨다. 재환의 나의 뒤에서 피를 토하며 웃는 끔찍한 꿈.너는 나를 상처 주고 떠나더니, 이제 꿈에서까지 나를 괴롭히는구나. 피를 토하며 울어야 할 사람은 네가 아니라 나야, 이재환.택운은 움직이기조차 힘든 상체를 억지로 일으켜 땀 범벅인 이마를 손으로 대충 훑었다.택운은 입술을 꽉 물고는 주위를 둘러 보았다.재환이 그려 준 그림들이 갈기갈기 찢긴 채로 나뒹굴고 있었다. '네가 그런 피를 가지고 있는 사람인 것을 알았더라면……. 너에게 말 조차 걸지 않았을텐데.' '이미 다 알고 있어. 네가, 사람을 홀리는 더러운 창기의 아들이라는 거.' '내 몸에 손대지 마.' '아. 어쩌면 처음부터 나한테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일지도 모르겠군.' '너와의 연은 없었던 것으로 하고 싶다.' '나라 사람들을 홀리던 창기의 아들과 함께 했다는 게 수치스러워.' '그동안…. 꽤나 즐거웠다고 해 두지.' 밀려 오는 배신감에 구토가 쏠린다. 처음으로 마음을 내 주고 신뢰하고 사랑했던 사람이었다.하지만 결국 다른 사람들과 똑같았다. 나를 괴물 보듯이 보는 혐오섞인 시선까지. 택운은 벽장을 열어 재환을 위해 그렸던 자신의 그림을 꺼냈다.눈물이 차올랐다. 재환을 향했던 자신의 사랑이 어리석었다. 진정으로 나를 위한 사람은 없는데, 나는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활활 타오르는 촛불에 태웠다. 서투르게 그린 자신의 그림도, 재환을 향한 자신의 마음도, 모두 재가 되어버리도록. 고개를 든 택운의 새벽 달에 비친 눈동자가 검게 흐려졌다. - -비키시오! -안 돼! 안 된다고! -이 여편네가! -아악! 어느새 밝은 햇살이 창살에 내려 앉았다.택운은 바깥에서 들리는 요란한 소음에 힘겹게 눈을 떴다. 밤새 울어 버린 흔적이 가득 한 부은 눈두덩이를 매만지며 미닫이 문을 열었다. 마당으로 나간 택운은 재향이 의문의 복면을 두른 남자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장면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재향은 상처 투성이로 넘어지는 와중에 택운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저으며 소리쳤다. "무슨 일……." "오지 말거라! 도망 쳐! 어서!" "……." "빨리! 빨리 가거라!" 영문을 모르는 택운이 머뭇거리는 사이, 복면을 쓴 남자들은 눈빛을 주고 받더니 다급하게 소리 치는 재향을 저만치 밀어뜨리고 택운에게 달려 왔다.택운은 그에 놀라 뒷 걸음질 쳤다. 그에 남자들은 재빨리 택운을 붙잡고 말을 꺼냈다. "우리는 김 대감님의 명령을 받고 온 사람들이다." "…김 대감? 난, 그런 사람 모릅니다." 재향은 찢어진 이마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느끼고 작게 신음을 터뜨렸다.이 망할 새끼들이, 이제서야 나타나는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김원식……. 그 미친 놈이. "택운아, 그는 너를 이렇게 만든 장본인이다! 세화를 버리고 간 그 사람인게야!" 어머니를 버리고 간 사람. …김…원식? 복면을 쓴 남자 중 한명이 신경질이 난다는 듯 머리를 벅벅 긁었다.그리고는 택운에게 소리치는 재향에게 다가가 목에 검을 겨누었다.쩡 하고 울리는 검의 울림이 퍼졌다. "한 번만 더 쓸데 없는 소리를 해 댄다면, 너의 목은 가차없이 날아 갈 것이다." 그에 재향은 비웃으며 코웃음을 흘렸다.나중에 늙어 죽으나, 지금 죽으나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택운이 때문에 근근히 버티던 몸뚱아리, 삶의 이유가 잡혀 가는 마당에 내 한 목숨 부지하기 위해서 입을 다물고 있을 쏘냐?지랄이다. 지랄. "택운아. 그를 증오해라. 너를 이렇게 만든 자에게 마음을 주어서는 안 돼! 세화를 그렇게 버리고, 너를 버린 그 자를…. 용서해서는 아니 된다." 남자는 위협에도 불구하고 겁 먹지 않고 택운에게 말 하는 재향의 목에 칼을 꽂았다. "이… 이게… 무슨…!" 택운이 몸부림 치자, 그를 잡고 있던 남자가 그의 목을 쳐 내려 기절시켰다. "……이제야 좀 조용하군. 빨리 데려 가자고." 눈도 제대로 감지 못한 채 피범벅이 된 채로 목숨을 잃은 재향을 놔둔 채로, 그들은 택운을 데리고 은밀하게 밖으로 빠져 나갔다. 다시 고요가 찾아들었다. 어쩌면, 평생 깨지지 않을 고요가.
여름 장마를 나는 생채기 투성이의 나비는 요동 치는 나뭇잎을 꼭 붙들고 오늘도 외로이 어두운 새벽을 보낸다.
악몽을 꿨다. 재환의 나의 뒤에서 피를 토하며 웃는 끔찍한 꿈.
너는 나를 상처 주고 떠나더니, 이제 꿈에서까지 나를 괴롭히는구나. 피를 토하며 울어야 할 사람은 네가 아니라 나야, 이재환.
택운은 움직이기조차 힘든 상체를 억지로 일으켜 땀 범벅인 이마를 손으로 대충 훑었다.
택운은 입술을 꽉 물고는 주위를 둘러 보았다.
재환이 그려 준 그림들이 갈기갈기 찢긴 채로 나뒹굴고 있었다.
'네가 그런 피를 가지고 있는 사람인 것을 알았더라면……. 너에게 말 조차 걸지 않았을텐데.'
'이미 다 알고 있어. 네가, 사람을 홀리는 더러운 창기의 아들이라는 거.'
'내 몸에 손대지 마.'
'아. 어쩌면 처음부터 나한테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일지도 모르겠군.'
'너와의 연은 없었던 것으로 하고 싶다.'
'나라 사람들을 홀리던 창기의 아들과 함께 했다는 게 수치스러워.'
'그동안…. 꽤나 즐거웠다고 해 두지.'
밀려 오는 배신감에 구토가 쏠린다.
처음으로 마음을 내 주고 신뢰하고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결국 다른 사람들과 똑같았다. 나를 괴물 보듯이 보는 혐오섞인 시선까지.
택운은 벽장을 열어 재환을 위해 그렸던 자신의 그림을 꺼냈다.
눈물이 차올랐다. 재환을 향했던 자신의 사랑이 어리석었다. 진정으로 나를 위한 사람은 없는데, 나는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
활활 타오르는 촛불에 태웠다.
서투르게 그린 자신의 그림도, 재환을 향한 자신의 마음도, 모두 재가 되어버리도록.
고개를 든 택운의 새벽 달에 비친 눈동자가 검게 흐려졌다.
-
-비키시오!
-안 돼! 안 된다고!
-이 여편네가!
-아악!
어느새 밝은 햇살이 창살에 내려 앉았다.
택운은 바깥에서 들리는 요란한 소음에 힘겹게 눈을 떴다.
밤새 울어 버린 흔적이 가득 한 부은 눈두덩이를 매만지며 미닫이 문을 열었다.
마당으로 나간 택운은 재향이 의문의 복면을 두른 남자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장면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재향은 상처 투성이로 넘어지는 와중에 택운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저으며 소리쳤다.
"무슨 일……."
"오지 말거라! 도망 쳐! 어서!"
"……."
"빨리! 빨리 가거라!"
영문을 모르는 택운이 머뭇거리는 사이, 복면을 쓴 남자들은 눈빛을 주고 받더니 다급하게 소리 치는 재향을 저만치 밀어뜨리고 택운에게 달려 왔다.
택운은 그에 놀라 뒷 걸음질 쳤다. 그에 남자들은 재빨리 택운을 붙잡고 말을 꺼냈다.
"우리는 김 대감님의 명령을 받고 온 사람들이다."
"…김 대감? 난, 그런 사람 모릅니다."
재향은 찢어진 이마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느끼고 작게 신음을 터뜨렸다.
이 망할 새끼들이, 이제서야 나타나는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
김원식……. 그 미친 놈이.
"택운아, 그는 너를 이렇게 만든 장본인이다! 세화를 버리고 간 그 사람인게야!"
어머니를 버리고 간 사람.
…김…원식?
복면을 쓴 남자 중 한명이 신경질이 난다는 듯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리고는 택운에게 소리치는 재향에게 다가가 목에 검을 겨누었다.
쩡 하고 울리는 검의 울림이 퍼졌다.
"한 번만 더 쓸데 없는 소리를 해 댄다면, 너의 목은 가차없이 날아 갈 것이다."
그에 재향은 비웃으며 코웃음을 흘렸다.
나중에 늙어 죽으나, 지금 죽으나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
택운이 때문에 근근히 버티던 몸뚱아리, 삶의 이유가 잡혀 가는 마당에 내 한 목숨 부지하기 위해서 입을 다물고 있을 쏘냐?
지랄이다. 지랄.
"택운아. 그를 증오해라. 너를 이렇게 만든 자에게 마음을 주어서는 안 돼! 세화를 그렇게 버리고, 너를 버린 그 자를…. 용서해서는 아니 된다."
남자는 위협에도 불구하고 겁 먹지 않고 택운에게 말 하는 재향의 목에 칼을 꽂았다.
"이… 이게… 무슨…!"
택운이 몸부림 치자, 그를 잡고 있던 남자가 그의 목을 쳐 내려 기절시켰다.
"……이제야 좀 조용하군. 빨리 데려 가자고."
눈도 제대로 감지 못한 채 피범벅이 된 채로 목숨을 잃은 재향을 놔둔 채로,
그들은 택운을 데리고 은밀하게 밖으로 빠져 나갔다.
다시 고요가 찾아들었다.
어쩌면, 평생 깨지지 않을 고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