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마을에 곧 축제가 열린다면서?"
"아. 축제? 응. 곧 열릴거야. 아주 성대한 축제지."
"어떤 축제인데?"
"화운 마을의 풍요와 평화를 기리는 마음에서 옛 부터 전해져 내려 오던 고유한 전통 축제인데,
이 시기 즈음에 꽃이 만개하여 그 향이 온 사방에 퍼진다고 해서 화향축제라고 불리워."
택운은 어쩐지 들뜨는 느낌이 들었다.
이 마을에는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고향 마을과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홍련은 알아도, 그 아들인 택운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터.
오랜만에 누리는 '자유' 였다.
"……나 꽃 좋아하는데."
사내 주제에 볼을 붉게 물들이고 입을 오물조물 움직이며 '나 꽃 좋아한다' 고 말하는 택운의 모습은 신기하기 그지 없었다.
상혁은 어이없었다. 자기와 동갑인 사내가 저런 말투로 이야기 하는데 징그럽다는 느낌이 전혀 없다니.
얼굴이 계집애처럼 수줍어서 그런건가. 키는 산만한데……. 희한하네.
상혁이 '꽃 좋아하는데, 어쩌라고?' 라는 표정으로 택운을 멀뚱히 쳐다보자, 택운은 상혁을 슬쩍 노려보았다.
"나도…… 축제 구경 가고 싶어."
"뭐. 가던지. 사고만 안 친다면야."
처음엔 택운에게 어떻게 반말을 쓰냐며 빌빌거리던 상혁이, 이틀 새 완전히 달라진 태도를 보이자, 택운은 살짝 기가 막혔다. 속은 기분이다.
뭐, 상관은 없지만. 오랜 친구처럼 편해서 좋기도 했다.
"그런데 너, 단하랑은 어떤……?"
"단하아씨…? 그냥. 너랑 비슷해. 지켜 주어야 할 분?"
"……."
"왜, 궁금해?"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택운을 보며 슬쩍 미소를 짓는 상혁이었다.
이 나라는 봄이 매우 길다.
어디를 가던 간에 꽃 내음이 만끽하고, 평화롭고,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그동안 쇠창살만 없지, 거의 감옥과 같은 기분 속에 갇혀 있느라 느끼지 못 했던 것들이 한 발짝만 벗어나자 하나 둘, 느껴지기 시작했다.
택운은 지금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웃을 일이 없어 거의 웃지 않고 살았었는데, 지금은 간간히 웃음도 나온다.
음음음. 음음음음.
택운이 기분 좋을 때 나오는 노랫 소리.
문득 들리는 노래에 상혁은 택운을 바라 보았다.
어제 택운이 온 뒤로 자신이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호위 무사의 길을 철칙처럼 지키고 세상 만사 무관심하게 살아왔던 자신인데..
또래의 곁에 있다 보니 헤이해진건가. 아무래도 정말 수련을 다시 해야 겠어.
상혁은 다시 한번 주먹을 불끈 쥐고 다짐했다.
-
화향축제(花香祝祭).
화운마을의 풍요와 평화를 기리는 전통 축제.
꽃이 만개하여 온 마을에 그 향이 퍼진다 하여 화향축제라고 불린다.
"여기, 여기 전 있어요! 꽃잎 전!"
"꽃 떡 팔아요! 떡이요, 떡!"
"꿀 과자 팝니다요!"
택운은 신기했다. 이런 축제는 처음이었다.
역시, 꽃이 피는 마을이라 그런지. 온통 꽃으로 빚은 술에, 떡에, 꽃에서 뽑아 낸 꿀로 만든 과자까지 있었다.
여기 저기서 우러 나오는 꽃 내음에 정신이 혼미해 질 것 같다.
여인들은 꽃으로 온몸을 장식하고, 사내들은 꽃술로 낮을 보낸다.
여느 때보다 자유로운 풍경이었다.
상혁은 택운의 등 뒤를 지키며 택운과 함께 축제 구경을 했다.
사실 상혁도 그간 단하 때문에 시달리는 지라, 축제 구경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
정택운, 어디 갔어.
잠깐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 택운이 사라졌다.
상혁은 당황하여 급하게 뛰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큰일인데. 한상혁, 너 지금 뭐하고 있었던거냐. 정신 빠져선.
상혁은 넋 놓고 있었던 자신을 자책하며 주위를 돌아보며 달음박질했다.
머지 않아 택운의 모습이 보였다.
계집들 사이에서 홀로 꽃으로 수놓아진 치마를 보고 있었다. 상혁은 숨이 탁 놓이는 기분으로 택운에게 다가갔다.
다행이다.
"하, 하아. 괜찮아?"
"아, 미안. 너무 예뻐서."
택운의 하얀 손이 하얀 치마를 집어 들었다. 길다랗고 넓은 폭에 하늘하늘거리는 모양새가 딱 계집의 것이었다.
상혁이 둥그레진 눈으로 '이건 왜?' 하고 묻자, 택운은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이거 사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