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추억한다. 누군가를 기억한다. 함께 울고 웃던 시간들을 그리워한다. 남들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말해도 아무렇지 않게 흘려버릴 수 있는 이런 말들은 이미 나에게 오래전에 어색해져버렸다.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고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도 없는 것. 나에게 추억이라는 것이 그렇다. 전정국 찾기 01 20살이 되었을 때, 나는 대학에 합격했다. 남들처럼 대학에 다녔고 꽃다운 청춘을 누렸다. 대학에 가면 꼭 해보겠다고 다짐했던 것들을 하며 나는 행복했다. 그 때의 1년이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후에 내 인생은 불행해졌으니까. 내게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을 그 시기의 기억은 없다. 그 때 만났던 친구도, 내가 했던 일들도 기억나지 않는다. 크리스마스 이후 내 머릿속에서 1년동안의 기억이 모조리 사라졌다. 익숙하게 말을 걸어오는 친구라는 사람은 낯설었다. 내 주위의 상황이 당황스러웠고 불과 몇 일만에 어색하게 행동하는 나를 보며 사람들은 수근거렸다. 내게 남은 기억은 20살이 되기 전, 그러니까 고등학생때까지의 기억 뿐이었다. 단지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내 머릿속에서 딱 1년동안의 기억이 사라졌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왜 이렇게 된건지, 어쩌다 이렇게 된건지, 어떻게 하면 다시 기억할 수 있는지 아무것도 몰랐다. 다급한 마음에 병원에 갔다. 병원에서도 나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희귀한 케이스라며 고개를 저었다. 의사선생님을 붙잡고 애원했지만 결국 난 아무런 방법도 찾지 못했고 며칠 동안을 방 안에 쳐박혀서 미친듯이 울었다. 주위 사람들은 기억은 다시 만들면 된다고 나를 위로했다. 나를 익숙하게 대하는 사람들이 불편했지만 나는 점차 조금씩 적응해갔다. 내 기억은 20살에서 멈추었지만 나는 21살의 삶을 살고 있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21살의 봄, 여름, 가을이 지나고 다시 겨울이 왔다. 지금까지 내가 말한 어떠한 것도 내 기억에 없다. 모두 엄마에게, 주위 사람들에게, 나를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들은 것들에 불과하다. 다시 맞이한 끔찍했던 21살의 겨울에 나는 또 1년동안 만들어온 모든 기억을 잃었다. 조금이나마 익숙해졌을 사람들은 다시 남이 되었고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펑펑 울었다던 처음괴는 달리 눈물도 나지 않았다. 덤덤하게, 침착하게 기억나는 것을 정리했다.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 사랑하는 가족들이라도 잊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마저도 영원히 기억하지 못했다면 나는 정말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두번째로 다시 기억을 잃으면서 그래도 하나 알아낸 것이 있다. 이 모든 일은 크리스마스 이브 밤에 일어났다는 것. 그러니까 크리스마스가 되면 나는 1년동안의 기억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해가 바뀌고 어느새 나는 22살이 되었다. 나는 또 다시 맞이하게 될 22살의 크리스마스가 두려웠다. 열심히 한 해를 살아도 결국 그 모든 것이 부질 없어진다는 사실은 나를 자꾸만 작아지게 만들었다. 태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결국 꽁꽁 숨어버렸다. 대학도 그만두었고 하고있었던 알바도 모두 그만두었다.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모두 사라졌지만 나에게는 그게 더 편했다. 그 사람이 아무리 내게 편하게 말을 걸어오고 자연스럽게 행동해도 어차피 나는 기억하지 못할 테니까. " 찬아! 태권도 가자. "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집에서 어린 동생을 돌보는 일뿐이다. 혹시라도 누가 나를 알아볼까 무서워 집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숨어버린 내가 걱정되어 엄마가 내게 맡긴 일이다. 올해 7살이 된 어린 동생이 태권도에 다닌지는 벌써 3년째라고 한다. 하지만 그 사실은 내 기억에 없다. 내 머릿속에 남은 동생은 4살인 작고 작은 꼬마뿐이다. 어느새 제법 커버린 동생이 달려와 내 손을 잡는다. 그리고 나를 올려다보며 씩하고 웃기에 그 머리를 쓰다듬고 집을 나섰다. 동생 말로는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내가 여러번 동생을 태권도장에 데려다줬다고 한다. 물론 슬프게도 내 기억에는 없다. " 누나누나, 나 내일 승급심사해! " " 아 진짜? 누나가 보러가야겠네. " " 응! 관장님이 나 짱 잘한다고 그랬어! " " 오~ 그러면 누나 완전 기대한다? " 동생은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웃는다. 어느새 도착한 태권도장 앞에서 내가 쭈그려앉자 조그마한 체구가 내 품에 폭 안긴다. 잘 다녀오겠다는 씩씩한 인사와 함께 동생은 태권도장 안으로 뛰어간다. 곧이어 노란색의 버스 한대가 멈춰서고 그 안에서 하얀 도복을 입은 아이들이 줄지어 내린다. 저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태권도장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귀여워 제자리에 멈춰서 넋을 놓고 보고있었다. 마지막인것 같은 아이가 내리고 줄줄이 이어지던 줄이 끝나자 그제야 나도 정신을 차리고 발걸음을 돌리려고 했다. " ...어? " 더이상 아무도 내리지 않을 것 같던 버스에서 그 전에 내린 작은 아이와는 비교되는 큰 남자가 내렸다. 마찬가지로 하얀 도복을 입은 남자는 내 또래로 보이는 젊은 남자였다. 키도 크고 덩치도 좋은게 동생이 전에 얘기한 대따 멋있다는 태권도 사범님인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멍하니 그 남자를 쳐다보고 있는데 무심코 고개를 돌린 남자와 눈이 마주쳐버렸다.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면 혹시라도 그 사람이 내게 아는 척을 할까 재빨리 고개를 돌려버리던 나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왠지 그럴 수 없었다. 마주친 시선을 피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 남자를 쳐다보는데 남자도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나를 쳐다봤다. 나를 빤히 쳐다보는 시선이 부담스럽지 않고 오히려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우린 한참을 그러고 서서 서로를 바라봤다. 아는 얼굴이 아니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고 혹시 봤다해도 태권도장에 왔을 때 한두번 우연히 봤을 만큼 모르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느낌이 이상했다. 자꾸만 시선을 뺏겼고 기분이 묘했다. 심장이 빨리 뛰고 몸에 열도 오르는 것 같았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한참 후에야 남자가 시선을 떼며 작게 목인사를 했다. 태권도장 안으로 들어가려는 듯 몸을 돌리는 남자에 나도 모르게 다급해져 남자에게로 뛰어갔다. " 저기요! " 내 부름에 움직이던 남자의 발이 멈췄다. 다시 내게로 몸을 돌린 남자는 놀란 듯이 두 눈을 크게 뜨고있었다. 남자를 멈춰세운 나는 재빨리 그에게 달려가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고르고 말을 이어갔다. " 저기, 저기 있잖아요. 혹시 나 알아요? " " ...네? " " 초면에 죄송한데 제가 너무 궁금해서 그래요. 저 알아요? " " ... " 예 혹은 아니오로 금방 들을 수 있을 줄 알았던 남자의 대답은 생각보다 늦게 돌아왔다. 그것도 내가 기대하던 대답이 아닌 나를 당황시키는 질문으로 말이다. " 그 쪽은요? " " 네? " " 당신은 나 알아요? " " ... " " 내가 궁금하면, 내가 당신을 아는지 알고싶으면 먼저 자기가 누군지 말하는게 먼저인 것 같네요. " 남자는 자기 말이 끝나자마자 다시 몸을 돌려 태권도장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남자의 태도에 당황한 내가 미쳐 잡지도 못할 그런 속도였다. " 허- " 단호하게 말하던 남자의 말에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지. 아는 사람인지 아닌지 말해주는게 그렇게 어렵나.하는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기분이 묘하고 이상해서 한번 물어봤다가 내 기분만 망친 것 같았다. 도장을 한번 노려보고 집으로 가기 위해 몸을 돌리려다가 멈춰섰다. 말 안해주니까 더 궁금하네. 머릿속을 가득 채운 궁금증에 쉽사리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았다. 한숨을 한번 내쉬고 집으로 가려고 먹었던 마음을 접었다. 뭐가 그렇게 비밀스럽고 조심스러워서 말을 안해주는건지 알아야겠다. 그거 말해주는게 뭐가 어렵다고 그러는건지 꼭 알아내겠노라고 다짐하며 태권도장 근처 벤치에 앉았다. " 찬아. 오늘은 태권도장 버스 타고 가. 혼자 갈 수 있지? " " 응! 근데 누나는? " " 누나는 잠깐 만날 사람이 있어서 그래. 금방 만나고 들어갈게. 먼저 가있어. " 동생까지 집에 먼저 보내고 기다리니 어느새 날이 제법 어두워졌다. 수업이 끝났는지 아이들이 쏟아져 나올 때도 그 남자는 나오지 않았다. 배도 고프고 심심하기 하고 몇 시간동안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그에게 지쳐서 그냥 집에 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을 때쯤, 마침내 기다리던 얼굴이 나타났다. 벤치에서 벌떡 일어난 나는 큰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아까 입고 있던 도복을 갈아입고 트레이닝 복을 입은 남자는 나를 발견하고는 놀란 듯 제자리에 멈춰섰다. 나는 성큼성큼 남자에게로 다가가 그 앞에 섰다. " 안녕하세요. " " 와, 안 가고 지금까지 계속 기다렸어요? " " 제 이름은 ㅇㅇㅇ이에요. " " ... " " 이제 말 좀 해줄래요? 혹시 나 알아요? " 내 물음에 남자는 얼굴에서 띄우고 있던 웃음기를 거뒀다. 남자는 나를 내려다보며 입을 꾹 다물었다. 남자가 쉽사리 대답하지 않고 망설이자 나는 다시 한번 물으며 남자를 재촉했다. 작게 한숨을 내쉬고 나한테로 한발자국 걸어온 남자는 한참을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 나는 오랜만인데 너는 아니겠죠? " " ...네? " " 안녕하세요. 전정국입니다. " " ... " " 너는 모르겠지만 벌써 3번째에요, 내 이름 알려주는거. " " ... " " 그러니까 이번에는 제발 잊지마. " 안녕하세요 태꿍입니다:) 얼마만에 이렇게 찾아오는건지 모르겠네요 이렇게 불쑥, 뜬금없이 새 글로 찾아와서 당황스러우셨죠? 죄송합니다 조만간 공지글로 찾아올게요 암호닉도 새로 받을거에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님들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