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 후의 전정국.txt |
" 누나. " " 왜. " " 우리 아까 카페 가기로 했잖아요. " " 그랬지. " " 지금 몇시죠? " " 9시. " " 가요. " " 어딜. " 카페. 정국이 말간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 청량한 웃음에 단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는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거렸고. 땀이 날 정도로 내 손을 꽉 잡고 있던 정국이 근처에 보이는 카페로 나를 이끌었다. 누나는, 당차게 운을 띄운 정국이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마저 말을 잇는다. 녹차라떼. 나를 돌아보며 말하는 정국에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뭐, 정국이가 먹으라는데. 수용적인 태도로 정국이 하는 행동을 지켜보았다. 제가 먹을 화이트 초코 모카와 녹차라떼를 함께 시킨 정국이 진동벨을 받아온다. 어디 앉을까요. 정국의 말에 고갯짓으로 구석에 있는 테이블을 가리켰다. 아. 짧은 감탄사를 내뱉은 정국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며 테이블로 향한다. 테이블에 앉은 정국은 말이 없었다. 나 역시 할 말이 많은 것은 아니었기에 정국과 같이 입을 다물고 창 밖을 바라보았다. 커플들이 참, 많구나. 새삼 정국과 연애를 하고 있다는 것이 몸소 와닿았다. 내가 설마 전정국하고 이런 사이가 될 줄은 몰랐지. 서로의 행동에 웃고, 설레고, 화도 내고, 슬퍼하기도 하는. 그런 감정소모가 큰 일을 나와 정국이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이 가슴께를 간질거리게 만들었다. 문득 정국과 처음 마주했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의 정국은 귀찮은 1학년 정도였는데. 살짝 입꼬리를 올린 나를 발견했는지 정국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때마침 진동벨이 울리고,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음료를 가지러 가는 정국의 뒷모습을 돌아보았다. 고작 몇 달이 지났다고, 처음엔 왜소해보였던 몸집이 퍽 남자다워져 있었다. 아니, 그냥 내 콩깍지인가. " 여기요. " " 고마워. " " 누나. " " 왜 또. " " 누나는 왜 커피를 못 마셔요? " " 쓰잖아. " " 이유가 그것 밖에 없어요? " " 응. " " ... 귀여워. " ... 뭐? 작게 들려온 정국의 목소리를 듣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내가 지금 잘못 들은 건 아니지. 글쎄 전정국이, 나보고 귀엽단다. 그 말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제가 시킨 커피에 꽂아놓은 빨대를 입에 문 채 턱을 괴고 나를 쳐다보는 전정국의 시선이 뜨겁다. 진득하니 열이 잔뜩 오른 시선이 부담스러워 정국의 눈을 손으로 가려버렸다. 그러자 내 손에 가볍게 깍지를 끼고는 실실 웃으며 손을 내리는 전정국이다. 이럴 때 보면, 연하가 아니라 아저씨 같은데. 능글거림의 정도가 극에 달한 정국이 잡고 있던 손을 살살 쓸기 시작하더니 이내 제 입술로 가져가 쪽, 하고 입을 맞추었다. 누가 보면 아주 치를 떨겠어. 딱히 염장을 지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기에 정국에게 잡힌 손을 빼내려 하자 꽉 잡고는 놓아주지를 않는다. " 놔라. " " 싫어요. " " 놓으라고. " " 싫다니까. " " 은근슬쩍 반말하지. " " 계속 할 건데. " " 혼나. " " 알았어요. " 제법 엄한 표정으로 정국을 어르자 다시 소년의 모습으로 돌아온 정국이 풀이 죽은 모습으로 어깨를 축 늘어뜨린다. 귀, 귀엽잖아! 무뚝뚝한 성격에 비례하게 귀여운 것에 대해서는 사족을 못 쓰는 나에게 그런 정국의 행동은 치명타나 다름 없었다. 그 모습 그대로, 고개를 들어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데, 그만 숨질 뻔 했다. 속으로는 미친듯이 몸부림을 치면서도, 겉으로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정국을 쳐다보았다. 누나. 정국이 애처로운 음성으로 나를 부른다. 저런 음성으로 나를 부를 때면 무엇이라도 다 해줄 수, " 오빠라고 한 번만 해보면 안돼요? " ... 는 없겠네. 이건 또 무슨 개소리인지. 떨떠름한 표정으로 정국을 마주하자 이제는 아예 앙탈을 부리기 시작한다. 아아, 한 번만. 미친, 네가 그러면 내가 뭐가 되냐고. 잼이 되겠지. 언제나 생각하는 것이지만, 정국의 무기는 큰 눈망울인 듯 싶다. 크고 맑은, 순수한 눈망울로 나를 제 눈에 담을 때면 그만 무장 해제가 되어버리고 마니까. 연하와 사귈 때에는, 이런 건 완곡한 태도로 거절해야 한다고 어디서 그랬는데. 그딴 건 다 개나 줘 버리라고 해라. 상대는 전정국이다. 결국 큼큼 목을 가다듬자 정국이 기대 어린 눈빛으로 나를 빤히 응시한다. 아씨, 쪽팔리는데. " ... 오빠. " " 아, 미쳤다. 세상에. 한 번만 더 해봐요. 녹음하게. " " 미쳤어? " " 진심인데. 녹음하면 안돼요? 매일 밤마다 듣고 자고 싶은데. " " 됐어, 두 번은 없어. " " 진짜 완전 귀여운데. 아, 또 듣고 싶다. " " ... 예쁜 짓하면 생각해볼게. " 내 말에 정국이 영악하게도 이런저런 포즈를 취해보인다. 애교가 가득한 그의 모습에 입꼬리를 헤벌레 올리려다 멈추었다. 지금 말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하니 정국이 새침한 얼굴로 나를 노려보았다. 저런 건 또 어디서 배워왔어. 요망한 연하 탓에 자꾸만 심장이 멎어버릴 것만 같다. 오늘도 전정국은, 역시 당해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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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벽 깨진 민윤기.txt |
" 야. " " 왜. " " 내 핸드폰. " "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병신아. " " 어딨냐고. " "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고. " " 아, 씨발. " 저 성격 파탄자 새끼. 한심한 얼굴로 제 핸드폰을 찾고 있는 민윤기를 보며 시리얼을 아그작 씹어먹었다. 그만 좀 처 먹어, 돼지 같은 새끼야. 곧이어 들려온 민윤기의 말에 그릇에 담아두었던 시리얼을 민윤기에게 던지자 민윤기가 인상을 찌푸린다. 덕분에 시리얼 세례를 맞은 민윤기는 내게 무어라 쌍욕을 짓껄이더니만 다시 핸드폰을 찾기 시작한다. 잠시 후, 구석에 처박혀 있던 핸드폰을 찾았는지 민윤기가 활짝 펴진 얼굴로 바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 어, 미안. 핸드폰이 안 보여서. " " ... ... " " 잤어? 목소리가 잠겼는데. " " ... ... " " 감기라고. 약 사들고 갈까? " " ... 미친 놈. " " 조금만 기다려. 약이랑 죽 사서 갈게. " 저건 민윤기가 아니라 미친 놈이다. 자기 합리화를 하며 나갈 준비를 하는 민윤기를 떨떠름하게 쳐다보았다. 왜 쳐다보고 지랄이야. 내가 잠시도 가만히 있는 꼴을 보지 못하는 민윤기는 역시 토를 달아왔고. 민윤기랑 사귀는 사람은 민윤기가 이런 새끼란 걸 알까. 아니, 모르겠지. 그렇게 극진히 민윤기가 받들어 모시는데. 방금 전만 해도 나에게 툭 내뱉었던 말투와는 달리 나긋나긋해진 다정한 음성을 들으며 몸서리를 쳤더란다. 무서운 새끼. 혀를 쯧, 차고 시리얼을 마저 먹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에서 말끔한 모습을 하고 나온 민윤기가 급히 집 밖으로 나간다. 어휴, 저 여친 병신 새끼. *** " 오지 말라니까. " " 네가 아프다는데 어떻게 안 와. " " ... 진짜 사왔네. " " 먹어, 빨리. " 윤기가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무언가가 한아름 담긴 묵직한 쇼핑백을 건넸다. 이게 다 뭐야. 쇼핑백에 든 것들을 식탁에 늘어놓았다. 종합 감기약부터 시작해서, 온 동네의 약은 다 쓸어온 모양이다. 게다가 아직 뜨거운 죽과 여러 간식들까지. 입을 쩍 벌리고 민윤기를 쳐다보자 어깨를 으쓱해보이는 윤기다. 어이구, 잘했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쇼핑백을 채웠을 윤기가 대견해 까치발을 들어 윤기의 정수리를 쓰다듬었다. 가만히 그 손길을 받아낸 윤기가 커다란 두 손으로 내 볼을 잡아왔다. 열 나네. 윤기의 단조로운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밖에서 온 탓에 아직 차가운 손으로, 열기를 식혀준 윤기가 손을 떼고서 식탁에 죽을 차리기 시작한다. 그 행동을 저지하려하자 내 어깨를 꽉 붙잡더니 나를 자리에 앉힌 윤기가 가만히 있으라며 핀잔을 준다. 진짜, 못 말린다니까. " 아. " " 내가 먹을 수 있는데. " " 빨리. 아. " 막무가내로 입을 벌리라는 민윤기에 할 수 없이 아, 하고 입을 벌리자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은 윤기가 내 입 안으로 죽을 한 숟갈 넣어주었다. 호호 불고 불어 열기를 식히고, 먹기 좋게 김치까지 올려 다시금 한 숟갈을 담아낸 윤기가 손가락을 내밀었다. 아아. 아기새처럼 그것을 받아먹으니 윤기가 기특하다는 듯 웃음을 지어보인다. 그 웃음이 좋아 계속 받아먹다보면, 어느새 한 그릇을 싹 비웠다. 부지런히 일어나 그릇을 치우고 온 윤기가 뒷정리까지 깔끔하게 마친 뒤 나를 일으켰다. 이제 잘 시간. 어린아이를 어르는 듯한 말투에 웃음을 터뜨리자 윤기가 제법 엄한 표정을 짓는다. 이건 뭐, 조련 당하는 것도 아니고. 고분고분 윤기를 따라 침대 위에 누웠다. 나 네가 사온 간식 먹고 싶은데. 윤기에게 눈을 빛내며 말해보았지만 단호히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보인다. 있다가 자고 일어나면 먹자. 내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말한 윤기가 손가락으로 내 볼을 톡톡 두드렸다. 단 것을 싫어하는 윤기가 무얼 살 지 고민하며 간식들을 샀을 것을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얼굴에 두둥실 떠올랐다. 왜 웃어. 나른한 윤기의 목소리를 들으니 잠이 솔솔 오는 것 같다. 아니, 그냥. 어느새 따뜻해진 제 손으로 내 손을 꼭 붙잡고, 자장가를 부르듯 말을 건네오는 것에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나 졸려. 칭얼거리듯 말하자 윤기가 이불 위로 손을 올려 토닥이기 시작한다. " 얼른 자. " " 윤기야. " " 왜. " " 내가 진짜 많이 좋아하는 거 알지. " " 응. " " 너도 나 좋아하지? " " 네가 나를 좋아하는 것보다 훨씬. " " 에이. " " 졸리다며. 자, 빨리. " 민망한 듯 자라며 재촉을 하는 윤기에게 낮게 웃음을 터뜨리고 나른한 기분에 취해 잠을 청했다. 자고 일어나도 네가 옆에 있겠지. 내가 잠든 사이에도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나를 지켜봐줄 윤기를 떠올리니 절로 마음이 든든해져온다. 속상하게, 아프지 말고. 희미하게 들려오는 윤기의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에 들었다. |
위의 두 텍스트는 보너스. 여러분들이 보고싶다고 해서 가져왔습니다.
나름대로 특집이었는데, 잘들 보셨는지요.
저는 그럼 암호닉만 확인하고 가겠습니다.
잘자고, 내일 봐요.
암호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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