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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에 애아빠가 산다
04
***
점심식사를 마치고 아예 이 집에 눌러 앉으려는 듯 내 눈치를 살살 보며 제 할머니에게 달라붙는걸 번쩍 안아들었다.
울상을 짓고 축 쳐진 아이를 현관에 세우고 그 앞에 쪼그려 앉아 신발을 신겨준 뒤 할머니한테 인사, 하자 그 와중에 야무지게 배꼽에 손을 올리고 고개를 푹 숙여 인사를 한다.
아쉬움을 숨기지 못하시며 시우의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좀 더 있다 가지 왜- 하는 말에도 또 올게요, 하고 웃으며 현관을 나섰다.
마음 같아선 오랜만에 할머니를 만나 잔뜩 신이 난 시우와 그만큼 즐거워하시는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하룻밤 있다 갈까 싶지만, 내일은 월요일이었다.
주말도 순식간에 지나가고 벌써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어제도 평소보다 느지막히 잠든 시우를 오늘은 일찍 재워야겠다는 마음이 컸다.
차 조수석에 시우를 태우고 돌아가 운전석에 올라타며 조수석 쪽 창문을 내리자 말렸는데도 굳이 배웅을 나오신 어머니의 얼굴이 보였다.
" 쌀쌀해요, 얼른 들어가세요. "
" 그래, 연락 좀 자주 하고. "
" 네, "
" 우리 시우도 잘 가고, 다음에 또 할머니 보러 와야한다? "
" 네! 근데.. 다음엔- 하부지 없을 때.. "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뱉은 시우의 말에 나도, 어머니도 별 말 없이 쓴웃음만 지었다.
말 없이 손을 흔들어 보이는 어머니께 들어가세요- 하고 마지막으로 한번 더 인사를 남기고 창문을 올린 뒤 집으로 출발했다.
내가 매준 벨트를 양 손으로 꼭 쥐고 창 밖만 멍하니 보고 있는 시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별 것 아닌 척 아무렇지 않게 질문을 던졌다.
" 권시우, 오늘 재밌었어? "
" 웅- 할무니 조아, "
"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도 오랜만에 봤잖아, "
" ... "
" 왜- "
" 하부지는 안 조아.. "
" ...왜 안좋아? "
" 아빠가 하부지만 만나면 슬퍼지니까.. "
아빠가 슬프면 시우도 슬퍼.. 작게 입을 오물거리던 시우가 곧 입을 앙 다물었다.
그리구.. 하부지는 시우 안조아하니까... 고개를 숙이며 우물거리는 시우의 말에 순간 가슴에 무거운 바위가 하나 얹혀지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입을 꾹 다물게 됐다.
사랑만 받으며 자라야 할 아이가 나 때문에 너무 일찍 철이 들고 눈치를 보며 크고 있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미안함만 더해갔다.
내가 한참을 말 없이 굳은 표정으로 운전만 하자 또 살살 눈치를 보더니 시우는 괜차나.. 한다.
그제야 애써 입꼬리를 끌어올려 미소를 띄웠다.
마침 신호에 걸려 차가 멈췄다.
고개를 돌려 시우를 보자 언제부터였는지 나를 빤히 보고 있는 얼굴과 마주했고, 곧 손을 뻗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냐, 우리 시우를 누가 안 좋아해. 할아버지 시우 안 미워해,
정마알..?
...그럼, 우리 시우가 얼마나 예쁜데.
***
눈을 떴을 때 집안에 부승관은 없었다.
겨우 몸을 일으키자 하도 울어서인지 머리가 띵 하니 울려와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고개를 돌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벌써 6시가 넘어가고 있었고 바깥은 해가 져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머리를 짚으며 자리에서 일어서 몇걸음을 떼자 책상 위에 놓인 쪽지가 눈에 들어왔다.
' 출판사 일 때문에 가봐야되서 너 깨는거 못 보고 간다. 일어나면 밥 챙겨먹어, '
남자 치곤 정갈한 글씨체로 적힌 쪽지를 다시 책상 위에 올려두고 무거운 발걸음을 느릿하게 옮겨 방 밖으로 나갔다.
부엌 쪽으로 걸어가자 가스레인지에 냄비가 올려져 있었다.
그 뒤로 밥솥, 냉장고를 차례로 살피자 모두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이것마저도 익숙한 일이었다.
내가 이렇게 울다 지쳐 잠들면 차려둬도 혼자서는 절대 챙겨먹지 않을거라는걸 알면서도 꼭 부승관은 이렇게 밥을 챙겨두곤 했다.
그러면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밥을 꾸역꾸역 입으로 밀어넣곤 했었다.
냄비 뚜겅을 열어 그 안에 들어있는 찌개를 한 입 떠먹자 투박하던 열다섯 소년의 음식솜씨도 10년 새 많이 늘었구나, 싶어 웃음이 났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도저히 입맛은 돌지 않아 그대로 두고 부엌에서 돌아나왔다.
이제는 왠지 몸이 으슬으슬 아파오는 것 같기 까지 했다.
여전히 기분 나쁘게 울려대는 머리에 이마를 짚은 채로 욕실로 들어갔다.
차라리 싹 씻고 나와 다시 푹 자는게 더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어서였다.
김이 폴폴 나는 따뜻한 물로 느릿느릿 샤워를 마치고 겨우 침대로 돌아와 누웠다.
이젠 헤롱헤롱 눈 앞이 흐려지기까지 하는게 정말 몸살이라도 올 모양이었다.
마감이 끝난게 이렇게 다행일 수가 없었다.
그냥 혼자 며칠 앓고 나면 낫겠지, 하는 바보같은 생각을 하며 이불에 몸을 깊이 묻으며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는데,
시선의 끝에 벽에 걸린 그 낯선 옷이 걸렸다.
아, 저거.. 언제 갖다드리지?
멍하니 생각하며 몇번 더 눈을 깜빡거리다 나도 모르는 새 까무룩 잠에 들었다.
***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왠일로 시우가 잠들지 않았다.
심심하지도 않은지 말 없이 운전만 하는 내 옆에 얌전히 앉아 그저 창 밖에 시선을 고정하고 몸을 좌우로 살랑살랑 흔들며 바깥을 구경했다.
집앞에 도착해 먼저 내린 내가 조수석 쪽으로 가 문을 열고 팔을 벌리자 이번에는 순순히 품에 안겼다.
내 품에 안겨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던 시우가 한층한층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의 숫자를 빤히 쳐다보다 갑자기 발을 동동 구르며 급히 입을 열었다.
" 아빠! 아빠아! "
" 어? 왜, 뭐 두고 왔어? "
" 아니이- 일기! "
" 일기가 왜? "
" 누나한테 시우 일기장 보여주기로 했짜나! "
빨리 가서 써야대! 하고 사뭇 진지한 얼굴을 하고 몸을 비틀어 내 품에서 벗어난 시우가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마자 달려나갔다.
까치발을 들고 손을 뻗어 현관문을 여는걸 지켜보다 따라 들어가며 -손 먼저 씻고! 하자 곧바로 제 방으로 뛰어가던 작은 몸이 내 목소리에 급히 방향을 꺾어 화장실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보고 못말린다는 생각을 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순식간에 스스로 씻고 나온 시우가 화장실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방으로 달려가 작은 책상 앞에 앉았다.
그렇게 급할까, 하며 잠깐 지켜보다 나도 화장실로 들어가 씻었다.
내가 씻고 목에 수건을 두른 채 옷까지 편하게 갈아입고 나올 때 까지 시우는 세상 진지한 얼굴로 꼿꼿하게 허리를 새운 채로 일기를 쓰고 있었다.
저렇게 열심인걸 보니 괜히 호기심이 생겨 몰래 방문을 열고 들어가 뒤에서 기웃거리는데, 그걸 눈치 채고 파드득거리며 온 몸으로 일기장을 가린다.
아빠에게 뭘 그렇게 열심히 숨기나 싶어 서운한 마음 반, 괘씸한 마음 반으로 살짝 뒷통수에 꿀밤을 놓자 제 뒷머리를 쓰다듬으며 나를 흘겨본다.
" 너 진짜, 아빠 서운하게 그럴거야? "
" 안대- 이건 저얼때 못 보여줘! "
" 참 나, "
" 이거느은- 비밀이야, 비밀! "
쉿- 하는 손모양까지 해보이며 실실 웃던 시우가 제 팔로 일기장을 가리고 몇번 더 끄적대더니 끝! 하고 일기장을 덮는다.
멀뚱멀뚱 서 있는 나는 신경도 안 쓰고 헤실헤실 웃으며 일기장을 야무지게 챙겨 방을 나간다.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잔뜩 신이나서 현관으로 걸어가 신발을 신는걸 뚱하니 지켜보고 서 있었다.
혼자 꼬물거리며 신발까지 야무지게 신고 벌떡 일어선 시우가 아, 하더니 나를 빤히 본다.
" 아빠두 가치갈래? "
" 에? "
" 아빠두 옆집누나 보러 가치 갈거냐구- "
오려면 시우 따라와,
새침하게 말하고 홱 돌아서며 현관문을 여는 뒷 모습을 보며 눈만 깜빡거렸다.
뭐, 늦은 시간에 애 혼자 보내는 것도 좀 그렇고. 혹시 이 시간에 시우가 민폐일 수도 있으니까..
아, 옷도 돌려 받아야지. 그럼,
이런저런 핑곗거리를 만들며 잠시 머리를 굴리다 벗어뒀던 가디건을 주워 대충 걸치고 시우를 따라 나섰다.
***
현관을 열고 나와 옆집 초인종을 누르는 시우 뒤에 멀찍이 서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한 손에는 일기장을 야무지게 쥔 채로 까치발을 들고 낑낑대며 초인종을 연달아 누르는데, 감감무소식이다.
열리지 않는 문에 고개를 갸우뚱 거리던 시우가 슬그머니 뒤를 돌아 나를 보길래 그저 어깨를 으쓱 해 보였다.
" 아빠아.. 왜 문이 안열리지이? "
" 글쎄, 벌써 주무시나? "
" 흐응.. "
입을 삐죽이던 시우가 다시 손을 뻗어 초인종을 누르려 하는걸 손을 뻗어 붙잡았다.
아무래도 벌써 잠을 청하는 듯 싶어, 괜히 피해가 갈까 싶어서였다.
시우의 손을 잡고 쪼그려앉아 다음에 오자, 내일 와서 일기장 드리면 되지. 하자 영 아쉬운지 자꾸만 문을 힐끗거린다.
몇번 더 달래자 곧 한숨을 푹 쉬며 내 손을 잡고 돌아섰다.
" ...누구세요? "
" 어! 누나다! "
막 돌아서서 집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벌컥 옆집 문이 열렸다.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활짝 웃으며 돌아선 시우가 내 손을 놓고 다다다 달려갔다.
얼떨결에 손을 놓아주고 한박자 늦게 뒤를 돌아보자, 어느새 현관을 지나 집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 시우와 두꺼운 이불을 몸에 두른 작가님이 보였다.
" 혹시 주무셨어요? "
" 네, 오늘 좀 일찍.. "
" 죄송해요, 시우가 꼭 일기장을 전해주겠다고... "
" 아.. 어, 일단 들어오실래요? "
자꾸만 콜록거리며 기침을 하는 모습이 걱정스러워 슬슬 눈치를 보며 말을 건네는데, 곧 들어오라며 살짝 옆으로 몸을 비키시길래 그럼, 하고 짧게 목례를 한 뒤 안으로 들어갔다.
두리번거리며 시우를 찾는데, 이미 팔랑거리며 집 안으로 뛰어들어간 뒤였다.
집 안으로 따라 들어가자 시우는 익숙한 듯 쇼파에 앉아 있었다.
내 앞에서 걸어 들어가던 작가님이 아, 뭐 차라도 드릴까요? 하고 물으셔서 손사래를 치며 됐다고 사양을 했다.
아무리 봐도 얼굴도 빨갛고 자꾸 마른 기침을 하는게 몸이 안좋으신 것 같아 얼른 피해드려야하나 싶었다.
그런데 또 혼자 집에 있으실 걸 생각하면 약이라도 챙겨드리고 가야하나, 싶어 혼자 머릿속이 복잡했다.
" 근데 누나, 아파? "
" 응? "
" 누나 아파보여.. "
" 아.. 글쎄, 감기를 걸렸나? 몸이 좀 안 좋네. "
안대! 시우가 누나 안 아프게 해주께! 쇼파에 작가님과 나란히 앉은 시우가 울상을 짓고 묻다가 작가님의 대답에 벌떡 일어나 손을 잡아 끌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어어, 하다 얼떨결에 시우와 작가님 뒤를 따라 방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시우가 작가님의 손을 끌고 야무지게 침대에 눕게 한다.
끙끙대며 두꺼운 이불도 다시 잘 덮어주고 옆에 딱 붙어 앉는걸 보다 웃음이 터졌다.
" 누나아, 아프면 안대. "
" 고마워- 근데 시우 이렇게 누나 옆에 있으면 시우도 아플텐데? "
" 으응? "
" 그래, 시우야. 작가님 쉬시게 우리 갈까? 일기장만 드리고 가면 되지, "
" 아냐! 안대, 아빠두 여기 이써! 누나 간호오 해줄꺼야! "
간호라는 말은 또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심각한 얼굴로 이젠 내 손까지 잡아 끌며 옆에 앉힌다.
어색하게 웃자, 침대에 누운 작가님도 하하, 하고 머쓱한 듯 웃으신다.
그런데 막상 침대 옆에 앉으니 정말 침대에 누운 작가님 얼굴이 아파보여서 마음이 쓰이긴 했다.
아무래도 곧 시우가 졸려할테니, 그 때 까지만 여기에서 간호 비슷한거라도 해드려야겠다 싶어 제대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약은 드셨어요? 하자 누운채로 눈을 굴리도 아뇨, 하고 어색하게 웃으시길래 약은 있죠? 하며 일어서자 어, 하며 몸을 일으키려 하신다.
그러자 내 옆에 앉아있던 시우가 손을 뻗어 막으며 안대! 누나 계속 누워이써! 한다.
그 모습에 나도 웃으며 누워계세요, 제가 가져다 드릴게요. 하자 그럼.. 부엌 식탁에 있을거예요, 하시고 시우가 뻗은 손을 꼭 잡는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 약을 가지러 밖으로 나갔다.
***작가말 꼭 읽어주세요!***
으으ㅠㅠㅠㅠ 안녕하세요 늘 성은이 망극한 모지리 작가입니다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사실 아직도 제가 왜 매 편 초록글에 오르는지 잘 모르겠어요ㅠㅜㅜㅜㅜㅜㅠㅠㅠㅠ 이렇게 모자란 글이ㅠㅠㅠㅠㅠㅠㅠㅠ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고 댓글도 남겨주시는데 정말 너무너무 감사해서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글은 정말 뒤로 갈수록 망삘이네요..ㅎ
오늘 꼭 써야지! 하고 급한 마음으로 적어서 분량도 좀 짧은 것 같고.. 글에 오타가 있을수도 있어요..(민망)
그나저나 오늘 수능이었잖아요!
수능 보신 독자님 계시려나8ㅅ8 결과가 어떻든 간에 최선을 다했고, 노력한만큼 해냈다면 충분히 칭찬받고 대견할 만한 일인 것 같아요.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___^ 앞으로 앞날에 꽃길만 펼쳐져 있으실 거예요♡
암호닉은 위에서 말씀 드렸듯이 저 위의 분들을 1차 암호닉으로 마감하겠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새로 댓글이 달린 3분? 4분? 까지 추가했어요!
본인 암호닉이 잘 들어가 있는지 확인해주세요~
2차 암호닉은 또 다음에 새로 받도록 하겠습니다!
이 글에서부터 새로 신청해주시는 암호닉은 반영 안되요! 2차 신청을 기다려주시길..!
이렇게 부족한 작가에게 늘 몸둘바를 모를 정도로 큰 사랑 주시는 독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정말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