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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r e a m s e l l e r


01




가지지 못한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어릴 적 아빠에 질렸다며 집을 나가버린 엄마도, 그 길로 알콜 중독이 되어버린 작자도 더는 내 곁에 있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생겼다. 갖고 싶은 것이.








* * *








오랜만에 따뜻하게 자 본 것 같다. 포근한 이불의 감촉 속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았다. 여주야, 일어나!

오래 전 들었던 엄마의 목소리가 나를 깨운다. 개꿈이네, 하면서도 일어나고 싶지 않았지만 이젠 바로 코 앞에서 들리는 듯한 목소리에 눈을 떴다.






"...?"


"여주야, 벌써 대낮이야. 언제까지 자려고! 얼른 씻고 밥 먹어."


"...엄마?"


"얘가 왜 이래. 엄마 여기있어. 얼른 씻어! 오늘 세훈이도 만난다며!"




분명히 이건 실제 상황이었다. 새벽에 나는 놀이공원으로 뛰어가 이상한 남자를 만났고… 그리고 애정을 가지고 싶다는 헛소리를 지껄인 후 눈이 감겼다. 다시 생각해봐도 내가 아는 상식선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 나는 또 다른 김여주로 일어났다. 춥고 좁은 단칸방이 아닌 따뜻하고 아늑한 침대에서, 그것도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의 홀드를 풀어 시간을 확인했다. 201X년 X월 X일. 놀이공원으로 뛰어간 날로부터 4년이 지난 날이다. 문득 머릿속에 까만 남자의 말이 스쳐지나갔다.





'그래. 알겠어. 후회하지 말고. 잘 자 여주야.'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제 그 곳을 간 이후로, 정확히 그 남자에게 내 소원을 빈 후로 나는 새로운 나로 일어났다. 이게 무슨 영화 각본으로 써도 식상한 내용인데, 지금 나에게는 현실이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제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 * *






[EXO/세훈종인] 드림 셀러 (Dream Seller) : 01 | 인스티즈





"기다리고 있었어, 여주야. 잘 잤어?"




일어나자마자 휴대폰 사용 내역을 뒤졌다. 점장님, 주인집 전화번호 빼고는 없던 휴대폰에 처음 보는 사람들의 이름들이 들어차있었다. 허… 참. 문자 내용을 봐도 우울했던 내가 아니라 여느 이십대 여학생처럼 밝고 쾌활한 사람처럼 보였다. 도대체, 내가 무슨 소원을 빈 거야. 아파오는 머리를 헝클어뜨리고 오세훈이라는 사람과 한 내용을 쭉 훑어봤다. 연인사이였다. 프로필 사진은 여자를 꽤나 울렸을 법한 잘생긴 남자였고 당장 1시간 후에 약속이 잡혀있다. 이 상태로 나갈수나 있을까 생각했는데 우선 이 생활에 적응해야했다.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이렇게 변한건지.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이 없었다. 까만 남자. 그 남자를 만나야 해.




외양은 그대로였다. 단지 축 내려가있던 어깨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었고 어둡기만 했던 표정이 아닌 생글한 모습이었다. 달라진 것은 내 인간관계, 그게 다였다. 집 나간 엄마가 원래 있었다는 양 나를 반겼고, 알콜 중독 아빠는 출근을 한 지 오래였다. 모든 게 달라졌다. 지금까지 살아 온 20년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지만 싫지는 않다. 오히려 행복하다. 이렇게 살다보면, 옛날 일들도 희미해지겠지. 그리고 나는 새로워지겠지. 어떻게 바뀐 건지는 몰라도 나는 이 모습이 좋았다. 이렇게 살 것이다.







"응, 세훈아. 오래 기다렸어? 미안해!"


"아니야. 오늘따라 좀 창백해보이는데? 아팠어?"


"아니, 그냥 지난 밤에 무서운 꿈을 좀 꿔서... 잠을 설쳤거든. 괜찮아. 밥이나 먹으러 가자."


"니 꿈 내가 다 사갈게. 그럼 오늘 무서운 꿈 안 꾸겠지? 자, 가자."









[EXO/세훈종인] 드림 셀러 (Dream Seller) : 01 | 인스티즈




"여주야, 진짜 괜찮아? 너 많이 아파보여."



"에이? 나 완전 튼튼한데? 괜찮네요!"



세훈이의 말대로 나는 멀쩡하지 않았다. 열이 오르고 머리가 아프고, 감긴가? 빨리 그 남자를 찾아야 하는데 이래서야 세훈이와 데이트다운 데이트도 못 할 것 같았다. 여주야, 너 그 때 진짜 귀여웠잖아. 김준면이랑 나랑 같이 너 놀리고. 얼마나 귀여웠는데. 그래서 내가 고백했지. 오구, 흘리지 말고. 애기네, 애기. 


아까부터 세훈이는 자꾸 옛날 얘기를 한다. 당연히 나는 모르는 내용이라 그냥 살풋 웃음만 걸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럴수록 세훈이는 사랑스럽게 쳐다보며 웃는 것도 예쁘다며 볼을 건드리곤 했다. 안 좋은 기억에 살짝 흠칫하니 손을 떼는 세훈이다. 왜 같이 앉아있는데 다른 과거를 생각하고 있을까. 원망스럽지만 그래도 이 상황이 꿈 같았다. 연인이라니.




"맞다, 저번에 니가 그랬잖아, 만약에 너가 너가 아니면 어떻겠냐고."


"..."


"솔직히 뭔 소린지 하나도 이해 안 갔는데."


"그냥 나는 다 좋아할래."


"너 자신이 니가 아니기를 바랐다면 그 선택까지도 좋아해야 하는 거니까. 그러니까 좋아할래. 원하는 대답이야, 여주야?"




그제서야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이런 느낌이구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은. 갑자기 흐르는 눈물에 어쩔 줄 몰라하던 세훈이는 얼굴을 잡으며 연신 괜찮다, 괜찮다만 반복했다. 눈물로 휴지를 다 적시고 나니 속이 후련해졌다.





"어구, 내 대답이 너무 감동적이었어?"


"응."


"뭐야.. 오늘따라 너무 저돌적인 거 아닌가요? 여주씨?"


"아니야.. 사랑해 세훈아. 고마워."


"헐... 진짜 김여주 맞아? 내가 더 사랑하지. 오늘 몸 상태 별로인 것 같으니까 집 가서 푹 쉬어라. 데려다 줄게."






김여주가 맞냐는 물음에 대답을 요하지 않는 질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찔렸다. 세훈이가 그렇게 좋아하는 여주는 내가 아닌데. 하지만 나도 느끼고 있었다. 눈이 감기면서 감정들까지 이 세계에 맞춰진건지, 세훈이에게 자꾸 마음이 갔다. 처음 만나는 사람인데도 오래 만난 것 같고, 사랑한 기억이 없는데 사랑한다. 아이러니한 기분을 이제는 즐기고 있었다.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안 그래도 자꾸만 심해지는 열에 쉬고 싶었는데 세훈이가 데려다준단다. 






* * *






이튿날 아침이었다. 하루동안 지냈다고 그새 또 익숙해진 것인지, 이제는 이 침대가 당연하게 느껴졌다. 다짐했다, 이런 삶을 준 그 남자를 찾아가기로. 쉽게 얻은 것은 믿기지 않았다. 무엇이던 대가가 있는 법이다. 




엄마에게는 잠시 바람 좀 쐬고 온다고 하고 희미한 기억속의 놀이공원을 찾아 나섰다. 다행히 얼마 멀지 않은 곳이었다. 폐 놀이공원, 그리고 그 남자. 이 쯤 되면 그 남자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내가 지금까지 꿈을 꿨다가 일어난 건가? 







[EXO/세훈종인] 드림 셀러 (Dream Seller) : 01 | 인스티즈


"여주야, 가지고 싶은 게 뭐냐니까?"


머릿 속에서는 중저음의 목소리가 윙윙 돌고 있었다. 이제 다 왔다. 놀이공원은 불이 꺼져있고, 공연장에는 그 남자가 기다리고 있겠지.






[EXO/세훈종인] 드림 셀러 (Dream Seller) : 01 | 인스티즈



바람과 현실은 달랐다. 내가 생각했던 것은 이런 게 아니었다. 공연장은 무슨 그냥 이용시간이 끝난 것 처럼 보이는 놀이공원이었다. 미친년처럼 뛰어다녔다. 찾은 것은 없었다. 그 남자는 없었다. 모든 건 꿈이었다. 나는, 이제 이 삶을 살면 되는 것이다.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발걸음을 떼었다. 다시 머리가 아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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