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지엠을 동시에 틀어주세요. )
d r e a m s e l l e 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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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지 못한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어릴 적 아빠에 질렸다며 집을 나가버린 엄마도, 그 길로 알콜 중독이 되어버린 작자도 더는 내 곁에 있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생겼다. 갖고 싶은 것이.
* * *
"여주씨. 더 이상 이런 식으로 나오면 우리도 여주씨 얼굴 보기 힘들어져."
한숨을 내뱉는 점장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또 실수했다. 허벅지를 타고 오르는 남자의 손에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른 것이 화근이었다.
가만히 있었어야 했다. 내가 도대체 왜? 선택권이란 없었다. 어제와 같은 말을 되뇌었다. 죄송합니다, 잘 할게요.
점장한테 까이는 것은 이제 별 일 아니다. 하지만 달래줄 사람이 없단 사실이 더욱 나를 힘들게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결국 나는 울음을 터뜨릴 수 밖에 없었다.
"언제쯤 행복해질까."
조심스레 말해보는 소망이 불어나오는 입김처럼 까만 밤하늘에 흩뿌려졌다. 그럼 그렇지, 이미 태어난 팔자를 어떻게 바꾼다고. 이미 사라진 입김처럼 소망도 더는 없었다.
바보같은 생각이었다. 나 같은 사람은 좁고 추운 반지하방이 원래 자리다. 차라리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행복해 질 수는 있을까."
추운 바람 속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손은 차가운 날씨 탓에 꽁꽁 얼어있었다. 마치 어디로도 가지 못하는 내 모습처럼. 그냥, 이 시간에는 눈물이 나곤 한다.
**
그 날도 여느 날과 같이 차가운 방바닥에서 움츠리고 자고 있었다.
찌뿌드드한 몸을 대충 씻은 뒤 밖으로 나가니 여전히 추운 바람이 나를 반겨줬다. 그리고 눈에 띈 전단지 한 장.
드림 셀러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짧고 군더더기 없는 문장이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전단지를 찢어들고 밑의 주소로 무작정 찾아갔다. 나쁜 일이 일어나면 어쩌지? 요즘 세상이 흉흉하대잖아.
마음 속으로는 두려웠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었다. 처음으로 호기심이 생겼다.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누굴까?
천천히 가던 걸음이 조금씩 빨라지더니 이내 뜀박질로 변했다. 빨리, 가고싶다. 그곳이 어디던. 오랜만에 목적지가 생겼다.
도착한 곳은 다름아닌 폐 놀이공원이었다. 어렸을 적, 그러니까 기억도 잘 안 나게 오래 전, 엄마와 아빠가 같이 살았을 때 들렀던 놀이공원이었다.
이른 새벽이라 그런지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불이 꺼진 놀이공원 속, 공연장에서 빛이 새어나왔다. 본능이었다.
나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주춤하기도 전에 발이 움직였다. 바깥에서 보았을 땐 밝아보였는데, 속은 캄캄했다.
무서워 뒷걸음질을 치려해도, 발걸음은 떼어지지 않았다. 이미 K를 만난 후였다.
"올 줄 알았어, 가지고 싶은 게 뭐야?"
나를 안다는 듯한 말투였다. 소름이 끼쳤다. 어두운 공연장 내부 관람석 맨 끝에 앉아있던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신원을 물었지만 자꾸만 가지고 싶은 것을 묻는다. 너무 많아 한가지만 꼽을 수 없었다.
"누구세요..?"
"가지고 싶은 게 뭐야?"
"..."
더 이상 이 곳에 있으면 안된다. 뒤를 돌아 다시 문을 열려고 하자 그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겁이 많네.
"여주야, 가지고 싶은 게 뭐냐니까."
".... 이요."
"뭐라고?"
"애정이요."
애정.. 애정이라. 살짝 웃던 남자가 다시 물어온다. 사랑? 아니면 관심?
'둘 다요.'
그래, 알겠어. 후회하지 말고. 잘 자 여주야.
그리고 눈이 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