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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쯤 눈을 떠서 부지런을 떨며 준비하면 50분쯤에 집을 나선다. 거의 8시가 되서 가게에 도착해 이것저것 준비하다 보면 어느새 8시 반이다. 모닝커피를 내리고 가게 앞에 의자를 끌고와 앉아 바쁜 출근길을 구경하는게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아, 나왔다. 나왔어. 가끔 머리에 까치집을 얹은 채 어슬렁 어슬렁 골목을 돌아다니는 남자가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근처 슈퍼에서 우유를 사러 아침마다 가끔씩 나오는 것 같다. 처음엔 행색이 특이해서 쳐다봤는데, 보면볼수록 재미있는 사람이다. 담벼락 위 고양이한테 손을 내밀다가 손을 다치질 않나, 슈퍼에서 나오자마자 사온 우유를 뜯더니 한꺼번에 원샷하고는 다시 하나를 더 사오질 않나. 며칠 재미있어서 쳐다보다가 눈이 마주쳤다. 한참을 쳐다보길래 웃으면서 인사해줬더니 귀까지 빨개져선 집으로 도망가버렸다. 

 

어릴 때부터 갖고 싶은건 가져야 직성이 풀렸다. 그러나 집이 가난한건 아니었지만 부유한 편도 아니었기에, 가지고 싶다고 해서 다 갖지는 못했었다. 그래서 한 때 질풍노도의 시기때에는 이 놈의 집구석 지긋지긋하다고 가출도 한번 했었다. 물론, 끝은 비참했지만.  

 

'갖고 싶은걸 가지려면 돈 아니면 돈 있는 애인이 있으면 되잖아?' 

 

가출했을 때 떠돌아다니다 만난 형이 해준 말이다. 그 땐 뭐가 그리도 멋있었는지. 그리고 그 형은 내 첫 상대였다. 매번 정신 없는 섹스가 끝나면 형은 내게서 돌아누워 신세한탄을 했다. 

 

'난 언제쯤 돈 많은 아저씨를 물까?' 

'일단 내가 떨어져나가야지?' 

'야, 육성재. 떨어져나갈 생각이 있으면 얼른 집에나 가.' 

'에이, 형을 두고?' 

'얼굴만 드럽게 잘생겨서는.' 

 

심통 부리듯 뒤돌아누운 형의 귀는 통통하고 붉었다. 근데 방금 지나간 흰우유청년의 귀는 더 빨갰다. 새빨갰다.  

 

"아, 귀여워라." 

 

그로부터 며칠동안 안하던 몸단장까지 하고서 우리 가게 앞을 알짱거리는데 아닌척해도 귀가 항상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내가 웃기만 해도 안절부절 못하는게 엄청 예쁘다. 이 남잔 날 가지고 이런저런 생각을 할까? 난 맨날 하는데.  

 

 

*** 

 

 

창섭은 며칠 째 방애 틀어박혀 일만 하는 일훈이 걱정돼 하루에 한두번씩 꼭 출근도장을 찍었다. 물론 그때마다 성재와 몰래 만나 작당모의를 할 목적도 있었지만, 방에서 골골대면서도 노트북 앞에 죽자사자 붙어있는 동생을 마냥 지켜볼수만은 없었다. 아끼는 동생이고, 창섭에게도 일훈은 처음 만난 동성애자 친구였다.  

 

"야, 정일훈. 나 잠깐 나갔다 온다." 

"어딜?" 

"걍..밖에." 

"알았어." 

 

일훈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는 다시 작업에 몰두했다. 그 사이 창섭은 무슨 죄라도 지은 듯 발소리를 죽이고 몰래 성재네 가게로 숨어들었다. 

 

"아, 야 나 마실것 좀." 

"자, 여기 녹차." 

"내가 아이스티 사놓으랬지." 

"사봤자 안 먹어." 

"내가 먹잖아." 

"형이 사갖고 와." 

"하여튼 귀여운 맛이 없어요." 

 

어느새 성재가 창섭에게 말을 놓을 만큼 둘은 친해져있었다. 그 친분이 뭔가 핀트가 엇나간 듯하지만.  

 

"아직도 정일훈은 나 안 보겠데?" 

"조바심 내지마. 회유에도 적당한 타이밍이 필요한거야." 

"너무 시간을 지체하고 있잖아." 

"어허. 너무 조급해하지 말지어다." 

"차라리 솔직하게 말하시지. 지금 나 놀리는거지?" 

"어느정도는." 

"아, 답답해 미치겠네. 대체 왜 그런데?" 

"낸들 아냐." 

 

창섭은 사실 어느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다. 예전에 흘리듯이 슥 옛날 얘기를 해준적 있었는데, 그 때 분명 첫사랑에 대한 안 좋은 트라우마가 있다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이후로 선 긋는게 습관화 된 것 같다고 했다. 어유, 불쌍한 내 동생. 불쌍한 정일훈. 

 

 

*** 

 

 

작업을 하다가 눈이 뻑뻑해서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로 향했다. 습관적으로 냉장고를 열어 우유를 꺼내 마시는데, 구석에 그 때사고 못 마신, 아니 안 마신 초코우유가 남아있었다. 아, 꽃집청년 얼굴 못 본지도 꽤 됐네. 그 날 이후로 밖엘 나가지 않았으니. 그리고 또 들어온 의뢰에 요새 눈코뜰 새 없이 바쁘기만 했다. 베란다에서 한번만 몰래 볼까? 마침 창섭이 형도 없는데. 사실 바쁜 이유도 있었지만, 창섭이 형이 집에 눌러붙은 후로 괜히 눈치보여 베란다로 나갈 수가 없었다. 그 땐 무작정 울면서 안만나겠다 했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무진장 무안해져서 더 만날 수가 없었다. 특히 창섭이형 앞에서. 

 

"한번만 보고 오자." 

 

후다닥 베란다로 향해서 고개를 내밀었는데, 왜 저기에 창섭이 형이 있는거야?  

 

'내가 꼬신다!' 

 

에이, 설마. 설마 창섭이 형이. 

 

'나 잠깐 나갔다 온다.' 

'어딜?' 

'걍..밖에.' 

 

일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창섭이 형이 나간지 벌써 30분이나 지나 있었다. 그 때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둘이 자지러지듯이 웃는데, 뭔가 속에서 뭔가 꼬이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 둘이 친해질 수도 있지. 창섭이 형은 착하고, 친화력도 좋고. 꽃집청년도 붙임성이 좋은 편이니까. 아, 차라리 계속 일이나 할 걸 그랬다. 괜히 봤다. 뭔가 추잡한 기분이 들 것만 같아서 얼른 거실로 나와 노트북 앞에 앉았다.  

 

"둘이, 엄청 친하네." 

 

창섭이 형은 진짜 좋은 형인데. 그럴리가 없는 형인걸 아는데. 아니, 사실 형이 그렇다해도 나는 이미 그럴 입장이 못되는데. 다 아는데 너무 분하고 열이 오른다. 난 진짜 못된 애야. 

 

 

*** 

 

 

정신 없이 얘기하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창섭은 이만 들어가 보겠다며 다음번엔 아이스티를 사 놓으라 말하곤 꽃집을 나왔다.  

 

"나 왔다." 

 

창섭은 나갔을 때와는 차원이 다르게 우중충해진 집안 분위기에 흠칫 놀랐다. 뭐야, 또 뭔데? 

 

"왔어..? 왜 이렇게 늦었어?" 

"어? 아, 친구랑 만나서 얘기 좀 하느라." 

"형." 

"왜,왜." 

"꽃집청년이랑 친해..?" 

 

그 때 여우의 꼬리들의 반응했다. 드디어 병아리가 물었다! 던지지도 않은 미끼를 덥썩 물었다. 됐다! 여우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 앞에 놓인 병아리를 구워삶을 궁리를 착착 해내가고 있었다. 

 

"봤...냐?" 

 

일훈의 눈가가 빨개진다. 참, 요리하기 쉬운 녀석이야. 

 

"아니, 저번에 너 때문에 한번 얘기한후로 은근 말이 잘 통해서 요새 자주 만나." 

 

일훈의 머리속에는 지금 방금 봤던 창섭과 성재의 웃는 모습만 가득차서 창섭의 뒤로 너울거리는 아홉개의 꼬리가 보일리가 없었다. 

 

"니가 꺼려할까봐 말 못했지. 혹시 기분 나쁘냐?" 

 

입술이 삐죽삐죽거린다. 좀만 더, 조금만 더... 

 

"이야, 그 자식 엄청 좋은놈이더라. 니가 그렇게 좋아한 이유를 알겠더라, 야." 

"좋아해..?" 

"뭐라고?" 

"형, 그 사람 좋아해?" 

 

됐어! 작전대로 착착 굴러가는 상황에 여우는 오랜만에 짜릿한 성취감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육성재, 아무래도 조만간 가게에 아이스티 구비해둬야 할 듯 한데? 

 

"응, 그런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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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아이구 드디어 물었네요 물었어!!!:D 일훈이 쭈꾸미가 되는게 너무 귀엽고ㅠㅠㅠㅠㅠㅠ다음ㅁ이 시급합니다 다음이ㅣㅁ!!!!!
10년 전
비회원26.76
아아아ㅏ아ㅏ아ㅏ아ㅏㅏㅇ아ㅏ아 제발 빨리 돌아와줘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7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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