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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아이들 08
w. 태봄
호석은 담배를 한 대 피며, 가장 오래된 기억부터 이때까지의 기억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그 어디에도 부모님의 존재는 없었다. 호석에게 형에 관한 기억을 꽃으로 심어 보라고 한다면, 그 꽃밭은 봄이 되면 예쁜 꽃들이 만개해 많은 사람의 이목을 끌 것이다.
낡은 옷장과 낮은 앉은뱅이책상이 전부인 방 하나에 형과 살고 있었다. 주인아주머니가 어린아이 둘이 길거리에서 추위에 떨던 모습이 불쌍했는지 방 하나를 내어주었다. 그때 호석은 말을 겨우겨우 이어나갈 정도로 어렸었다.
이런 좁은 방에 침대는 무슨 항상 이불을 펴고 잠이 들었으며, 한파주의보가 내리지 않는 이상 방 안의 보일러는 켜지 않았다. 고기반찬은 바라지도 않았으며 그저 저녁밥이 밥상에 올라온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호석은 자신이 그저 그런 평범한 아이인 줄 알았다. 하지만 부모님 없이 형의 손에서 큰 그는 모든 학부모의 경계대상이었다. 어린아이가 이해하기엔 다소 무거운 문제였다.
“어머. 쟤는 부모님이 없어서 나이 많은 형이 키웠다네.”
“불쌍해서 어떡하나…. 우리 아이랑은 안 친해졌으면 좋겠네요.”
“쟤랑은 놀면 안 된다? 알았지?”
“우리 엄마가 정호석이랑 놀지 말랬어.”
호석은 처음 학교에 입학했을 때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괴로워 복도에서 엉엉 울었다. 그 모습에 아이, 어른 할 것도 없이 모두 호석에게 동정의 눈빛을 보내며 피해 지나갔다. 시간이 지나도 귓가에 들리는 그 소리는 짙어지면 짙어졌지 희미해지지는 않았다.
초등학교 6년 졸업할 때까지 호석은 ‘부모 없는 아이’라는 꼬리표를 달며 학교에 다녔다. 그의 주변으로 다가오는 아이는 없었으며 교실에서의 그는 항상 혼자 있었다. 선생님도 호석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지었다.
친구들이 교실의 뒤편에서 게임카드를 자랑하고, 딱지를 치며 노는 모습이 호석이 눈엔 세상에서 제일 부러웠다. 한날은 자기 전 형에게 엉엉 울며 딱지를 사달라고 졸랐던 적이 있었다. 호석이 무엇을 사달라고 우는 모습을 처음 본 형은 입술을 앙다물며 호석에게 얼른 자라며 불을 껐다. 호석은 서운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눈을 꼭 감고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옆에 누워 잘 준비를 하던 호석의 형은 잠이 오지 않는지 천장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규칙적으로 새근대는 숨소리에 형은 이불을 걷어내고 조그만 앉은뱅이책상에 가위와 신문지를 들고 와 앉았다. 창밖으로 들어오는 달빛을 형광등 삼아 새벽 동안 열심히 손을 움직였다.
“호석아. 딱지 가져가.”
“책상 위에 올려놨어.”
아침밥을 먹고 학교에 갈 준비를 하던 호석에게 들리는 형의 목소리는 천사들의 노래보다 달콤하게 들렸다. 형의 말을 따라 책상으로 고개를 돌리니 크기가 다양한 정사각형의 딱지들이 모여있었다. 다 가져가기가 아까웠던 것인지 딱지 중 세 개만 골라 주머니에 넣은 호석은 몇 번이고 형에게 고맙다고 안겨들었다. 형은 이것밖에 못 해줘서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어린 호석의 눈에는 세상 그 누구보다 멋져 보였다.
“형아 사랑해! 나 학교 갔다 올게!”
호석의 모습을 본 형은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저렇게 뛰어가다 넘어질 것 같아 걱정이 앞섰다. 주머니에 넣은 딱지 세 개가 호석의 발걸음에 맞춰 달랑거렸다. 호석은 아이들에게 자랑할 딱지를 생각하니 저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가사도 잘 모르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가뿐한 걸음으로 학교로 향했다. 오늘은 호석도 당당히 딱지놀이에 낄 수 있었다.
“나도 딱지 있어. 같이 하자.”
호석의 말에 교실 뒤쪽에 몰려있던 남자아이들은 당연하고 교실에 앉아있던 여자아이들의 시선도 그에게 쏠렸다. 주머니에 있던 딱지 중 가장 큰 것을 꺼내며 자랑스럽게 내밀었다. 주머니에서 많이 뒹굴었던지 뾰족한 모서리가 둥글게 달아 있는 그 딱지가 다른 아이들 눈엔 그저 우습게 보였다.
“얘들아 얘 딱지 좀 봐.”
“뭐야. 신문지로 만든 거야?”
“집에 돈 없나 봐.”
에라삐라뽀- 아이들은 비웃음 가득한 말로 호석을 조롱하기 시작했다. 나머지 딱지 두 개를 꺼내려 주머니에 손을 넣었던 호석은 손끝에 잡히는 딱지를 힘껏 구겼다. 그의 손에 구겨진 딱지가 애처로웠다. 손에 들린 가장 큰 딱지가 땅에 떨어지고 호석은 그대로 교실을 나왔다.
당장에라도 울고 싶었지만 울면 지는 거라고 말했던 형의 목소리가 귀에 아른거려 주먹을 꼭 쥐고 눈물을 참았다.
딱지가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들은 호석이 딱지가 없다고 그 놀이에 끼워주지 않은 게 아니었다.
어린아이들이 더 영악하다고 아이들은 호석을 교묘한 방법으로 따돌리고 있었다.
하얀 도화지같이 때 타지 않은 호석은 그 사실을 알기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은 듯했다.
호석은 학교 주변 놀이터 그네에 앉아 의미 없이 모래를 툭툭 차고 있었다. 해가 질 때까지 호석은 그 놀이터 안에서 방황하며 걸어 다녔다. 작은 발자국은 모래사장에 셀 수 없이 많이 찍혀있었다.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에 호석은 집으로 가기 위해 놀이터를 빠져나왔다.
주인집 대문 앞에 서서 한참을 망설였다. 문을 열기가 망설여졌다. 이유는 자신도 몰랐지만 점점 차가워지는 공기에 문을 열었다. 호석의 형은 늦게 들어온 호석을 기다렸는지 마당까지 나와 호석을 기다렸다. 힘없이 들어오는 호석의 모습이 걱정되었는지 호석의 몸을 살폈지만 호석은 그 행동이 싫었는지, 형이 싫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형의 손을 쳐내고 집으로 들어갔다.
마당에 홀로 남은 형의 모습이 오늘따라 더 쓸쓸해 보였다.
중학교에 와도 호석의 꼬리표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머리가 큰 아이들이 호석을 더 괴롭히기 시작했다. 남자들끼리 있어 그런지 장난의 정도를 지나친 말들이 오갔다. 그 괴롭힘의 중심엔 항상 호석이 존재했고 주변 아이들은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는지 깔깔 웃으며 호석을 비웃었다.
“너희 엄마가 이런 거 해준 적은 있냐?”
“아빠랑 목욕탕은 가봤어?”
“너는 비싼 옷도 못 입지?”
“야. 자꾸 호석이 놀리지 마. 호석이 부모님 안 계시잖아.”
마지막 아이의 말에 교실에 있던 모든 아이가 웃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복도에 쩌렁쩌렁 울려 옆 반 아이들도 무슨 일인지 구경을 하러 왔었다. 호석은 그저 귀를 막고 눈을 감았다. 자신은 같은 학교의 친구들과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그만해. 말이 지나치네.”
호석이 화를 꾹꾹 눌러 담으며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을 표현했다. 호석은 화를 주체하기 어려웠는지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려왔다. 호석은 손끝까지 퍼지는 화나는 감정을 애써 추슬렀다. 아이들은 비속어 하나 없이 말을 내뱉은 호석의 모습이 우스웠는지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말로 호석을 깔보기 시작했다.
“형한테 안 미안하냐? 너희 형은 무슨 죄야.”
“무슨 죄긴 엄마아빠 죄를 물려받은 거지.”
“야 쟤 표정 좀 봐.”
“왜? 호석아. 나 때리려고? 표정 풀어라, 친구끼리.”
나 하나만 바라볼 형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지만 그 잔상을 애써 지워보았다. 아이들이 먼저 자신을 건드렸다고 자기 자신과 합리화하며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다. 모든 아이의 수십 개의 눈이 호석에게 집중되어있었지만 호석은 그 시선을 이겨내며 바닥에 두 발을 딛고 일어섰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호석은 손에 들고 있던 우유를 소년의 머리 위로 부어버렸다. 그 모습에 모든 아이가 경악을 하며 서로의 눈치만 보기 시작했다. 우유를 뒤집어쓴 소년은 자신의 체면이 상했다고 생각했는지 욕을 짓거리며 다가와 호석의 얼굴로 주먹을 뻗었다.
호석은 고개를 반대편으로 틀어 소년의 주먹을 피했다. 소년은 호석이 주먹을 피한 일은 예상하지 못 했었는지 어이없는 표정으로 호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호석은 그를 보다가 옆에 있던 의자를 들어 올려 소년에게 던졌다. 의자를 막기 위해 손으로 머리를 감싼 소년은 의자에 팔을 맞고 고통을 호소하며 주저앉았다. 아마도 소년의 팔에 금이 갔을 테다.
호석은 표정의 변화 없이 소년에게 다가가 소년의 뺨을 내리쳤다. 왼쪽으로 돌아간 얼굴이 애석하게도 다시 오른쪽으로 돌아왔다. 그의 얼굴은 호석의 손짓으로 여러 번 돌아갔다. 아이들은 그저 긴장한 표정으로 둘 사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소년의 비틀어진 입에선 거품 섞인 침이 질질 새고 있었다. 현장에 있던 아이들은 그 소년을 보고 더럽다는 느낌보다 불쌍하단 느낌이 강하다며 자기들끼리 쑥덕거렸다.
아이들은 숨죽이며 소년들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호석은 창가로 걸어가더니 반에서 아이들끼리 키우기로 했던 화분 중 가장 단단해 보이는 걸 손에 쥐고 소년에게 다가갔다. 소년은 공포에 질린 표정을 하고 몸을 떨고 있었다. 우유인지 눈물인지 모를 액체가 그의 얼굴을 타고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아이들 모두 그들의 주변으로 동그랗게 모였다. 손에 화분을 들고 있던 호석은 아이의 위로 화분을 놓아버렸다. 공기를 가르며 아슬아슬하게 소년의 옆으로 떨어진 화분은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게 맑은소리를 내며 산산조각이 났다. 소년의 주변으로 흙먼지가 옅게 일었다.
“야.”
“맨날 가만히 있으니까 만만하지.”
“적당히 해.”
호석은 화난 표정을 하고 그의 머리칼을 잡아 들었다. 호석의 손에 들린 아이의 얼굴은 뒤섞인 눈물과 콧물이 머리카락에서 떨어지는 우유 방울들과 환상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볼은 퉁퉁 부어올라 발갛게 텄고 입술에선 피가 질질 흘러나왔다. 소년의 교복엔 교실의 먼지들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었다. 그와 반대되게 호석은 아주 말끔한 모습이었다.
손에 묻은 질척이는 액체들을 소년의 옷에 쓱쓱 닦아냈다. 제대로 닦이지 않은 핏자국들에 인상을 찌푸렸지만 그뿐이었다. 친구를 때렸다는 죄책감이 그를 집어삼키려 했지만 호석의 행동이 한 발짝 빨랐다.
호석은 그 죄책감이 자신을 지배하기 전, 죄책감을 먼저 집어삼켰다.
호석은 자신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얘기한 모든 아이에게 똑같이 해주고 싶었지만 참기로 하고 교실 뒷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의 움직임을 쫓던 눈들은 그가 지나가자 얼른 길을 비켜주었다.
엄청나게 큰일을 저지른 것 같았지만, 이때까지 받았던 수모를 생각하니 정당한 행동이었던 것 같았다. 그다음부터 아이들은 무언의 약속이라도 한 듯 호석에 대해 입을 닫고 지내기 시작했다. 이제 더 이상 아이들은 ‘정호석’이란 아이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호석의 형은 공부를 잘했다. 머리는 좋은 편이 아니었지만 호석이 중학교에 막 입학하고 어느 정도의 여유가 생겼을 때 형은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 호석이 중학교를 졸업할 때, 호석의 형은 보란 듯이 명문대 전액장학생으로 뽑혔고, 호석은 형의 앞길에 방해되고 싶지 않았다.
“형아. 그 학교 기숙사 들어가. 나 이제 혼자 살 수 있어.”
“가끔 내려와.”
호석의 말을 들은 형은 조용히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제 곧 고등학생인 호석의 곁에 자신이 보호자로 남아줘야만 했다. 그럼에도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없던 형은 결국 호석의 강요에 결국 대학교를 선택했다.
호석은 가지 말라고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늘어나고 싶었지만, 그는 그가 다 컸다고 생각했기에…… 그 말들을 삼켜냈다. 하지 못한 말들이 마음에 수북이 쌓였다.
“호석아.”
“형 자주 내려올게.”
애석하게도 형은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호석은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기에 덤덤히 받아들였지만 그 속은 누구보다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하나 남은 그의 편도 결국 그를 떠나갔다.
무게를 알 수 없는 슬픔이 그에게 다가왔지만 그는 그보다 더 큰 슬픔으로 그것을 이겨냈다. 자신에게 어쩌자고 이런 일만 가득 일어나는지 하늘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마음속 공허함은 어찌할 수 없나 보다. 호석은 그렇게 생각했다. 먹어도, 걸어도, 뛰어도, 메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비웃듯 점점 더 커지는 공허함이 호석을 자꾸만 어긋나게 하였다.
형에 대한 마음을 꾹꾹 눌러 담기 위해 손에 잡았던 것이 담배였다. 학생이 무슨 담배냐 하겠지만 호석은 또래보다 조금 많이 빨리 세상을 깨달았다. 자신의 목으로 넘어오는 이 연기가 현실을 마주할 용기를 돋워주었다. 세상도 그를 보살펴줄 수 없었는지 그를 가만히 내버려두었다. 그 스스로 해결하게 두었다고 말했지만 거의 방치에 가까웠다.
호석은 석진보다 남준을 더 빨리 알게 되었다.
의외의 곳에서 시작한 그 관계는 꽤 괜찮은 인연으로 발전했다.
호석은 책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아이들과 담을 쌓고 무관심의 세계에서 살다 보니 책이 그의 유일한 친구가 되었다. 그는 수업시간이던, 쉬는 시간이던,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선생님들도, 학생들도 처음엔 그가 책을 읽는다는 사실에 놀랐지만 곧 그 관심조차 걷어냈다.
남준과는 조금 큰 서점에서 우연히 만났다. 아니 우연이라 하기엔 그곳에 하나뿐인 책을 동시에 집긴 했지만.
“아…….”
한 책을 향한 두 개의 손이 민망하게 맞닿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눈치만 보며 상황을 살폈다. 남자에게서 뻗어 나오는 카리스마가 호석을 위축하게 하였다. 무게 있는 남자의 눈빛은 다른 사람을 짓누르는 묘한 효과를 가져왔다.
“학생이에요?”
“이 책 찾는 사람은 처음 보네요.”
남준은 살갑게 웃으며 호석에게 말을 걸었다. 남준은 자신과의 독서 취향이 비슷한 사람은 처음인지 호석이 반가운 눈치였다. 남준은 호석과 친해지고 싶었다. 머릿속엔 그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호석에게 묘한 동질감도 느껴졌고…… 무작정 호석의 손에서 책을 뺏든 남준은 호석에게 자신의 명함을 나누어주고 사라졌다.
“나한테 연락하면 다 읽고 책 줄게요.”
호석은 자신의 손에 들린 명함을 빤히 쳐다보았다. 명함치고는 지극히 단조로웠지만 필요한 정보들은 다 적혀있었다. 호석은 재수가 없거니 생각하며 명함을 주머니에 넣었다.
스치듯 생각한 게 정말 현실로 다가온 듯, 집으로 가는 호석은 도중에 욕을 몇 번이나 내뱉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도보를 걷는 도중 카페 문이 열려 부딪히고, 누군가 뱉어놓은 껌을 밟아 신발 밑창이 더러워지고, 아이스크림을 먹던 아이가 자신의 신발 위로 아이스크림을 떨어뜨리고 처음 보는 남자에게 책을 뺏겼다. 말 그대로 그날따라 재수가 없었다. 재수만 없으면 좋았을 것을……
신호등이 없는 그런 골목길이었다. 사람이 많지 않아 길이 위험해도 신호등을 지어주지 않는 그런 곳. 이 차선인 도로는 조금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가면 사거리가 있었고 그 사거리는 항상 크고 작은 사고들이 잦았다. 동네 주민들끼리 싸운다든지, 지나가던 자전거가 갑자기 중심을 잃고 쓰러진다든지, 그 문제들은 하나같이 제대로 해결되었던 적이 없었다. 동네 사람들 모두 혀를 끌끌 차는 그런 도로였지. 여기가.
보행자들은 인도가 없어 차도의 가장자리로 걸어 다녔다. 그 모습이 아슬아슬하고 위험해 보였지만 시청에서는 별다른 조치를 취해주지 않았다. 주민들의 뒤따르는 요구에 그들이 마지못해 이 동네에 해준 건 하얀 페인트로 횡단보도를 만들어준 것이었다.
속도감각 없이 질주하는 차들은 액셀에 보행자에 대한 배려를 담지 않았다. 좁은 이 차선의 길은 빠른 차들이 달리기엔 비좁아 보였지만 그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호석은 짙은 어둠이 낮게 깔린 새벽 길을 걷는 것을 참 좋아했다. 새벽의 차갑고 어두운 공기가 그를 에워싸면 그는 이상하게도 편안함을 느꼈다. 어쩌면 지금 이 시각은 그가 유일하게 숨이 트이는 시간과도 같았으니.
답답한 현실이 그를 이따금 삼켜올 때, 호석은 조용한 길을 따라 걸으며 생각했다. 곧 괜찮아질 거야. 아무도 없는 길을 지나가도 그는 외롭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믿기로 했다. 자신의 주변으로 먼저 다가오는 사람이 없는 이 현실이 너무나도 미웠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호석은 그렇게 생각하며 도로 한가운데 눈을 감고 서 있었다.
빠아아아앙-
시끄러운 경적 소리가 온 동네를 덮었다. 고요한 새벽 밤이 왜인지 조금 길어질 것 같았다. 호석의 재수 없던 하루가 트럭 기사에게 그대로 옮겨갔다. 호석은 분명 그 소리를 들었다. 못 들었다면 거짓말이지. 그런데도 그는 몸을 피하지 않았다. 왜? 도대체 뭐 때문에?
호석은 점점 가까워지는 트럭에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그런대로 자세를 유지했다. 경적 소리가 점점 커지자 그에 비례하듯 심장이 점점 빨리 뛰었다. 트럭 기사는 호석의 모습에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그 제동거리가 짧은 듯했다.
헤드라이트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호석을 데리고 사라졌다.
남준은 한밤중 울리는 핸드폰에 인상을 찌푸리고 화면을 바라보았다. 모르는 번호라서 거절을 누르고 다시 잠에 들려 했지만 계속해서 울리는 그 전화가 남준의 잠을 방해했다. 남준은 자신의 머리를 헤집으며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시죠?”
“동생분 같은데 지금 사고가 나서 여기로 오셔야 할 것 같아요.”
“네?”
남준이 놀랄 수밖에. 남준은 동생이 없었다. 그런 남준에게 동생이 사고가 났다고 병원으로 오라는 전화가 왔다. 남준의 놀란 목소리에 간호사는 침착하며 상황을 늘어놓았다. 곧 남준은 이해한 목소리를 내었다.
“아. 동생분핸드폰이 없어서 가지고 있던 명함으로 전화 드렸어요.”
명함? 서점 고등학생?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근데 뭐 하는 아이길래 요즘 핸드폰도 없데? 남준은 다급한 손길로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헝클어진 머리를 손으로 대충 풀고 밖으로 나왔다. 쌀쌀한 공기가 남준의 볼을 스쳐 지나갔다. 자신이 왜 지금 병원으로 가는지 의문이었지만.
“보호자님!”
“네.”
동생분이 상황이 많이 안 좋았었어요. 도로에서 달려오는 트럭이랑 부딪혔다는데 트럭 기사는 아이가 피하지 않고 서 있었다 하길래…… 몇 미터 정도 날아갔다고 들었어요. 갈비뼈에 금이 가면서 폐를 찌를뻔했는데 다행히 트럭을 운전하시던 분께서 바로 신고해주셔서 위험한 상황은 거의 넘겼어요. 떨어지면서 머리도 부딪혔는지 피가 조금 흐르긴 했지만 다행히 아무 이상 없는 걸로 결과가 나왔어요. 현재 피를 너무 많이 흘려 회복속도가 더디긴 하지만 며칠 정도 있다 퇴원 가능해요.
“네. 감사합니다. 아이는 지금 어디 있죠?”
“1인 병동으로 옮겨주세요.”
남준은 아이가 일어나면 모든 일을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왜 자신이 이 아이의 보호자로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아이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들어와 집에 돌아갈 수도 없었다. 남준은 결국 아이가 눈을 뜰 때까지 아이의 옆을 지켰다. 밤을 지새 눈이 너무 뻑뻑해 눈을 잠시 감았다.
처음 봤을 때부터 그 아이에게 묘한 분위기가 있었다. 자신의 얘기 좀 들어달라고, 너무 외롭고 힘들다고. 남준은 그 분위기를 애써 무시하며 자신의 명함을 쥐여주고 뒤돌아섰다. 정이 필요 없을 정도로 많은 자신의 모습이 이럴 때는 조금 한심하게 느껴졌다.
아이는 자신의 이름을 ‘정호석’이라 했다. 부모님은 아무리 기억해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고 하나 있던 형은 꿈을 이루러 갔다고 덤덤히 말해내는 그의 모습이 남준의 눈엔 한없이 가엾었다. 지금은 혼자 살고 있으며 이 집도 곧 없어질 것 같다며 애써 웃음을 지어내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애처로웠다.
또래 학생들같이 모든 것을 숨기지 않고 내비치는 투명한 모습이었다. 자신들은 꼭꼭 숨긴다고 숨겼지만 어른들의 눈엔 그저 귀엽게만 보였다. 그런 모습들이 남준에게 호석에 대한 신뢰성을 만들어냈다. 학교생활은 말하지 않았어도 남준은 그의 속까지 꿰뚫어 볼 수 있었다. 너도 많이 힘들었구나.
자신에게 미안하다 말하는 이 소년이 현재 그 누구보다 애잔했다.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뒷머리를 만지작거리는 소년은 조심스럽게 남준의 눈치를 보았다. 남준은 그 눈치를 느끼며 마음속으로 살포시 웃었다.
“너 일해볼래?”
“숙식제공에 월급이랑 용돈도 제공.”
더 이상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는 호석에겐 더없이 달콤한 제안이었다.
몇 날 며칠을 끙끙 앓았다. 몸에 힘도 들어가지 않았고 부정적인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나를 더듬던 손길을 잊을 수 없어 방에만 처박혀 나오지도 않았다. 입맛이 없는데 밥은 무슨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다. 누구도 나에게 룸에 들어가란 권유를 하지 않았고 모두 나를 챙기기에 급급했다. 그 손길이 미안하고 부담스러워 쳐내어도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챙겨주었다.
다들 심심하지 말라고 나름대로 선물도 놔두고 가고 혹시라도 식욕이 생긴다면 망설이지 말고 먹으라며 군것질거리도 놔두고 갔다. 서랍의 윗부분에 나날이 쌓이는 것은 선물들만이 아니었다. 그 위에 조금씩 쌓이는 먼지들도 그 존재를 뚜렷하게 나타내고 있었다.
모두가 그녀의 모습에 울적한 마음을 안고 뒤돌아섰다. 왜인지 그녀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흐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찌 보면 그녀가 이렇게 된 까닭이 그들이었기에. 그 눈물을 감추기 위해 그녀에게 등을 돌리고 섰다.
그들의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꿋꿋이 지키는 그녀의 모습에 윤기조차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쉬라며 방안의 온도를 높여주고 나갔다. 윤기가 나가고 조금 있다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가 오셔 방안의 먼지들을 깨끗하게 쓸고 닦아주셨다.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에 가슴이 벅차올라 이불을 덮고 눈을 감았다. 털어지고 바람을 타고 가는 먼지처럼 훌훌 날아가고 싶다. 회색 빛깔의 조그만 먼지도 햇볕을 받으면 반짝일 테지.
밖으로 나서려던 아주머니는 발길을 돌려 나에게 다가왔다. 점점 가까워지는 발소리에 이불을 더 꽉 잡고 그 속에 숨었다. 침대 앞으로 다가선 아주머니의 모습에 온몸이 떨리며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내 마음은 이게 아닌데, 내 모습에 누구보다 속이 상한 건 나 자신이다. 보잘것없는 모습에 마음이 아려왔다. 아주머니는 나의 마음을 알아차리셨는지 이불을 걷어내지도 않고 나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붙잡았다.
“괜찮아. 학생은 잘못한 거 하나도 없으니까 괜찮아….”
“힘들어도 조금만 힘내보자. 아줌마가 옆에서 힘이 될게.”
“아줌마가 학생 편이 될게.”
나를 꼭 안아주었다가 발걸음을 옮기는 아주머니의 모습에 참아지지 않는 눈물을 쏟아 내었다. 입술을 꽉 깨물고 눈을 세게 감아봐도 참아지지 않았다. 주먹을 말아 쥐고 그저 상처 입은 마음을 쓰다듬었다. 나의 모습을 그 누구에게도 비추기 싫어 이불 속으로 더욱더 파고들었다. 그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내 모습이 비통했다. 어떤 누구라도 나를 바라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에 이불을 더 꽉 쥐었다. 주먹이 하얗게 변할 때까지.
이불 위로 사뿐히 나를 한 겹 더 덮어준 햇볕이 오늘따라 포근했다. 포근한 햇살과 차가운 나의 모습이 대조되어 더 영롱하게 반짝였다. 나를 감싸는 그 품에 안겨 목메어 울었다. 나의 눈물이 하늘에 닿았는지 하늘에선 보드라운 첫눈이 내려오고 있었다.
새하얗고 투명한 그 눈발이 도시의 바닥에 처음 닿는 모습을 모든 사람이 지켜보고 있었다. 몇몇 아이들은 장갑을 끼고 나와 학교 운동장으로 향해 눈사람을 만들 것이고 몇몇 이들은 이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카메라를 켤 것이다.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무거운 눈꺼풀을 감아 내렸다. 조금 부럽기도 하지만 나 따위한테는 부질없는 짓이었다.
사람들에게 더럽혀지기 전 그 순결하고 말끔한 옥진.
눈이 지표면에 닿는다면 곧 그 눈은 회색 빛깔로 더럽혀질 것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자국에, 그 위를 살포시 즈려밟고 가는 자동차의 바퀴에, 갈 곳 없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강아지와 고양이의 발자국에 그 눈은 일순간 새까맣게 어두컴컴한 회색빛으로 변할 것이다.
그럼에도 하늘과 구름은 도시 위로 더 새하얀 눈을 내릴 것이다.
자신들이 만든 눈송이를 괴롭힌 도시라 해도 다시 고운 눈을 내릴 것이다.
까만 눈들이 새까맣게 변하기 전, 그 위를 다시 하얀 눈으로 덮을 것이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죄 없는 하얀 눈송이가 오늘따라 가엾구나.
“어 석진아. 나 정호석 며칠만 좀 빌릴게.”
“왜?”
“일손 모자라.”
윤기는 무작정 석진에게 전화해 별 가당치 않은 이유로 호석을 아예 가게로 들였다. 석진은 얼떨결에 알겠다고 얘기했지만 무엇인가 찝찝한 기분은 떨칠 수 없었다.
윤기의 넘치는 배려 덕분에 호석은 온종일 내 곁을 지켰다. 낮에는 멍하니 누워있고 밤에는 어린아이보다 서글프게 울었다. 그 시선의 끝엔 항상 정호석이 나를 달래고 있었다. 해가 떠오르고, 달이 떠오르는 사실은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항상 같이 있었으니까. 우리가 언제 이렇게 각별한 사이가 되었나.
“학교 다시 다녀볼래?”
윤기가 조심스럽게 학교를 권하였지만 그 호의를 거절했다. 아이들의 시선이 무서워 교문에 발도 못 들일 것 같았다. 학교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쑥덕거리는 아이들의 목소리와 언짢은 표정을 띠고 나를 바라볼 아이들의 시선이 눈에 훤했다. 그들은 분명 나의 존재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릴 것이다. 늘 그래 왔듯이.
그렇지 않다고 해도 나는 학교에 다시 가지 않을 것이다. 만에 하나 상처받을 내 모습이 두렵고 측은해서라도. 호석이 옆에 있겠다고 하였지만 자신이 없었다. 내가 과연 잘 견뎌낼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차가운 구름이 하늘을 배경으로 지나가고 별들이 반짝거리며 자신의 빛을 내는 밤하늘이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오랫동안 그리고 많이 흘러가는 구름들이 마음이 울적하게 만들었다. 창밖에 보이는 나무들은 바람에 힘없이 흔들렸고 그 끝에 달린 나뭇잎들이 위태로웠다. 언제 떨어질지도 모르고 하염없이 바람에 흔들리는 조그만 나뭇잎들이 안쓰러웠다.
언젠간 저 나뭇잎들도 떨어질 거야. 그렇고말고.
그 위에는 예쁜 꽃이 피겠지.
빨갛고, 노랗고, 다홍빛, 혹여나 그게 아니라면 진달래 빛, 쪽빛, 치자 빛의 예쁜 색깔을 품고,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오밀조밀하고 아름다운 그런 꽃들.
곱게 피어나 자신들의 겉모습을 조그맣게, 하지만 존재감 있게 온 세상에 알릴 테야.
태봄입니다 :)
으앙ㅜㅜ 저 오늘 분량 조절 실패...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어떡해ㅠㅠㅠㅠㅠㅠㅠ 너무 길죠....으앙....으아아아앙ㅠㅠㅠㅠㅠㅠ
많은 사람들이 궁금했던 호석이 과거편! 드디어 올라왔습니다ㅎㅎㅎ 과거편만 올리려 했는데 뒷부분에 여주도 살짝쿵 올렸어요... 원래 계획에 없었지만..ㅎㅎ
조태오씨의 뒷얘기는 다음에 짧은 번외편으로 가져올게요ㅋㅋㅋㅋㅋㅋㅎㅎ
비가 와서 공간스런 혼란 속 오늘 하루도 예쁜 하루가 되었나요 :) 저는 방콕했슴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 사랑들 오늘도 사랑해요!
처음 써보는 글이라 걱정 많았는데 많은 사랑을 받아서 기분이 매우 좋습니다ㅠㅠㅠㅠ
이제 암호닉 받지 않아요.....! 언젠가 암호닉 모집 글이 올라오겠죠....(총총)
암호닉 분들께 뭐 해드려야할지 참 고민이 많은데ㅜㅜ 원하는거 있나요?
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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