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니까 가장 먼저 보이는 건 아빠의 두 손이었어요.
엄마는 아빠의 옆에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아빠의 두 손은 내 목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어요.
아빠의 두 손을 그렇게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었어요. 적어도 저에게 아빠는 가깝지만 다가가지 못하는 그런 존재였거든요.
엄마도 마찬가지였어요. 적어도 제 기억 속에서 다정하고 또 다정한 엄마와 아빠는 존재하지 않거든요.
아저씨도 그런 경험 있어요? 저는 그 때가 처음이었거든요. 그래도 제가 가장 믿던 사람 역시도 엄마랑 아빠니까요.
굳은살이 잔뜩 박혀 있는 손은 내가 눈을 떴는지도 모르고 내 목을 감싸왔어요.
처음에는 그저 따듯한 손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것이 아니더라고요.
따듯하게 감쌌다고 생각했던 두 손은 점점 더 조여왔어요. 이건 뭐지? 어떤 거지? 라고 생각이 들기도 전이에요.
나도 모르게 작게 기침 소리가 나왔어요. 콜록하는 소리가 났는데도 목을 죄여오는 손은 점점 더 힘을 가하더군요.
참지 못하고 침대 위를 두드렸어요. 하지만 아빠도 엄마도 아랑곳하지 않았어요. 눈을 뜨고 엄마를 바라보았지만 엄마는 나를 외면했어요.
그리고 그 순간 봤던 것을 저는 잊을 수 없어요. 아직도 꿈에 가끔 나타나곤 해요.
내 몸 위에 올라와있는 아빠의 얼굴이에요. 아빠는 웃고 있었어요. 지금까지 한 번도 웃어준 적이 없던 그런 아빠가 웃고 있었어요.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요? 저도 모르겠어요. 그 때 정말 있는 힘을 다해서 도망쳤어요.
신발을 신었는지 안신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아요. 그저 미친듯이 뛰어갈 뿐이었어요. 어떻게 도착을 했더라.
그것도 기억나지 않아요. 무작정 달리다보니 도착한 곳이 경찰서였어요.
경찰서에 가본 건 또 처음이에요. 저 지금까지 사고 한 번 친 적 없는 그런 아이였거든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까 다리에 힘이 풀리는 거에요. 정말 그 자리에 주저앉았어요.
잠옷차림으로 뛰어온 아이를 봐서 그런지 경찰 아저씨들은 바로 내 쪽으로 달려왔어요. 어떤 아저씨는 나한테 손잡고 일어나라고 손을 내밀어주기도 했어요.
그 분께는 정말 죄송하지만 전 바로 그 손을 내치고 말았어요. 잡을 수가 없었어요. 그 아저씨 손에도 아빠의 손처럼 굳은 살이 잔뜩 박혀있었거든요.
그 때까지만 해도 모든 어른들이 제 말을 다 믿어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가 너무 어렸던 모양이에요. 아니면 너무 무식했던가.
아무도 제 말을 믿어주지 않았어요.
저는 한순간에 부모를 살인자로 만들 뻔한 패륜아가 되었고 우리 엄마랑 아빠는 그런 저도 보듬어주는 자애로운 부모님이 되어있더군요.
모르겠어요. 이제는 저도 제가 패륜아 같이 느껴져요.
그런데 꿈 속에서는 아직도 그 날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지곤 해요.
아빠는 저를 보며 손을 내밀고 있고 엄마는 그런 아빠를 외면하고 있어요.
아빠의 손은 내 쪽으로 다가와 내 목을 그리고 내 가슴을 죄어오고 있어요. 웃으면서 말이에요.
이런 제 기억마저도 거짓인건가요? 전 모르겠어요.
어떻게 생각해요? 아저씨도 제가 미친 사람인 거 같아요?
글쎄...
네가 미친사람이면 나도 미친사람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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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금부터 다르네요.
다른 글과 다르게 절대 밝은 내용이 아님을 미리 말씀드릴게요.
아마 제가 쓰는 글 중 가장 어두운 분위기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배경은 정신병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