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범과 눈이 마주하는 순간, 미묘한 감정이 일렁이기 시작해.
스치는 인연 02
김기범은 눈 하나 꼼짝하지 않고 너빙의 눈을 응시해. 날카롭게 째진 눈매. 백지장처럼 하얀 피부.. 저 사람은 이진기한테 무슨 죄를 지었길래 저리도 미움을 받는거지.. 너 빙은 너도 모르게 그 사람 걱정을 하기 시작해. 물론, 이진기라는 사람한테 한 번 걸리면 평생 힘들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너니까.
어려서부터 맞벌이 하는 부모님 때문에 많은 시간을 진기 오빠와 함께 보낸 너빙은 그 누구보다도 이진기에게 의지를 많이 했어. 하지만 너도 나이가 들어가고 독립적으로 친구들과 놀고 남자친구도 사귀고.. 싶었지만 이진기 특유의 집착 때문에 제대로 된 연애를 해 본 적도 없고 그 흔하다는 친구조차도 없어. 그냥 너빙은 이진기 여동생일뿐...
"야 너네 혹시 3학년 2반에 김기범이라는 사람 알어?"
"왜? ㅇㅇ 너.. 혹시 위층 올라가서 니 오빠 만났어?"
"응. 도시락 전해줬지.."
"유명하잖아. 이진기 눈 밖에 나고도 버젓이 학교 다니는 사람으로... 그렇게 괴롭힘 당하고 맞았다던데.."
너 빙의 눈이 흔들리기 시작해. 이진기가 양아치 짓을 하는 것은 한두번 본 건 아니지만.. 그 피해자라 할 수 있는 사람을 직접 본 건 처음이었거든. 사실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 치고는 지극히도 정상적이어서 너빙의 호기심을 자극해.
"어쩌다가 우리 오빠 눈 밖에 난거야?"
"너는 니 친오빠 일인데도 어쩌면 나보다도 모르냐.. 나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들리는 소식에 따르면 반 배정 받고 첫 날에 진기 오빠한테 시끄럽다고 조용히하라고 했나봐. 배짱도 크지."
"겨우 그거 때문에? 우와..이진기가 그정도로 싸이코였다니..."
수업 시간 내내 김기범의 그 눈이 잊혀지지 않아서 멍하니 허공만 응시해. 그러다 모든 수업이 끝나고 너빙은 오빠랑 같이 하교 하려고 계단 앞에서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며 기다려.3학년 수업이 끝났는지 수십명의 남학생들이 계단 밑을 향해 뛰쳐내려와. 너 빙은 계단 앞에 서 있다가 그 남학생들에 밀려 휘청여.
"아야!"
그 때, 누군가가 너빙의 팔을 잡아 벽 쪽에 붙여 세워.
"조심해. 다친다."
너 빙은 질끈 감았던 눈을 떠. 그랬더니 너빙 앞에 아까 봤던 김기범이 서 있어. 넥타이는 반쯤 풀어헤치고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듯한 가방을 등에 멘 채. 너 빙은 놀란 나머지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어버버대.
"니 오빠 곧 내려올거다."
김기범은 네 팔을 잡고 있던 손을 놓고는 계단 밑으로 내려가.
너 빙은 얼굴이 벌게져서 아까 김기범이 잡았던 팔 부분을 너의 손으로 한 번 쓱- 매만져.
"뭐지 이 기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