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о゚д゚о)…아주 잠시간 이 표정으로 민형이를 바라봤다. 그건 민형이도 마찬가지였다. 안그래도 큰 눈이 아주 살짝 더 커지며 몇초간 나와 눈을 마주했다. 갑작스런 내 등장에 당황한듯 했다. 검지와 중지 사이에 가늘게 껴있던 담배가 천천히 내려간다. 내가 나쁜짓을 하다 걸린 것도 아닌데 침이 절로 삼켜졌다. 민형이는 곧 불씨가 남아있는 담배를 바닥에 떨어뜨려 발로 문질렀다. 나와 맞물린 시선을 떨구며 입술을 축였고, 신경질적으로 앞머리를 한번 쓸어넘긴다.
낯설었다. 거리를 걷다보면 쉽게 볼 수 있는 고딩+담배 자체가 낯선게 아니라, 그 고딩이 이민형이라는게 낯설다는 것이다. 담배와 이민형은 생각을 해본 적도 없는 조합이잖아. 너무 안 어울려서 눈만 두어번 깜빡였다.
“…”
역대급 어색함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 상황에 어떻게 반응을 해야하나 고민하다 일단 천천히 민형이 쪽으로 마저 걸어갔다. 열 발짝도 안되는 그 짧은 거리를 걸어가는 찰나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너 뭐 하고 있었냐 혼을 내야 하는 걸까, 아님 아무것도 못 본척 평소처럼 말을 걸어야 하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좋은 말로 담배는 나쁜 거다 타일러야 하는 걸까. 혼을 내려고 하면 수업만 똑바로 하라는 이민형의 첫 말이 뇌리를 스쳤고, 모른 척을 하자니 괜히 기분이 뒤숭숭했다. 그렇다고 또 좋게 좋게 말을 하고 끝내는 건 효과가 없을게 뻔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그래서 민형이 앞에 걸음을 멈춘 후 몇초 더 머리를 굴렸다. 내가 제 앞에 서자 민형이는 다시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평소라면 매섭게 나를 쏘아볼 두 눈이 웬일인지 진득히 내게 시선을 두지 못하고 자꾸만 땅으로 떨어진다. 그 모습에 나는 한참을 고민하던 걸 멈췄다. 이민형은 당당하다면 더 당당했지, 담배를 들켰다고 기가 죽을 애는 아니었다.
“민형아..?”
때문에 대뜸 말이 나갔다. 내 부름에 다시한번 시선이 맞물렸다. 큼직한 눈망울이 옅게 흔들린다. 홀린듯 입술 새가 작게 벌어졌다. 방금 전까지 나를 괴롭혔던 생각들이 전부 부질없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아하,하..나 기다렸어?”
그 후엔 정말 아무 말이나 지껄였다. 물론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쟤가 날 기다렸을 리가 없잖아.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는 몰라도 주워 담기엔 이미 늦었다는 것 정도는 말을 뱉은 즉시 알았다. 난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고, 그런 나를 빤히 바라보던 민형이는 곧 평소대로 표정을 확 구기며 먼저 등을 돌렸다.
“아니요.”
짤막한 대답을 남긴 채 말이다. …나도 알아 인마…(T^T) 꾸준히 냉랭한 그 뒷모습을 조심스레 따라가며 속으로 말을 삼켰다. 이렇게 된 이상 그냥 아무것도 못 본척 행동하기로 마음 먹었다. 안 그래도 서먹한 관계를 괜히 건드려서 더 퍽퍽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내가 쟤 부모도 아니고 학교 선생님도 아니고. 막말로 그냥 일주일에 한번 보는 수학 과외 선생님인데 이런 도덕적인 것 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잖아..? 그치? 내가 혼을 낸다고 들을 애도 아니고..! 별의별 변명으로 찜찜한 마음을 애써 달랬다.
“…”
다만 한가지 걸리는 건, 이민형은 자기관리가 대단한 애라는 것이었다. 그런 애가 몸에 좋지 않은 걸 한다는게 이상했다. 더군다나 엄마 앞에서는 착하게 보이려고 하는 앤데, 성격이야 바꾸면 된다고 쳐도 담배는 들킬 요소가 많았다. 특유의 냄세나 집안 어딘가 숨겨놓았을 담배곽 등 말이다. 똑똑한 이민형이 그걸 모를리가 없다. 그저 보여주기 식으로 멋 때문에 철 없이 담배를 잡을 애도 아니다.
발을 멈추고 다시 생각을 했다. 내가 놓친게 뭔지 찬찬히 살폈다. 이민형은 무겁게 늘어진 가방을 메고 있고, 어깨는 축 쳐져있다. 팔은 힘 없이 덜렁거리고, 다리는 나보다 마른 것 같기도…(말잇못) 거기까지 생각을 한 후 눈을 두어번 깜빡였다. 쟤 되게 힘들어 보이네.. 입술 새를 비집고 나온 말을 중얼거렸다. 진짜 설마 너무 힘들어서 담배를 잡은 건가.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한번씩 펴온 건가.
“민형아..!”
걸음을 빨리 했다. 꽤 크게 이름을 불러도 걸음을 멈추기는 커녕 늦추지도 않는 이민형 때문에 이미 저만치 걸어가는 녀석과의 거리를 좁히려면 내가 빨리 걷는 수 밖에 없었다.
“..같이 가자..”
그렇게 민형이의 옆까지 걸어간 후 작게 중얼거렸다. 이민형은 그제서야 걸음을 멈추며 느릿하게 고개를 돌렸다. 무심함으로 가득찬 얼굴이 나를 향한 것도 잠시, 녀석은 곧 다시 발을 내딛었다. 근데…걷는게 좀 느려진 것 같기도 하고…(눈치).
“내가 사줄게 민형아. 뭐 마실래?”
“괜찮아요.”
카페로 들어와 주섬주섬 지갑을 꺼내는 나를 지나쳐 먼저 자리에 앉은 민형이는 제 가방에서 문제집을 꺼내 테이블에 조용히 놓을 뿐이었다. 진짜 안 마셔? 재차 물은 내게 고개를 젓길래 결국 내가 마실 커피만 주문한 뒤 민형이의 맞은편에 앉았다. 곧 6월 모의고사가 있기 때문에 챙겨온 자료가 한가득이었다. 이게 다 너를 위한 나의 프레젠또-☆다 민형아. 중요한 문제들만 따로 묶어서 정리한 종이뭉치를 꺼내들었다.
“저번에 숙제로 내준 거 다 풀었어?”
“네.”
“오~ 그럼 그거 틀린 거 설명하고 이거 풀어보자.”
수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머리를 질끈 묶으며 말했다. 내 말에 민형이는 또 네, 하고 짧은 대답을 남기곤 문제집을 펼쳐 내게 열심히 푼 흔적을 보여줬다. 무슨 문제를 틀렸나 살펴보기 위해 찬찬히 한장씩 넘겼다. 문제수가 꽤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틀린 건 별로 없었다. 역시 이민형. 그런 소리가 절로 나오는 동그라미의 행진이었다.
“어! 이거는 너 저번에 틀린 거랑 같은 유형인데 이번엔 맞았네?”
“..”
“완전 잘했어 민형아~!”
심지어 몇 번이나 틀렸던 유형의 문제를 드디어 맞춘 민형이 때문에 작게 박수까지 쳤다. 요 야무진 놈이 제 첫 학생입니다 여러분~^^ 자고로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고, 뿌듯한 마음에 한껏 들떠 칭찬을 날렸다. 뭐 작게 웃는 것 정도는 해줄 줄 알았는데 아무 말 없이 눈가만 비빈다. 그래..뭘 바라니 너한테.. 귀까지 올라가있던 입꼬리를 슬쩍 내리며 애꿎은 펜만 만지작거렸다. 수업하자..(침울)
“풀이과정 적은 거 들고 왔어?”
“네.”
“그거 줘봐.”
민형이는 두꺼운 문제집을 꺼냈는데도 무거워 보이는 제 가방에서 노트 한 권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들고 좌르륵 펼쳤다. 진짜 이 노트는 몇 번을 봐도 놀랍네..(말잇못)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제일 깔끔하게 노트 정리를 하는 것 같다. 차마 내색은 못하고 속으로만 감탄을 하며 민형이가 틀린 문제의 풀이과정을 찾았다.
“여기서 틀렸네.”
“아..”
“이거 먼저 구하지 말고 앞에를 먼저 계산 해야지.”
펜으로 노트를 짚으며 틀린 문제들을 하나씩 설명했다. 이민형은 가끔씩 작은 소리를 웅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내 설명을 따라왔다. 중간에 진동벨이 울려 주문한 커피를 받아온 후에도 계속 설명을 이어갔다. 역시 모의고사를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민형이는 평소보다 훨씬 무겁고 예민한 것 같았다. 설명을 하는 중에 슬쩍 눈을 들어 확인한 얼굴을 보니 그랬다. 항상 무표정이였지만 오늘은 더더욱 무표정같은 느낌적인 느낌..! 아까 걸린 담배 때문인가 잠시 생각했지만 바로 접었다. 그래도 담배보단 공부를 중요시하게 생각하는 놈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꽤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별다른 문제 없이 설명을 마친 후 문제집과 노트를 덮었다.
“이거는 오늘 풀 수 있는 데까지 풀자.”
“..수업 끝나면 가져가도 돼요?”
“왜? 집에서 계속 풀게?”
“네.”
테이블 끝쪽에 놔뒀던 종이뭉치를 가져와 앞에 놓아주자 대충 한번 훑어본 민형이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그래, 어차피 너 풀라고 만든 거니까. 나는 커피를 한모금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새삼 이민형이 열심히 공부한다는 걸 다시 실감했다. 이런 면에선 기특하긴 하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내심 걱정이 됐다. 저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거에 지쳐서 담배를 잡은 건가 싶기도 하고.. 잊을만 하면 떠오르는 담배 생각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말 이렇게 넘어가도 되는 걸까 잠시 고민하는 사이 민형이가 먼저 펜을 들었다. 문제를 풀라고 시키기도 전에 첫 문제를 술술 풀어나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와 정신을 차리고 수업에 집중했다.
“이거 선생님이 하나씩 정리하신 거에요?”
4번 문제를 풀던 민형이가 물었다.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해 커피가 든 컵을 쥐고있던 손에 힘을 꾹 주었다. 시선은 여전히 종이에 박아둔 채 대답을 기다리는 민형이에게 그렇다고 말하자, 녀석이 두어번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왜 저래..불안하게..(동공지진)
“왜..? 뭐 이상한 거 있어?”
“아뇨.”
“..”
“그냥 궁금해서요.”
조심히 묻는 내게 단호하게 답하는 민형이 때문에 입술을 꾹 닫았다. 그러니까 그게 왜 궁금하냐고..ㅎㅎ 정리한 문제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 눈치를 봤지만 딱히 표정이 안좋은 것도 아니었다. 그 문제는 공식 써야지. 아무 말이나 해야할 것 같은 느낌에 괜히 한마디 하자, 곧바로 알아요, 라는 쌀쌀맞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나 조용히 하고 있을게..(울컥) 가만히 커피나 마실 생각으로 빨대에 입을 가져갔다. 벌써 한 페이지를 다 풀었는데 눈으로 확인한 답도 다 맞았다. 다음 페이지로 종이를 넘기는 민형이는 여전히 냉랭한 분위기를 뿜고 있다.
“모르는 거 없어?”
“아직이요.”
“지금까지 푼 건 다 맞았어.”
“쉬웠어요.”
말 하는 족족 가볍게 받아치고 빠지는 이민형 때문에 할 말이 없었다. 때문에 물고있던 빨대만 질근 씹었다. 흥, 재수 없어. 다음엔 더 어려운 문제 줘야지. 내가 유치하게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툭 소리와 함께 하얀 A4종이 위로 떨어진 빨간 핏방울에 문제를 풀던 민형이도 멈추고, 빨대를 씹던 나도 멈췄다. 몇 초간 눈만 끔뻑이다 벌떡 일어났다. 코피잖아…(경악) 이민형의 코에서부터 떨어지는 붉은 핏물에 얼른 옆에 있던 휴지를 집어 손을 뻗었다.
“제가 할게,”
“됐어 너 조용히 해. 고개 숙여.”
한 손으로 민형이의 볼을 감싸듯 쥐고는 코피가 나는 코에 휴지를 가져갔다. 놀란 마음에 정재현한테나 쓸 것 같은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을 내뱉었다. 그 탓인지 급히 손을 올리며 휴지를 가져가려던 이민형의 손이 허공에 멈췄다. 꽤나 우스운 자세가 됐지만 그게 중요한게 아니었다. 도대체 어떻게 공부하면 갑자기 코피가 터져. 미간을 좁혔다.
“민형아, 너 잠은 자면서 공부 하는거야?”
“..네?”
“아니 어떻게 코피가 이렇게 갑자기 터지냐구, 괜히 속상하게.”
휴지는 금세 피로 젖어갔다. 그걸 본 나는 울상을 지었다. 자식 키우는게 이런 심정인가 했다. 그래도 나름 첫 학생이라고, 갑자기 이러니까 걱정부터 앞선다.
“괜찮아? 멈춘 것 같아?”
“네. 이제 됐어요.”
한참을 지혈하던 손을 슬쩍 뗐다. 다행이도 더이상 피가 흘러나오지 않았다. 작게 숨을 내쉬며 민형이의 얼굴을 감싸던 손까지 뗀 후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제서야 뒤늦게 민망함이 밀려왔다. 나 얘한테 뭐라고 지껄인거지..(멘붕) 정신이 없어서 아무 말이나 내뱉었는데 그게 상당히 오지라퍼스러운 말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눈을 데굴 굴리다 결국 묶었던 머리를 푸는 것으로 생각을 묻었다.
“우리 조금만 쉬자 민형아.”
“괜찮아요.”
“아냐, 너 조금 쉬어도 돼. 지금까지 열심히 했으니까 우리 오분만 쉬자.”
내가 쉬고 싶어..(이마짚) 나는 민형이 앞에 놓여져있던 문제 종이들을 정리한 후 내 쪽으로 당겼다. 조금만 쉬자는 의견이 확고하게 담긴 행동이었다. 이민형도 그동안 열심히 풀었으니까 오분 정도 쉬는 건 괜찮잖아? 남은 커피를 한모금 마신 후 고개를 들었다. 오분만 쉬자는 내 말을 끝으로 줄곧 아무 말이 없던 이민형이 날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왜인지 모르게 목구멍이 꾹 막혀 소리를 낼 수 없었다. 입술 끝을 혀로 축이며 그 진득한 시선을 마주할 뿐이었다. 어색한 상황에 눈을 두어번 깜빡인 내가 뻣뻣한 웃음과 함께 시선을 아래로 내리려 할 때 즈음, 민형이가 입을 열었다.
“왜 혼 안내요.”
“응..?”
“아까 봤잖아요. 나 담배 들고 있는 거.”
덤덤하게 나와 제 사이를 울린 작은 소리는 날 당황시키기 충분했다.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먼저 담배를 언급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아, 내가 혼을 내야하는 거였어..?(당황) 바로 답하지 못하고 엉킨 시선을 슬쩍 옆으로 돌리는 나와는 달리, 민형이는 묵묵히 내게 눈을 두었다. 순식간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잡아뗄까 생각을 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나는 목덜미를 괜히 한번 쓸어넘기다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너..”
“..”
“굳이 내가 혼내지 않아도 충분히 힘든 것 같아서..”
시야에 다시 민형이를 담았다. 조심히 내뱉은 내 말에 녀석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솔직한 생각을 털어놓고, 나는 또 눈을 굴렸다. 큰 두 눈이 미동 없이 나를 향해있으니 내 생각이 틀린 건가 싶었다. 아니 그러니까 너가 담배를 피던 말던 관심이 없다는게 아니라..어..물론 너가 담배를 피는 건 잘못된건데..! 때문에 횡설수설 말을 이어갔다. 그런 나를 아무 말 없이 바라보던 이민형은 문득 내 소리 위로 제 목소리를 겹쳐왔다.
“알아요. 제 잘못인 거.”
“…”
“..엄마한테만 비밀로 해주세요.”
그 말을 끝으로 민형이는 다시 펜을 잡았다. 내게서 시선을 옮겼고, 다시 적막이 흘렀다. 멍청하게 벌리고 있던 입술을 천천히 다물었다. 저 작은 머리에 도대체 얼마나 거대한 생각이 들어있는 건지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평소보다 30분이나 늦게 수업을 마친 후 기진맥진한 상태로 카페를 나왔다. 들어갈 때와 다르게 어두워진 거리는 나열된 상점이 뿜어내는 네온사인 불빛을 더욱 부각시켰다. 이민형과 나란히 그 빛을 따라 걸었다. 집에 가려면 지하철을 타야할텐데, 이민형은 역까지 가는 길을 모를게 뻔했다. 더군다나 1분 1초가 아까울 고3이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집에 도착하게 해야 내가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민형아, 지하철 역까지 택시 타자.”
그렇게 말을 하며 걸음을 멈췄다. 이민형은 미간을 살짝 좁힌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자주 저러는 애니까..(울컥) 나는 그런 민형이를 뒤로 하고 택시를 잡기 위해 길가로 나섰다. 일반 승용차만 쌩 하고 달리는 차도로 슬쩍 고개를 내밀며 빈 택시를 찾았다. 하여튼 찾을 때는 죽어도 안 잡히지. 괜히 애가 타 까치발까지 들며 기다리는데, 갑자기 가방이 뒤로 끌렸다. 어어, 하는 멍청한 소리와 함께 나 역시 뒤로 끌려갔다. 당황으로 물든 얼굴을 뒤로 돌렸다. 그래. 내 뒤에 있는 사람은 이민형밖에 없다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설마 이민형이 날 끌었을까 싶었다. 얘가 미치지 않고서야~!
“차 오잖아요.”
하는 내 생각을 와장창 깨듯, 이민형은 내 가방끈을 잡은 손을 놓으며 무심한 말투를 허공에 뱉었다. …얘 뭐야…(;⊙д⊙)순간 소름이 오도도 돋았다. 아니, 내가 차에 치여도 조금도 신경 안 쓸 것 같은 놈이 손수 날 뒤로 끌어주는게 말이 되냐. 나는 벙찐 채로 이민형을 바라봤다. 조금의 오바를 보태면 경악이 담긴 표정이었다. 그런 나와는 다르게 이민형은 역시, 담담한 모습으로 내게 잠시 시선을 두더니 곧 어정쩡히 서 있는 나를 지나쳐 길가로 나갔다. 그 움직임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냥 택시타고 집까지 가면 돼요.”
짧막한 소리가 다시끔 귓가를 찔러 들어왔다. 아 맞다. 쟤네 집 돈 많지 참. 상당히 갑부스러운 발언에 다시 한번 눈을 크게 뜬 나는 이민형 쪽으로 한발짝 걸음을 옮겼다. 차 온다고 잡아 끌었으면서 자기가 나가는 건 뭐야. 내가 그런 생각을 할 때 즈음 이민형은 낮게 손을 들어 손가락을 몇 번 까딱였다. 내가 눈 빠지게 찾을 땐 코빼기도 안 보이던 택시가 부드럽게 나와 이민형 앞에 정차했다.
“안녕히 가세요.”
택시 뒷좌석의 문고리를 잡은 민형이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한 말이었다. 뭐야, 날 어디로 보낼려고! 당연히 같이 타고 집까지 데려다 줄 생각이었던 나는 화들짝 놀라며 이민형이 연 택시 문을 급히 잡았다.
“야, 너 지금 혼자 택시 타는 거 위험해!”
그리고 그렇게 외쳤지. 택시에 몸을 넣으려던 이민형은 택시 문을 꾹 잡은 내 손에 시선을 두며 행동을 멈칫했다. 요즘 세상이 얼마나 흉흉한데 학생을 혼자 보내. 나는 문에서 손을 뗀 후 가방을 고쳐 멨다. 민형이가 택시를 타면 바로 이어서 엉덩이를 붙이려는 속셈이었다. 하지만 이런 내 꿍꿍이를 다 눈치 챈듯 이민형은 허리를 굽힘과 동시에 문을 제쪽으로 당겼다.
“나중에 선생님 혼자 집 가는게 더 위험할 것 같은데.”
“..어?”
“괜찮으니까, 혼자 갈게요.”
학생, 탈거면 빨리 문 닫아요! 인상을 잔뜩 찌푸리신 기사 아저씨의 목소리에 어깨를 작게 으쓱인 이민형이 나를 올려다 봤다. 녀석의 표정은 마치, 아저씨 화 내시는 거 들었으면 조용히 문 닫게 해줘;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니, 그래도..! 나는 그렇게 입술을 웅얼거리며 다시한번 문고리를 잡았다. 그러자 이번엔 뒷좌석에 앉은 이민형이 얼굴을 찡그린다.
“그, 그럼 도착하면 메세지라도 하나 줘, 알았지?”
열린 문틈 새로 급하게 말을 전했다. 이민형은 대답도 없이 쾅 문을 닫았다. 꼭 줘!!! 기다렸다는 듯 빠른 속도로 멀어지는 택시 뒤로 소리쳤다. 82아 1999. 혹시 몰라 택시 번호판까지 확인했다. 아 진짜, 저렇게 막 혼자 보내도 되는거야? 찜찜한 마음에 이미 점이 된 택시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같이 가준다는데도 싫데. 택시비도 많이 나올 것 같은데..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한참을 그렇게 서 있다 점마저 사라져서야 겨우 등을 돌렸다.
“아으, 죽겄다.”
챙겨온 자료를 이민형이 다 가져간 덕에 가방은 가벼워졌지만 속은 그다지 가볍지 않았다. 일단 담배를 잡은 채 벽에 기대고 있던 이민형이 아직도 머릿속에 박혀있었고, 엄마한테만 말하지 말아달라는 놈의 부탁 또한 나를 괴롭혔다. 엄마가 그렇게 신경 쓰이면 애초부터 피지를 말던가! 앞에선 한마디도 뻥긋 못했던 말을 뒤늦게 내뱉었지만 풀리는 건 없었다. 이민형은 공부에 지쳐 담배를 잡은게 분명했다. 불과 2년 전에 똑같은 고3을 보냈던 나 역시 힘들게 일년을 보냈기 때문에 섣불리 혼을 못 냈던 것 같다. 어휴, 호구. 그러니까 만만하다는 소리나 듣지.
날 이렇게 만든 당사자는 이미 사라진 마당에 혼자 골을 울리는게 멍청하다는 생각이 들어 머리를 비우기 위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형용할 수 없는 밤 공기가 온 몸을 채웠다. 이민형은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기로 하고, 집에 가서 따뜻한 물에 샤워나 하자며 걸음의 속도를 높였다. 원래가 집과 가까운 카페였기 때문에 아파트 단지까지 들어서는 건 금방이었다. 저녁은 뭐 먹지 따위의 생각을 하며 계속 걸었다. 그렇게 동 앞까지 걸어갔을 때, 나는 문득 발을 멈췄다.
“…”
고개를 숙인 채 신발코를 바닥에 쿡 찍는 문태일이 시야에 가득 차올랐다. 호흡을 잠시간 멈췄다. 다시 발을 내딛을 수 없었다. 정말 문태일인가 눈을 꾹 감았다 떠도 바뀌는 건 없었다. 정말, 문태일이었다. 절대 마주치지 않으려 낮에 그렇게 도망쳤는데, 깨닫는 순간 허무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진짜 나쁜 놈. 사라지는 것도 자기 마음대로고, 다시 나타나는 것도 자기 마음대로야. 갑자기 이렇게 찾아오면 나는 어떡해. 입술을 꽉 깨물었다.
“…”
가만히 눈에 담던 문태일은 인기척을 느낀건지 느릿하게 고개를 들었다. 뒤를 돌아 다시 도망갈 새도 없이 시선이 맞물렸다. 내게 향한 그 온전한 시선을 감당하기 위해 옷 끝자락을 꾹 쥐었다. 목울대에 열이 오르는게 느껴졌다. 다시, 제대로 마주한 문태일은 다른게 없었다. 얼굴도 그대로였고, 키도 그대로였다. 옷도, 신발도, 가방도. 모두 한번씩은 봤던 것들이다. 나는 그제서야 고개를 떨궜다. 더이상 그 모습을 볼 자신이 없었다. 그동안 삼키고 삼킨 말들을 쏟아내버릴 것만 같았다.
“…”
“..”
때문에 바닥에 눈을 박은 채로 한발짝 앞으로 나갔다. 그 후 또 한발짝, 한발짝. 또 한발짝. 천천히 나아가며 문태일을 지나쳤다. 뜨거워진 침을 삼켰다. 그냥 이렇게 스쳐가면, 끝일 것 같았다. 정재현에게 끌려 나가는 나를 잡지 않았던 오빠를 기억하기에 이번에도 똑같이 날 보내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정말 이 관계는 끝이 나고, 마주할 때마다 모든 감각을 멈춰 세우는 바보같은 일이 없겠지 싶었다.
“여주야..”
하지만 문태일은 생각과는 달리 나를 잡았다. 따듯한 손이 손목을 감싸쥐어 나를 멈춰 세웠다.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떨리는게 느껴져 헛웃음이 나왔다. 먼저 매정하게 떠나놓고, 왜 나보다 아픈 척 하는 거야. 고개를 들지 못하고 깨문 입술만 더욱 꾹 깨물 뿐이었다. 코 끝이 시큰거리는게 다시끔 그 눈을 바라보면 주저앉아 울 것 같았다. 문태일 때문에 우는 건 그만하고 싶었다.
“오빠가 다 잊으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보낸 소리는 울음에 잠긴 소리. 신경질 적으로 손목을 비틀어 온기를 뿌리쳤다.
“다 잊으라고 문자 한통 보내고 잠수탔잖아!”
“..”
“근데 이제와서 왜 온건데!!!”
한번 터진 감정은 다시 잡기 어려웠다. 나는 특히나 그랬다. 울기 싫어 외면하려 해놓고 두 눈엔 또 눈물이 차올라 눈 앞이 흐릿했다. 문태일은 그런 내게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내 손목을 다시 잡지도 않았고, 우는 날 달래주지도 않았다. 눈을 감고 냅다 지른 소리만 공기를 흐트려놓고 밤 하늘에 울렸다. 눈꼬리를 타고 흐른 눈물은 비실히 바닥으로 떨어졌다. 차라리 아무 말이나 듣고싶었다. 사과든 변명이든 아무 말이나 해주길 바랐다. 그걸로 일말의 미련을 버릴 수만 있다면 목 놓아 울게 뻔해도 들을 수 있었다.
“보고싶었어.”
“..”
“진짜 많이 보고싶었어 여주야..”
그러나 문태일은 그랬다. 끝을 내지 못하게 생각지도 못한 답변을 내놓는다. 오빠를 계속 미워해야 하는데, 젖은 목소리로 그런 말을 하면 나는 정말 어떡해.
“..나쁜 놈.”
“..”
“진짜 나쁜 놈..”
결국 엉엉 울었다. 문태일은 턱 끝에 맺히는 눈물을 대충 닦아내는 손을 조심히 잡아 제 쪽으로 당겨 날 안았다. 뜨겁게 차오른 숨을 내뱉었다. 보고싶었다는 한마디에 무너지려고 그동안 미워한게 아닌데. 품마저는 뿌리치지 못하고 안겨버린 내가 못났다. 너무도 그랬다.
벌레 우는 소리만 조용히 맴도는 밤이었다. 빈 벤치의자에 문태일과 나란히 앉은 나는 한참을 운 탓에 붉어진 눈을 하고 초점 없이 앞만 바라봤다. 모두 말해주겠다던 문태일은 몇 분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재촉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나는 이미 모든 걸 쏟아내 더 토해낼 것도 없었다. 그저 담담히 신발코를 쿡, 바닥에 한번 찍으며 오빠를 기다리는데, 문태일이 여주야, 하고 나를 불렀다.
“너 엠티 간 날 말이야.”
“..”
“…사실 그날 교통사고가 났었어.”
오빤 그렇게 말문을 열었다. 줄곧 앞만 향하게 놓았던 고개를 돌려 문태일에게 시선을 두었다. 놀란 마음에 나온 행동이었다. 교통사고라니..? 눈꺼풀을 느릿하게 움직이며 미간을 좁혔다. 무릎 위에 얹어놓은 손이 옅게 떨리기 시작해 양 손을 맞잡았다.
“일어났는데, 목소리가 안 나오는 거야.”
문태일은 나를 보지 않고 고개를 떨군 채로 계속 말을 이었다. 목울대가 울렁였다. 생각도 한 적 없는 얘기를, 오빠는 덤덤히 말했다. 노래를 하는 사람 입에서 나온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는 말은 꽤나 충격이었다. 나는 진득히 눈을 두지 못했다. 자꾸만 깜빡이고, 떨었다. 내가 질렸다던지 다른 여자가 생겼다던지 안 좋은 이유란 이유는 모두 가져와 문태일을 미워했었는데…
“뇌를 다쳐서 실어증이 왔었어.”
내가 그럴동안 문태일은, 매일이 오열이었던 나보다 더 힘든 날들을 보낸 것 같아 숨이 턱 막혔다. 오빠는 그 말을 끝으로 입술 새를 닫았다. 동시에 시선은 한번 주춤하더니 곧 내게로 돌려졌다. 흔들림과 흔들림. 우린 그렇게 눈을 마주했고, 또 그렇게 한참동안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내가 물었다. 왜 말 하지 않았냐고. 내가 좋아한 건 노래 하는 문태일이 아니라 문태일 그냥 그 자체였는데, 왜 그랬냐고 물었다. 솔직하게 다 말했다면 지금 이 순간도 우린 다정히 손을 잡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사실 어렴풋이 짐작이 가기도 했다. 분명 내 걱정을 먼저 했을 사람이니까. 내가 울고 내 속이 상할 걸 걱정해 혼자 모든 걸 감당하려 했을게 뻔했다. 문태일한테는 항상 내가 먼저였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바보같이 착한 사람. 내가 좋아했던 문태일은 그런 사람이었다.
“너 그럴 것 같아서.”
“..”
“내 옆에 있겠다고 할 것 같아서 갔어.”
그리고 나도, 조금 많이 무서웠어 여주야. 돌아오는 대답은 가슴을 미어지게 만들었다. 언제 다시 목소리가 돌아올지 모르는 상황에 노래를 쉬어야했던 오빠의 눈 앞은 얼마나 깜깜했었을까. 문태일이 조금만 이기적이였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내가 그 암흑 속에 조금이나마 빛이 돼려 노력했을텐데. 오빠는 아마 그런 나를 보고싶지 않았던 거겠지.
“오빠를 그렇게 미워했는데..”
“..”
“지금은 다시 목소리가 나와서 다행이라는 생각만 들어.”
“….”
“..진짜 단순하다. 그치.”
애초부터 둘 다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던 것 같다. 어떻게든 둘 중 한명은 몰래 울었을 거다. 그걸 아는데도 불구하고 자꾸 미련이 남는 건, 이렇게 가까이 문태일을 마주하고 있어도 더이상 전처럼 떨리지 않아서 그런게 아닐까. 1년은 꽤 긴 시간이었고, 나한테 그 시간은 애증이었다. 모르는 사이 많이 지쳤었나봐. 무거워진 고개를 떨궜다. 힘들게 목소리를 되찾아 온 오빠에게 너무 미안해서 죽을 것만 같았다.
등 뒤로 도어락이 잠기는 소리가 울렸다. 엄마 아빠의 부재가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바닥에 주저 앉았다. 불을 키지도 않아 달빛만 들어오는 거실에서 홀로 생각을 정리했다. 1년 전 문태일에게 그런 일이 있었고, 우린 정말 헤어졌다. 그 분명한 사실을 곱씹자 또 울컥 울음이 차올랐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죽어라 미워만 했는데. 이렇게 되면 내가 잘못한 것 같잖아. 입술을 꽉 깨물며 마른세수를 했다.
그러던 중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이 진동했다. 얼굴에서 손을 뗀 후 핸드폰을 꺼내 발신자를 확인했다. 정재현, 이름 석자가 반듯하게 눈에 들어왔다. 방금 전까지 울음을 참았던 목을 가다듬었다.
“여보세요.”
그 후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은 척 받은 전화 너머에선 잠시간 아무 말이 없었다. 여보세요. 한번 더 말을 내뱉곤 가만히 대답을 기다렸다.
-..괜찮냐?
문은 잘 잠갔냐, 불은 다 껐냐. 내가 혼자 집에 남게 됐을 때 항상 하는 잔소리를 똑같이 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정재현은 내게 생뚱맞은 말을 건넸다. 그 순간 눈치 챘다. 바로 앞 동에 사는 정재현이 나와 문태일을 못 볼 이유가 없었다. 얘 다 봤구나. 하긴 그렇게 소리를 질렀는데..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봤구나 너.”
-응.. 커튼 치다가.
“…”
-나 갈까?
집 안이 너무 조용한 탓에 굳이 핸드폰을 귀에 가져가지 않아도 정재현의 목소리가 크게 퍼져나갔다. 녀석이 보고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비실거리는 소리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왔다. 혼자 견뎌내는 걸 연습해야 했다. 정재현은 날 달래는 데에 익숙한 놈이기 때문에, 온다는 걸 막지 않으면 난 그 위로에 한바탕 쏟은 눈물을 또 한번 쏟을게 분명했다. 다시 말하지만, 그건 정말 바보같은 짓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김여주.
“응.”
-…문태일 때문에 울지 마.
그리고 그건, 정재현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나지막이 귓전을 때린 소리에 응, 하고 작게 답했다. 이제 정말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오빠와는 헤어졌고, ….헤어졌다. 이유가 무엇이든 바뀌는 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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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근데 저 좀 심각하게 서영호 보고싶어요...ㅇ<-<
항상 읽어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7화 초록글도 너무 감사드려요! 다음화는 제가 진짜 좀 더 빨리 들고오도록...노력 하겠숨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