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e Boy!
: 나보다, 너
11
나보다
"..."
"왜 자꾸 눈치를 봐."
"..."
"할 말 있으면 지금 하지?"
"..."
"지금 안하면 안들어 줄 거ㅇ"
"나 글 써도 돼?"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그..."
"응."
"너 이야기로 글 써도 돼?
둘 다 강의가 일찍 끝나는 날이었다. 우리 학교 앞으로 데리러 오겠다는 정국이를 만류하고 - 굳이 직접! 내가 정국이네 학교 앞으로 가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제 학교 앞 카페 안에서 나를 기다리겠다는 정국이는, 이제 막 주문을 마친건지 출입문 앞 계산대에 서 있었다. 오늘의 정국이는 제 종아리를 반쯤 덮는 코트를 입었는데... 완연한 가을이구나 싶었다. 처음보는 정국이의 코트 입은 모습에 우뚝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그를 멍하니 바라봤다. 기럭지 봐... 아가... 스무 살이 되서도 키가 자꾸만 크는 정국이었다. 열아홉 때랑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정국이는 저를 가만히 쳐다보는 나를 향해 제 코트 주머니에 두 손을 꼽고, 코트를 벌렸다. 안기지? 하며. 나는 그런 정국이의 품에 살풋 안겼다. 평소 같았으면 허리를 끌어 안고, 안 떨어졌을 텐데 - 오늘은 달랐다.
정국이를 처음 만난 순간 - 그 여름 -부터, 그의 이야기로 글을 쓰고 싶었다. 정국이에게도 결코 쉬운 이야기가 아님을 알기에,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나의 이기심이 아이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그런데, 그래도 쓰고 싶었다. 정국이 아버님의 죽음이 몇 줄의 기사와 짧은 뉴스 보도로 끝났다는 사실이, 그 현실이 싫었다. 훨씬 많은 죽음이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지만, 어쩌면 아버님의 죽음도 다른 이에게는 많고 많은 죽음 중 하나일 테지만. 정국이는 나에게 이제 '남'이 아닌 '우리'니까. 아이를 위로해주고, 괜찮다고 말 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정국이와 연애를 시작한 순간부터 떠올려 왔던 생각이었다. 그와의 연애가 일 년이 넘어가고, 이제는 이 마음을 말해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일주일 전부터, 나름 어떻게 말해야 할 지 연습도 하고 대본도 적어 봤는데... 정국이의 올곧은 시선을 마주치니 - 전부 다 소용 없어지고 말았다.
정국이는 연신 제 눈치를 보는 내게, 할 말이 있으면 지금 하라고 아니면 안 들어 준다고 엄포를 놓았다. 나는 그런 정국이에게 말려 채 정리도 못 한 말을 두서 없이 내뱉었다. 나 글 써도 돼? 하고. 정작 중요한 단어는 쏙 빼먹고 말해버렸다. 정국이 역시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듯, 그걸 왜 나한테 물어- 하면서 진동벨을 만지작거렸다. 아... 이게 아닌데. 나는 자세를 고쳐 앉고 그에게 다시금 물었다. 네 이야기로 글 써도 돼? 진동벨로 손장난을 치던 그가 멈칫, 제 손 끝에 향해 있던 시선을 내게로 돌리는 정국이었다. 일 분도 되지 않는 정적이 흘렀다. 서로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든 생각은 - 내가 너무 성급했구나. 단 하나였다. 뭘 잘했다고 코 끝이 찡해지는지... 스스로가 답답했다. 서둘러 정국이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려는 때.
지이이이이잉. 지이이이이잉.
진동벨이 울렸다.
일 층 카운터로 음료를 받으러 내려가는 정국이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분명 이곳에 들어올 때만 해도, 한없이 커보이는 아이였는데... 지금은. 내가 처음 만났던, 열아홉의 정국이보다 훨씬 더 작은 아이가 있었다. 계단 아래로 그의 코트자락이 완벽히 사라지자,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김탄소. 바보야? 너가 잘못하고 너가 왜 울어. 정국이가 올라오기 전에 서둘러 눈물을 그쳐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행동은 머리를 따라주지 않았다. 급하게 소매 끝으로 눈가를 비벼댔다. 울지 말자. 울지 말자 - 하며.
정국이는 내 앞에 음료를 건넸다. 그 손길에 하마터면 간신히 참고 있는 눈물이 터질 뻔 했다. 나는 그런 정국이에게, 옅게 입술을 깨물며 고마워- 하고 답했다. 정국이는 별 다른 대답없이 제 음료를 마셨다. 꽤나 오랜 침묵이 오갔다. 뭐라고 말해야, 아이가 오해하지 않고 내 사과를 오롯하게 받아줄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간신히 입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보다 빠른 건, 정국이었다.
"정ㄱ"
"나 먼저... 말해도 돼?"
"...응."
"...울었어?"
"...아니."
"거짓말."
"..."
"나 지금 너 옆으로 가면 더 울거지?"
"그럴 것 같아..."
"알았어. 그럼 여기서 말할게."
"...응"
정국이는 조심스럽게 자신이 먼저 말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나는 그런 정국이에게 응 - 하고 대답했다. 무슨 말이 나올까 두려웠지만,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아이는 내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울었어? 정국이의 따뜻한 목소리에 또 한 번 울컥. 나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아니... 그러자 그는 거짓말. 하며 자신이 내 옆으로 오면 더 울거냐고 물어온다. 지금 정국이가 가까워지면... 울음을 참을 자신이 없었다. 울 자격도 없으면서. 아이 상처를 들먹인 건 난데. 나는 제법 씩씩하게 목소리를 가다듬고 그럴 것 같다고 말했다.
"누나 말이 당황스러워서 그랬어."
"..."
"싫어서 대답 안 한 거 아니야. 못 한 거야. 당황해서."
"..."
"...아빠 얘기를 누구한테 한 게 처음인데."
"..."
"나 사실 그때도 뭐에 홀린 것처럼 말하긴 했는데."
"..."
"엄청 용기 낸 거였어."
"..."
"근데."
"..."
"그걸 누나가 이야기로 쓰겠다고 하니까."
"..."
두 눈을 질끈 감고 들었다. 아이의 얼굴을 마주 할 자신이 없었다. 지금이라도 미안하다고, 그만 이야기 하자고 말하고 싶었다. 특히, 정국이가 '엄청 용기 낸 거였어.' 하는 단락에서, 주먹을 꽉 쥐었다. 근데, 그걸 누나가 이야기로 쓰겠다고 하니까.
"나는 괜찮은데."
생각지도 못한 대사였다. 나는 정국이의 말에 고개를 들어 그를 마주했다. 그는 그제서야 해사한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이제야 나 쳐다 보네.
"나는 괜찮다고."
"...뭐라고?"
"괜찮아. 근데"
"..."
"누나. 너가 안괜찮을까봐."
"..."
"나보다 너가 걱정이라 그래."
사실 정국이랑 데이트를 하다가도 소방차가 지나가거나, 어디 불이 났다는 소식을 접할 때면 그를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괜히 더욱 밝은 척 하고, 싸이렌 소리를 듣지 못하게 이어폰을 나눠 끼고는 했는데 - 정국이가 내 행동들의 의도를 알고 있을 지는 몰랐다. 알고 있으면서도, 그냥 넘어가 준 거였구나.
"...알고 있었어?"
"그걸 어떻게 몰라. 바보야."
"...미안해."
"이번엔 뭐가 미안해."
"...위선 같았지..."
내 행동들이 그에게 같잖아보였으면 어쩌지. 라는 생각이 나를 짓눌렀다. 혹여나 살아있는 자의 위선, 가증으로 보이지는 않았을까. 언젠가 한 비평가에게 들었던 말이었다.
'김작가의 글들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위선과 가증으로 가득 차 있다.'
정국이가 그렇게 생각했을까 두려웠다. 정국이는 내 말을 끝으로 내 옆자리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는 제 코트를 벗어 내 어깨에 둘러 주었다.
"어때?"
"...뭐가"
"내가 이렇게 해주는 거."
"..."
"위선 같아?"
"...아니."
"이런 건, 위선이라고 하는 거 아니야."
"..."
"위로. 라고 하는 거야."
제 코트를 다시 한 번 단단하게 여며주며 말하는 그였다. 위로. 라고 하는 거야. 순간, 참아왔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는 결국 울음을 터트린 나를 제 품에 끌어 안고는 내 등을 토닥여줬다.
"울지마아"
"...으어어엉"
"오빠 속상하다."
너
Boy Moment.
아빠가 근무하던 소방서였다. 적어도 일 년에 두 번은 찾아가려고 노력하는 편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내게 더 따뜻하셨던 분들이었다. 당신들의 잘못이 아니면서도, 나만 보면 미안하다고 하시는 분들이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는 처음 가는 소방서였기에, 괜히 걱정이 앞서왔다. 너무 오랜만인가. 나는 근처 마트에 들러 음료 박스를 샀다. 누나에게는 조별 과제가 있다고 말했다.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소방서라는 단어만 들어도 나보다 더 걱정하는 여자였기에 - 나름 선의의 거짓말이었다. 데이트를 하다가도 문득문득 누나의 행동이 어색해 질 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어디선가 싸이렌 소리가 들렸고. 어디선가 화재 소식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정작 나는 이제 아무렇지 않은데, 그녀는 내 이야기를 생각보다 깊이 담아두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누가 글 쓰는 사람 아니랄까봐.
그렇게 도착한 소방서는 여전했다. 나를 발견한 아저씨들은 오랜만이라며 내 어깨를 다정하게 끌어 안아주셨고, 대학에 들어갔다는 소식에 아버지처럼. 정말 우리 아버지처럼 반겨주셨다. 나는 오랜만에 만난 아저씨들과 신고가 들어오기 전까지 여유있게 앉아서 대화를 나눴다.
"그래서 우리 꾹이 여자친구는 있고?"
"그래, 그래. 여자친구는 있냐?"
"...있어요."
내 주변을 삼삼오오 둘러싼 아저씨들이 물었다. 여자친구는 있냐? 무슨 남고에 발령 받은 교생 선생님을 보는 듯한, 뜨거운 시선에 최대한 고개를 숙이고 답했다. ...있어요. 그러자 순식간에 주변은
우오오아오아오아와아아아아아아!! 형님! 정국이 여자친구 있답니다!!
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정국이 색시 생깄다고?
예쁘나? 곱나? 아니, 착하제? 참한 여자제?
아저씨들. 시끄러워요.
나는 내 등을 마구 두들기며 질문해오는, 아저씨들을 향해 잠깐 잠깐!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으... 등 아파라.
"하나씩 좀 물어봐요."
"예쁘냐?"
"새끼야. 참한 지를 물어봐야지!"
"아. 성님! 요즘 애들 다 참허요!"
"야 정꾸야. 예쁘고 참한 거 다 필요 없다. 돈 많ㄴ... 아아아아악! 아파요!! 형님!!"
"고거시 지금 아한테 할 말이냐? 장가 두 번 다녀온 놈이?"
나 대답 언제해?
"야야. 조용히 해. 정국아 그냥 여자친구 제일인거 하나만 말해봐라."
제일인거?
"...겁나 착해요."
"우오오오오오오!"
"그리고"
"그리고?"
"겁나 참해요."
"돼아따. 돼아써!!"
또 있는데...
"그리고..."
"안 끝났는교?"
"...겁나 똑똑해요."
"키야야야야야야야야! 날 잡아라 정국이!"
아직 남았는데...
"그리고..."
"또?"
"..."
"뭐신데"
"겁나 예뻐요."
겁나 예뻐요. 라는 내 말을 끝으로 소방서 안은 축제의 현장이 되었다. 아저씨들은 확성기를 대고는 결혼식 행진곡을 불렀고, 가장 막내인 아저씨는 전기 스위치를 껐다 - 켰다 하며 분위기를 조성시켰다. 아버지와 가장 친했던 아저씨는 벽 한 켠에 붙어 있는 아버지 사진에 대고 '이제 걱정마쇼. 성님.' 하며 웃어보였다. 뭐야. 아저씨들 - 주책맞게.
그나저나 내 여자 말하고 보니까
짱이다.
"...ㅈ...저기요?"
나 역시 아저씨들 무리에 동참해서, 스텝을 밟는데 - 누군가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온다. 아... 지금 좀.
"택배요. 1층에서부터 불렀는데... 아무도 안내려오셔서..."
"아. 미안허요- 우리 아가 날이 잡혀서!"
"무슨 날이에요!"
"애가 부끄러워 가지고 괜히 씅을 냅디다. 택배 일로 주쇼!"
아저씨도 참.
택배는 제법 많았다. 저게 뭐야? 나는 옆에 있는 아저씨에게 물었다.
"다 뭐예요?"
"저거? 장갑이지."
"장갑이요?"
"오야. 장갑이랑 장화."
"이제 저런 것도 줘요?"
아버지 때만 해도 보급품 들어오는 걸, 본 적이 없는데.
"나라가 뭐시 변했다고 저런 걸 준다냐. 우리한테."
"그럼 뭐예요? 민간단체?"
"아녀 - 어떤 그... 아따. 또 까묵어버렸네!"
"형님! 저번에 와서 인사까지 하셨으면서! 그 왜 글 쓴다는 아가씨인데, 세 달에 한 번씩 보내 주셔."
"...글이요?"
"엉. 작년 여름부터 주셔. 간식 같은 것도 보내주시고 - 젊은 아가씨가 영 괜찮아!"
"...혹시 이름이 뭐예요?"
"이름? 그 택배 위에 봐봐라?"
나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잔뜩 쌓인, 택배 쪽으로 걸어갔다. 에이... 아닐거야. 하며. 뒤에서 아저씨들은 '정국이 여자친구 없으면 소개 시켜주려고 했었는데, 아쉽다.' 하고 말해왔다. 바로 택배 위의 이름을 확인 한 나는.
"...소개 안 시켜줘도 알아서 만났네요. 뭐."
이름도. 주소도. 전화번호도.
글씨체까지.
전부 그녀였다.
김탄소.
이번에는 장갑이에요! 저번에 최아저씨 장갑 현장 나가서 잃어버리셨다면서요 - 조심 좀 하세요! 화상 그거 아무것도 아닌 거 같은데, 흉 지면 제일 무서워요. ㅎㅎ 장가 한 번 더 가셔야죠! 다음에는 빙수 사들고 올게요! 다들 파이팅하세요 :)
-
안녕하세요. 겨울 소녀입니다.
10화부터 에피소드 형식이라 여러분이 시점이나 시간이 헷갈려하실까 걱정이 됩니다...ㅜ 혹시라도 헷갈리는 부분 있으면 얼마든 질문해주세요!
오늘은 따뜻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두 사람이 서로를 얼마나 생각하는지, 그런 마음이 여러분께도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둘 다 최고 벤츠! 전 화가 너무 많이 사랑을 받아서 감사해요. 조금은 핫? 한 ㅎㅎ 이야기였는데, 물론 그런 이야기도 좋지만 -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마음이 드러나는 글을 더 선호하는 편이에요. 핫 한 글을 쓸 때면... 괜히 부끄러워져서 -
그리고 제가 매 댓글에 답글을 다는데, 그 때마다 감사하다. 고맙다. 자꾸 말해서 그게 진심처럼 안느껴지면 어쩌나 싶어요. 정말 진심인데...! 몇 화에서인지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런 말을 했던 적이 있어요. 다른 사람의 글을 읽는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안다고.
정말이에요. 그걸 알아서 너무 감사합니다 :)
다들 오늘도 좋은 밤 되세요!
암호닉
미미 / 미스터 / 윤기윤기 / 뉸뉴냔냐냔☆ / 낮누 / 인연 / 청보리청 / 꺙 / 지민이랑 / chouchou / 둘리여친 / 맙소사 / 비둘기 / 2330 / 됼됼 / 정꾸기냥 / 정연아 / 숙자 / 풀네임이즈정국오빠 / 연찌 / ㅇㅅㅇ / ㅏㅏㅏ우유 / 민트초코치약맛 / 민윤기다리털 / 윤치명 / 야꾸 / 가위바위보
+다른 작가님들꺼 보니까 텍파 나눔을 다들 하시더라구요! 이 작품도 끝나고 텍파를 만들까 하는데 - 독자분들 생각은 어떠신가요! 텍파를 해본 적이 없어서, 괜히 했다가 여러분만 불편해지실까봐ㅜㅜ 원하신다면 저야 얼마든지 좋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