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e Boy!
: 군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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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강압적인 말투의 정국이었다. 내가 이 비키니를 고르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나는 정국이에게 조금도 먹히지 않을 반항을 했다. 싫어! 그러자 그는 살벌하게, 그것도 정말 살벌하게 - 입으라고. 하며 내 옷 매무새를 고쳐준다. 분명 정국이가 입었을 때는 적당한 반팔이었는데, 나에게는 원피스 길이까지 내려오는 티셔츠였다. 이게 뭐야... 하나도 안예뻐!
"...이게 뭐야!"
"티셔츠."
"그 말이 아니잖아!"
"그럼."
"하나도 안 예쁘잖아..."
"누가 그래."
"이씨... 짜증나. 전정국!"
"지금 여기서 너가 제일 예뻐."
"말 걸지 마!"
군대
정국이와 근처 맛집에서 밥을 먹고 나오는 길이었다. 선선한 저녁 바람이 기분 좋게 우리를 스쳤다. 정국이는 2학년 1학기를 별 탈 없이 마쳤고, 나 역시 큰 문제 없이 이번 학기를 마쳤다. 모든 게 좋았다. 배도 부르고, 내 남자도 옆에 있고, 날씨도 딱 좋고 - 손만 잡고 걷고 있음에도, 웃음이 흘러 나왔다. 히히. 정국이는 그런 나를 보고, 좋아? 하고 물어온다. 나는 그와 마주 잡은 손을 들어, 그의 손등에 짧게 쪽 - 하고 입을 맞추며 대답했다. 응! 좋아! 그러자 그는 고개를 숙여 내 볼에 입을 맞추고, 나도 - 하고 답해온다.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정국이가 문득 마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제 자리에 멈춰섰다.
"왜?"
"누나."
"응!"
"..."
"뭐야 - 왜애! 불렀으면 답을 해야지!"
"나 군대 가."
오랜만에 듣는 '누나'라는 호칭에 응! 하며 그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정국이는 제게 걸어오는 나를 가만히 내려다 볼 뿐, 별 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그에게 불렀으면 답을 해야지! 하며, 그의 허리를 꽉 끌어 안았다. 우리 정국이는 덩치가 자꾸 커지네... 애기오빠야. 진짜. 나는 정국이의 품을 파고 들었다. 그러자 그는 제 커다란 손으로 내 두 볼을 감싸며, 말했다. 나 군대 가.
"뭐, 뭘 가?"
"군대."
"장난치지 마아..."
그는 장난치지 말라는 내 말을 끝으로, 나를 벤치로 데려가 앉혔다. 그리고 자신은 내 앞에 무릎을 굽혀, 내 시선을 맞췄다.
"탄소야 -"
"..."
"대답 안 해 줄 거야?"
"..."
"나 미워?"
"...아니..."
"근데 왜 목소리 안들려줘."
"...나도 몰라."
"왜 그러는 지 모르겠어?"
"...응."
정국이가 잘 못 한 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는 여자친구인 내게, 자신의 입대사실을 알린 것 뿐이었다. 아주 평범한 날, 아주 저 답게. 그런데 나는, 나 답게 그에게 답해주지 못했다. 괜히 마음이 모나졌다. 결코, 그의 잘못이 아닌데 - 그래서 더욱, 마음이 복잡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다 가는 곳이었고, 정국이가 가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자꾸만... 마음이 울적해졌다. 정국이는 그런 내 눈을 맞추며, 왜 목소리 안들려줘 - 하고 나지막하게 제 말을 흘렸다. 나는 그런 그에게 솔직하게 답했다. 나도 몰라. 그러자 그는, 내 손을 제 엄지 손가락으로 천천히 쓰다 듬으며, 아이를 어루 듯 - 물어온다. 왜 그러는 지 모르겠어? 나는 애꿎은 신발 끝만 바닥에 부딪히며, 말했다. 응.
"나도"
"..."
"나도 그래."
"..."
"내가 왜 이러는 지 모르겠어."
"..."
"군대를 생각 안 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
"빨리 가고 싶다는 생각도 학생 때는 몇 번 했었는데."
"..."
"너가 나한테 오고 나서는"
"..."
"그 때 부터는."
"..."
"가기 싫더라."
"..."
"근데, 또."
"..."
"빨리 다녀와서."
"..."
"더 멋지게, 더 든든하게."
"..."
"너 지켜주고 싶어서."
"..."
"그래서 지원했는데, 정말 붙어버렸네."
"..."
"말도 안하고, 그래서 미안해."
정국이에게 가지 말라고, 조금만 늦게 가라고 떼라도 써 볼까. 생각하며, 그의 이야기를 듣는데. 아이는 내가 생각한 모든 말을 차마 꺼낼 수도 없게, 제 이야기를 이어갔다. 내가 제 옆에 있은 후로 자신도 가기 싫었다고 말하는 그 목소리가 너무나도 무거웠고, 빨리 다녀와서 더욱 든든하게 나를 지켜주겠다는 그의 시선이 너무나도 정직했다. 그리고 마지막 그의 사과는 너무나도, 따뜻했다. 나는 그의 목을 두 팔로 감싸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그의 단정한 뒤통수를 조심스레 쓸어주었다.
"뭘 미안해."
"..."
"내가 더 미안해. 듣자마자 잘 다녀와라, 기다린다. 그런 말 못 해줘서."
"...괜찮아."
"나 봐봐. 정국아."
나는 정국이의 머리칼을 쓸어내리던 행동을 멈추고,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정국이의 말간 눈동자가 내게 꽂혔다. 그래. 어디에 있든, 그게 뭐가 중요해. 아이의 눈은 언제나 나한테 향해 있을 텐데 -
"잘 다녀올 거 아니깐, 잘 다녀오라고 안 해."
"...뭐?"
"기다리는 건 너무 당연하니까, 기다릴거라는 말도 안 해."
"...그 말은 해주면 안 돼?"
"대신."
"..."
"다치기만 해. 가만 안 둘 거야."
"...안 다쳐."
"네 몸 네꺼 아니야. 내꺼야."
"그럼 너는?"
"내가 잠깐 빌려주는 거니깐, 자알 쓰고 돌려줘야 된다?"
"아니. 너는 누구껀데."
"뭘 물어!"
이제라도 씩씩하게 그에게 말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잘 다녀오라는 말도, 기다린다는 말도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는 기다린다는 말을 해달라며, 내 손등에 입을 맞춰온다. 하마터면, 백 년이고 천 년이고 기다린다고 말해버릴 뻔 했지만! 아직 뒤에 대사가 남았으니 - 참자 탄소야. 나는 아이처럼 나를 바라보는 그에게 다치기만 하라며, 나름의 엄포를 두었다. 그러자 그는 기다리겠다는 말을 해주지 않는 나에게 토라진 모양인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안 다쳐. 하고, 제 입을 삐죽인다. ...넘어가면 안 돼. 김탄소. 정신차려. 나는 그의 두 볼을 내 양 손으로 잡고 말했다. 내가 잠깐 빌려주는 거니깐, 자알 쓰고 돌려줘야 된다? 정국이는 내 말에 어이가 없는지, 살풋 웃으며. 너는 누구껀데 하고 물어온다. 으이구. 전정국. 나는 그런 그에게 뭘 물어! 하며, 그에게 입을 맞췄다.
"너꺼지!"
정국이는 이제야 해사하게 웃어온다. 웃는 모습이 이렇게 아기 같은데... 어딜 간다ㄱ.
이번에는 정국이었다. 그는 내 허리를 끌어 안으며, 내게 입 맞췄다. 좀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길고 - 깊은 입맞춤이었다.
군대... 가도 되겠다. 정국이...
아기 아니야...
여행
정국이의 군대 소식을 듣자 마자 바빠진 건, 그보다 나였다. 그와 못한 걸, 빨리 해야했다. 제대 후나 휴가 때 해도 됐지만, 괜히 마음이 급해졌다. 나는 그와 해보지 못한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학기도 끝났겠다! 곧 정국이와의 이주년도 다가오겠다!
여행을 선택했다.
정국이는 잔뜩 들떠서 여행 계획을 말해오는, 나를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그리고는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좋다. 그렇자.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네 마음대로 해라.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그런 그가 너무 무관심 한 것 같아, 한마디 해야겠다 싶었는데 - 그래도 내 이야기는 다 귀담아 들었는지, 내가 물어보는 족족 내용은 전부 다 기억하는 그였다. 이씨... 몰라. 진짜 내 마음대로 할 거야.
여름이니 당연히 바다를 가야한다는 나의 일방적인 주장에 그와 함께 떠난 곳은, 부산이었다. 물론 일 박 이 일로. 사실 여행 전 날부터 몸이 으슬으슬 한 게, 여름 감기에 걸린건가 - 싶었지만! 그에게는 말 할 수 없었다. 저번에 도시락 싸간다고 조금 베인 것 가지고도 얼마나 혼이 났었는데... 이번엔 절대 안돼! 나는 그와의 여행을 계획하는 중에 구입한 비키니까지 챙겨, 여행의 모든 짐을 마무리했다. 물론 정국이에게는 비밀이었다. 그는 내가 비키니를 입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않는지, 별 다른 언급이 없었다. 이럴 땐 가만히 있어야 돼.
KTX를 타고 도착한 부산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연인, 친구, 가족. 저마다 무리를 지은 사람들의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나는 그런 그에게 짱 좋다! 그치?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그러게. 좋다. 하고 답해온다. 뭐야. 재미없어! 그는 기차에서부터 뭐가 걱정인지, 잠도 안자고, 가끔은 내가 묻는 말도 듣지 못해 다시 질문하고는 했다.
"무슨 걱정있어?"
"...걱정은 무슨. 아니야."
"근데 왜 오늘 정신을 못 차려!"
"...덥다."
"말 돌리지 말고 -"
"빨리 갑시다 -"
무슨 걱정이라도 있느냐는 내 물음에 그는 내 머리 위로 쏟아지는 태양을 제 손으로 가려주며, 걱정은 무슨. 아니야. 하고 말한다. 수상한데... 그는 자꾸만 자신을 추궁해오는 내 손을 단단히 잡고는 빨리 가자며, 걸음을 옮겼다. 진짜... 뭐 있는데... 뭐지?
해운대 바로 뒷편에 예약한 호텔이었다. 사실은 내가 몰래 계산까지 마치려고 했지만, 귀신같이 알아챈 정국이가 자신이 다 내겠다는 걸 - 말리고 말려서 반반 내고 온 곳이었다. 사진상으로 호텔을 보았을 때도 꽤나 어색한 침묵이 돌았는데, 실제로 호텔 키를 받아 방으로 올라가는 엘레베이터 안에서는.
"..."
"..."
누구도 쉽사리 먼저 입을 열지 못했다. 그렇게 길고 긴 침묵 속에 도착한 호텔 방은.
"와아아! 진짜 예쁘다! 그치?"
"응. 밤에 야경 멋있겠다."
"신나! 신나!"
"좋아?"
"응!"
"그래 - 얼른 바다 가자. 가고 싶다고 노래 불렀잖아."
.
"안 나와?"
"...나는 좀 걸려!"
"왜?"
"여자들은 원래 그래! 바보야!"
"..."
"그... 먼, 먼저 밑에 내려가 있어!"
"나 혼자?"
"응. 그 백사장에 있어! 가서 파라솔도 좀... 해두고!"
"...알았어. 빨리와."
"응!"
이미 채비를 마친 정국이가 오랜 시간 방에서 나오지 않는 내게 물었다. 안 나와? 나는 그런 정국이에게 여자들은 원래 오래 걸린다고 답하니, 정국이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아마도 제 나름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거겠지. 나는 그에게 먼저 내려가 있으라고 답 한 뒤, 출입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 본격적으로 비키니를 입기 시작했다. 으아... 흉하면 어쩌지?
비키니를 완벽히 갖춰 입고, 거울 앞에 서서 내 모습을 바라봤다.
음...
됐어. 이 정도면.
.
나는 머리도 높게 묶어 올리고 나서야, 정국이를 찾아 나섰다. 백사장은 생각보다 넓었고, 사람은 생각보다 너무 많았다. 이러다 종일 정국이만 찾고 끝나는 거 아니야? 나는 정국이에게 전화를 걸며, 백사장을 두리번거렸다. 백사장에는 너도나도 수영복을 입은 사람들로 북적였기에, 생각보다 내 비키니가 의식되거나, 부끄럽고 하지는 않았다. 다행이야. 나는 전화를 받지 않는 정국이에, 그 자리에 서서 메세지를 남기는 중이었다.
'야! 너 어디ㅇ'
그때, 누군가 내 손목을 잡아챘고. 덕분에 핸드폰은 보기 좋게 모래 속으로 빠졌다.
"뭐야."
"...뭐, 뭐가!"
"뭐가?"
나는 핸드폰을 줍기 위해 허리를 숙였는데,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국이니? 나는 고개를 들어 내 앞에 서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아니나 다를까,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로, 내 핸드폰을 본인이 줍는 그가 보였다. 정국이는 핸드폰을 줍자마자, 내게 물었다. 뭐야. 나는 그에게 최대한 당황하지 않은 척, 뭐가! 하고 되물었고...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뭐가? 하고 내 말을 따라한다. 그나저나... 우리 정국이... 옷차림이 너무 단정하구나. 누나랑은 다르게. 정국이는 흰 반팔티에 검은 반바지를 입은 모습이었다. 하하...
"...안...더워?"
"너 때문에 불이 나. 지금."
"..."
"퍽이나 덥겠다."
"..."
"옷."
"..."
"다 입은 거야?"
"...으, 응!"
나는 아주 정상적으로 갖춰 입은 정국이에게 바보처럼, 안 더워?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나 때문에 불이 난다고 - 자신이 퍽이나 덥겠다고 답해온다. 나는 그런 그를 피해 애써 시선을 바닷가로 돌렸다. 정국이는 그런 나를 눈치 채고, 옷을 다 입은 거냐며 묻는다. 나는 이제는 당당해질 때다 싶어, 응! 하고 답했다. 여기서 말리면 안 돼.
"장난하는 거지. 나랑?"
"...무슨! 야! 여기 사, 사람들 다 이렇게 입고 있ㅇ..."
정국이는 제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자신과 장냔을 하는 거냐며, 답이 정해진 질문을 해온다. 나는 나름 예쁘게 꾸미고 온 나에게, 아무런 칭찬도 없는 그가 괘씸해졌다. 그래서 제법 큰 소리를 내며, 여기 사람들은 다 이렇게 입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내 말을 애초에 들을 생각도 없었는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 본인이 입고 있던 흰 티를 벗어 내게 입힌다.
"입어."
"...싫어!"
"입으라고."
꽤나 강압적인 말투의 정국이었다. 내가 이 비키니를 고르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나는 정국이에게 조금도 먹히지 않을 반항을 했다. 싫어! 그러자 그는 살벌하게, 그것도 정말 살벌하게 - 입으라고. 하며 내 옷 매무새를 고쳐준다. 분명 정국이가 입었을 때는 적당한 반팔이었는데, 나에게는 원피스 길이까지 내려오는 티셔츠였다. 이게 뭐야... 하나도 안예뻐!
"...이게 뭐야!"
"티셔츠."
"그 말이 아니잖아!"
"그럼."
"하나도 안 예쁘잖아..."
"누가 그래."
"이씨... 짜증나. 전정국!"
"지금 여기서 너가 제일 예뻐."
"말 걸지 마!"
나는 정국이를 등지고, 홀로 걸었다. 진짜 짜증나... 그는 이번에도 져 줄 생각이 없는지, 내 뒤를 천천히 밟았다. 나는 그가 먼저 손을 잡아주길 바라는 마음에 바다에 발만 담군 채, 해안가를 따라 걸었다. 그러자 그 역시 마찬가지로 내 뒤를 따라 온다. 참나... 자기는 위에 아무 것도 안 입어 두고는... 나는 일곱 살 애처럼 꽁꽁 감추냐! 치사해... 나는 내가 삐졌다는 걸 알리기 위해, 제법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그의 한숨소리가 들려왔지만, 이렇게라도 안하면 화가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엄마야!"
"야!"
순식간에 내 앞을 가로질러 바다로 뛰어든 사람들이었다. 덕분에 그들이 튀긴 물은... 내가 다 뒤집어썼다. 되는 일이 없어. 진짜!
"...으... 차가워..."
"너 진짜 앞에 보고 안 걸ㅇ."
"뭐! 이것도 내 잘못이야?!"
"...아 진짜."
"뭐! 뭐 어쩌라고! 너 진짜 미워."
' "...야"
"내가 오늘을 얼마나 기대했는데, 기차에서부터 정신 놓고, 내 말 잘 들어주지도 않고!"
"...일단"
"옷도 그냥 예쁘다고 해주면 되는데, 그거 한 마디가 그렇게 어렵냐!"
"...미치겠다."
"나 갈래."
"야."
"뭐! 자꾸 뭐!"
"...옆으로 와."
"싫어!"
"내가 너 기분 망쳤잖아. 지금."
"잘 아네!"
"이제 재밌게 놀자. 잘못했어. 내가."
"..."
"미안해. 괜한 심술 부려서."
"..."
"나 지금 진짜 미안한데..."
"...이씨"
"잘할게. 내가."
"..."
"누나가 나 용서해주면 너무 좋을 것 같다."
"...한 번만이야! 또 그러기만 해!"
"알았어. 맹세."
"알았어... 나도 미안해..."
"우리 이제 화해했으니까. 빨리 내 옆으로 와."
사람 심리라는 게, 참. 진지하게 제가 잘못했다고 해오는 아이를 보니, 더 이상 화를 낼 수가 없었다. 또... 정국이의 벗은... 상체를 그대로 마주하고 싸우자니, 뭐. 내가 이길 재간이 있나. 나는 자신의 옆으로 오라는 그의 말에, 그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는 말 없이 내 손을 잡아주었다. 정국이는 내 손을 고쳐 잡고는, 내 귀에 대고 말했다.
"아까는 너가 제일 예뻤는데."
"...지금은 아니야?"
"지금은 너가 제일 야해."
...
고개를 숙이니 보이는 건, 물에 젖어 비추는...
빨리 물에 들어갈래... 나.
.
한바탕 신나게 물놀이를 하고, 조개구이를 먹었다. 정국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입이 짧은 나여서, 가만히 그가 먹는 걸 지켜봤다. 히히. 아기 사자 같아. 정국이는 그런 나를 향해 자꾸만, 제 접시에 담긴 조개를 건넸지만 - 평소보다 유독 없는 입맛이었다. 왜지...?
"...나랑 싸운거 때문이야?"
"뭐가?"
"아직 화 덜 풀렸어?"
"...내가?"
"...아니, 안 먹길래..."
"아니야아. 입맛이 없ㄴ"
내가 밥을 안 먹는 게,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했는지 시무룩해져서 물어오는 정국이었다. 이럴 때 보면 영락 없는 아긴데. 나는 그런 그에게 웃어 보이며, 그냥 입맛이 없는 것 뿐이라고 답하는데.
에이취!
"...감기야?"
"...킁. 아니이."
"이마 대봐"
"..."
"너 열 나."
"...진짜?"
"엄청."
.
호텔에 올라가기 전, 편의점에 들러 감기약을 샀다. 정국이는 안절부절 자꾸만 내 이마에 제 손을 올려왔고, 십 초도 안지나서 '열이 더 오른 것 같아.' 하고 진지하게 말해온다. 그런 정국이가 강아지 같으면서도, 참 든든해서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정국이는 엘레베이터에 타자마자 나를 제 품에 안고는, 아프지마 - 하고 먹먹하게 목소리를 내뱉었다. 나는 뭐 여행 와서 아프고 그러냐. 나 역시 정국이의 허리를 껴안으며 말했다. 미안해. 아파서 - . 그러자 그는 내 이마에 제 입을 맞추며, 그런 말 하면 혼나. 하고 단호하게 말을 이어온다.
.
정국이가 씼으러 가고, 나는 막 씼고 나온 몸으로 침대에 누웠다. 씼고 나니, 몸이 더욱 노곤한게... 이제야 몸을 감싼 더운 기운이 느껴졌다. 으...
나는 정국이가 나오기 전에, 사온 약을 먹고는 그를 기다렸다. 자꾸만 몰려오는 졸음에 티비까지 켜두고, 분명 그를 기다렸는데 -
.
"탄소야?"
"..."
"자?"
"..."
"...참나."
"..."
"그래. 자라 자."
"..."
"...얼른 나아라. 우리 탄소."
Boy Moment.
어쩌다 박지민이랑 같은 대학교를 오게 됐는지. 녀석은 대학에 와서도 쫑알쫑알. 시끄럽기만 하다.
"야. 입 다물고 쳐 먹어."
"입을 다물고 오또케 쵸목냐!"
"...어휴."
"넌 니 여자친구의 반만이라도 나한테 해봐라. 내가 업고 다니지."
"니한테 업히기 싫어서라도 안한다. 새끼야."
"...인성 봐. 너네 누나는 너 어떻게 만나신다냐? 밥 먹는 것도 입 다물고 쳐먹으라는데..."
"...아"
"뭐"
"...나 여행감."
"군대여행? 나도 내년에 감."
그래도 고등학교 시절부터 항상 여자친구가 있던 녀석이었다. 뭐가 잘났다고. 눈코입 다... 답이 없는데. 어휴. 하지만 연애라고는 누나 전에 단 한 번 뿐인, 나에게 박지민의 도움은 절실했다. 여행을 가는데... 정말... 여행만 하나? 나는 꽤 조심스럽게 박지민에게 나 여행감. 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뱉었는데, 녀석은 더욱 아무렇지 않게. 군대여행? 나도 내년에 감. 하며 내 소세지에 손을 댄다.
그냥 죽일까.
"아니. 누나랑 여행간다고."
"...?"
"..."
"...흐흐."
"그렇게 웃지마."
"이렇게 웃으라고 한 얘기 아니야?"
"...아니... 그냥... 간다고..."
"우리 정국이... 드디어!"
"아... 그냥 닥치고 먹어."
"형아가 눈물이 다 나려고 하네."
누나는 이번 여행 계획을 짜느라, 복잡해보였지만 - 나는 다른 의미로 머리가 복잡했다. 누나와 만난 지, 거의 2년이 다 되가는데. 뭐, 나도 남잔데 어떻게 그 동안 아무렇지 않았겠는가. 당연히, 나도 누나를 안고 싶고, 더 사랑하고 싶었지. 하지만 탄소와의 첫 만남때의 사건이 강렬해서일까. 그녀한테는 작은 스킨쉽도 내 나름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그 결계를 아직도 잘 지키고 있는 건데... 여행이라니. 박지민은 온통 도움이 되지 않는 말들만 내뱉었고, 나는 여행 당일까지도 뚜렷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기차에서도 쫑알쫑알 제 말을 늘어놓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만약 그녀와 나를 상상... 아니. 상상을 왜 해. 변태냐? 그냥. 그... 아... 몰라. 나는 부산역에 도착해서, 호텔에 가기까지도 숨이 턱턱 - 막혀왔다. 특히, 엘레베이터에서는 할 수만 있다면, 그녀의 생각을 읽고 싶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할 지.
여자들은 원래 준비가 오래 걸린다는 말에, 또 다시 상상력이 마음껏 펼쳐질 뻔. 했다. 정말이다. 그럴 뻔했다. 나는 서둘러 백사장으로 나갔고, 괜히 후끈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백사장을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 옆을 지나는 사내들이 떠드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여자 개쩐다.' , '인정.' . 저급한 대화에 그냥 빨리 탄소나 나왔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 주변을 서성거렸다. 그런데, 내 앞에는 익숙한 실루엣이 서 있었다. 가느다란 목선, 작은 체구. 그녀였다. 나는 방금 전 사내들의 대화가 떠올라, 서둘러 그녀의 팔목을 잡아챘다. 누나가 맞았다. 아. 씨발. 나는 하마터면 입 밖으로 나올 뻔한 욕을 가까스로 참아냈는데, 그녀가 떨어진 제 핸드폰을 줍겠다며 고개를 숙인다. 나는 누나의 손목을 세게 잡은 채로, 내가 고개를 숙여 핸드폰을 주웠다. 연신 예쁘게 나가지 않는 말들이었다. 옷을 입은 건지, 찢은 건지. 어디서 저런 옷을 샀는지, 궁금할 정도로 작고 작은 옷이었다. 빨간색이 그녀의 흰 살결과 잘 어울리기는 했으나, 문제는. 나한테만 예쁘다는 게 아니잖아. 지금. 나는 그런 그녀에게 내 흰 티셔츠를 입히고는, 저 혼자 화가 나 앞서 걷는 누나 뒤를 따랐다. 제법 긴 길이까지 내려오는 흰 티였는데도. 야했다. 탄소는.
탄소가 다른 사람들의 물장난으로 젖어 버리고, 그런 그녀를 마주한 순간. 나는 속으로 같은 단어만 떠올렸다. 착한 생각. 착한 생각. 그녀는 이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잔뜩 붉어진 얼굴로 내게 화를 내는데,
전정국. 착한 생각. 착한 생각. 착한 생각 좀 해. 제발. 아니면...
박지민 생각이라도 하자.
.
그녀가 먼저 씼는 동안, 나는 온갖 생각을 다 했다. 일단 어색하지 않은 게 중요한데. 나는 정말 누나랑 손만 잡고 자고 싶었다. 아직은, 아직은 일렀다. 이 년이나 되는 시간이, 뭐가 이르냐고 할 수도 있었지만. 나한테는 이 년이나 되는 시간이 아니라, 고작 이 년 뿐인 시간이었다. 그녀와 함께 할 많고 많은 시간 중에. 단 이 년. 그래서, 그러니까 아직은. 아직은 나만의 방식으로 더 사랑해주고 싶었다. 그녀를. 내가.
나는 막 씼고 나온 그녀를 보면 안 될 것 같아, 그녀가 나오기 전 다른 욕실로 들어가서 씼었다. 미친듯이 뛰어대는 심장을 한 손으로 누르며, 괜찮아, 정국아. 괜찮다, 정국아. 를 열 번 쯤 외쳤을까. 침실로 왔을 때 보이는 건,
아기처럼 새근새근 잠든 누나였다. 참나. 전정국. 종일 왜 그렇게 긴장했냐.
나는 잠든 누나 옆에 누웠다. 누나의 작은 두 손을 한 손으로 잡아 보았다. 쪼그만거 봐. 진짜 아기같아. 나는 그녀의 콧잔등을 가볍게 툭툭, 쳐보았다. 열 때문인지, 얼굴이 붉은 그녀가 으응- 하고 몸을 뒤척인다. 아. 너무 귀여워. 진짜. 나는 그런 그녀의 어깨를 천천히 토닥여주었다. 자장자장. 우리 아가. 잘도 잔다. 우리 아가. 그렇게 그녀를 얼마나 쳐다보았을까. 그녀의 어깨 너머로 탁자 위에 버려진 약봉지가 보였다. 약은 챙겨먹고 잤나보네. 잘했어 우리 탄소. 나는 탄소가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약봉지를 치웠다. 약봉지에는 약과 함께 먹으라고 사온 사탕이 그대로였다. 뭐야. 이건 또 안 먹었어? 나는 사탕과 그녀를 번갈아 바라봤다. 자고 있는 사람을 또 깨울 수도 없고...
나는 다시 그녀의 옆에 누웠다. 물론 사탕은 내가 먹은 채로. 아니, 이건 내가 뽀뽀를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누나가 내일 일어나면 약 때문에 쓸까봐. 나는 그녀의 입에 짧게 입을 맞췄다. 그리고는 불과 몇 센치 떨어지지 않은 위치에 얼굴을 마주하고 그녀를 바라보는데 -
그녀가 뒤척이며 내 입술에 제 입술을 가져댄다. 그런 누나의 뒤척임에 놀란 건 나였다. 누나는 정작 아무것도 모르고, 내 입에 제 입술을 맞댄 채로 - 새근새근 잘 뿐이었다. 아니. 어쩜...
잠버릇도 예쁘냐. 이 여자는.
.
"정꾸야아..."
"...일어났어?"
"...으응. 근데에"
"일로 와. 더 자자."
"응... 근데 있자나..."
"...응... 왜..."
"...나 입술이 끈적거려..."
"..."
"...끈적끈적해..."
"...졸려서 그래. 졸려서..."
-
안녕하세요. 겨울 소녀입니다. 부족한 이야기지만 재밌게 읽어주셔서, 늘 감사드려요!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어리광을 꽤나 부리는 탄소였어요. 아무래도 남자친구를 군대 보내기 전이고, 또 제 마음을 몰라주는 정국이에게 섭섭했기 때문이겠죠?ㅎㅎ 정국이도 이번 편에서는 조금은 답답하게 화를 내는 구석이 있었네요 :)
작품을 읽으시면서, 이해가 어렵거나 헷갈리시는 점이 있으시다면 - 얼마든지 물어봐주세요!
오늘도 귀한 시간 내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텍파는 준비할게요ㅎㅎ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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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라도 빠지신 분 있다면 말씀해주세요ㅜㅜ! 다들 감사해요 :) 덕분에 탄소랑 정국이가 더욱 사랑스러워지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