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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아직 봄이라고 부르기 애매한 추위만 가득한 3월 2일부터였다. 고2가 된 기념으로 정신 좀 차려보자 했던 마음가짐은 이미 1월 1일이 지나며 저 멀리 쓰레기통에 들어갔다. 고1 시절 입학하자마자 교문에 서있는 고3 선도부원 선배를 보고 눈이 뒤집어져서 어떻게든 선도부 부원이 되고 말겠다는 내 열정 덕분에 지금 난 첫날부터 선생님들과 교문을 지키는 중이다. 그 선배가 고3인 덕분에 난 내 목적이었던 눈 호강도 해보지 못하고 바로 선도부의 노예로 전략하고 말았다. 고3 인줄 몰랐다는 내 말에 친구들은 바보냐, 눈은 장식이 라는 등 다양한 비난을 퍼부었지.
그렇다. 저기 자주색 명찰을 달고 오는 애는 신입생, 저 초록색은 나랑 동갑 그리고 파란색은 선배였다. 아, 우리 학교는 꽤나 명성 있는 학교다. 뭐, 딱히 머리 좋은 애들이 모인 건 아니도 운동하는 애들 배려해주기로 소문난 우리 학교는 많은 국가대표들을 배출해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옛날이야기가 돼버렸다. 하도 축구부가 그 점을 악용해서 교장선생님 귀까지 들어가서 그 이후로 좀 깐깐해졌다고 하나 뭐라나. 여하튼 나랑 관련 없는 일이라서는 무슨 작년에 축구부 잡으러 다니느라 다리에 알 배겨 죽는 줄 알았다! 꼬시다. 꼬셔.
"야, 쟤가 걔야"
옆에 같이 선도부의 노예로서 역할을 톡톡히 하는 친구가 옆구리를 쿡 찔러 그곳으로 시선을 돌리니, 아 자주색 명찰, 1학년, 넥타이, 바지통. 그래, 이게 바로 직업병이다.
"걔가 누군데?"
"기지배, 관심 없는 척은. 쟤가 쇼트트랙 국가대표 유망주래"
그 말에 다시 얼굴을 확인하려 고개를 돌렸을 때는 이미 저 멀리 지나가버린 후였다. 명찰을 봤으면 이름이라도 알아야 하는데 그 고3선배 이후에 색만 확인하는 습관이 들어서 1학년이라는 사실 외에는 알아 낸 것이 없었다. 슬슬 등교시간이 끝나가 선생님들 눈치를 보며 게다리걸음으로 도망가 따듯한 교무실로 들어갔다. 빨리 고3이나 돼버려서 이 짓도 그만둬야지. 교무실에는 뭐가 그렇게 신난지 나머지 선도부 부원들이 연필꽂이를 들고 돌리며 춤을 추고 있었다.
"야, 빨리와. 이거 뽑아야해!"
지들이 안 선다고 막말하는 거 봐라.
안 그래도 얼어 잘 움직이지 않은 다리를 재빠르게 움직여 다가가자 연필꽂이를 들이밀길래 손을 넣어 아무거나 집히는대로 잡아들었다.
"이거 뭐하는건데?"
"이번 한달간 점심시간동안 학교 순찰하는거 장소 뽑기"
우리가 관리실 아저씨니..? 우리가 왜 순찰을 해.
이쯤이면 진짜 학교가 우리를 노예로 생각하는 거 아니냐.
내 짜증에도 이미 다들 자신들의 쪽지를 열어보며 어떤 곳에서는 탄식이 어떤 곳에서는 환호성이 들렸다. 결국 체념하고서는 손에 있는 종이를 펼쳐보니...
'교문'
ㅎㅎㅎ...ㅎㅎㅎ...ㅎㅎㅎ 올해도 하늘이 내게 다리알을 선물해주실려는지 교문을..교문을..교문이라니!!
진짜 이쯤이면 전생에 내가 교문이랑 원수 관계가 아닐까 싶었다. 작년에도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교문에 섰다가 축구부 개새끼들 덕분에 육상부 뺨치는 체력과 다리알을 얻었는데 올해는 알고도 이러니깐 진짜 눈뜨고 코 베인 기분이었다. 아 그냥 쉽게, 망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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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해라~ 친구"
내 어깨를 툭 치고 가는 저 새끼, 네가 교문을 해봐야 그 요망한 방뎅이를 그렇게 살랑살랑 못 흔들 텐데. 씩씩거리면서 교실문을 열고나니 스치는 생각. 아, 오늘 학교 첫날이구나. 다들 마음 맞는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내가 앉을 자리는 저기 맨 앞자리에 고립되어있는 남아있는 한자리였다. 진짜, 거지 같네. 속으로 참을 인자를 3개를 새기고서는 가서 털썩 앉았다. 세월아 네월아 멍을 때리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아, 이 점심시간 순찰에 딱 한가지 장점이 있는데 바로 다른 애들보다 먼저 급식실을 간다는 것! 그래봤자 5분 전이지만 전쟁터같은 길에 모세의 기적처럼 갈린 길을 걷는 건 환상적인 일이었다.
"올해는 쇼트트랙 남자애 말고는 운동하는 애들 입학 안 했단다!"
그리고 정말 마주하고 싶지 않은 순찰시간.
다들 각자 걸린 구역으로 흩어지고 난 혼자 처량하게 교문으로 걸어갔다. 아까 친구가 시답지 않은 위로 하나 해주고 갔는데.
,친구야... 그런다고 이미 재학 중인 축구부 새끼들이 어디 증발하니.
아직 점심시간이니 계속 서있기에는 다리가 뻐근해져 앉으려고 엉덩이를 댔다가 너무 시려워서 스프링처럼 순식간에 일어났다. 진짜 세상에 도와주는 게 없구나. 교복 치마를 툴툴 털고 고개를 드니 동글한 뒤통수가 유유히 교문을 빠져나가고 있는 것을 포착했다. 맨날 보는 그 스포츠 컷이 아닌 것이 축구부 새끼들은 아닌 거 같아 뭐라 불러 세워야 하는지 생각하다가는 놓칠 것 같았다.
"야..!야!!!! 거기!!!!"
내 부름에 자기를 부르는지는 알아챘는지 금세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는데 아 명찰 색이 자주색이였다. 신입생이네,아까 분명 축구부에는 신입생이 없다 했는 데 이건 또 어떤 미친놈인가 싶어 다가가 명찰을 쓱 확인했다. 전정국. 그래 넌 정국이구나. 근데 너 너무 날 초롱초롱하게 바라보는 거 아니니..? 내가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은 게 이건 무슨 새로운 종류의 수법인지 싶어 경계를 세우며 다가갔다.
"그 신입생? 그 점심시간에 학교 나가면 안되는데..."
"저요?"
"네, 너요."
"저 훈련 받으러 가야하는데"
정국이는 뒷통수를 긁적이면서 곤란하듯이 말을 꺼냈는데 그 순간 아 얘가 그 쇼트트랙 국가대표 유망주라고 불리는 애구나 알아차렸다.
근데 동계올림픽은 지금 할때가 아닌데 왠 훈련.
"그럼 외출증 받았어요?"
"아..아니요."
훈련받으러 가는 애가 외출증 받고 나가야 하는 것도 모르는 게 진짜 그 쇼트트랙 국가대표 유망주가 맞나 싶어졌다. 이게 또 설명을 하려면 그 축구부를 언급해야하는데, 하도 그 축구부 새끼들이 무단탈출을 해서 교장선생님이 훈련 받으러 가는 것도 외출증 없이 교문 밖으로 못 나간다고 엄포를 내렸었다. 뭐, 그래도 꾸준히 탈출하는 새끼들도 있는데 진짜 훈련 기간이면 정말 거만하게 저 멀리서부터 얄밉게 외출증을 팔랑팔랑 흔들면서 내밀었는데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는 건 아무리 저런 나 아무것도 몰라요 표정을 해도 보내줄 수가 없었다.
"나가려면 교무실가서 외출증 끊고 와야해."
내 말에 깨달았다는 듯이 아, 하며 탄식을 내뱉었다. 올라가 보라면 학교를 가리키자 정말 몰랐는지 온순하게 정국이는 학교로 걸어들어갔다.
오늘도 한 건 해냈다는 뿌듯함에 다시 자리로 돌아가자 어디선가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에 얼마가지 않아 뒤를 돌아보니 걸음을 멈춘 정국이가 또 뒤통수를 긁적이고 있었다. 습관인가.
"받아오면 바로 보내줄게"
"..."
"...학교 규칙이라서 어쩔 수 없어"
"그..교무실이 어디에요?"
그 초롱초롱한 눈에 자꾸 마음이 약해져 말을 덧붙이자 정국이가 대뜸 교무실이 어디라며 물어왔다. 학교의 중심, 교무실을 모르다니. 제일 기피해야 할 곳은 미리미리 알아둬야하는 거 아닌가. 진짜 모르는 것 같은 눈치이길래 신입생에게 선행을 베푼다는 생각으로 앞장을 서 3층을 올라가 교무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기 들어가서 바로 앞에 있는 선생님한테 사정얘기하면 돼"
"바로 앞이요?"
"응, 문 딱 열지! 그러면 오른쪽에 사랑의 매라고 적힌 몽둥이 있는 쌤"
내 말을 듣고서는 정국이가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교무실을 살며시 열었다.
근데 너무 살며시 연거 아니니. 안 들어가고 계속 문틈 사이에 뭘 보고 있나 싶어 계단난간에 기대어 계속 주시했다.
그리고서는 다시 문을 닫고서는 혼자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서는 뒤를 돌아 날 또 빤히 쳐다봤다.
"안 들어가고 뭐해? 훈련 가야한다면서"
"그...몽둥이가 안 보이는데..."
하...답답해. 이러다가 해지면 훈련 가겠다 싶어 또 앞장서 교무실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그러자, 소리에 놀라 그토록 우리가 찾던 선생님이 고개를 휙 돌렸다. 예의있게 인사를 꾸벅한 뒤에 선생님에게 다가가자 왜 왔냐며 지금 순찰 땡땡이치는 거냐, 라며 날 구박하는 선생님께 착하게 웃어 보이며 상황을 설명했다. 그 순간까지 정국이는 내 뒤에서 눈만 꿈뻑꿈뻑한 채 서 있었다. 그리고서는 선생님은 자신이 말을 해주지 못했다면서 정국이에게 미안하다며 바로 외출증을 끊어주었다.
"이제 나가도 돼"
"아, 감사합니다"
다시 나도 내 할 일을 하기 위해 교문으로 돌아왔고 정국이는 훈련을 하기 위해 교문을 나섰다. 교문에서 바라본 정국이는 훈련소가 여기서 꽤 되는 거리인지 버스정류장에 서있었다. 아까 보니 성격도 소극적으로 보이고 낮도 가리는 거 같은데 한 나라를 대표하는 운동선수랑은 좀 거리가 멀어 보이기도 했고 저 어린애가 그런 큰 경기를 뛸 선수라는 사실에도 놀랍기도 했다. 쭈그려서 정국이의 뒷모습을 보며 온갖 생각을 다하는데 내 시선이 따가웠는지 딱 뒤돌아 본 정국이랑 눈이 마주쳤다.
"...."
"...."
괜스레 민망해 손을 들어 흔들자 정국이는 날..날...무시하며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그리고서는 자기 가방을 앞으로 보내 열어 뒤적거렸다. 이어폰 찾니. 내가 그렇게 보기 싫었나 보다 보자마자 쌩까버리게. 그래도 나름 교무실에 가서 외출증도 대신 끊어주는 친절까지 베풀었는데. 방금까지만 해도 정국이에 대해 연민이 가득 찼던 머릿속에는 정국이를 욕하기 바빴다.
툭-툭-
아 이번에는 외출증 가져온 남자애구나 싶어 고개를 들자마자 뒤로 자빠질 뻔했다. 어느새, 여기로 왔는지 정국이가 눈 앞에서 교과서 두권을 내밀고 있었다.
"이거 깔고 앉으세요"
????
내가 고개를 들어 이건 무슨 소리지 하며 쳐다보자 손수 직접 교과서 바닥에 펄쳐 깔아줬다. 쭈그려 앉아있던 내가 어련히 불쌍해보였나보네.
"그렇게 오래 앉으면 무릎 아파요"
"어..어...고마워!"
그래도 남의 교과서에 엉덩이를 데고 앉기가 민망해 고맙다는 말만 하고 안절부절하자 정국이는 앉아도 된다며 내 어깨를 눌러왔다. 내가 안 괜찮아!! 내가 안 괜찮다고...! 내가 앉는 것을 보고 만족했는지 정국이는 뒤도 안 돌아보고 정류장으로 뛰어가더니 부르기도 전에 도착한 버스에 몸을 실어버렸다. 한참을 멍을 때리다가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은근히 편안하게 깔아뭉게고 있었던 정국이의 교과서 2권을 집어들었다. 수1, 수2. 너도 수학이 싫구나, 정국아. 우리 좀 통하네. 그리고 교과서로서 목적을 잃어버린 채 내 방석으로 쓰인 수1, 수2에게 미안해져왔다. 이러려고 인쇄된 게 아닐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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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아가들이 가득한 곳에 홀로 고군분투 중이다. 어제 정국이가 방석으로 쓰라고 줬던 교과서를 돌려줘야 할 것 같아 막상 2층으로 내려오기는 했는데 딱 발을 딛자 생각난 게 내가 정국이가 몇 반이라는 것을 모른다. 1반부터 10반까지, 수1과 수2를 품에 앉은채 1반부터 지나가는 척 유리창 너머 애들을 확인하는데 그건 애초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쉬는 시간이니 다들 화장실도 가고 복도에 돌아다니고 하다 보니 정국이를 찾는 건 사막에서 바늘 찾는 격이었다.
결국은 점심시간 전 매 쉬는 시간마다 내려가 확인했지만 정국이는 머리카락 한 올도 찾을 수가 없어졌다. 그렇게 어제 정국이와 처음으로 만난 교문에 교과서 2개를 품에 안고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서 기다렸다. 10분 정도 지나니 다른 학생들도 점심을 먹었는지 급식실이 시끌시끌해지고 저 멀리서 내가 기다리던 정국이가 걸어내려왔다. 드디어..! 너무 반가운 마음에 뛰쳐나가 마중 나갈 뻔했다. 오늘은 제대로 교무실을 가서 외출증을 끊었는지 노란색 종이를 손에 달랑달랑 들고 있었다.
"안녕! 오늘은 끊어왔네?"
"...네"
진짜 낯을 많이 가리는지 그래도 꽤 안면은 튼 것 같다 했는데, 뭐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마치 처음 보는 사람 대하듯이 또 목덜미를 긁적이면서 외출증을 건네는 건 섭섭하네. 건네받자마자 뒤돌아갈려는 정국이를 붙잡자 용건이라도 있냐는 표정을 날 바라봤다.
"이거 가져가야지! 어제는 고마웠어"
내가 교과서 2권을 내밀자 정국이는 받지도 않은 채 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2권 준 거 맞는데 내가 뭘 잊어버렸나 싶어 나도 같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오늘도 그거 써요"
그리고 또 뒤돌았다. 다시 한번 난 정국이의 교복을 잡았다.
"나 오늘 이거 너 돌려주려고 쪽팔리게 2층 다 돌았다. 그러니깐 너 지금 안 받으면 영영 못 받아."
"어차피 수업 안 들어요"
"어..? 그래도 교과서는 피고있어야지"
정국이의 거듭되는 거절에 나도 계속해서 가져가라고 교과서를 내밀었다. 그러자, 정국이가 답답했는지 한숨을 푹 쉬었다.
아니, 본인 거니깐 준다는 데 왜 자꾸 거절을 하고 그래.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바라보는 내 모습이 우스꽝스러운지 정국이의 입꼬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근데 왜 내가 이렇게 간절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또 매정하게 눈을 돌려버리는 건데!
"6반이에요. 오늘 쓰고 내일 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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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냐세여! 스노우베리에여!
저와 한 마음인 분들이 많아서 너무 행복해요! (감격)
심지어 제가 감히 암호닉도 받아왔어여! (감격2)
여러분 제목에 '연애중' 보입니까? 그래서 최대한 빨리 연애를 향해 달려갈 거에요.
그러니 저를 꽉 잡으세여!
[ ♥암호닉♥ ]
쿠키 / 짐짐 / 영이 / 아이렌 / 소진 / 즁이 / 정꾸야 / 민설탕수육 / 응꾸 / 멜랑꼴리 / 0309 / 올봉 / 쇼트한 내다리 / 1720
귀요미 / 꾹꾸까까 / 060909 / 나의별 / 압솔뤼 / 국대꾹 / 나뱅 / 아돈 / 민트향 / 정국아 어딨니 / 꾸기 / ♥심슨 ♥ / 예감♥♥♥
꾹꾹 / 짐니야어디가 / 0213 / 잇진 / 됼됼 / 도손 / 모찌 / 마망고
*만약 오타가 있으면 소곤소곤 알려주세요! 빨리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