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석민 X 방송PD 너봉
" 저기요-. "
악, 순간적으로 귀를 틀어막으면서 뒤를 홱 돌아보자 바로 옆에 그의 얼굴이 보였다.
조용히 좀 가죠, 방송국까지만이라도.
잔뜩 그를 흘겨보며 걸음을 재촉하는 내 옆으로 그는 빠르게 따라붙었다.
" ㅇㅇ야, "
" 빨리말해요, 더워죽겠으니까. "
" 좋은 소식이게 나쁜 소식이게? "
" 그 쪽이 전하는 말은 다 나쁜 소식입니다만. "
한동안 말을 안하는 그를 보며 이번엔 내가 그를 엿먹였구나 하고 뿌듯해할때 쯤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나 오늘 ㅇㅇ랑 사전인터뷰 있는데?
아, 주여. 절로 손이 이마를 짚었다. 누구맘대로 사전인터뷰야 또.
선배에게 따지려고 핸드폰 잠금을 풀었더니 세통의 문자가 도착해있었다.
[수진선배] ㅇㅇ씨
[수진선배] ㅇㅇ씨가 석민씨 불편해하는거 알지만
[수진선배] 석민씨가 ㅇㅇ씨 아니면 사전인터뷰를 안하겠다고 하네.
이런, 이석민 이 사람은 집가서 어떻게 하면 나를 엿먹일까 생각하는 것이 분명하다.
" 아, 진짜. 저한테 왜그.. "
" 잠깐잠깐, 중요한 타이밍. "
내 말을 끊은 그가 열중하고있는것은 프렌즈런이었다.
점프! 그렇지!
그 옆에서 그가 게임하는 장면을 빤히 보고있다가 하나, 둘, 셋.
" 지금 뭐하는 짓! 이야.. "
" 그 쪽은 지금 뭐하는 짓이세요. "
" 나? 내가 뭘. "
" 이 더운 날에, 어?
매니저도 없으셔서 제가 픽업해드려.
그건 그렇다고 쳐, 대체 왜 사전인터뷰는 저랑 하는데요?"
" ... "
본인같지 않게 잔뜩 굳어진 얼굴에 화를 낸 내가 더 당황했다.
하..
길게 이은 한숨뒤로 그는 지금껏 쓰고있던 마스크를 벗어 제 주머니 안에 집어넣었다.
둘 사이에 흐르는 무거운 정적이 점점 길어지면서 심지어는 내가 잘못했네. 하는 결론에 이르게까지 했다.
" 제가, 더워서 욱했나봐요.
제가 편해서 그러신건데.. 그래 그러실수도 있지. 그렇죠?"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너를 보며 내가 왜! 눈치를 봐야하는거냐고.
다시 이어지는 정적 속에 그가 낮게깔린 목소리로 어렵게 입을 열었다.
" 제가 계속 생각을 해봤는데요..
저는 아무래도.."
뭐 우리 프로그램 하차한다는 그런 헛소리를 하는건 아니겠지.
그럼 그 책임은 다 나한테 돌아갈거고, 그럼 선배들 욕은 어떻게 견디고 출연을 기다리는 팬들 욕은 또 어떻게 견디냐. 또 월급 까이는거 아니야?
아니 그럴리가 없어, 아니? 이 친구는 나를 엿먹일려고 계획까지 짜는 친구인걸?
벌써부터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생각들에 마음속이 착잡했다.
그는 나를 힐끔 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 제가 피디님을 너무.. "
" ... "
좋아하나봐요.
내 귓가에 속삭이듯 말을 던진 그는 벙쪄있는 새를 틈타 내 손에 들린 제 핸드폰을 가져가서는 저 멀리로 달아났다.
어디서 안들려요? 나 화통열리는 소리 안들려요?
" 이석민 이 미친놈아! "
발걸음을 쿵쿵대며 그에게 다가가 주먹으로 명치를 세게 쳤다.
윽, 하는 소리와 함께 그는 배를 감싸쥐고 연신 아프다는 소리만 지껄였다. 연기하기는.
누가 자기 배우 아니래? 왜이래 자꾸 진짜?
" 아, 장난이 아니라. 진짜 배가 너무..
어릴 때 이쪽에 수술을 해서-."
" 네? 그걸 왜 지금말해요. 괜찮아요? "
" 그 쪽이 안물어봤으니까, 얘기를 안하죠.. "
하긴, 처음 만났을 때, 안녕하세요, 배에 수술한 사람입니다. 하진 않으니까.
계속 제 배를 쥐고 허리도 채 못펴는 그를 보며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땅바닥에 쪼그려 앉아 그의 팔목을 잡고 미안하다는 말만 열번은 했던 것 같다.
" 아 진짜, 죄송해요. "
" 애기 미안하면.. 그렇다면,
뽀뽀나 할까?"
그는 내 마지막 미안하다는 말에 언제 아팠냐는 듯 나를 따라 같이 쪼그려 앉으며 내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 사람이 진짜.
손바닥으로 그 얼굴을 밀어내고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있는 그의 등을 무릎으로 찍어버렸다.
인터뷰 끝나면 너랑 내 연도 끝이다.
속으로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그와 함께 카페에 들어섰다.
" 인터뷰 시작할게요. "
선배들이 카운터에 맡긴 카메라를 대충 설치하고 자리에 앉아 인터뷰가 시작함을 알리자마자 그의 장난끼는 원래부터 없었다는 듯 싹 사라졌다.
" 저희 프로그램이 어떤 프로그램인지 알고계시죠? "
" 네, 알고있죠. "
" 그렇다면 저희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신 계기가 어떻게 되시나요? "
" 최근에 드라마와 영화를 바쁜 스켸줄 속에 촬영하면서 여유가 많이 없었어요.
그 전까지만 해도 여행을 많이 했었거든요, 국내든 해외든. "
그는 여유로운 웃음을 인터뷰 내내 입가에 띄고서는 대본이라도 외운 듯 프로다운 인터뷰를 보여주었다.
좀, 멋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카메라가 아닌 내 눈을 보고 대답했다. 다른때같았으면 속으로 뭘 봐. 하고 그를 씹었을 텐데 오늘따라 좋을건 또 뭐람.
그의 대답이 끝난지도 모르고 나는 그의 눈에 한참을 빠져있었다.
피디님, 그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려 그의 눈을 다시 마주하자 그는 눈썹을 움직이며 입꼬리를 당겨 웃어보였다.
별게 다 설레네. 연애 안한지 오래되긴 했나보다.
인터뷰가 끝나고 카메라를 정리해 가방에 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먹은 몫까지 트레이에 담아 카운터에 가져다 놓은 그는 내게 손을 건넸다.
뭐에요? 그의 웃음에 괜히 다시 경계심이 생겨 손을 뒤로 숨기고 묻자 그는 부드럽게 웃어보였다.
" 아직은 공적인 자리잖아요.
원래 인터뷰 끝나고 악수하고 끝내지 않나? "
아아.
괜히 민망해보이는 그의 손을 붙잡고 사람 좋게 웃어보였다.
바스락, 하는 비닐소리와 함께 내 손에 닿는 이 비닐의 촉감은 분명 사람피부의 촉감이 아닌데 말이지.
웃음을 참는 듯 그는 큭큭 웃어댔다. 손바닥을 열어 확인한 것은 그가 아까 먹은 빨대를 싸고있던 비닐이었다.
...
내 손바닥만 멍하니 보고있는 나를 보면서 그는 내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귀에 꽂아주었다.
" 으이구, 선물인 줄 알아쪄요? "
설레긴 무슨, 아까 인터뷰 끝나고 연끊기로 한거나 지켜야지.
집가는 길에 쓰레기 밟고 미끄러져서 전치 2주 나왔으면.
하고 생각하는 찰나 그가 내 손을 다시 잡아왔다.
" 왜이래 정말? "
" 나랑 연애하자. "
" 혹시 하루라도 그 말 안하면 입에 가시가 돋으시는지. "
맞아요. 하며 눈썹을 올리고 능글맞게 웃던 그는 갑자기 내 손을 놓고 나를 다시 자리에 앉혔다.
나 근데 요즘 정말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게 있는데,
" 우리, 애는 몇 명 낳을까? "
" ... "
정말 맞는말만 골라서한다.
아, 물론 쳐맞는 말.
:) 암호닉 :)
[규애]
[꽥꽥]
[겸디]
[영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