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e Boy!
: Happy Birthday 남편!
결혼을 하고 처음 맞는 정국이의 생일이었다. 뭐든 '처음'은 그 의미 이상의 힘을 가져서 그런지, 이번 그의 생일만큼은 특별하게 챙겨주고 싶었다. 내 '남편'으로의 첫 생일이니.
**
정국이는 배게에 제 얼굴을 푹 묻고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나는 그런 정국이의 눈 앞에서 손을 흔들어 보였다. 조금의 미동도 없는 아이였다. 나는 혹시나 그가 깰까, 조심스럽게 침대를 벗어났다.
잠을 자는 시간이 불규칙하고 밥 욕심도 별로 없는 나 때문에, 정국이는 결혼한 뒤로 아침 먹는 습관을 본의 아니게 없앴다. 그게 마음 한 켠으로 신경도 쓰이면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미안했는데... 그래도 오늘 하루만큼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맛있는 아침을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전 날 미리 장도 다 봐뒀는데.
문제는 가까운 곳에 있었다.
...나 이런거 못 만지는데.
비록 죽은 상태이긴 했지만, 뿌연 눈으로 나를 보는 것만 같은 물고기들이었다. 그 옆에는 밤새 핏기를 뺀다고 뺀 고기. 그리고 그 옆에는, 밤 사이 몸을 많이 키운 미역이 그릇 밖을 벗어나 있었다. 세상에...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미역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째 처음부터 느낌이 별로인데. 나는 미역국의 레시피대로 차근차근 재료를 손질하고 요리를 시작했다. 물론 엄마의 전화 찬스를 여러 번 쓰긴 했지만. 고기를 다 볶고 나서, 그릇을 탈출한 미역들을 도마 위로 올렸다. 너무 기니까, 한... 두 번? 자르면 되려나. 나는 아무렇게나 올린 미역 위로 칼을 올렸다. 지나치게 긴 미역에 손이 가려졌지만, 나름 조심해서 미역을 썰었는데.
...아.
피난다.
날카로운 느낌이 들어 황습히 손을 살피니, 제법 깊게 베인 건지 피가 흘렀다. 아파... 나는 서랍 어딘가에 넣어둔 응급상자를 찾으려, 거실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안방 문이 열렸다. 갑작스레 열린 문에 나는 나도 모르게 손을 등 뒤로 감추고, 그를 바라봤다. 정국이는 아직 잠이 다 가시지 않았는지, 제 눈을 비비며 내게 물었다. '뭐해?' 나는 생각보다 일찍 일어난 정국이에 당황하며, 더 자 - 하고 답했는데. 그는 더 잘 생각이 없는지, 제 두 팔을 벌리며 내게 다가왔다.
"없어서 깼잖아."
그는 나를 제 품에 안으며, 내 뒤통수를 제 손으로 쓸어내렸다. 나는 여전히 흐르는 피 때문에 그를 안아주지 못했다. ...조금만 더 자. 정국아.
"주말이잖아. 평일 내내 바빴는데, 좀 더 자!"
"...뭐해?"
그는 내 말에 부엌을 둘러보더니, 끓고 있는 물을 보고 물었다. 뭐해? 하고. 당황한 나는 그의 품을 벗어나, 부엌을 가리겠다고 두 손을 양 쪽으로 뻗었다.
"보지마! 딴 데 봐!"
그는 내 행동이 웃긴지, 말갛게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오늘 내 생일이라고 요리해?' 하고 묻는다. 나는 결국 망쳐버린 서프라이즈 파티에 고개를 푹 숙이고. 응 - 하고 답하는데. 거실에서 웃으며 나를 바라보던 그가 어느새 내 앞으로 다가왔다. 갑자기 진 그림자에 고개를 들자, 말간 웃음은 어쩌고 순식간에 표정을 굳힌 그가 내 손을 잡아챘다. 그는 피가 흐르는 내 손을 보고는 짐짓 인상을 구기며, 제 손으로 감싸왔다.
"피나잖아."
나는 그의 손에 잡힌 내 손을 빼내려하며 답했다. 얼마 안 다쳤어. 하지만 그는 내 손을 놓을 생각이 없는지, 식탁 앞의 의자에 나를 끌고갔다.
"앉아 있어. 약 가져올게."
"...내가 해도 되는ㄷ"
"나 되게 속상해. 지금."
"..."
"예쁜 손에 이게 뭐야."
평소에 내 손이 못생겼다고, 그렇게 놀리더니. 이럴때는 또 예쁘대. 나는 내 앞에 무릎을 굽혀 나와 시선을 맞추는 그를 바라봤다. 그는 피가 흐르는 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 잠자리에 아무렇게나 삐죽거리는 머리가 꽤 귀여웠다. ...대형견 같아. 나는 다치지 않은 손으로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그는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즐거워?"
"...귀여워."
그는 제가 귀엽다는 내 말에 더욱 인상을 구기며 물었다. '웃음이 나와?'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는 한숨을 내쉬고는 거실로 향해, 응급상자를 가지고 왔다. 그리고는 '아파도 참아' 하고는 소독약을 발랐다. 나는 순간 따끔한 기운에 으 - 하고, 낮은 신음을 흘렸다. 그는 내 소리에 동시에 고개를 들고는 제 행동을 멈췄다.
"...많이 아파?"
소독약 바르는 게, 아파봤자 얼마나 아프다고. 나는 '아니'라고 답하려다, 순간 그를 놀리고 싶은 마음에 한껏 아픈 척을 했다. 그러자 그는 안절부절하며 약과 나를 번갈아 살폈다.
"...그래도 해야 되는데..."
나는 그의 다른 한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럼 이 손 잡고 있을래. 그러자 그는 흔쾌히 그러라고 답한 뒤, 다시 약을 발랐다. 나는 그가 약을 바르는 동안, 계속해서 장난스레 그의 손바닥과 손등에 입을 맞췄다. 정국이는 그때마다 그런 내게, '집중 잘 안 되잖아. 잠깐만 가만히 있자. 응?'하고 나를 달랬다. 하지만 나는 그의 다정한 말투에도, 짐짓 웃음을 삼키며 답했다.
"아파서 그래..."
"..."
"아픈데 뽀뽀도 못하게 해..."
"...미안해. 해."
"..."
"하고 싶은 거 다 해."
자기가 미안할 상황이 아님에도, 조금만 토라진 척을 하니 내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는 정국이었다. ...아. 심장아파. 너무 귀여워. 진짜.
*
정성껏 치료를 마친 그가 나를 거실 소파로 데려갔다. 그리고는 내 옆에 앉으며 말했다.
"요리는 내가 할게. 앉아 있어."
그래도 본인 생일 상을 스스로 챙기게는 할 수 없어서, 완강하게 싫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는 내 어깨 위로 제 얼굴을 기대며 애교스럽게 물었다.
"내가 하고 싶어."
"...안돼."
"하게 해줘."
"...그럼 같이 해."
혼자 하게 둘 수는 없어서 같이 하자고 답하니, 그도 더 이상은 안 될거라는 걸 알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정국이는 내가 다친 손가락 위의 밴드가 단단히 잘 붙었는지 확인한 뒤, 손가락에 짧게 입 맞추고 떨어졌다.
"잘하자. 손가락아."
"푸흐. 뭐야!"
"알아서, 잘 하자. 알았지?"
그는 장난스레 손가락에게 알아서 잘하자고 말한 뒤, 부엌으로 향했다. 나 역시 그의 뒤를 따랐다.
*
결국은 혼자 대부분의 요리를 한 정국이었다. 내가 움직이기만 하면, 하지 말라고 나를 도로 앉혀 놓고 본인이 전부 다. 금방 해냈다. 새삼 나보다 요리를 잘하는 정국이를 지켜 보고 있으니 시무룩해지는 기분에 고개를 떨궜다. 그러자 정국이는 내 눈치를 보며, '오늘따라 요리가 왜 이렇게 잘 되지?' , '우리 탄소가 재료를 너무 잘 준비해둬서 그런가?' , '예쁜 사람이 보고 있으니까, 예쁘게 되네. 요리가.' 하며 한껏 나를 칭찬했다. 치... 뭐야. 요리는 본인이 다하면서.
우여곡절의 아침식사를 마치고 뒷정리까지 한 정국이가, 거실로 나왔다. 나는 소파에 앉아, 그에게 '수고했어' 하고 고마움을 전했다. 그러자 정국이는 소파로 와서는 내 허벅지를 베개 삼아 누웠다. 정국이는 뭐가 그리 좋은지, 나와 시선을 맞추고는 계속해서 웃었다. 순간 그의 눈빛이 부끄러워진 나는 애써 시선을 돌렸는데, 그는 그럴때마다 허벅지에 올려진 제 얼굴을 이리저리 옮기며 나를 따라왔다.
"...왜!"
정국이는 내 물음에도 아니라며, 제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아닌 게 아니였다.
...지금 해야 되나.
너무 놀라서, 싫어하면 어쩌지.
사실 결혼 후에도, 우리는 호칭에 크게 변화를 두지 않았다. 여보, 남편. 뭐 이런 건, 너무 닭살이 돋아서. 그런데 우연히 함께 보던 드라마 속 부부의 호칭을 부러워하는 정국이를 보게 됐다. 아마도 그의 로망 중 하나였나보다. 겉으로는 내색 안해도, 해주면 좋아할 듯 싶어서 나름 집에서 혼자 연습도 많이 했는데. 또 막상 하려니까...
나는 여전히 나를 온전히 담고 있는 정국이의 눈을 마주했다. 그는 내 다친 손가락을 제 손으로 감싼 채, 나를 올려봤다. '아직도 아파?' 하며. 나는 지금이 아니면 못하겠다 - 싶어서, 그에게 향해 있던 시선을 옮기며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이제 안 아파."
"다행이ㄷ"
"남편이 치료해줘서 그런가봐."
내 마지막 말을 끝으로 답이 없는 아이였다. 결국 부끄러움에 못 이긴 내가 자리를 벗어나, 안방으로 향했다. 뭘 한거야... 스스로의 행동을 후회하고 있을 무렵, 그의 웃음소리가 가까워졌다. 나는 이불을 머리 끝까지 올린 채로, 그가 곁에 왔다는 사실을 모른 척 했다. 그러자 정국이는 나를 놀릴 속셈인지, '남편 왔는데. 부인은 어딨지?' 하며 내가 없는 쪽 이불만 들춘다. ...창피해. 진짜.
그리고 머지않아 내 이불을 들추고는, 저도 그 옆에 눕는다.
"예쁜 짓하고 도망을 왜 가."
"...몰라. 창피해."
"괜찮아. 다른 사람들은 못 들었잖아. 나만 들었어."
"...그래도!"
"남편 소리를 남편이 안 들으면 누가 들어."
나는 그의 단단한 가슴팍에 더욱 고개를 파묻었다. 자꾸 남편 남편 하지마. 얼굴 빨개져... 하지만 내 속을 알 리 없는 그는, 남편이라는 소리가 꽤나 마음에 들었는지 자꾸만 웃음을 흘렸다. 나는 그의 웃음 소리에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그러자 그는 내 얼굴 곳곳에 짧게 입을 맞추고는 말했다.
"연습 때보다 훨씬 잘했어요. 부인."
연습 때보다 잘 했다니. 다행이ㄴ... 잠깐. 쟤가 어떻게 알아? 나는 그의 칭찬에 웃다가, 무슨 소리냐는 듯 그를 바라봤다. 그러자 그는 그제서야 자신의 말 실수를 알아챘는지, 나를 더욱 제 품에 강하게 끌어안았다.
"내가 들으려고 들은 게 아니구..."
"...놔라."
"아니! 저번에 퇴근하고 왔는데, 누나가 막 혼자 연습하길래..."
"...나 이제 안해."
"뭘?"
"...몰라아. 나 너무 창피해..."
"그래서 숨었잖아. 지금."
"...뭐래."
"내가 숨겨줬잖아."
그는 자신이 숨겨줬다며, 더욱 단단히 나를 안아줬다. ...하여튼 못 말려. 나는 잔뜩 붉어진 얼굴로, 정국이를 바라봤다. 아무리 창피해도 할 말은 해야지.
"정국아."
"왜?"
"...남편."
"아 진짜 너무 좋다."
"...대답만 해!"
"한 번만 더 불러줘. 응?"
"...남편"
"네. 남편입니다."
"생일 축하해."
그는 내 말을 끝으로 내 입술에 짧게 입을 맞췄다. 그리고는 내 귓가에 속삭였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목소리로,
고마워.
희망이 되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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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겨울소녀입니다.
정국이의 생일인만큼, 뮤보 커플로 왔어요 :)
소중한 아이 덕분에 소중해진 날이에요.
다들 더 많이, 행복한 하루 되세요.
생일 축하해.
우리의 사랑! 우리의 자랑!
정국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