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한빈이 괴롭히는게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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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시간 남짓, 대기만 주어지는 상황에 한빈이 작게 하품했다. 김한빈아. 내 말 들려? 심심해. 귀에 깊숙히 박아놓은 인이어를 검지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리며 무료하게 지시를 기다리던 한빈이 뜬금없이 들려오는 지원의 음성에 작게 인상을 쓰며 짜증스럽게 인이어를 빼내었다. 현장에서까지 설마 장난을 칠 줄이야. 못 말린다는 듯 한숨을 쉬며 한 손으로 제 얼굴을 덮고 고개를 절레거리던 한빈이 주변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리에 숨소리를 멈추고 등 뒤의 벽에 밀착했다. 어둠속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온 몸의 털이 곤두서고 모든 감각이 민감해졌다. 아, 인이어. 제 손에 쥔 인이어를 다시 조심스럽게 귀에 가져가려 팔을 든 한빈이 순간적으로 제 목덜이를 잡아 채 바닥으로 강하게 짓누르는 압력에 그대로 바닥에 엎어져버렸다.
"윽, 무슨…!"
"……."
급하게 바지 뒷 주머니에 고정된 권총을 꺼내드려 했지만 어찌 알았는지 진즉에 총을 빼내어 저 끝까지 밀어 던져버린 상대에 한빈이 발버둥쳤다. 수십번은 더 나와보았던 현장이건만, 실제 마약거래 현장처럼 위험한 곳은 처음이였기에 너무 긴장한 탓이였는지 그토록 익혀왔던 호신술따위도 몸이 굳어져 자꾸 허공만을 맴돌았다. 아, 김지원! 위험한 상황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이런 상황을 제공한 지원이 괜시래 미워져 다른 생각이 났다.
이제 난 죽는건가? 마약거래면 조폭이나 야쿠자가 개입하는거잖아.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는 없는데. 엎드린 제 등 뒤로 올라타듯 해 두 손목을 뒤로 묶듯 잡으며 총과 함께 넣어두었던 수갑으로 자신의 손목을 결박하는 상대에 한빈이 체념한듯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제 볼을 짓누르듯 대며 가만히 눈을 감고 반항하던 것을 멈추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상대의 억압도 멈추어버렸다. 뭐지? 한동안 아무런 소식이 없는 상대에 이상함을 느낀 한빈이 몸을 비틀어 어느정도 어둠에 익은 눈으로 상대를 쳐다보자 상대가 씩 웃었다.
"안녕. 친구야?"
"……개새끼야."
"이렇게 쉽게 포기하면 어떡해. 진짜 죽으려고 했어?"
상대가 지원이였다는 것을 알게된 한빈이 그제서야 맥이 풀린듯 하다 지원의 인사에 어금니를 꽉 깨물고는 있는대로 지원을 노려보았다. 평소 장난기가 심하던 지원이긴 했지만 어떻게 이 위험한 곳에서까지 상식을 벗어나는 행동인지. 이젠 정말 화날법도 했다. 등 뒤에서 순순히 일어나 자신을 일으켜세워주려는 지원의 손을 무시하고 몸을 돌려 무릎으로 겨우 자리에서 일어난 한빈이 화를 참으며 욱씬거리는 아픔에 인상을 작게 찌푸렸다.
"너야말로 진짜 죽으려고 환장했지. 갑자기 여기로 오면 어떡해?"
"이번거 허탕이라는데? 너 데리고 집에가서 쉬래."
"허, 그래? 됐고. 그럼 열쇠나 줘."
몇시간동안을 가만히 서서 기다렸는데 허탕이라니. 선배들이 가끔 밑밥에 낚여 허탕을 치고 돌아와 욕하는 것을 신입시절 번번히 본 적이 있었는데 그게 다시 돌고 돌 줄이야. 순식간에 밀려오는 피로와 지원에 대한 스트레스때문에 허탈하다는 듯 숨을 한빈이 한숨을 내뱉었다. 없는데? 권총과 수갑을 함께 뺄때 열쇠도 같이 빠져버렸다는 사실을 아는지 눈썹을 짧게 들썩인 지원이 제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액정에서 나오는 빛을 따라가 한빈의 권총을 주워들어 다시 한빈의 뒷주머니에 꽂아넣어주었다.
"왜 없어, 그게."
"떨어트렸는데 작아서 잘 안 보여. 내일 다시와서 찾아야돼."
막무가내인 지원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습관적으로 짚으려던 한빈이 짤랑거리는 소리를 내는 수갑에 주먹을 꾹 쥐었다. 피곤해. 다른 생각을 잡아먹은 피로에 평소였다면 표정을 굳히고 현장을 떠나서라도 동료한테 이렇게 심한 장난을 치면 어쩌냐, 혹 진짜로 다치기라도 했으면 어쩔 것이냐고 지원을 혼냈을 한빈이지만 아무말도 않고 그저 가만히 서 있기만 하자 지원이 그런 한빈을 눈치 챈 것인지 한빈의 어깨에 제 팔을 두르고는 슬쩍 웃으며 창고의 출구로 향했다. 알았어, 알았어.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