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 영화 '건축 학개론' 中
'양
아
치
의
순
정'
03
사랑쪽지
"야, 짝꿍."
똑똑, 책상을 두어 번 쳐 오는 소리에 그제서야 정신을 바로 잡고서 고개를 돌리니 한 손으로 머리를 받친 체 몸을 살짝 내 쪽으로 돌린 권순영과 눈이 마주쳤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냐. 벙찐 체 자신을 바라보는 여주의 표정이 퍽이나 보기 좋았는지 순영은 바람 빠지듯 웃음을 지으며 여주를 눈에 담았다.
"…어, 근데 왜?"
"너 공부 잘하냐?"
그걸 누가 자기 입으로 말하냐. 하마터면 주먹이 올라갈 뻔 했지만 초인적인 힘으로 주먹 대신 입꼬리를 올린 여주가 작게 고개를 살랑살랑 저었다. 못해. 못한다는 여주의 말에 별 대수롭지 않다는듯 고개를 설렁설렁 끄덕인 순영이 말했다. 그래? 그래도 나보단 잘하겠지. …뭐, 어쩌라는거지. 무슨 말이냐는 듯 눈을 꿈뻑이며 저를 바라보는 여주에 순영이 방금과는 다르게 당황한 체 뒷머리를 긁적였다. 어… 그게 그러니까. 순영이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김민규 개새끼.
"야 너 점심시간에 뭔 일쳤냐?"
담배냄새와 함께한 민규의 등장에 책상에 길게 누워있던 순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손사레를 쳤다. 뭔 개소리야 그건.
"아니 애들이 뭐, 권순영 복도에서 지랄한다고 해서. 아님 말고."
개새끼들이 만만한게 나지. 쯧, 볼품 없다는듯 짧게 혀를 찬 순영이 불과 20분 밖에 안 된 점심시간의 악몽(이하 소세지)이 머리속에서 떠나질 않자 죽겠다는 듯 "…아" 하는 탄식을 내지르며 얼굴을 쓸어내기 일쑤였다.
"뭐냐. 뭔 일 있었냐 진짜?"
"…어 있었지. 일쳤지, …쳤어."
"뭐야 누구랑 싸웠는데."
그게 중요한게 아니야. 갑자기 몸을 일으키는 순영에 깜짝 놀란 민규가 아씨, 하며 손바닥으로 가슴을 쓸었다. 민규야 나 맘 잡고 공부나 할까.
"뭐래 미쳤냐 진짜?"
"누가 꿈도 희망도 미래도 없는 새끼를 좋아하겠어. 그치?"
"아 뭐야, 김여주 때문에 그래?"
대수롭지도 않게 여주의 이름 세 글자를 꺼내는 민규에 순영이 작게 민규를 흘겼다. 얼마나 내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인데. 내 일상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절규하듯 말하는 순영에 민규는 그저 한심한 눈으로 순영의 정수리를 바라볼 뿐이였다. …미친놈.
"그래서, 진짜 공부라도 하게?"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럼 같이 하자 그래."
"…뭐?"
같이 하자고 말하라고. 태연하게 인중을 긁적이며 말하는 민규에 순영은 새삼 민규의 연애관에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저러니까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빈지노라고 불리지, …아쿠아맨. 하지만 그때 순영은 몰랐다. 정말 민규의 말을 자신이 실천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뭐, 어쩌라는거지. 무슨 말이냐는 듯 눈을 꿈뻑이며 저를 바라보는 여주에 순영이 방금과는 다르게 당황한 체 뒷머리를 긁적였다. 어… 그게 그러니까. 순영이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김민규 개새끼. 당당하게 여주를 담았던 두 눈은 어디갔는지, 지금 순영의 눈은 이리저리 도망다니며 여주의 시선을 피하게 급급했다.
"ㄴ,나 공부 좀 가르쳐 줘!"
"……" 경악에 가득 찬 여주가 살며시 올린 두 손으로 떡 벌어진 자신의 입을 살며시 덮었다. 충격에 빠진건 여주 혼자만이 아니였다. 순식간에 조용해진 교실의 아이들은 여주와 같이 입을 가린체 순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공부는 내가 가르쳐 줄게 순영아. 뒤로 나가."
덤으로 자신에게 분필을 던지는 선생님까지.
픽- 참아보려 했지만 자꾸만 웃음이 새어 나갔다. 뒤에서 벌로 의자를 들고 서 있는 그 몸이 신경쓰이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였다. 'ㄴ,나 공부 좀 가르쳐줘!' 사실 여주는 공부는 왠만큼 하는 편이다. 요즘 들어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드는 권순영에 대한 방어가 공부를 못한다는 핑계로 나가버린것 뿐이지. 자신에게 잔뜩 긴장한 체 물어보는 권순영은 모습은 뭐 나쁘지 않을 만큼, 아 솔직히 말하면 귀여웠다. …어떡하지. 잘근잘근, 입술을 깨물며 수업 대신 고민에 빠진 여주가 이내 결심 했는지 펼치고 있는 수학책 모퉁이를 찢었다.
"나 공부 좀 가르쳐 줘! 순영아!"
시발 진짜 뒤질래? 저린 팔을 털며 교무실을 빠져나오자마자 언제 쫓아왔는지 민규가 달라 붙으며 순영의 말을 따라했다. 잔뜩 성을 내며 자신을 밀치는 순영의 태도에 민규가 복도를 구르며 자지러졌다. 진짜 개 병신새끼. 그걸 또 하란다고 하냐? 저번 빵부터 하고는.
"꺼져. 이제 내가 니 말을 듣기나 하나봐라."
"어여, 순영짱 미안하다능!"
끝까지 제 성질을 건드리며 코너를 돌아 사라진 민규의 모습에 순영은 애꿎은 벽을 또 발로 차기 시작했다. 김민규! 김민규! 김민규우우! 한참의 포효끝에 아이들이 다 빠져나간 교실로 너덜너덜, 돌아 온 순영이 든 것도 없는 너덜너덜한 제 가방을 챙겨 나가려 하는 순간, 제 책상위에 놓여진 작은 쪽지에 관심을 보였다. …뭐지. 주섬주섬, 작은 쪽지를 펼친 순영의 눈이 잠시 후 놀라울 정도로 커지더니 포효가 아닌 환호성을 지르며 아무도 없는 교실을 5분간 뛰어 다녔다.
[7시까지 화도 도서관으로 와 -니 짝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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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칼 연재. 화도 도서관은 마석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