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진,유승우-사랑이 뭔데
"여태까지 내가 놓친 시간들, 하나씩 다 메꿀꺼야."
그토록 한껏 숨이 차게 해놓고, 나만의 어색한 시간 속에 홀로 날아갈듯한 표정을 지어보이던 오빠는 집에 들어가서까지도 날 놓아줄 생각을 않았다. 내가 씻고 침대에 누울때까지 쉬지않고 문자를 보내오던 오빠는, 내 답장을 받자마자 전화를 걸어왔다. 어수룩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자마자 불쑥 들려오는 오빠의 한마디에 금새 달아오르는 내 볼이란. 자꾸만 더워지는 듯한 기분에 발을 쭉 뻗어 선풍기를 켜려다, 들려오는 오빠의 말에 당황해 발을 헛디뎌 이내 침대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근데 요즘 왜 여주는 오빠한테 존댓말을 쓸까, 오빠 속상하게."
말끝마다 베어나오는 아쉬움에 전화기 너머로 오빠의 축 쳐진 눈매가 아른거렸다. 지금도 오빠는 그렇게 억울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고있을까, 하는 생각에 웃음이 입술을 비집고 나왔다. 그러자 지수오빠의 억울한 음성이 귓가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뭐야, 여주 왜 웃어. 오빠 지금 심각하단 말이야..." 마치 곧 울것만 같은 음성으로 투덜대는 오빠에게 "존댓말이 더 편해요. 다시 반말 쓰기엔 아직 어색해서..." 내 말에 오빠는 그랬구나... 하고 조용히 말하더니 이내 정말 억울하다는 듯, "생각해보니까 여주 너 보건실에서는 반말 썼으면서!" 하고 항의했다. 그말에 나도 덩달아 억울해져 울상을 지으며, "그건 그때 너무 서운해서 홧김에 반말이 나와버린거고..., 어쨌거나 지금은 어색하단 말이에요!" 하고 호소했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간 감정실린 어투에 놀라 가만히 얼굴을 붉힌 채 누워있으면, 오빠는 잠시동안 작게 웃음을 터트리더니 말했다. "좋다 이런거. 예전 여주 모습 보는거 같고, 설레네." 어쩔꺼야! 귀여운 투정을 부리는 오빠에 얼굴이 점점 더 달아오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로. "어, 우리 여주 말 안하고 뭐해. 지금 너 얼굴 빨개졌지." 단언하며 묻는 오빠의 말에, 아니에요! 하며 손을 내저어보이다 이내 목을 가다듬고선 차분히 말했다. "아닌데." 그에 오빠는, "난 지금 죽겠다, 우리 여주가 자꾸만 설레게 해서." 하고 뻔뻔한 대답을 내보였다. 그 이후로도 계속되는 오빠와의 말장난에, 아까 전 내 모습을 본건지 휙 뒤돌아 제 등을 보이며 걸음을 재촉하던 찬의 모습이 더이상 눈에 아른거리지 않았다.
그 모습이, 기억나지 않았다.
새벽까지 계속된 전화에 아침에 겨우 일어나 눈을 천천히 비비고 있으면, 입에 치약거품을 잔뜩 머금은 이석민이 우물거리며 말했다. "야 아까 홍지수 너랑 학교 같이 가겠다고 우리집앞으로 온댔어. 빨리 씻어라 쫌." 말을 마치고 입에서 칫솔을 꺼낸 이석민이 내게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쪽팔리게 그러고 나갈껀 아니지? 그말에 짜증이 솟구쳐 알았다며 이석민을 밀치고 화장실로 들어가 칫솔이 닳도록 이빨을 세게 닦았다. 그리고 찬물로 세수를 할 때 쯤, 머릿속에 잊고있던 한사람이 떠올랐다. 항상 녀석과 등교를 했었는데. 가뜩이나 어제 일 때문에 얼굴을 마주하기 두려운데, 오빠와 같이 등교를 한다는 말은 대체 어떻게 전해야 할지 막막했다. 황급히 나오느라 수건으로 닦지도 못해 물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을 하고, 찬에게 연락을 하려 핸드폰을 집어들면, 찬에게서 이미 문자가 와있었다.
[나 권순영이랑 먼저 간다. 오늘 학교 빠지면 죽어 김여주.]
평소와 다를바 없는 찬의 말투에 오히려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대체 내가 어떤 얼굴로 그 애를 마주해야할지, 머릿속으로는 수억개의 생각들이 스쳤다. 그렇게 한손에 핸드폰을 쥔 채로 멍하니 앉아있으면, 이미 교복을 다 갖춰입은 채 물을 들이키던 이석민이 아오, 하며 소리를 지르더니 화장실에서 수건을 낚아채와 내 얼굴을 벅벅 닦아냈다. "빨리 좀 준비해!" 이석민의 성화에 겨우 준비를 마치고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 지수오빠가 얼굴에 미소를 띄운 채 서있었다. 단정한 교복차림에 가방을 멘 오빠의 모습이 오늘따라 왜 더 내 마음을 쿡쿡 찌르는지, 왠지 간지러운 기분이 들었다. "여주야, 잘잤어?" 생긋 웃으며 묻는 오빠에게 아무말 없이 땅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면 오빠는 울상을 지어보였다. "난 어제 온종일 여주 때문에 잠도 못잤는데." 내게 어리광을 피우듯 말하는 오빠의 모습에, 자꾸만 쿵쿵대는 내 심장소리가 커졌다. 이러다가 정말, 마음이 펑펑 터지며 꽃잎이라도 휘날리는건 아닐까. 그 생각에 땅만 보며 걸으면, 오빠가 걸음을 빨리해 내 앞에 서더니 이내 제 신발코만 뚫어져라 보고있는 내 고개를 들어올렸다. 갑자기 들어올려진 고개에 어쩔줄 몰라 시선을 돌리려하면, 자꾸만 내 시선을 제게 맞춘 오빠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제야 좀 이쁜 얼굴이 제대로 보이네."
예나 지금이나, 오빠를 보면 설레는 마음은 똑같다. 아니, 오히려 더한 것 같다.
회장님이 보고계셔!
be mine!
08
이제 정말 들어가야 돼. 마지막 종소리를 들으며, 내 자신에게 되뇌었다. 마침내 훅, 하며 들이킨 숨과 함께 교실문을 열면, 제자리에 앉은 채 맞은편의 권순영과 무얼 열심히 이야기하는 찬이 보였다. 자꾸만 후들거리는 다리를 애써 진정시키며 자리에 가방을 놓고 앉으면 찬이 내게 손을 흔들어보였다. "김여주 늦다, 늦어." 조금만 더 늦었으면 너 청소야. 제 집게손가락을 흔들어보이며 말하는 찬은, 이전과 다를바없이 장난스럽고 다정한 그 모습 그대로였다. 지금 이 상황보다 더 극한 상황을 그렸던 나로써는, 오히려 지금 찬의 모습이 더 불편하게 느껴졌다. "뭐야, 왜 말이 없어." 멍하니 앞만 쳐다보던 내 눈앞으로 제 손을 흔들어보이던 찬은 여전히 말이 없는 날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권순영과 말을 이어나갔다. 말없이 앉아있는 나와, 평소보다 더 밝은 분위기의 이찬. 조용한 시선으로 우릴 응시하던 권순영이 제 두손을 들어올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숨막혀서 여기 못있겠다. 둘이 얘기 좀 해." 그 말과 함께 제 교실로 가버린 순영의 뒤로, 정적만 흘렀다. "어우 쟤 왜저래. 얘기할 것도 없는데." 그치 여주야. 과장된 몸짓으로 제 팔을 쓸며 말하는 찬에게 얼굴빛을 흐리며 대답했다. "얘기할 거 많지, 왜 없어." 그 말과 함께 찬의 팔을 잡아끌며 학교 뒷 쓰레기장으로 향해 찬을 마주봤다. 끌려오는 내내 귀찮다며 칭얼대던 찬은 이내 말없이 벽에 비스듬히 기댄 채 눈을 피했다. "여기까지 끌고 올건 또 뭐야." 찬의 말에 한참을 망설이다, 바싹 마른 입술로 어제... 하며 말을 꺼내자, 갑작스레 찬이 입을 열며 말을 끊었다. "여주 네가 그렇게 나오면, 나만 더 비참해지지. 내가 얼마나 더 불쌍해보여야 해, 네 앞에서." 자꾸만 피하던 시선을 끝내 맞추며 찬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 말을 천천히 곱씹으면, 찬이 다시 입을 열었다.
"여주야. 내가 널 좋아한다고 말한건, 그냥 정말 내가 널 좋아했기 때문이야. 내가 말하고 싶었던건 내가 널 좋아한다는거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그 말을 하면서 내가 여주 너에게 무언갈 바란 것도 아니고, 난 그저 내 마음을 전한 것 뿐이야."
담담하게 말을 마친 찬이 허리를 굽혀 내게 눈을 맞추었다. "알았지, 김여주? 그러니까 미안하다거나 그런 쓸데없는 말 할 생각도 하지마." 속삭이듯, 그러나 단호하게 말한 찬이 이내 진지했던 표정을 풀고 다시 웃음을 흘리며 내 등을 밀었다. 너 때문에 수업 늦잖아. 또 벌점 준다 하면 너 다 받아라 김여주. 심통난 표정을 지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찬에게 웃으며 맞대꾸를 해주고 나서야 마음에 온종일 얹혀있었던 쇠덩어리가 들어올려졌다.
녀석과 나의 모든 시선속에서, 줄곧 내가 너무 무심한 사람이었던 것이었다.
체육시간에 빌렸던 공을 돌려주고 온다며 찬이 가버리는 탓에 혼자 앉아있기도 무안해 잠이나 잘까, 하는 생각으로 책상에 고개를 묻으려 하는 그 찰나에 교실 문이 열리며 권순영이 휘적휘적 걸어들어왔다. 교실 뒷편을 살피다 이내 혼자 앉아있는 날 발견한 순영은, 내게 손을 흔들며 비어있는 찬의 자리에 털썩 앉았다. "아까 얘긴 잘 했어?" 순영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면, 그는 웃음을 지으며 다행이다, 하고 의자를 쭈욱 밀어 다리를 뻗은 채 자세를 편하게 고쳐앉았다. "지수형, 완전 인기많더라. 6교시에 선거유세 들어오면 너네 반 난리나려나." 이제 지수형도 왕자님 되는거 아니야? 웃으며 장난치는 순영의 말에 몸을 떠는 시늉을 해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어우, 그건 나도 감당못해." 내 말에 크게 웃음을 터트린 순영이 이내 웃음을 멈추곤 입을 열었다. "그래도, 진짜 잘 된거야. 지수형이 얼마나 뒤에서 너 챙겼는데." 순영의 말에 가만히 웃음을 짓다 조심스레 물었다. "근데.. 찬이가 너한테 뭐라고 한거 없어?" 내 물음에 순영이 잠시 말을 멈추다 대답했다. "걘 나한테 다 말했지. 너랑 예전에 있었던 일들이랑, 자기가 너 좋아하는거까지 다." 순영의 대답에 새삼스레 놀랐다. 둘이 친한건 알았지만 중학생 때 일까지 다 말할 줄이야. 나름 녀석과 내 트라우마라고 생각했던 시절이라, 순영의 말은 내게 일종의 충격섞인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다 이내 찬의 가방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날 느꼈는지, 순영이 입을 열었다. "이찬한테 미안해하는거 같던데, 그럴 필요없어. 찬이가 이기적인거지 뭐." 순영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왜 걔가 이기적이야? 내 물음에 잠시 인상을 찌푸리던 순영은 대답했다. "걔가 다 숨겨버리는 탓에 너랑 지수형이 먼 길 돌아온건데, 당연히 이찬 잘못이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하는 순영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에이, 걔가 나 좋아하는거 숨긴거 때문에 지수오빠랑 멀어진건 아니야." 내 말에 순영의 표정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일그러졌다. "아니, 내말은..," 내 말에 대답하는 순영의 말은, 교실문을 열며 뛰어들어오는 이찬 탓에 끝맺어지지 못하고 허공을 맴돌았다.
"무슨 애기하는 중이었어?"
해맑게 묻는 찬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권순영이 내게 손을 흔들었다. "다음에 보자 여주야." 그에 손을 흔들어주며 내 앞에서 다른 것 하나없을 웃음을 짓고있는 찬을 바라봤다. 녀석과 내 인연이 닿기엔, 내가 한없이 모자른 사람이었다.
분명 내가 잠에 들기 시작한건 5교시였는데. 어느새 6교시로 훌쩍 뛰어넘어, 다가온 선거유세 탓에 반의 여자아이들은 하나같이 다 제 얼굴보다 두배는 큰 거울을 붙들고 얼굴을 살피고 있었다. 그 모습에 껄끄러운 표정을 지은 채 앉아있으면, 교실 문이 드르륵 열리더니 이내 지수오빠와 오빠의 선거를 도와주는 운동원들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들어왔다. 오빠의 등장과 동시에 와아- 하며 터지는 함성소리에, 더 짜증이 나 인상을 팍 구기며 삐딱하게 팔짱을 꼈다. 그런 내 심정을 아는지, 오빠는 평소보다 두배는 더 멋져보이는 미소를 지어보이고서는 아이들에게 눈을 맞추며 인사를 했다.
"안녕, 기호 2번 홍지수라고 해."
편안하고 다정한 오빠의 어투에, 또 우레같은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두껍게 쌓이는 함성소리 너머로, 오빠가 내게 눈을 맞추곤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에 나도 웃음을 지어보이려다, 이내 얼굴을 찌푸리며 오빠에게 입모양으로 말했다. 짜.증.나. 내 입모양을 읽은건지, 걱정스러운 표정의 오빠가 덩달아 입모양으로 물었다. 왜.그.래. 그런 오빠의 말에 대답을 않은 채 턱을 괴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버렸다. 그러자 교실 앞에서는 한번의 헛기침 후에, 선거 공약을 늘어놓는 오빠의 목소리가 울렸다. 한참 후 공약을 다 읊었는지, 후로 쏟아지는 질문에 대답하던 오빠는 이내 더 질문할게 없냐며 물었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자 나가려는 듯 발걸음을 뗀 오빠는, 더 말할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아, 하는 탄성을 내뱉으며 교실 중앙으로 다시 걸음했다. "음, 솔직히 말해서, 제가 이 반에 제일 먼저 유세를 온 이유가 있어요." 오빠의 말에 다들 웅성거리다, 아까와는 달리 존댓말을 쓰며 말하는 지수오빠의 모습에 아이들은 말 없이 지수오빠의 다음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사실, 제가 회장에 뽑히지 않더라도 꼭 표를 받고싶은 친구가 여기 있거든요." 장난스레 웃으며 말하는 지수오빠의 말에 교실 안은 온통 오~ 하는 아이들의 소리로 가득 찼다. 이내 곳곳에서 쏟아지는 누구에요! 하는 질문에 오빠가 제 뒷머리를 만지며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음, 하고 한참을 고민하는 시늉을 해보이던 오빠가 이내 망설이더니 입을 열었다.
"이 반에 김여주가 그렇게 예쁘던데."
무심한 척 그 말만을 남긴 오빠가 이내 잔뜩 붉어진 얼굴을 하며 종종걸음으로 반 밖으로 나섰다. 이미 교실 안을 채우고도 남을 함성소리 뒤로, 오빠가 목소리를 높였다. "아, 그렇다고 소문내면 안돼! 나만 알고있던 거였단 말이야." 내 위로 쌓이는 아이들의 부러운 눈길과 축하의 말에 얼굴이 붉어지다, 이내 교실 문을 열며 나가려는 오빠의 모습에 귓가에서 펑, 하는 소리가 나는 착각이 들었다. 아마 사과마냥 잔뜩 붉어졌을 내 얼굴을 보며, 예쁜 미소를 지어보인 오빠가 입모양으로 말했다.
좋 . 아. 해
많. 이
꽃봉오리 |
이 작가가 분량조절을 또.... 풍성한 한가위 되세요 꽃님덜♡ |
꽃님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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