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Same NAME
written SOW.
같은 이름을 가진 두 소녀와 그 소녀들의 비밀을 알게된 소년의 이야기.
소년은 깨달았다. 그 소녀의 비밀을 알게 된 그 순간부터,
자신은.
이미 벗어날 수 없었다는 것을.
그들과 자신은 달랐지만, 같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두 명의 사람으로 빙의할 수 있습니다."
1. 박지민
2. 김여주
1. 박지민으로 빙의할 시. 여러분은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누군지 추리하셔야 합니다.
2. 김여주로 빙의할 시, 여러분은 그냥 이 작품을 즐기실 수 있습니다. 아, 물론 범인이 궁금하긴 하시겠지만요.
박지민으로 빙의하신 분은 댓글에 추리력을 발휘하여 범인을 맞춰보세요. 범인이 꼭 누군가를 죽인 사람이거나, 정말 범죄자는 아닙니다.
그저 어떤 사건을 일으킨 '사람'을 찾는 겁니다. 자, 그럼 두 소녀 사이의 비밀을 알게된 소년의 이야기로 들어가봅시다.
※아무것도 놓치지 마세요. 작은 것 하나하나가 모두 힌트니까요.※
01.
짜증나니까 들러붙지 좀 말아줄래. 여주의 목소리가 울려퍼짐과 동시에 사람들의 시선이 여주에게로 향했다.
그 시선 사이엔 지민도 자리잡고 있었다. 또, 또 저 아이다. 조용하면서도 언제나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아이.
지민은 불쾌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제게 팔짱을 끼려했던 여자아이를 경멸스럽게 쳐다보는 여주를 가만히 응시했다.
여주와 그 여자아이의 이름은 같았다. 김여주와 한여주. 그 둘은 묘한 관계였다. 같은 이름을 지녔으나 전혀 다른 성격인 둘은
언제나 학교 내에서 소문을 끌고 다녔다. 까칠하며, 조용하고, 이성적인 김여주는 키가 작고 날카로운 외모를 지녔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녀를 작은 여주, 라고 몰래 부르기도 했다. 다른 한여주는 부드러우며, 시끄럽고, 감성적이며 키가
작은 김여주보다 10cm는 커 보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녀를 대놓고 큰 여주. 라고 불렀다.
작은여주는 예쁘장한 외모로 기숙사제인 이 학교에 들어오자마자 남학생들이 그녀의 기숙사에 들어가게 한 장본인이었으나
그녀 스스로 남학생들을 신고한 사람이기도 했다. 모든 것을 귀찮아했으며, 모처럼 주어진 휴일에도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고 들었다.
큰여주는 큰 키와는 다르게 겁이 많아서 자신과 이름이 같은 작은여주에게 붙어다녔다. 원래 아는 사이였는지,
아니면 들어와서 알게 된 건지는 모르겠으나, 들어와서 알게 되었다고 치기엔 그들의 관계는 심상치 않아보였다.
"지민아, 가자."
"아, 어."
태형의 말에 그들을 보던 시선을 거둔 지민이 오른손에 든 책을 들곤 교실로 향했다. 다음 시간은 지민이 가장 좋아하는
화학 시간이었다. 고립되어있는 이 학교 내에서 유일한 지민의 탈출구는 화학 시간이었는데, 그 이유는 그의 가족이 화학선생님이기 때문이었다.
사촌 형인 윤기는 언제나 자신을 따스히 받아주었으니까.
"야, 너 내가 달라붙지 말랬지."
"여주야, 우리 같은 여주끼리 이러지 말자. 응?"
"지랄 말고 꺼지라고."
그녀들의 대화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지민의 귀에는 아주 잘 들렸다. 김여주는 언제나 한여주를 내쳤으며, 한여주는 김여주에게
언제나 달라붙었다. 사실 김여주가 저렇게 한여주를 싫어하는 것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나같았어도 저렇게 달라붙는 친구는 사양이었다.
더군다나 귀찮은 걸 싫어하는 김여주에게 한여주는 골칫덩어리일 지도 몰랐다.
하지만 김여주보다 더 힘든건, 여주들과 내가 같은 조라는 거다. 위안 삼을 건 김태형뿐이지만 김태형은 항상 화학시간을 취침시간으로
이용하기 때문에 유용하게 쓰이진 않았다.
"여주야, 네가 30페이지 좀 읽어줄래?"
"누구 여주 말씀하시는 건데요?"
"‥아, 미안하다. 한여주 얘기한거야."
한여주라는 이름이 언급되자마자 한여주는 밝은 목소리로 교실을 채워나갔다. 모두 교과서를 보며 목소리를 따라가는 와중에도 나는 똑똑히 보았다.
씨발. 이라고 중얼거리던 김여주의 입모양을. 김여주와 한여주는 대체, 무슨 관계일까.
02.
여주들에 대한 소문이야 입학시절부터 들끓었지만 요즘 도는 소문은 질이 낮아도 너무 낮았다.
특히 한여주에 대한 소문은 차마 들을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다행인 건 여자아이들과는 아직 잘 지내는 것으로 보아
남자아이들 사이에서만 퍼져있는 소문이라는 것이다.
"야, 근데 한여주 소문이 사실이면. 진짜 대박 아니냐?"
"왜, 너도 하게?"
"씨발아, 걸레랑은 더러워서 안해."
그녀가 화학선생님과 관계를 맺었다는 것. 그것도 늦은 밤 화학실에서. 처음에야 당연히 거짓소문이라고 생각해 가볍게 무시했으나
요즘들어 한여주를 대하는 태도가 묘하게 달라는 윤기형을 보며 나는 항상 알 수 없는 기시감에 휩싸였다.
다른 학생을 대하는 것과, 한여주를 대하는 것은 주의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모를정도로 미세하게 달라져있었다.
"야, 윤기형한테 말해야하는거 아니냐?"
"형이 알면, 이거 해결해 줄거 같아? 오히려 감싸준다고 더 소문이 악화될걸."
"아, 그럼 넌 이런 소문 그냥 보고만 있을거야?"
"그냥 안 보고 있을건 뭔데. 왜, 너 한여주 좋아해?"
"지랄하지마. 좆같으니까."
한여주는 여자아이들에게나 인기가 많았지 남자아이들 사이에선 그다지 언급되지 않는 이름이었다. 지금 내 물음에 반응하는
김태형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한여주는 특유의 달라붙는 성격덕에 남자아이들이 싫어하는 아이 중 하나였다.
그와는 반대로 언제나 무관심한 표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김여주는 모든 남자아이들의 관심거리였다.
기숙사제인 탓에 한정되어있는 아이들은 언제나 새로운 것을 원했다.
"악!"
"김여주!"
그러던 와중, 김여주의 손가락에 제대로 베여버렸다. 커터칼을 든 사람은 ‥.
"한여주 너 미쳤냐?"
"저 년도 존나 또라이야."
한여주였다.
03.
왜 내가 김여주를 양호실에 데려다 주는 사람이 된 건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깨끗한 손수건으로 김여주의 손가락을 지혈해주며
양호실로 향하는 중이었다.
"너도, 믿어?"
"‥뭘."
"여주에 대한 소문 말이야."
그녀의 뜬금없는 말에 당황한 건 사실이었으나 나와 가까운 거리에서 말하는 김여주에 심장이 떨렸다. 아, 대답할 메모리가 날아가 버렸다.
바보같이 어물쩡거리고 있자 김여주는 한숨을 푹 쉬며 내게서 떨어졌다. 그제야 숨을 쉰 나는 아까의 대답을 이었다.
"믿는건 아니지만, 딱히 부정할 생각도 없어."
"왜?"
"너야말로 이건 왜 묻는건데."
"그야, 궁금해서. 너도 나한테 궁금한게 있잖아. 아니야?"
"난 네가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는데."
"소문을 낸 사람. 궁금하지 않아?"
"‥."
"그 소문을 낸 사람은, 화학선생님하고 한여주가 그랬다는 걸 봤다는 거잖아."
"아닐지도 모르지."
"응?"
"누가, 그 둘 중 한 명에게 원한이 있다면야 ‥ 일부러 낸 거일 수도 있잖아."
김여주는 입꼬리만 올려 내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똑똑하네. 그녀의 손이 닿았음에도 나는 마음대로 설렐 수 없었다.
그녀의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기에.
"이거, 양호실에서 치료하긴 어렵겠다."
양호선생님의 말에 무덤덤히 제 손가락을 내려다보던 김여주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니까, 병원 갔다오면 된다는거죠?
김여주의 말에 머리를 긁적이던 양호선생님은 차 키를 집어들더니 데려다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김여주가 다친 손가락과 같은 부위인
내 손가락을 움켜쥐었다. 많이, 아프겠지. 따라가고자 했으나 양호선생님은 조수석밖에 자리가 없다는 말로 나를 교실로 보냈다.
계단으로 올라가는 내내 나는 멍하니 아무 상처 없는 내 손가락만 바라봤다. 그 때문일까, 어느 새 옥상에 도착한 나를 보며 참 병신같다는 생각을 했다.
김여주가 뭐라고.
뒤를 돌아 내려가려던 찰라, 어디서 들어본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퍼졌다.
"나, 화학선생님이랑 안 했어. 진짜야 ‥믿어줘."
"알아."
"정말?"
"왜냐면, 그 소문. 내가 퍼트렸거든."
"‥뭐라고?"
"네 쇄골에 흉터있는거, 김여주 말곤 나 밖에 모르잖아. 근데 애들이 어떻게 알겠어."
"‥."
낮은 목소리로 보아 남자아이 같았다. 그리고 쇄골에 흉터 있다는 걸 안다는 것으로 봐선 한여주와 친밀한 관계라는 건데.
한여주와 친밀한 관계인 남자는 ‥ 내가 알기론 딱 3명뿐이다. 정호석, 전정국, 김남준. 중학교를 같이 나왔다고 들었는데,
그렇다고 쇄골에 흉터있는 것 까지 아나?
04.
숨이 잘 쉬어지지 않음에도 기숙사로 단번에 뛰어간 나는 자체 결석을 하기로 했다. 어차피 망할 출석률, 더 망해봤자였다.
들어와서 대충 쇠냄새가 베어있는 옷을 갈아입곤 운동장으로 달려나갔다. 운동장에서 미친개처럼 뛰어노는 김태형을 붙잡아 이야기 할 생각이었다.
내가 방금 뭘 들었는지 아냐고.
"어, 박지민! 너 씨발 수학시간에 나 버리고 째냐? 너 기숙사장한테 통보가면 걍 뒤지는거야."
"닥쳐봐, 나 지금 엄청난거 들었으니까."
축구를 했는지 김태형과 전정국, 그리고 정호석, 김남준이 김태형의 목소리에 관심이 쏠렸는지 내게로 향했다. 모두 작년에 같은 반이어서
대충 인사를 하곤 말을 하려던 찰라,
내게서 풍기던 쇠냄새가 그들에게서 풍겼다.
* * *
뭐냐고 묻는 김태형을 뒤로하곤 다시 기숙사로 향했다. 저기서 말하는 건 위험했다. 대충 둘러댄 후 침대에 누워 머리 끝까지 이불을 덮었다.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았다. 너무 큰 짐을 머리에 욱여넣은 탓인가 머리까지 아파오기 시작했다. 한여주는 분명 불쌍했다.
아마 정말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기분일 것이고, 그건 나도 중학교 때 느껴본 거라서 뼈져리게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고통스러울 한여주 생각보다, 그 소문을 퍼트린 게 김여주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심하는 내가 너무 좆같았다.
김여주는 지금쯤 양호선생님과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기숙사에서 휴식하고 있을 것이다. 종알거리는 한여주 ‥아, 오늘은 조용할지도 모르겠다.
05.
새벽 3시 57분. 어떤 질척이는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아마 비가 오는 듯 했다.
오전 6시27분. 아직까지도 내리는 빗 속에서, 머리가 꺾인 채 죽어있는 한여주가 발견되었다.
* * *
이사장은 언론에 나가지 않도록 모두의 핸드폰을 걷었다. 핸드폰을 걷는건 반장인 나의 담당이었다. 경찰까지 온 마당에
내뺄 수 있을까 싶었지만 일시적이라도 막을 생각인 듯 했다. 마지막번호인 김여주의 핸드폰을 건네받았다.
한여주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 듯 처량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던 김여주는 제 아픈 손가락을 잊고 그 손가락을 이용해
내게 핸드폰을 건네려했다. 고통에 아! 하는 소리와 함께 핸드폰을 놓친 김여주가 황급히 핸드폰을 주으려했으나 핸드폰 화면을 본 내가 더 빨랐다.
어떤 남자의 뒷통수와, 그 뒷통수를 찌르며 웃고있는 한여주.
잠금화면을 본 나를 알아챈 건지 김여주는 입술을 피나도록 깨물곤 자리에 엎드렸다. 한여주는 밝게 웃고있었고, 남자는 검정색 반팔티에
모자를 쓴 차림이었다. 특이한 모자의 디자인에 잠시 눈이 갔으나 남자의 머리통에 집중적으로 시선을 붓기 시작했다.
키가 큰 것 같았고, 덩지가 어느 정도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 밑에 입은 바지는 우리 학년 체육복이었다.
* * *
화장실로 들어와 김여주의 잠금화면 사진을 내 핸드폰으로 찍곤 핸드폰이 가득 든 바구니를 들고 밖으로 나가려던 순간이었다.
"와, 씨발. 한여주가 죽을줄이야."
"내가 너 입 털지 말라고 했지."
"아, 전정국이 그렇게 말할 줄 알았나."
"내 탓 아니거든. 한여주가 그런 거 때문에 자살할 거 였으면 3년 전에 자살했어야지."
"미친놈, 말 진짜 함부로 한다."
전정국, 정호석, 김남준. 이들의 공통점은 목소리가 낮은 남자라는 것과, 우리 학년 체육복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
한여주와 친한 친구들이라는 것이다.
"아, 빨리 가자. 오늘 점심 맛있다고 했음."
"아, 오늘 급식 못할 수도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음."
"지랄마."
"레알임. 한여주 죽은거 때문이래. 급식 운영 못할수도 있단다."
"와, 오바임. 오늘 원래 닭꼬치 나오는 날이잖아."
"아, 오바."
친구? 쟤들과 한여주가 친구인가. 어떻게 친구가 죽었는데 급식 얘기만 늘어놓지. 일단 나의 상식에서는 절대 이해 할 수 없는
대화들이 오갔다. 한여주와 친하지 않았던 나도 이렇게 마음이 싱숭생숭한데, 저들은 마치 원래 죽을 사람이 죽었다는 듯이 아무렇지 않아했다.
아니면, 저들 중에 ‥ 한여주가 자살한 원인일 가능성이 가장 큰 '소문'을 퍼트린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06.
그들이 화장실을 떠난 후 나는 급히 내 핸드폰을 켰다. 그들이 했던 대화 내용을 적어놓으려 했다. 그런데 너무 당황한 탓인지
김태형의 핸드폰을 켜고 말았다. 아, 새끼 내 핸드폰이랑 똑같은거 사지 말라니까. 케이스도 똑같은 탓에 구분이 불가능 했던 김태형의 핸드폰을
구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비밀번호의 유무였다. 나는 비밀번호가 있었고, 김태형은 없었다. 그런데 왜, 김태형의 핸드폰이 단단하게 잠겨있는지 모르겠다.
"어, 얘 원래 안 잠구는데."
김태형 생일인가 싶어 1230을 쳐보았지만 아니었고, 혹시나 내 생일인가 싶어 내 생일도 쳐 보았지만 아니었다. 대체 뭘까.
단순한 숫자까지 모두 해보았지만 모두 오답이었다. 김태형은 답지않게 의미부여를 잘 하는 성격이라서, 사소한 거에도 의미부여를 하곤 했다.
예를 들어 김여주가 저한테 공책을 넘겨준다고 하면 하루종일 그 얘기만 하던 놈이었다. 아, 설마 김여주 생일인가?
김여주 생일과 한여주 생일은 웃기게도 같았다. 그리고 바로 한 달 전, 오늘이었다. 그 날이 체육대회 날이라 아주 똑똑히 기억한다.
0828. 풀린 잠금화면에 즐거워하기도 잠시, 나는 부재중전화가 무수히 와 있는 김태형의 부재중 목록을 보고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김여주 18통
한여주 28통
이모 1통
문자는 김여주에게 2통
한여주에게 10통,
김여주 010-9999-0000
오전 8시 17분
-야, 씨발아 니가 말했냐?
-내가 입닫고 있으랬지, 미친놈아
한여주 010-0000-9999
오후 5시16분
-니가 나한테 말한거, 다 거짓말인거 알아.
-태형아
-태형아
-김태형
-왜 전화 안 받아
새벽 3시 57분
-태형아, 미안해.
-좋아했어.
-니가 좋은 애인거 다 알아
-나 너한테 실망 안 했어
-니가 전화를 안 받아서, 너무 힘들다
이게 대체, 뭐야?
07.
김태형의 핸드폰을 쥔 채 나는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점심이 안 나온다는 게 사실인지 여기저기서 매점빵을 물고 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그 중에는 전정국과 장난을 치던 김태형도 보였다. 김태형에게 말을 걸려던 순간, 갑자기 나타난 김여주가 김태형을 끌고 비상계단으로 가버렸다.
전정국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옆에 서 있던 김남준과 정호석에게 장난을 치며 그들의 라면을 뺏어먹었고, 나는 그 장면을 바라보다가
저들의 핸드폰을 확인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교무실로 발을 옮겼다. 김태형은, 나중에 ‥ 나중에 물어볼거다.
* * *
교무실엔 선생님들은 모두 회의에 가셨는지 아무도 없었다. 2-5반의 핸드폰 바구니를 뒤져 전정국, 정호석의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김남준 핸드폰이 옥상에서 떨어져 부서진거야 예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었고, 애초에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급히 전정국과 정호석의 핸드폰을
가진채로 교무실을 나가려던 나는 갑자기 들려오는 발소리에 숨을 죽인 채 제일 안 쪽에 있는 캐비넷에 들어갔다. 들키면 혼나는 걸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캐비넷 틈새로 들어오는 사람을 확인했다. 윤기 형이었다. 겨우 안심하며 나가려던 순간, 윤기 형의 뒤를 따라 들어오는 김여주에 나는 다시
숨을 죽였다. 씨발, 저게 무슨 조합이야?
"선생님, 여주가, 죽었,어요."
"울지마."
"선생님 사실 알죠. 여주가 왜 죽었는지. 무슨 소문에, 누구랑 엮여서 그랬는지!"
김여주가 이성을 잃은 모습을 처음보는 터라 침까지 삼켜가며 집중했다. 윤기 형과 김여주. 애초에 잘 어울리지 않던 관계였던 것 같은데
아마 한여주가 엮인 상대가 윤기 형이라서 따지러 온 것 같았다.
"왜, 왜 해명 안 했어요? 여주 선생님이랑 안 잤잖아요."
"여주야."
"씨발 여주라고 부르지 말아요."
"내가 그걸 해명하면, 누가 들어줄 것 같은데?"
"그래도, 노력은 했었어야죠."
"그런 소문때문에 한여주가 죽었을리가 없다는 생각은 안 해봤니?"
"알아요. 여주는 그런 소문때문에 죽은게 아니에요."
"‥."
"선생님, 사실 다 아시잖아요. 나 여주한테 들었어요. 화학실에서, 선생님이 직접 봤다면서요."
"‥."
"말렸어야죠. 씨발 학교에서 그 짓거리를 하는데!"
진실이 물밀듯 쓸려오는 바람에 나는 숨을 참았다. 예전에 배웠던 잠수법을 하며 나는 점점 내가 쉴 수 있는 생각의 양을 넓혔다.
그러니까, 김여주는 한여주가 왜 자살을 했는지 안다는 거고. 자살을 한 이유가 단순히 소문이 난 거 때문은 아니라는 거잖아.
그리고 윤기 형은 애초에 한여주랑 잔 게 아닌거고. 뭐야, 그럼 그 좆같은 소문은 대체 ‥ 누가.
"그 남학생이 그럴 줄은 나도 몰랐어."
"그 새끼 퇴학 시켜요. 김, 아! 깜짝이야!"
아이고, 민선생이랑 여주랑 여기서 뭐해요? 점심 시작한다네. 수학선생님이 들어오는 바람에 김여주의 말을 끝까지 듣진 못했으나,
소문을 퍼트린 학생이 누군지, 성은 알아냈다. 김.
08.
모두가 나가자마자 나는 캐비넷에서 나와 전정국과 정호석의 핸드폰을 다시 넣었다. 이 둘은 모두 김씨가 아니다. 고로 소문을 퍼트린 사람은 아니라는 것.
믿기 힘들지만 내가 간신히 추려낸 용의자는 단 두 명. 김태형과, 김남준. 김태형의 핸드폰에서 얻은 것에 따르면 한여주는 김태형을 좋아하고 있었던 것 같다.
김태형과 쌍방통행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애정이 얽혀있는 관계라는 건 알겠다. 하지만 김태형은 자기를 좋아하는 여자애에 대한 나쁜 소문을 퍼트릴
만한 사람은 아니다. 아, 사실 김태형이 한여주에 대해 말할 때 과민반응을 했던 건 거슬리긴 하지만 그거야 티를 안내려고 했던 것 같은데.
내가 의심하는 건 김남준이다. 제일 단서가 없기도 했고. 사진을 보면 까무잡잡한 피부이긴 했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가장 한여주에게 연민을
가지고 말한 것도 김남준이었고. 그럼, 김남준과 한여주가 옛연인이라도 되었다는 말인가.
"씨발, 하나도 모르겠네."
애초에 내가 왜 이런 걸 추리하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김태형의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어놓곤 급식실로 향했다.
김태형의 얼굴을 일단 봐야할 것 같다.
* * *
"야, 너 왜 이렇게 늦게와."
"아, 심부름 하느라."
"담임이 많이 시키든?"
"아,아니야."
사람이 한 명 죽은 만큼 급식실의 온도는 차가웠다. 거의 고개를 숙이고 밥만 먹는데도 김태형은 내게 계속 말을 붙였다.
야, 분위기 파악 좀 해. 김여주의 목소리였다. 차갑게 내리깔린 김여주의 목소리에 김태형은 기분이 상한 듯 했다.
평소에도 김여주와 김태형이 잘 싸우긴 했는데. 그 문자를 보고 나니 그 둘의 관계가 궁금했다. 평소에 이 둘이 말하는 걸 본 적이 없는데.
문자를 그렇게 욕까지 섞어서 보낼만큼, 화나는 일이 있던 걸까.
"분위기? 무슨 분위기."
"하, 씨발 진짜."
김여주의 욕설에 웅성대는 소리가 더 커졌다. 그 중엔 더 싸우라며 부추기는 철없는 전정국 무리도 있었다. 단 한 명, 김남준을 제외하고.
김남준과 시선이 부딪혔다. 자물쇠를 채운 듯 단단해보이는 그의 눈에 나는 먼저 눈을 피해버렸다. 내가, 진실을 안다고 한들 받아들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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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민의 시점으로 풀어진 이야기는 모두 끝났습니다. 혹시 힌트가 더 필요하다! 하신분들은 여기에 댓글로 남겨주세요.
이 글은 정기적으로 연재되는 물이 아니라 3달에 한 번 올 추리물입니다. 열심히 만들었으니 즐겁게 봐주세요.
범인과 사건의 전말은 내일 11시16분에 올라옵니다. 암호닉은 따로 받지 않으나 기존 암호닉분들은 편하게 사용해도 좋습니다.
용의자 1. 김태형
한여주가 가장 많이 연락한 인물. 문자 내용은 거의 일방적인 한여주의 문자였고, 전화목록을 봐도 거의 일방적인 한여주의 구애로 보인다.
Q. 평소 김여주와는 어떤 관계였나요?
V. 아, 솔직히 말해도 되나?
너무 예뻐서 가지고 싶었어요.
나 좀 변태같긴 한데, 진짜에요. 지금도 변함 없어요.
Q. 평소 한여주와는 어떤 관계였나요?
V. 이거 묵비권 행사 안되죠? 그렇겠지.
김여주 옆에 있어서 그런가, 되게 비교되어 보이더라고요.
근데 나한테 치대더라고. 그래서 뭐, 이젠 노코멘트 할게요. 미성년자 관람불가라서.
Q. 친구인 박지민군에게 항상 진실만을 털어놓았습니까?
V. 진실만을 털어놓았지만, 거짓을 일부러 입 밖에 꺼내진 않았죠.
근데, 지민이가 여기서 왜 나오죠?
Q. 한여주양이 자살이라는 건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는데요, 혹시 새벽 3시 57분경부터 여주양이 발견된 그 시간까지 뭘 하고 있었죠?
V. 아, 알리바이 말하시는거에요? 당연히 기숙사에서 자고 있었죠. 전 새벽 2시 전에 안 자면 다음날 못 일어나거든요.
그리고 항상 전 늦잠을 자죠. 그건 제 룸메이트인 김남준한테 물어보세요. 아, 근데 김남준 ‥ 새벽 2시까지 교복을 안 벗고 있더라고요?
용의자 2. 김남준
중학교 때부터 한여주와 함께 했던 인물 중 하나. 전정국, 정호석과 친하지만 김태형과는 꽤 적대적인 관계라고 소문이 퍼져있음.
김여주와는 전에 사귀었던 관계. 헤어진지는 갓 두 달이 넘었으며 헤어진 원인은 한여주라고 직접 대답함.
Q. 평소 한여주양과 어떤 관계였나요?
R. 친구죠. 단순한 친구.
Q. 김여주양과 헤어진 이유가 한여주양 때문이라고 직접 대답하셨는데, 자세한 이야기 좀 들어볼 수 있을까요?
R. 사실 별거 아니에요. 오히려 나쁜년은 김여주죠. 갑자기 화학선생님한테 눈을 돌리더라고, 우리 김여주양이.
원래 제 사람빼곤 무관심한 애거든요. 애정표현도 서툴러서 한여주한테도 항상 욕하고 지랄해요.
그래도 한여주를 꽤나 아꼈는데, 한여주가 화학선생님 얘기를 자주했나봐요. 그 이후로 김여주가 나한테 마음이 떠나던데.
일방적으로 통보받았어요, 전.
Q. 김태형군과는 적대적인 관계로 소문이 나 있는데.
R. (웃음) 아, 걔는 그냥 절 경계하는 걸 거에요. 워낙 물어뜯기를 좋아하는 놈이라. 제가 김여주랑 전에
사귀었다는 걸 우연히 들었나봐요. 그 이후로 저한테 좀 지랄하던데.
Q. 전정국군과 정호석군과는 이 일이 아무 상관도 없다고 자신하십니까?
R. (침묵). 사실 저도 확신은 못하겠어요. 한여주가 자살한 데에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을지는 몰라도
그 전까지 스트레스를 줬던 저희의 탓도 클거에요. 아마 전정국하고 정호석은 단순해서 여자애들 마음따윈 모르겠지만,
전 사실 좀 느꼈어요. 김여주를 좋아하는 저한테 은근히 의지하는 한여주보면 좀 마음이 찡하더라고요.
다 똑같은 친군데 한여주하고 김여주하고 대하는 태도가 많이 차이났거든요. 저야 제 여자친구 친구니까, 항상 친절하게 대해줬었는데 ‥
여기까지 할게요. 옛날 일 중에 좋은 기억이 그다지 많지 않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