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더 있을게-!
여주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누군가 멱살을 잡아 끌어올리듯 정신이 훅 들어왔다.
여주가 눈을 번뜩 떴다.
“…일찍 왔네.”
“…!”
“울었어?”
“김여주.…”
누운 상태로 눈만 뜬 여주가 제가 눈 뜬 것도 모르고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 있는 석진을 보며 말했다.
제 머리 위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가 고개를 들었다. 얼마나 운 것인지 얼굴에 눈물자국이 가득했다.
젖은 목소리로 저를 불러오는 석진에 여주가 손을 들어 그의 머리를 토닥였다.
머리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다시 눈물이 터진 석진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고개를 숙였다.
“울지 마-.”
“….”
우는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석진이 이를 악 물었다.
보는 사람이 아파오는 강도에 여주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그의 뺨을 어루만졌다.
석진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제가 왜 이렇게 많은 눈물을 흘리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눈물이 마르지 않고 흐르기에 흘려내고 또 흘려낼 뿐이었다. 눈물에 크게 들썩이는 몸을 막은 석진이 웅얼대며 말했다.
“죽지 마.”
“…응.”
“약속했어. 죽지 마.”
“응. 그럴게.”
“나랑 영화도 보고 밥도 먹자고 한 약속 꼭 지켜야 해. 알았지?”
꼭 아이가 떼쓰듯 말하는 석진에 여주가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울음을 진정시킨 그가 얼굴에 잔뜩 묻은 눈물자국을 닦아내고 호출 벨을 눌러 의사와 간호사를 불렀다.
여주가 깨기를 기다리고 있었던지 빨리 온 의사와 간호사가 꼼꼼히 여주의 상태를 살피고 괜찮다는 말을 하며 병실을 나갔다.
의사와 간호사가 나가는 걸 지켜보던 여주가 덮고 있던 이불을 걷어내자 석진이 앉아있던 몸을 일으켰다.
“왜. 화장실 가게?”
“아니. 나가고 싶어서.”
“안 돼. 오늘은 그냥 누워있자.”
“답답한데- 그리고 나 엄청 많이 자서 괜찮아.”
“그래도….”
여주의 말에 석진이 안절부절 못하며 말했다.
마음 같아서는 누워 푹 쉬게 하고 싶은데 답답하다고 말하는 여주를 보니 조금이라도 바람을 쐬게 하는 게 좋을 것 같기도 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가 발을 동동 구르자 여주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혼자 나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너도 같이 있는데 뭐가 문제야.”
“그럼- 조금만 있다 오는 거다?”
“네에-.”
아무래도 충격이 컸던 건지 걱정하고 조심하려는 행동이 눈에 보여 여주가 복잡한 얼굴로 웃었다.
역시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도우미를 받지 않는 게 옳은 행동이었을 것 같았다. 괜히 예행연습 한다고 도우미를 받는 게 아니었다.
그것도 저와 동갑인, 그리고 동창인 아이를 말이다.
제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석진은 제 가디건을 챙겨 여주의 어깨 위에 걸쳐주고 그녀의 팔을 잡고 조심히 걸음을 옮겼다.
자신을 생각해주고 배려하는 그의 모습에 여주가 다시 손을 들어 석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가 눈을 아래로 내려 그녀를 바라봤다.
까맣고 맑은 눈동자에 의문이 가득했다. 여주가 작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머리가 예뻐서-.”
여주의 말에 석진이 뭐냐는 듯 웃었지만 차마 그녀는 따라 웃을 수가 없어 입을 다물었다.
복잡한 마음을 뒤로 하고 병실을 나와 걷기 시작하자, 석진은 어쩐지 제가 넘어지기라도 할까 노심초사하는 것 같았다.
아니, 그랬다. 좀 전도 갑자기 걷기 시작한터라 다리에 힘이 없던 여주가 순간 풀리는 다리에 발을 헛디디자,
석진이 크게 놀라며 팔을 붙잡아주었기 때문이었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다리에 힘이 풀렸어.”
“거봐, 나오지 말자니까. 고집쟁이야.”
“걱정하지 마, 안 죽는다니까.”
제가 내뱉고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거짓말이라 혀끝이 씁쓸했다. 그래도 석진을 안심시키고 싶어서 여주는 최선을 다해 입꼬리를 모았다.
안심하라는 듯 두 눈을 접으며 석진을 향해 웃는 모양새가 꽤 그럴듯해서 그는 여주를 잡았던 손에 힘을 풀곤 고개를 끄덕거리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옥상에 있는 공중정원은 한사코 안된다고 이야기해오는 석진에 억지로 앉은 병실 앞 복도 의자에서 볼품없는 다리를 흔들며 여주가 볼멘소리로 말해왔다.
“꿈에서는 그렇게 하자는 대로 다 해주더니.”
“…내가 꿈에 나왔어?”
여주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던 석진이 놀라 작게 반문했다. 놀란 목소리에 여주가 더 볼멘소리를 내며 대꾸했다.
“뭘 그렇게 놀라. 꿈에 반장 너 나왔어. 오랜만에 고등학교로 돌아가니까 좋더라.”
그립다는 듯 말해오는 여주의 목소리에 입을 다문 석진이 저보다 한 뼘은 더 작아 보이는 여주의 머리위로 제 손을 올려 여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갑자기 제 머리를 쓰다듬는 석진의 손길에 여주가 의아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왜 그래? 나 뭐 잘했나? 왜 쓰다듬어줘?”
“그냥.”
그 말에 석진은 저도 이유를 알 수가 없어 의미모를 웃음만 흘린 채로 한참을 그렇게 여주의 머리만 쓰다듬었다.
꿈속에서 나는 너에게 어떤 말을, 어떤 행동을 해주었을까.
여주는 영문도 모른 채로 석진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은 채, 그대로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 잠들어 있을 때 꾸었던 꿈속의 석진이 자연스레 생각났다, 마치 저를 알고있는 것처럼 돌아가라 말해주던 너. 울고 있는 네가 마음이 아파서,
괜히 도우미를 받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게 너라서, 너여서 다행이라고 한편으론 생각하게 되었다.
“또 자는 거 아니지?”
“…아니거든.”
눈을 감으면 아무래도 석진을 불안하게 만드는건지 어느새 제 코밑에 손가락을 대고 있는 석진에 눈을 뜬 여주가 장난스레 석진의 손가락을 살짝 물자
놀란 그가 손을 빼내고 여주를 쳐다봤다.
“그만 불안해 해. 안 죽는 대도- 숨쉬고 있어요, 반장아.”
“…아.”
석진은 여주에게 물렸던 제 손가락을 한번 여주를 한번 보고 작게 웃어버렸다. 그제야 조금은 안도가 되는 것 같았다.
이렇게 여주옆에 앉아있으니 머릿속에 자그마한 의문이 피어올랐다.
너와 나는 어떤 사이가 되어가고 있는 걸까. 나는 왜, 네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눈물이 나버리고 마는 걸까.
나는 왜 네가 아픈 게, 싫어지는 걸까.
다시 눈을 감아버린 여주를 흘긋 보던 석진이 제 손가락으로 의미 없는 장난을 치다 떠오르는 상념들을 없애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서 여주를 조심스레 불렀다.
“김여주.”
“…응?”
눈을 뜬 여주가 제 앞에 보이는 석진의 다리에 시선을 올려 석진과 눈을 마주쳐왔다. 눈이 마주치자, 여주는 제 손을 내밀었다.
그가 내밀어진 손을 말없이 잡아주자 여주가 다리에 힘을 주며 땅을 딛고 서며 석진에게 말했다.
“병실에 데려 다주기전에, 나 저거 하나만.”
여주가 가리킨 곳에는 자판기가 있었다. 이젠 척하면 척이라는 듯 석진은 고개를 끄덕이곤 여주의 손을 잡은 채 발걸음을 뗐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석진의 걸음에 여주가 발을 맞춰 걷자 그가 주머니에 들어있던 동전 몇 개를 꺼내 자판기에서 익숙한 음료의 버튼을 눌렀다.
좋아한다 이야기했던, 그 과일 맛 음료였다.
여주에게 뚜껑을 열어 건네자 그녀가 건네 받으며 웃음을 지었다.
옅게 지어지는 웃음을 보던 석진이 똑같은 음료를 하나 더 뽑아 들었다.
“너도 먹게, 반장?”
“응. 맛있다면서.”
허리를 숙여 음료를 꺼내 든 석진이 저 역시 뚜껑을 열어 음료를 제 목으로 넘겼다. 넘어가는 소리가 시원했다.
그는 기어코 음료를 다 비우고 나서야 발걸음을 뗐다. 손을 떼지 않은 채로 나란히 걸어가자 옆에서 여주가 별안간 석진과 잡은 제 손을 앞뒤로 흔들기 시작했다.
석진이 그걸 보곤 저도 같이 손을 흔들자 여주가 크게 웃었다.
“재미있어?”
“응, 이런 것도 재미있네.”
병실에 도착해선 석진이 여주가 침대에 잘 올라갈 수 있도록 뒤에서 부축을 해줬다.
여주가 침대에 모로 누워 석진을 향해 시선을 돌리자 석진은 오늘따라 늦게까지 여주를 보살폈다.
어쩐지 많이 흐른 것 같은 시간에 여주가 시간을 확인하고 말했다.
“시간 많이 됐는데, 안 가도 괜찮아. 반장?”
“나 빨리 갔으면 좋겠어?”
“어? 아니, 그게 아니라.”
티나게 당황하는 여주를 짖궂게 놀리는가 싶던 석진이 이내 덧붙여 말해왔다.
“너 자는 거 보고 가려고.”
“…괜찮은데.”
여주는 혹시 제가 잠든 사이, 또 석진이 저를 걱정해 눈물을 흘리진 않을까 싶어서, 석진은 제가 지켜보는 범위 내에 여주가 있는 게 안심이 되어서
곤란한 기색을 살짝 비치는 여주를 보고도 떼를 쓰듯 일어나지 않았다. 이윽고 고단했던지, 석진이 하는 말에 간간히 응수해주던 여주가 잠에 들었다.
여주가 잠에 들자, 습관처럼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여주의 코 밑으로 제 손을 가져간 석진이 제 손에 닿는 미약한 숨에 다시 한번 안도했다.
병실의 불을 끄고 스탠드 불을 켠 채로 가방을 메던 석진이 다시 간이의자에 주저앉았다.
내일은 1교시부터 수업이 있는 날이라 지금 돌아가야 하는 걸 알면서도 그는 발을 뗄 수가 없었다.
“김여주, 언제까지 반장, 반장 하고 부를 거야.”
“…….”
깊게 잠들어 대답하지 못할 여주에게 혼잣말 하며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귀 뒤로 조심스레 넘겨준 석진이 제 손목시계를 살피다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잘 자. 아프지 말고.”
병실문을 열면서도 뒤를 돌아 여주를 힐끔거리며 확인하던 석진이 마침내 병실문을 닫았다.
그는 나가기 위해 복도를 걷는 무겁게 느껴져 가던 걸음을 몇 번이나 멈추며 뒷목을 긁적였다. 제가 하고도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는 행동들을 오늘 한 것 같았다.
내가 왜 이러는 걸까.
왜 나는 자꾸 널 보러 오는 시간을 앞당기고 싶고.
네가 웃는 게 보고싶고.
막무가내로 떼를 쓰게 되는 걸까.
지각쟁이 침벌레탓에 홍일점님이 일찌감치 6화를 올려주셨는데 8ㅁ8...
이제서야.....끼잉
오늘도 우리 다정한 석진이는 찌통이고
탄소도 마음이 아프지요.
늘 함께 달려주시고, 댓글 달아주시는 내님들. 독자님들.
모두 감사해요.
오늘도 예쁘고 좋은일만 가득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