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양 연 화(花 樣 年 華) ;내 생 가장 아름다운 날
w.녹음
내려온다, 마치 나비처럼. 나풀 나풀거리며 내 손바닥에 내려앉았다.
내게 내려와, 내게 잡혔으니 내 것이라 생각했다.
가녀린 꽃잎을 쥐어 보았지만, 그 전에 바람에 흩날려 덧없이 날아간다. 남아있는 향이라도 맡아보려 손바닥에 얼굴을 묻어도, 내게 와주었던 건 아주 찰나여서 이 손바닥에 남은 게 없음을 또 한 번 느낀다. 남아있길, 영원하길 바라는 아름다운 것은 이리도 내게 모질다.
그 시절, 그 시간, 그 모습들은 손바닥에 닿아있던 꽃잎과도 같다.
정국은 유독 아침에 일어나기를 힘들어 했다. 가끔씩은 멍하게 앉아 있었고, 가끔씩은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딘지도 헷갈려 했다. 오늘도 역시나 얼이 빠진 얼굴로 아침을 먹고, 씻고, 집을 나서는 정국을 보며 정국의 엄마는 걱정했다. 저러다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닐까?
하지만 이내 수긍했다. 아이는 언제나처럼 잘 돌아 올 것이다. 언제나처럼...
어미의 걱정스런 눈빛도 모르고 집 밖으로 나선 정국은 매일 걷던 길을 걸었다. 낯익은 횡단보도를 건넜고, 낯익은 가게가 늘어진 거리를 걷다가 반짝하고 눈을 떴다. 처음 보는 낯선 길을 발견했다.
아침의 햇빛을 받아 반짝 반짝 빛나는 돌이 깔린 길은 너무 예뻤다. 길의 끝에는 뭐가 있는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환할 뿐, 무엇도 보이지 않는다. 정국은 꿈뻑꿈뻑, 커다란 눈을 깜빡이다 자연스럽게 길에 발을 딛였다.
자박자박- 발 밑에 깔린 자갈들이 부딪히고 엉키며 소리를 낸다. 근데 그 소리가 싫지 않아 정국은 미소를 지으며 길을 따라 걸었다.
한참을 걸어온 걸음의 끝에는 커다란 백목련 나무가 웅장하게 서있었다. 목련이 피어날 시기가 아닌데도, 꽃들은 그런 것을 모른다는 듯 만개하여 그 향을 널리 퍼뜨리고 있었다.
나무는 제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라질 듯 희미했는데, 한순간이라도 시선을 돌리면 없어질 것 같았다. 이끌리듯 다가선 정국의 손바닥에 까끌한 나무의 껍질이 닿았다. 사라질 것 같은 나무는 제 손에 닿았고 이상할만치 낯익은 감각에 손을 떨자, 나무가 그러지 말라는 듯 가장 낮게 뻗은 가지를 휘어 목련이 가득한 손가락으로 정국의 머리를 툭하고 쳤다. 무언가에 홀린 것 같다.
가지가 흔들렸던 여파로 떨어진 목련 잎들이 정국의 머리 위로 흩어지며 내려 앉았다. 꿈만 같은 장면의 연속이다. 홀린 듯 그 장관을 보던 정국은 잊고 있던 학교를 떠올리고 돌아가야한다는 생각을 했다. 주위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환한 빛이 쏟아져 내렸지만 눈을 찌푸렸다.
뒤돌아 본 길은 달라져 있었다. 저가 걸어왔던 길 가운데에 조각상이 떡하니 놓여 있다. 딱 여섯 걸음을 걷자 조각상이 코앞에 놓여 있었다. 이렇게까지 가까워질 줄 몰랐는데, 줄어든 거리감에 흠칫하며 물러서다가도 용의 생김새를 하고 있는 조각상이 너무도 신비로워 한참을 보았다.
섬세한 비늘을 가지고 있는 용은 또아리 튼 몸을 일으켜 저를 보고 있었다. 몸통의 비늘은 대체로 같은 색이었는데 중간 중간 색이 희미하고, 짙고 한 것을 보니 색이 다르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 같았다. 조각상인데 살아있는 것 같은 생생함에 몸이 굳었다. 그러다가도 떠오르는 생각에 손을 턱에 대고 곰곰이 생각했다.
분명 용이 맞는 것 같은데...
"이 문양은 뭐지?"
얼굴로 보이는 부분에 선들이 어지러이 수놓아져 있었다. 그 문양들이 조각상을 더 신비하고 매력적이게 보이게 했다. 저를 보고 있는 조각상을 훒어보다 눈이 마주쳤다. 크게 뜬 눈이 매섭다.
꿀꺽, 넘어가는 침을 삼키며 정국은 알지 못한 긴장감에 싸였다. 아까부터 생각했지만 조각상일 뿐인데 생동감 넘치고, 살아있는 것만 같았다.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심스레 손을 뻗어 용의 얼굴 부분에 가져다 대자 살아있는 생물같은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햇빛 때문이겠지? 재빠르게 조각에서 손을 떼고 가방 끈을 붙잡았다. 학교에 가야겠다. 묘한 기분에 고개를 휘저으며 몸서리 쳤다. 뒤돌아 서려는 정국의 눈에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용의 손에 들려있는 별 모양이었다.
별은 여섯개의 삼각형 부분에 아름다운 보석이 박혀 있었는데, 그것들이 하나같이 다 귀하고 값진 것임을 알리는 듯 영롱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특히 별의 몸통에 박혀있는 보석은 붉고,희고,검은 빛을 띄었는데 그것이 몹시 예뻤다.
끄응- 하고 앓는 소리를 내보지만 변하는 것은 없다. 한 눈에 박힌 보석을 두고 가자니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 번만 만져보자, 그러고 학교에 가면 되지. 안일한 생각을 하고 손을 뻗었다.
그 때였다. 달칵-하고 조각상에서 빠져 나온 별 모양이 정국의 손으로 떨어지자 두 손으로 별 모양을 받아들고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정국은 걱정하기 시작했다. 내가 부쉈나? 원래 분리되는 거겠지? 별 모양을 조심스럽게 이리저리 살펴 보았다. 다행스럽게도 부서진 곳이라곤 어디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손 때가 묻은 듯, 모서리나 깊게 패여있는 무늬들이 닳아있는 별 모양이 어딘가 낯익다는 생각을 했다. 아련하고, 그립고, 서글픈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이름, 이름을 지어줘.'
'난 ...이 제일 좋아!'
'....네 곁에 있으려고 했는데....너는 왜....!'
'너 뿐이야. 진실된 내 모습을 볼 수 있는 건..'
'미워..! 네가 너무 미워..!!!!'
별을 손에 쥔 순간, 수만가지의 색과 장면들이 하늘에서 정국의 머리로 박혀 들었다. 엄청난 빛이 뜨거웠고, 앞을 볼 수 없게 했다. 게다가 머리로 들어오는 동강난 기억들이 뇌를 흔들어댔다. 짧은 순간 사이에 쏟아진 고통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고, 신음조차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뇌가 점이 되어, 그 속으로 몸이 빨려드는 기분을 느꼈다. 마치 죽음과 탄생을 동시에 느끼는 기분이었다.
헉-! 숨통이 트이자 두 손으로 목을 붙들고 한참을 켁켁거린 정국이 땀 범벅이 된 얼굴을 쓸어 내렸다.
"어..?"
눈 앞에는 여전히 커다란 목련 나무가 제 앞에 우뚝 서있었고, 환한 빛이 감돌았지만 무언가 달랐다. 본질적인 것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앉아있는 바닥이 자갈같이 딱딱하지 않고 푹신했고, 목련 나무가 훨씬 크고 뚜렷하게 보였다. 여기가 현실이라는 듯이 말이다.
정국이 그런 생각을 할 동안에도 만개한 목련 잎들이 땅으로 부산스럽게 내려와 앉았다. 떨어진 꽃 하나를 주워 손에 올려놓았다. 그러다가도 문득 흰 꽃들 속에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들고 정체를 확인했을 때, 정국은 숨을 쉬는 법을 잊어 버렸다.
목련이 흐드러지게 핀 가지에는 붉은 꽃이 앉아 있었다. 환한 빛을 내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붉은 저고리 밑으로는 검은 치마가 나풀거리고 있었다. 치마에 수놓아진 금색 무늬마저도 그 미모에 기가 죽어 있었다. 꽃 중의 제일의 꽃이라고 생각했다.
금박으로 둘러싸인 검은 전모 밑으로 감겨있던 눈이 뜨였다. 뚫어지게 쳐다보던 정국과 마주친 눈은 기묘하게도 붉은 빛을 띄고 있었다.
살랑, 바람이 불어와 나무를 흔들자 목련 잎들이 흩날렸다. 나뭇가지에 피어있던 붉은 머리칼도 어김없이 흩날렸다. 불꽃처럼, 물결처럼 흩날리는 머리칼을 희고 고운 손으로 쓸어올리며 꽃은 나무에서 살며시 뛰어내렸다.
무게가 없다는 듯, 살포시 내려앉는 꽃신을 바라보다 고개를 들었다. 붉은 눈이 한없이 일렁였고, 흔들리는 눈빛이 되어 정국을 마주했다.
"저를 위해 놓아주었더니 왜 다시 돌아온 게야."
일렁이는 눈빛이 그리움이 되었다, 증오가 되었다가, 서글픔이 되었다. 어디에선가 들어본 목소리였다.
이 모든 것에서 점철된 그 감정들의 매듭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애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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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평화가 잦아드는 밤이 아니라 다른 글로 찾아온 녹음입니다.
평아밤은 제가 계속 연재하면서 이것도 연재해보려고 합니다.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글도 많고, 소재도 많이 있는데 지금 쓰고 있던 것도 있어서 쓰지 말자 하고 있었어요.
근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뎨뎡함미다.........
암호닉 /(@'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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