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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CARONI 전체글ll조회 519l 3

배틀로얄 04.

내가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을까. 유권은 살풋 웃으며 방아쇠를 자신에게 겨누고 있는 민혁의 앞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가까이 오지마. 민혁은 관자놀이에서 흐르는 땀을 느끼며 방아쇠에 걸은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커넥터의 신호는 이미 서비스 지역에서 어긋나 버렸다. 이곳이 얼마나 외진 구역인지 알려주는 증거였다. 차분하게 내려간 머리와는 다르게 유권의 눈매는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민혁의 발이 점점 뒤로 향했고, 이내 딱딱한 벽에 자신의 등이 닫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아. 민혁은 약한 탄성을 내질렀다.

“...궁금해?”

유권이 민혁의 총을 탁 쳐내고 어깨를 밀쳐 콘크리트 벽에 둔탁한 소리가 날 정도로 내리쳤다. 민혁의 앞니가 아랫입술을 악 소리나게 물었고, 살집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벽을 타고 스르르 내려 앉은 민혁의 허벅지에 유권의 발이 꾹 내리눌려 졌다. 나약해졌구나. 민혁의 턱을 치켜 올리며 유권이 실소를 흘렸구나.

“예전의 그 강인함은 어디로 사라지고, 이런 나약함만 남게 됐을까.”

“...으...”

“그 유명한 킬러 ‘비범’께서 말이야.”

허벅지가 묵직한 구두굽에 짓눌렸고, 민혁의 살집에선 피가 더욱 새어 나왔다. 너는 변한게 없구나. 다만 그 살기를 제외하고는 그대로야. 미처 말하지 못하는 민혁의 입술이 달싹이고 있었다. 유권은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나약한 너를 보는건 정말 재미있어. 유권의 발이 민혁의 손을 짓이겼고, 기어이 민혁의 입에선 비명이 질려 나왔다.

“나는 너에게 뒤통수를 맞는 그 순간까지도, 너를 기억했어.”

“...”

“하지만 너는, 어땠을까. 정말 어땠을까? 난 그게 궁금해.”

아려오는 몸둥아리에 서서히 정신을 놓아가는 민혁의 머리를 잡아채어 볼에 손가락을 대는 유권이였다. 아직 이렇게 보내기엔 이르지. 손가락을 부드럽게 미끄러 뜨리며 유권은 민혁과 눈을 마주쳤다. 정부 소속의 킬러 비범은 정말 작전대로 행동했던 것 뿐일까. 유권의 손가락이 민혁의 턱선을 타고 사라졌다. 아아. 민혁은 잔신음을 흘릴 뿐 이였다.

“불길에서 살아남고 나서, 나는 절망했어.”

불길이라는 말에 끈을 놓쳐가던 민혁의 정신이 퍼득 돌아왔다. 이제 말이 좀 통하네? 유권이 개구지게 웃었다.

“남은건 화상과, 비수가 꽂힌 가슴밖에 없었는데.”

“...김유권...”

“그렇더라.”

민혁의 귓가에 속삭이던 유권이 조용히 웃었다. 머리결은 아직도 부드러웠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파고드는 그 느낌은, 옛날의 것과 변하지 않은 모습이였다. 나약해진 너를 어떻게 해줄까. 민혁은 다시 눈이 감겨오는 것을 느꼈고, 자신이 다시 정신을 차리면 어디에, 어떻게 되어 있을지도 가늠하기 어려웠다. 입안에 피가 고였다. 진하고 따스한 피웅덩이가.

“이민혁.”

“...하...”

“너를 어떻게 하길 바래?”

난 중립이니까. 스나이퍼의 여유로운 미소가 킬러의 잔상 위에 진하게 남았다. 구석에 널브러진 민혁의 총을 집어든 유권의 눈이 번뜩였다. 너를 내가 어떡해야 속이 시원해 질까. 그때, 민혁은 자신이 잡고 있던 정신의 끈을 놓아 버리고 깊은 나락의 끄트머리로 사라졌다. 늘어진 민혁을 흔들던 유권은 이내 한숨을 쉬었다.

“예고없이 행동하는건 여전하네.”

민혁의 앞에 앉으며 유권은 머리를 헤집었다. 지금이라도 죽일 수 있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신이 원망스러울 따름이였다.

-

재효가 본부로 귀환했을 때, 태일은 세상 모르는듯이 곤하게 자고 있었다. 표지훈. 재효는 다시 무소속 킬러의 이름을 되새겼다. 그러다 문득 자신을 저격하다 사라진 그 인영에 대한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누구였을까. 그냥 단순한 하이에나 였을까. 자신에게 악심을 품은 킬러였을까. 재효가 태일의 앞머리를 정리해주자 허리를 감싸 안아버렸다. 귀엽기는. 검고 윤이 나는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재효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어째 가면 갈수록 잠이 더 늘어나는 것 같다...”

코오코오. 태일은 재효의 배를 배게삼아 곤히 자기만 할 뿐이였다. 너를 약육강식의 지하도시에 내보내기 싫었을 뿐이야. 지훈의 싸늘한 목소리가 자꾸만 생각났다. 길게 길렀던 꽁지머리를 잘라버린 자리가 매우 어색했다. 뒤통수를 문지르며 재효는 커넥터의 전원을 켰다. 곧바로 날아오는 소장의 공지사항과 자잘한 명령들과 전달사항들. 한숨을 쉬며 다시 커넥터를 꺼버리려고 할 때 였다.

-고립된 구역에 하급 킬러들을 더 넣어.

-그는 충분한 테스트를 받아야 해.

-계속 넣어. 정신이 개가 될때까지.

그리곤 잠시 지지직 하는 소리가 나고 정상적인 주파수로 돌아와 버린 커넥터였다. 뭐지. 재효는 다시 그것들을 들으려 애썼지만 그 주파수를 찾긴 어려웠다. 음역대는 다양했고, 숨겨진 주파수들도 많았다. 하급 킬러, 테스트, 정신적 가해. 도데체 이 세계는 알 수가 없단 말이지. 기억을 더듬어 보던 재효는 그 말들을 벽에 적어두었다. 종이가 없다. 흔한게 없네.

“태일아.”

으응. 태일은 눈을 꿈뻑였다. 그리고 자신의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 보는 재효의 눈길에 배시시 웃었다. 깼네. 누워서 뒹굴거리는 태일을 일으켜 주며 머리를 정리해 주었다. 어디서 탄내가 나기도 했다. 킬러는 후각이 정확해야 한다고 말해주었던 민혁의 말이 생각나는 재효였다. 태일아. 머리에서 탄내나. 눈이 약간 커지는 태일이였다.

“막, 화약 냄새 그런거?”

“응. 탄내나. 심하지는 않지만 가까이 가면 맡을 수 있을 정도로.”

아아. 태일이 작게 탄식을 내뱉었다. 어디 나갔다 왔어? 태일의 손을 잡으며 재효가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태일은 애써 웃으며 화약내를 부정했다. 낌새가 이상한데. 재효는 우선 속는셈 치고 태일의 말을 믿어 주기로 했다. 은은한 스탠드의 빛이 창문하나 존재하지 않는 방 안을 비춰 주었다. 인기척에 가끔 놀라기도 하고, 서로를 보듬어주면서 둘은 시간을 보냈다.

-이태일을, 알고싶나?

비열하게 웃던 지훈의 웃음이 떠오른 재효였다. 이태일을 알고싶냐니. 저것은 지호가 자신보다 태일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다는 듯한 태도였다. 뭘까. 저 이유없는 자신감은. 재효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 알고 싶기는 했다. 자신이 모르는 이태일에 대해. 그저 사랑하는 사람의 위치에서 모든걸 파악하고 싶을 뿐 이였다.

-난 누구에요?

재효가 태일을 처음 대면했을때, 태일은 눈을 뜨자마자 저렇게 이야기 했다. 지하의 도시에서 관자놀이에 총알을 박았음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아주 끈질긴 태일이였다. 이전의 기억은 모두 사라지고 없어 보이는 듯 했다. 순전히 정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랑하는 사이이다. 재효는 지훈의 거짓같은 제안을 다시 한 번 곱씹으며 뒤숭숭함을 달랠 뿐 이였다.

-

시간을 좀 벌고있어. 정부가 점점 미쳐가네. 경이 핏빛으로 옅게 물든 머리를 쓸어 넘기며 한숨을 쉬었다. 지호는 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초과치를 넣고 있었다. 지하의 도시엔 하이에나들이 과포화 상태로 변해가고 있었다. 진짜 미쳤나.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서 총을 빙글빙글 돌리던 경은 이내 커넥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숨을 죽였다. 지호는 바닥에 스르르 주저 앉아 버렸다. 정신적 으로도, 육체적 으로도 많이 지쳐버린 것이 원인이였다. 지긋지긋 하다. 과포화된 지하의 도시가.

-어떤가? 지코는.

지호의 코드 네임. ZICO. 경은 지금 이순간 지호의 코드 네임이 이질적으로 들려왔다. 약간 지쳤습니다. 차분하게 현재의 상황을 보고했다. 그래? 프로젝트의 책임자가 껄껄 웃는다. 악마같아. 당신도.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는 지호를 보며 경은 측은함을 느꼈다. 그러나 이내 다시 정신을 차렸다. 나는 지호의 편이 아니야. 나는 정부의 소속이야. 라고 되새기며.

-슬슬 바꾸는 것도 재미있겠지.

“지하도시가 과포화 상태입니다. 타겟을 잃은 자들이 무법천지로 돌아다닌다고요.”

-지원력을 보내도록 하지. 그러면 해결인가?

“잘 아시는군요.”

인기척에 반대 방향으로 총을 쏘는 경이였다. 덕분에 타겟에서 튀긴 피를 지호가 약간 맞아 버렸다. 아씨. 눈가를 비비는 지호의 하얀 손에 이질적인 붉은 피가 도드라져 묻어 나왔다. 경은 관심도 없는듯 연신 화를 낼 뿐 이였다. 지호는 피식 웃었다. 이상한 박경이야. 흘러가는 시간들이 모두 신기하기만 할 뿐 이였다.

“조금만 더 쉬다 가라.”

“박경.”

왜. 경은 무심하게 벽을 발로 차며 대답했다. 등뒤로 맞잡은 손의 사이에 총이 끼워져 있었다. 우지를 다시 장전한 지호는 침을 두어번 삼킨 후에 자신의 말을 이어 갔다. 이곳은 너무 건조했다. 숨이 막힐 정도로.

“지금의 넌. 누구냐?”

“나는 나야.”

“그런 말이 아니야. 너는 지금 누구냐고.”

글쎄. 경은 뒤를 돌아 시선을 지호에게 고정시키며 웃었다. 너의 옛 연인? 아니면 너를 배신한 정부의 개? 둘중에 하나다. 확률은 반반. 지호는 경의 대답을 듯고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아까 쏴 죽인 타겟의 피자욱이 지호의 발치까지 흘러 들어왔다. 으으. 발을 들어 몸쪽으로 가까이 옮기며 싫다는 표정을 지었다.

“알아서 생각해봐. 너의 최후나, 나의 최후가 달린 문제일 수도 있겠지.”

“...박경.”

“아무튼, 지금의 나는 나야. 의심하지 마.”

모든것은 내가 나의 의지대로 한거야. 제복을 반듯하게 피며 경은 지호를 무표정하게 쳐다 보았다. 이제 다 처리가 됐을 꺼야. 다시 가봐. 경은 앉아있는 지호의 어깨를 쳐주며 암흑의 사이로 사라져 버렸다. 우지를 쥐며 지호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는 그걸 어떻게 아는데. 지호는 널브러진 시체들을 지나 한적해진 지하의 도시를 걸어 나섰다. 정부의 개가 된 것 같았다. 어떤 것 으로 어떤 목적을 역이용해 꾸며가는 연극.

“과연 너는.”

다시 달려온 타겟들을 향해 우지를 난사하는 지호였다. 아까보다는 명수가 적어서 안심이라고 생각하는 지호였다. 어느새 다시 핏물이 번지고, 비명소리가 공간을 가득가득 울렸다. 그리고 그 사이를 당당히 뚫고나오는 지호였다. 우지가 피에 푹 젖어 들어갔다.

=====

시간이없어서 끙끙

항상같이 달려주시는 분들 감사드립니다

벌써 4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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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ㅠㅠㅠㅠㅠ진짜글짱인것같아요 ㅜㅜㅜㅜ ㄹ민혁이를죽일수없는권이가안타깝네요 ㅜㅜㅜ담편도기대할게여 퓨ㅠ
11년 전
독자2
뀰이에요ㅠㅠㅠ아ㅠㅠㅠ정말 이해가 안되면서도 진짜 재밌네요ㅠㅠㅠ으으ㅠㅠㅠ
11년 전
독자3
담이에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아, 매번 재미를 주는 자까님 사랑해요... ㄷㅏ음편도 기대할게요ㅠ,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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