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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동거

w.로스트

 

(Ta-ku - American Girl (ft. Wafia))

 

 

 눈이 내렸다. 눈을 감아도 새하얀 빛이 일렁일 만큼.

정처없이 한참을 걸었다. 똑같은 풍경이 끝없이 이어졌다.

 

바스락ㅡ.

 

무언가가 계속해서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바람이 부나. 하늘을 올려다 보았지만 하늘에 달린 구름과 나뭇가지들은 마치 한 장의 필름 사진처럼 그 자리에 가만히 멈춰 서 있을 뿐이었다. 추켜올렸던 고개를 내리자 한 오래 된 나무 아래에 몸을 웅크린 채로 앉아있는 한 마리의 새가 보였다. 검은 두 눈을 지긋이 감은, 주변에 쌓인 눈처럼 하얀 몸체를 가진 조금은 커다란 새 였다. 조용히 곁으로 다가가 손을 뻗었다.

 

 

“만지지마.”

 

 

뻗은 손이 새의 근처에 닿기도 전에 뒤에서 들려온 묵직한 목소리였다. 그 묵직함 마저 너무도 익숙해 허공에 붕 뜬 손조차 어쩌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역시나 검은 양복 차림의 아버지가 서있었다.

 

 

“죽었잖아.”

 

 

하얀 눈 송이가 단번에 폭우가 되어 사방으로 들이쳤다. 풀썩. 갑작스레 옆으로 기운 새의 가녀린 몸뚱어리가 점차 녹아내려가기 시작한 눈 바닥 위로 힘없이 처박혔다.

 

 

“...엄마.”

 

 

나의 어머니였다.

 

 

‘좋은 아이로, 좋은 어른으로.’

‘......’

‘그렇게 자랄 거야, 넌.’

 

 

다급히 손을 뻗었다. 미끄러지듯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질척거리는 바닥 위로 떨어진 얇디 얇은 어머니의 손가락들을 간절히 붙잡았다. 부서질 듯 움켜쥔 어머니의 손이, 창백하게 얼어붙은 한 겨울의 나뭇가지만 같던 어머니의 손이,

 

 

매일 밤을 내가 의지하며 붙잡고 버텨왔던, 마치 그 지난 날의 온도만치 뜨거웠다.

  

 

 

[방탄소년단/박지민] 위험한 동거 F | 인스티즈

모든 것이 꿈이었다.

 

 

 

 

“......”

 

 

눈을 뜨자 보이는 건, 역시나 여주의 손이었다. 흐려진 초점과는 달리 여주의 손을 옭아매듯 붙잡은 지민의 손엔 꽤 많은 힘이 실려있었다. 분명 어젯밤까지만 해도 가볍게 손등을 감싸듯 붙잡았던 여주의 손이었다. 지민의 몽롱한 정신이 차츰 현실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지민이 천천히 고개를 들며 자연스럽게 여주의 손을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 꿈에서 보았던 장면들의 잔상이 이상하리만큼 빠르게 지민의 머릿속에서 흐릿해져가고 있었다.

 

밤새 꼬박 엎드려 잠에 든 탓에 뻣뻣히 굳어진 몸을 일으킨 지민이 여주의 방을 나와 곧장 작업실로 향했다. 그리곤 뻐근한 뒷목을 주무르며 키보드 위에 놓인 자신의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휴대폰 액정 위로 부재중 전화가 몇 통 떠있었다. 주변 지인들과 윤기에게서 걸려 온 네 통의 전화, 그리고 그 사이에 덩그러니 껴있는 지민의 아버지의 번호가 보였다.

 

 

‘아버지 미워하지마.’

 

 

지민이 조용히 통화 연결버튼을 눌렀다. 단조로운 신호 연결음이 이어졌다.

 

 

“네, 아버지.”

 

 

냉한 표정과 달리 더 없이 차분하고 나긋한 지민의 목소리였다.

 

 

-

 

 

[방탄소년단/박지민] 위험한 동거 F | 인스티즈

...뭔데, 대체.

 

 

아버지와의 통화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운 지민이 천장을 바라보며 여주의 얼굴을 떠올렸다. 어지러운 감정의 연속이었다. 처음엔 여주가 자신의 벌이라는 점에서 시작된 단순한 불편함, 그 불편함이 여주의 행동들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졌고, 여주에게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 날에도 그저 자신을 불쾌하게 만들었다는 괘씸함이 든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여주의 손을 잡을 때마다 괜스레 풀어지는 감정들하며, 어머니의 꿈에서 깨어난 뒤에도 여전히 여주의 손을 잡고 있다는 그 사실에 느껴진 안도감은 대체 무어라 설명해야 할까. 열 두번을 생각했지만 열 두번의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일어났어요?”

 

 

일단 여주의 얼굴을 봐야 뭐라도 알 수 있겠거니, 싶었다. 지민이 부엌으로 나와 혼자 살 때도 몇 번 안해본 콩나물 국까지 손수 끓여 여주의 방 문을 두드렸다. 잠깐의 정적이 이어졌고 곧 여주의 방문이 열렸다. 젖은 머리의 여주가 빼꼼히 문 틈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일어났으면 나와서 밥 먹어요. 무심히 돌아선 지민과 그 뒤를 따라 나온 여주, 그렇게 두 사람의 어색한 식사 자리가 시작되었다.

 

 

“...잘 먹을게요.”

 

 

수저질을 하는 여주의 손을 바라보았다. 다급히 전화를 받는 여주의 손을, 전화가 끊긴 뒤 다시 엉거주춤 수저를 집어드는 여주의 손을 바라보았다. 지민의 시선이 그렇게 계속해서 은밀하게, 여주의 얄쌍한 손을 따라 움직였다.

 

[방탄소년단/박지민] 위험한 동거 F | 인스티즈

잡고싶어.

 

 

마침내 지민의 머릿속을 지배한 생각이었다.

 

 

- 

 

 





여주가 멍하니 수첩 위로 툭툭, 펜촉을 두드렸다. 창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맞춰 수첩 위를 적시는 검은 잉크가 조금씩 조금씩 몸을 불렸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에게 불편한 감정을 표했던 지민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가 뭘까. 분노의 연장선이라기엔 너무도 접점이 없는 이야기에 불과했다. 그때, 여주의 방 문 너머로 두 어번의 짧은 노크 소리가 울렸다. 이번에도 역시나 지민이었다.

 

 

“바빠요?”

 

[방탄소년단/박지민] 위험한 동거 F | 인스티즈

“안 바쁘면 영화 하나만 추천해줘요.”

 

 

그래, 이 분위기. 오늘 하루 여주가 지민에게서 느낀 분위기가 딱 지금만 같았다. 갑작스레 훅 끼쳐오는, 여태껏 지민에게서 느껴보지 못했던 그런 애매모호한 분위기가 너무도 또렷이 여주의 두 눈에 보였다. 그도 그럴것이 여태껏 지민과 함께 지내며 지민만이 가진 특유의 분위기를 잘 알고있었던 여주였으니까. 여주가 지민의 얼굴을 잠시 빤히 바라보다 이내 정신을 차리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민이 그런 여주를 보며 자연스레 길을 터주듯, 몸을 틀어 여주의 방 문턱에 등을 기대섰다. 자신의 앞을 지나쳐 방을 나서는 여주의 뒤를 따라 지민이 함께 거실로 향했다.

 

 

“이 영화도 괜찮고.. 아, 이것도 재밌어요.”

 

 



 티브이 앞에 쭈그려 앉은 여주가 손수 자신의 USB까지 가져와 티브이에 연결하며 이것저것 영화에 대한 설명들을 덧붙였다. 여주의 옆에 나란히 턱을 괸 채로 무릎을 굽혀 앉은 지민이 그런 여주의 얼굴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딱히 영화 설명엔 별 관심이 없어보이는 듯한 태도였다.

 

 

“이 많은 영화를 혼자 다 봤습니까?”

“..뭐, 대부분은요.”

“안본 건 뭔데요.”

 

 

단조로운 대화 끝에 잠시 티브이 화면을 둘러보던 여주가 오래된 포스터의 영화 한 편을 가리켰다. 영화를 보는 내내 심장께가 간질거리는 생소한 느낌을 참지 못하고 결국 보던 도중 영화를 멈춰버린, 그 뒤로도 한참을 파일 한 구석에 담아두었던 90년대 로맨스 영화였다.

 

[방탄소년단/박지민] 위험한 동거 F | 인스티즈

“그럼 그걸로 보죠.”

 

 



지민이 단숨에 리모콘을 집어들어 재생 버튼을 누르며 굽혔던 무릎을 세웠다. 늦은 시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비가와서인지 어둑해진 거실에 더불어 잔잔한 빗소리까지 더해지니 왠지 고요한 한여름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듯했다. 소파로 향하는 지민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여주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방 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 여주의 뒤로 지민의 목소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어디 가요.”

“...네?”

“안 봤다면서요.”

 

[방탄소년단/박지민] 위험한 동거 F | 인스티즈

“이리와 앉아요.”

 

 

턱 짓으로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키는 지민의 표정이 덤덤했다. 마치 처음부터 함께 보기로 약속이라도 한 사람처럼. 여주의 등 뒤로 클래식한 음악 소리와 함께 영화의 첫 장면이 시작되고 있었다. 여주가 천천히 지민의 옆자리로 다가가 앉았다. 한 뼘 정도의 조그마한 공간을 남겨 둔 채였다. 티브이 화면 빛이 비춘 어두운 거실 바닥 위로 이번엔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의 실루엣이 나란이 떠있었다. 지민은 저번처럼 말 없이 티브이 화면을 응시했고, 여주는 이미 눈에 익은 영화의 첫 장면을 뒤로한 채, 잠시 다른 생각으로 정신을 돌렸다.

 

뭐라 적어야 할까.

 

영화는 맥없이 계속해서 흘러갔다. 사실 여주는 오늘 아침부터 내내 그 생각에만 빠져있었다. 왜 인지 짐작은 가지않지만 갑작스레 묘하게 변해버린 지민의 태도하며 아까도 느꼈듯 그 태도에서 뿜어져 나오는 지민의 애매한 분위기가 신경쓰였으니까. 그 분위기는 분명 지민의 어떠한 감정을 담고 있음이 분명했고 여주는 그것들을 글씨로 적어내고 싶은 강한 욕구에 이끌렸다. 그래서 알고 싶었고 또 묻고싶었다. 지민의 분위기를 바꾼 그 감정에 대해. 하지만 여주는 당연히 묻지 못했다. 지민의 감정을 알지 못하니 당연히 쓰는 것 또한 할 수 없었다. 무슨 글자로 적어내야 그 감정들을 문장이라는 테두리 안에 망가트리지 않고 담아낼 수 있을까. 어떠한 문장을 선택해야 읽기만 해도 그 감정들을 고스란히, 생생하게 다시 경험할 수 있을까. 결국 그런 끝없는 생각이 계속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방탄소년단/박지민] 위험한 동거 F | 인스티즈

 “...실수라고 할게요.”

 

 

 

 

 

 

 

[방탄소년단/박지민] 위험한 동거 F | 인스티즈

“실수는 괜찮잖아.”

 

 

 지민의 손이 여주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안았다.

 

밖에서 내리던 비가 어느새 진눈개비로, 한 떨기의 눈 송이로 떨어져 내리던 순간이었다. 짜릿한 무언가가 여주의 손 끝을 타고 올라와 이내 목울대를 간지럽혔다. 감전이라도 된듯 여주의 수많은 생각들이 단번에 지워졌다. 그리고 그 순간, 마침내 지민은 확신했다. 여태 자신이 여주에게서 느껴온 그 단순한 감정들이, 정말 단순히 사랑에 빠져드는 과정이었음을.

 

 

 

 

 

*


다들 설날은 잘 보내셨나요?

원래 설날 전에 찾아오려 했는데 사정이 생겨 조금 뒤늦게 찾아오게 되었네요 죄송합니다ㅠㅠ

이번 편은 뭔가 두 사람이 각자의 생각으로 혼돈을 느끼는 편이라 그런지 글을 쓰던 저 조차도 혼돈이 오는 느낌이었네요..

잘 정리해서 쓴다고 썼는데 왜 정신이 없는 지.. 넘나 지루하기만 한 것...

아 그리고 요즘 댓글들을 보면 대부분 지민이의 오해를 안타까워 하시는 분들이 많으시던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다들 넘 귀여우시구...

하지만 이제 지민이도 좀 과감해졌겠다, 제목도 제목인 만큼 이제 본격적으로 좀 더 위험한 그런 관계를 그려봐야 하지 않겠어여..?!

...네, 맞아요. 변태입니다ㅎ 글 쓸때마다 매번 지민이한테 사죄하게 되네요ㅎ 미안해 지미나

아 그리고 서울은 어제 또 눈이 오더라구요 길이 미끄러우니 외출하실때 다들 조심하시길..!

오늘도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편부터 다시 암호닉 신청 받아요..! : ) ♡

 

(암호닉 확인은 따로 암호닉이 정리된 게시물에서 확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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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531
미쳤다 실수라니
4년 전
독자532
진짜 저 원래 브금 잘 안듣거든요,,,, 작가님 덕분에 이 띵곡은 제 플레이리스트 n년째 보물ㅠㅠㅠㅠㅠ
3년 전
1234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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