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동거
w.로스트
(offonoff - mind)
“......”
세 사람 사이로 묵직한 정적이 맴돌았다. 정국의 인사에도 아무런 말 없이 서로 눈만 맞추고있는 두 사람을 보며 여주는 괜스레 윗니로 아랫 입술만 뭉개트렸다. 날카롭던 지민의 표정이 점차 무서우리만큼 차분해져갔다. 오히려 느긋한 얼굴로 지민을 바라보던 정국의 두 눈에 조금씩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아,”
“그, 여주 씨 아는 동생이라던?”
부드러운 모래 속을 파고드는 한 마리의 뱀처럼, 유연하게 표정을 바꾼 지민이 여전히 시선은 정국에게 둔 채로 능청스레 여주를 향해 물었다. ‘여주 씨.’ 라는 퍽 다정한 호칭까지 불러가면서. 정국이 그런 지민의 얼굴을 바라보며 지긋이 한쪽 주먹을 말아쥐었다. 지금 두 사람 사이에 한 가지의 명백한 차이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불안감이었다. 뒤늦게 위험을 감지한 정국과 이미 자신이 직면해왔던 그 위험함이 그저 헛된 위협이었음을 깨달은 지민. 그 깨달음이 지민을 한없이 여유롭게 만들었고 정국을 한없이 위태롭게 만들고 있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마침내 지민이 정국을 지나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진심도, 그렇다고 거짓도 아닌 딱 그 중간 정도의 감정을 담은 말이었다. 진심이라기엔 평소 여주의 남자친구로 인식해온 정국의 이미지가 아직 지민의 머릿속에 남아있었고, 그렇다고 거짓이라기엔 이런식으로라도 여주에게 남자친구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민의 기분이 꽤 나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지민이 외투를 벗어 부엌 의자에 대충 걸쳐놓으며 편의점 봉투에 담긴 맥주 캔들을 하나씩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맥주 캔 표면에 맺혀있던 자잘한 물방울들이 매끄럽게 탁자 위로 떨어져내렸다.
“근데 그 쪽은 집에 안 가요?”
“......”
“시간이 많이 늦었는데.”
하지만 아무리 정국이 여주의 남자친구가 아니라고 한들, 여전히 여주의 옆에 가까이 붙어있는 정국의 모습이 지민의 눈에 곱게 보일 수만은 없었다. 지민이 대뜸 자신의 손목 시계를 한번 내려다 보고는 곧장 맥주 한 캔을 따 입 안 가득 한 모금을 들이켰다. 지민의 목울대가 시원하게 넘어가는 맥주를 따라 부드럽게 요동쳤다.
“제가 그 쪽 손님으로 온 것도 아닌데 신경 끄시죠.”
괜한 오지랖 마시고. 잠시 멈춰놓았던 영화를 다시 재생시키며 여주와 소파에 앉은 정국이 그런 지민을 향해 또 한번 가시가 돋은 말들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런 정국의 모진 말투에 되려 놀란 표정을 지어보인 건 당사자인 지민이 아니라 오히려 정국의 옆에 앉아있던 여주였다. 여주와 알고 지낸 5년이란 시간 동안 단 한번도 그 흔한 욕 한 마디 조차 하지 않았던 정국이었다. 그제서야 뭔가 둘 사이의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여주가 정국의 한쪽 손을 조용히 움켜쥐었다. 어리긴 어리구나. 자기 감정 하나 못 숨기는 걸 보니. 지민이 작게 웃으며 생각했다.
“어떻게 신경을 안 씁니까. 아무리 그래도 여긴 제 집인데.”
마침내 두 사람 쪽으로 몸을 튼 지민이 여전히 여유로움이 가득 차오른 얼굴로 여주를 오롯이 바라보았다. ...아,
“이젠 우리 집이라고 해야하나?”
마치 정국을 약올리기라도 하듯, 입가에 잔잔한 미소까지 띠워 보인 채였다.
-
“그 쪽도 맥주 한 잔 할래요?”
지민이 반 쯤 남은 자신의 맥주 캔을 정국을 향해 달랑달랑 흔들어보였다. 그런 지민의 태도가 정국의 묘한 승부욕을 또 한번 자극시켰는지 정국은 흔쾌히 지민에게서 맥주 캔 하나를 받아들었다. 얼마 전 남준과 함께 만났던 그날에도 그랬듯 애초에 술이란 모든 술에는 영 몸이 받아주질 않았던 정국이었다. 그렇게 정국에게 맥주 한 캔을 건넨 지민이 이번엔 여주를 향해 맥주 하나를 내밀었다. 여주 씨도 하나 마실래요? 여주가 자연스레 지민이 건넨 맥주 캔을 향해 손을 뻗었다.
“선배는 마시지 마요.”
하지만 그런 여주의 손을 막아선 건 다름 아닌 정국의 팔이었다. 맥주 마시면 배 아프잖아. 지민의 시선이 여주의 손목을 감싸 쥔 정국의 손 위로 끈덕지게 달라붙었다. 그런 지민의 시선을 단번에 알아챈 정국이 이내 아무렇지 않은 척, 자신의 엄지 손가락으로 여주의 손목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지민의 눈썹이 미세하게 뒤틀리며 꿈틀거렸다.
“몇 살이에요?”
“스물 다섯이요.”
“어리네.”
“어린 게 아니라 젊은거죠.”
두 사람은 그렇게 한참을 맥주만 들이켰다. 대화라고 해봤자 이런식으로 몇 마디 주고받다가 댕강 끊겨버리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빈 맥주 캔들이 하나둘 바닥에 즐비하게 늘어가고 있었다. 술 기운이 조금씩 오르기 시작한 정국이었지만 그럼에도 정국은 절대 손에서 맥주 캔을 내려놓지 않았다. 여주가 그런 정국을 걱정스런 얼굴로 바라보았다. 조용히 맥주를 넘기던 지민 또한 그런 여주의 얼굴을 묵묵히 응시할 뿐이었다.
“둘이 얼마나 알고 지냈어요?”
“그건 알아서 뭐하시려고.”
“그냥 궁금해서요.”
“두 사람, 많이 친해보이길래.”
분명 지민의 질문은 정국에게로 향해있었지만 어째선지 지민의 시선은 여주의 얼굴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정국이 그런 지민의 질문에 코웃음을 치듯 살풋 고개를 숙여 웃었다.
“당연히 그 쪽보다야 오래 알고 지냈겠죠.”
물론, 먼저 좋아한 것도 내 쪽일테고.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정국은 조용히 뒷말을 삼켜내며 까득, 이를 갈았다. 자그마치 4년이었다. 여주의 글을 읽으며 단순한 동경심을 느껴오던 정국이 이젠 여주의 뒷모습만, 아니 노트북을 두드리는 여주의 손 끝만 봐도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한 게. 그저 그렇게 바라만 보기에도 너무 벅차 감히 여주를 욕심내지 못하고 여주의 주변만 빙빙 맴돌던 정국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아까부터 되게 예민하게 구시네.”
“혹시 내가 그 쪽한테 무슨 실수라도 했나?”
저 양아치 같은 놈은 대체 왜 자신보다도 더 먼저, 감히 누구 맘대로 여주를 욕심내려 하느냔 것이다. 정국이 손에 쥐고 있던 빈 맥주 캔을 보기좋게 구겨뜨리며 앞에 앉은 지민을 바라보았다. 술 기운이 실려 조금은 나른해진 정국의 표정이었지만 말투에는 여전히 지민의 말대로 예민함이 한껏 묻어나 있었다.
“그럴리가.”
둘 사이에 놓인 줄이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팽팽해져가고 있었다. 그 팽팽함을 여주 또한 느끼지 못 했을리가 없었다. 여주는 괜스레 뒷골이 당겨오는 듯한 기분이었다. 술도 들어가지 않은 멀쩡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몸이 축축 늘어지는 것이, 얼른 침대에 눕고싶다는 생각만 한가득 머릿속을 지배할 뿐이었다.
“국아, 이제 그만. 그만 마셔.”
그저 정국과 지민, 두 사람 모두가 오늘 제 정신이 아닌 게 분명하다고, 결국 여주는 그렇게 단정지었다. 두 사람의 감정을 조금도 알리가 없는 여주로써는 거기까지의 생각이 최선이었고, 가장 이해하기 쉬운 해답이 아닐리 없었으니까. 이제 집에 가야지, 너도. 먼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여주가 정국의 팔을 잡아 일으키며 정국의 손에 들린 맥주 캔을 뺏어들었다. 어느새 시간은 새벽 1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여주가 소파에 걸쳐져 있던 정국의 코트를 챙겨 건네며 자신의 휴대폰을 찾아 이리저리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아무래도 택시를 부를 생각인 듯 싶었다.
“잠깐 너 먼저 현관에 나가있어. 핸드폰만 찾아서 금방 나갈게.”
이내 여주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버리고 덩그러니 둘만 남아버린 거실에선 고요한 정적만이 둘 사이를 감돌았다. 정국은 묵묵히 자신의 코트를 챙겨 입었고, 지민 또한 자신의 검지 손가락으로 테이블 위만 툭툭 두드려댈 뿐이었다. 정국이 먼저 짧은 인사조차 없이 지민의 앞을 무시하듯 지나쳐 현관 쪽으로 향했다. 끝까지 싸가지가 없네. 지민이 슬쩍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나한테 그렇게 으르렁 댈 시간에,”
“좋아하는 티나 한번 더 내지 그래요.”
“......”
지민의 대담한 도발이었다. 덜컥, 걸음을 멈춘 정국이 그런 지민의 목소리를 따라 다시 거실 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여태까지 잘 참아오는가 싶었던 지민마저도 결국 날카로운 감정의 칼날을 가차없이 드러내던 순간이었다. 서로를 담은 두 사람의 눈동자에 누구 하나 뒤쳐지지 않는 매서운 살기가 돋아있었다.
*
분량 짧아서 미안해요..!
여행가기 전에 한편 더 올려놓고 가고싶어서 짧게라도 들고 왔어요
패기 넘치는 연하지만 막상 좋아하는 사람 앞에선 소심해지는 정국이와 연륜미를 뽐내는 지민이..를 그리고 싶었는데ㅎ 하하하 역시 제 필력의 한계란...
아무튼 전 여행갔다 돌아오면 다음주 주말 쯤에 다시 찾아오지 않을까 싶네요
짧은 여행이지만 그때까지 보고싶을거에요
그럼 여행 잘 다녀오겠습니다 : ) ♡
아 그리고 2차 암호닉 마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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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 다람이/다비/두유망개/덜렁거리는브라자/단아한사과/단멍단몽/단비/대깨민/듀크/다람이덕/둥근달/대박나자/단미(사랑스러운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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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 리본/룬/로션/란/란덕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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