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을 피하지도 그렇다고 어떤 반응을 보이지도 않는 백현이를 보니 세상이 무너진 듯 놀란 내가 너무 민망해졌어. 건조한 너의 눈빛을 피해 몸을 돌리고 가장 가까운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가 오는 버스를 확인도 하지 않은 채 타버렸지. 우리집을 가는 버스는 마을버스 09, 내가 탄 버스는 마을버스 08. 이 버스를 타고 다녔던 종대가 떠올랐어. 백현이를 만나기 위해 헤어졌던 내 ex-ex...김종대. 문득 미안해지고, 문득 따뜻해졌지. '다음 정규장에서 내려야지'라는 생각으로 창밖을 보고 있었어. 물론 여전히 백현이의 눈빛이 아른거려 마음이 아팠지만 말야. 그때였어. 내가 내리려던 정류장에서 새롭게 버스에 탄 한 사람이 너였어. 김종대.
정말 무표정하게 버스카드를 찍는 너를 보자 나는 얼굴을 가렸어. 넌 참 예쁜 사람이었잖아. 넌 참 맑은 사람이었잖아. 왜 그런 슬픈 눈을 하게 된 거니.... 죄스런 마음까지 들었어. 너가 대충 빈 자리에 앉았을 시간동안 얼굴을 가렸고, 다음 정류장에서는 기필코 내리리라 생각했어. 그러고 고개를 드니,
사진처럼 가만히 서서 나를 응시하는 너와 눈이 마주쳤어. 너는 백현이를 봤을 때의 나처럼 굳어졌고, 나는 나를 본 백현이처럼 차갑게 너에게 반응하고 싶지 않았어. 애써 웃었고, 버스는 다음 정류장을 향해 달렸지. 내리기 위해 일어났어. 웃으며 일어나는 나를 보며 예전의 너처럼 다시 웃었지.
인사도 했어. 나는 너에게 "잘 지내"라고 말했고, 너를 스쳐 버스에서 내렸어. 누구보다 후다닥 내리고 싶었지만, 애써 차분하게 행동했지. 너를 실은 버스는 나를 남겨두고 떠났어. 나는 속으로 생각했지. '오늘 마가 꼈냐, 전남친이랑 전전남친을 같은 날 길에서 마주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