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W. 코주부
오랜만에 늦잠을 푹 자보나 했는데 아침부터 요란하게 핸드폰이 울린다. 알람은 분명히 열시에 맞춰둔 것 같은데 나를 30분이나 먼저 일어나게 만들다니. 아- 졸려……. 누구야 대체.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잔뜩 인상을 구기고는 눈을 비비며 옆에 놓여있던 핸드폰을 들었다. 폴더를 열지 않아도 핸드폰 위에 뜨는 글씨가 보인다. [우지호 남편님♥♥] 아. 내가 조만간 이거 꼭 바꾼다. 남편님이 뭐야 남편님이. 어느 날 갑자기 내 핸드폰을 낚아채가더니 주소록에 저장된 자기 이름을 저 모양으로 바꿔놓은 지호. 그냥 우지호 하트하트로 타협을 보고야 말겠다고 다짐하며 핸드폰을 열었다.
“여보세요? 왜 아침부터 전화...-”
-애인! 오늘 봉사활동 가기로 했잖아! 얼른 나와야지!
“헐, 맞다!”
맞다. 오늘은 지호랑 같이 봉사활동을 가기로 약속했던 날이었다. 내일은 몇 안 되는 보충수업이 없는 날이라는 생각에 밤늦게까지 게임을 하다 잠들었는데 지호는 까먹지도 않고 잘도 기억하고 있었나보다. 헐. 아홉시 반이네. 원래는 아홉시에 만나기로 했던 것 같은데. 머리도 못 감고 나가겠다 싶어 부랴부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나 이제 일어났어! 어떡해, 나 빨리 옷 입고 나갈게. 응, 그래. 거기서 봐!’ 급하게 전화를 끊고서 욕실로 직행해 대충 고양이 세수를 하고 이를 닦았다. 밥도 못 먹고 나가서 일하게 생겼네, 아휴. 박경 바보자식.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신을 탓해봐도 어쩌겠어, 이미 늦어버린걸.
“엄마!! 나 나갔다 올게!!”
“밥도 안 먹고 어디가-!”
괜찮아! 엄마 빠이빠이-! 손을 흔들며 현관문을 박차고 집을 나섰다.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밥조차 먹지 못하고 집을 나왔지만 밖으로 나오니 기분이 또 달랐다. 이제 본격적으로 무더위의 시작이라던가. 한 낮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내리쬐는 태양의 열기가 강렬했다. 햇살은 뜨거웠지만 오랜 장마 끝에 찾아온 산뜻한 공기에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한 손에는 핸드폰을 쥐고 가벼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요즘 그 뭐지. 피오의 부끄러 웃지마였나. 그 노래 좋던데. 이어폰이 어디 있더라. 주머니를 뒤적이며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데, 내딛는 내 발자국 한 걸음 한 걸음마다 푸릇푸릇한 여름의 흔적이 남는 것만 같아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
[애인~ 대체 언제 도착해? 지호 디티고 힘두러효ㅠㅠ]
‘나 지금 버스 탔어, 한 십분 정도 걸릴 거야. 편의점에라도 들어가서 아이스티 같은 거 마시고 있어.’ 키패드를 따닥따닥 두드려가며 답장을 열심히 보냈더니 또 얼마 안 있어 바로 답장이 온다. [시로시로- 그럼 울 애인 오는 거 못 보자나!] 얘가 오늘은 아침부터 뭘 잘못 먹었나 싶을 정도로 과한 혀짧은 소리에 ‘윽 우지호 자꾸 귀여운척하면 때려 줄거야!’ 라고 답장을 했다. 그래도 괜히 웃음이 실실 나는 게 나도 싫지만은 않은가보다.
내가 예상한대로 십 분을 달려 우리가 만나기로 했던 장소에 도착했다. 우지호 저 바보는 버스에서 내리는 나를 발견하고 좋다고 달려온다. 으이구- 날도 더운데 시원한데에 들어가 있으라니까. 왜 땡볕에 서있어. 늦어서 미안한 마음과는 반대로 내 입에선 괜히 퉁명스러운 말이 튀어나왔다. 그러자 그래도 좋다고서 헤헤 웃는 우지호는 내 머리를 슬슬 쓸어주며 말한다. 조금이라도 더 일찍 보고싶어서-! 하여튼, 우지호 바보. 우리는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
“어! 근데 애인이 늦었으니까 있다가 아이스크림 쏘기다?”
“헐. 완전 도둑. 알겠어, 빨리 가자.”
웃다가 갑자기 정색을 타며 아이스크림을 쏘라고 하는 우지호. 그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기도 하니까 아이스크림쯤은 내가 산다! 나의 말에 좋다고 눈을 샐쭉하게 접어 웃는 지호의 손을 끌고서 오늘의 봉사활동 장소인 소방서로 향했다.
왜 하필이면 소방서냐고 묻는다면,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강아지를 좋아하는 지호는 유기동물 보호소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지만 내가 알레르기를 앓고 있어서 포기하게 되었고, 치매노인을 위한 봉사활동은 이미 자리가 다 차서 없단다. 공공도서관 봉사활동은 너무 조용하고 지루해서 싫다던 우지호 때문에 포기. 시청은 완전 깐깐해서 봉사활동 시간도 되게 조금 준다던데-하는 여론을 따라 일찌감치 봉사활동 대상에서 제외된 지 오래였다. 그래서 선택한 게 지호네 집에서 가까운 소방서. 와- 근데 소방차 크긴 크다. 가까이서 보니까 책에서 보던 거랑은 또 다르네. 하기야, 살면서 소방차 볼 일은 별로 없었으면 좋겠지만. 속으로 생각하며 소방서 안으로 들어갔다.
***
“애인! 애인! 이거 봐봐-!”
소방서 봉사활동이라고는 해도 별거 없었다. 다른 공공기관들과 비슷하게 이쪽 복도 쓸고 닦고 해주세요. 짧은 안내를 마치시고 소방대원 아저씨는 다시 업무를 보러 사라지셨다. 회색의 복도를 허리를 굽혀 먼지를 쓸고 있었는데 복도 끝에서 대체 뭘 하는지 혼자서 부산스러운 우지호는 연신 나를 불러댄다. ‘아 왜, 자꾸만-’ 빗자루 질을 하다말고 고개를 들어 지호가 서있는 쪽을 바라보니 바보가 대걸레를 들고 문 워크를 하고 있다. ‘어때? 나 잘하지? 잘하지!’ 오히려 진지하게 자랑하는 그 모습이 웃겨서 입에선 웃음이 터져 나왔다. 풉! 아 우지호 못 말려 진짜.
“그래 너 잘한다. 근데 빨리 걸레질 좀 하지?”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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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숨 돌리고 하자-. 어느덧 시계는 12시를 가리키고, 내 배꼽시계는 점심시간을 알리고. 한여름 정오의 태양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대지위에 부서지고 있었다. 와아- 밖에 나가면 진짜 덥겠지? 그나마 건물 안에 있어서 더위는 조금 덜 했는데, 새로운 임무가 주어져서 걱정이다. 건물 입구 계단 앞에 잠시 쪼그려 앉아서 휴식시간을 즐기고 있는데, 소방서에서 키우고 있는 진돗개 집을 청소해달라나 뭐라나. 왠 소방서 봉사활동에 개 집 청소? 그래도 소방차 세차하라고 안하는 게 어디냐고 생각했지만, 엄마야. 저 개 자꾸만 나 보고 짖어.
“경아, 내가 물 뿌릴게 개 좀 저쪽으로 데리고 가봐.”
“내, 내가?”
헐. 저 큰개는 대체 좋아서 저러는 건지 아님 그 반대인건지.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덩달아 세차게 짖는다. 다가가기도 무서운데 우지호는 목줄을 잡고 반대편으로 개를 데려다 놓으란다. 나, 나 못하겠는데-! 호스를 가지러 간 지호를 대신해 용기를 내어 한발자국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그 하얀 것이 또 다시 컹컹! 거리가 점점 더 좁혀지자 이젠 완전 자리에서 펄쩍 펄쩍 뛰어댄다. 저 개 꼭 우지호 같네. ‘애인?’ 뒤에서 지호가 걸어오는 소리와 함께 나도 재빨리 다가가 묶여있던 개의 목줄을 움켜쥐었는데……. 으악! 이게 웬 난리야. 아무래도 내가 좋아서 짖어댄건지 하얀 그 녀석은 헥헥대며 뛰어올라 내 온 팔뚝과 얼굴에 침을 발랐다. 아아, 난 몰라- 개가 버둥버둥 대며 달려든 탓에 발바닥에 묻어있던 흙이 어느새 내 노란 티셔츠위에 범벅이 되었다. 아유, 근데 좋다고 꼬리치는 이 녀석을 혼낼 수도 없고.
“헐, 애인 완전 흙투성이 됐네.”
파란색 호스를 어깨에 이고서 걸어온 지호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이 개 완전 힘세. 괜히 커다란 게 아니었어! 그렇게 소리치는 내 앞에서 우지호는 그저 푸하하-! 웃기에 바빴다. 야! 내가 그렇게 웃기냐. 이미 울상이 되어버린 나와는 다르게 지호와 흰둥이는 기분이 좋아보였다.
“웃지만 말고 어떻게 좀 해줘-”
입을 삐죽거리며 징징거리자 지호는 어깨에 매어진 호스를 바닥에 내려놓고 개를 내 곁에서 떼어내었다. 그리고 쉬이 거리며 머리를 몇 번 쓰다듬더니 얌전해진 개를 데리고 마당 한 구석에 심어진 나무 곁에 목줄을 매어두었다. 끄응- 작게 소리 내는 개가 마음에 쓰였는지 돌아서던 발걸음을 다시 돌려 머리를 쓰담쓰담. 아이 착하다- 내가 볼 땐 우지호 니가 널 쓰다듬고 있는 것 같아. 옷을 털며 생각했다. 아... 근데 이거 어떡하지. 얼굴과 팔에는 침이 잔뜩 묻어 찝찝했고, 밝은 노란색의 티셔츠엔 이미 개 발자국이 얼룩덜룩하니 여러 개 찍혀있었다. 입을 잔뜩 나와 울상 짓는 나를 발견했는지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지호가 말한다. ‘야 너도 호스로 좀 씻을래?’ 그래. 집까지 침 범벅, 흙 범벅으로 가는 것보다야 나으니까.
“자 그럼 호스 튼다?”
“오케이-”
한 손에는 파란 호스를 쥐고 한 손에는 수도꼭지를 잡은 지호가 준비 됐지? 라며 물었다. 오케이, 난 괜찮으니까 빨리 물이나 틀어줘.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우지호가 쥐고 있던 호스에선 차가운 물이 콸콸 쏟아져 나왔다. 쏴아아- 높게 쳐든 호스의 끝에선 마치 물이 빗줄기처럼 쏟아진다. ‘야! 야! 우지호! 이씨- 다 젖잖아. 똑바로 하라니까아-?’ 쏟아지는 물줄기를 피하기 위해 머리 위를 손바닥으로 가린 채 꽁지에 불이 붙은 강아지마냥 펄쩍펄쩍 마당을 도망 다녔다. 하지만 지호는 그런 내 모습이 재미있는지 웃는 얼굴로 호스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내게 물을 뿌리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이씨, 너 이리와!”
“...?!... 엄마야!”
잔뜩 약이 오른 나는 이미 다 젖어버려 피해도 소용없는 물줄기 따윈 피하지 않은 채 우지호에게 돌진했다. 너도 한번 당해봐야지! 성난 소처럼 달려드는 나를 피해 호스를 손에서 놓아버리고 도망가는 지호. 어쭈? 니가 도망을 친다 이거지? 우지호가 달려봐야 호스가 더 길었다. 호스 끝을 손가락으로 막고 수압을 올려서 우지호가 도망가는 곳까지 물줄기를 뿌려댔다. 이렇게 된 김에 너도 다 젖어버려라! 그리 멀리 도망가지 못한 지호는 자리에 멈춰서 내가 뿌려대는 물줄기를 그대로 맞았다. 아차 싶은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더니 이내 ‘아- 더운데 시원하니까 좋다!’ 라면서 지호는 두 팔 벌려 웃었다. 녀석의 미소는 마치 타는 한여름의 갈증을 해소해주는 청량음료 같았다. 그게 좋아서, 난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하고서도 좋다고 지호를 따라 함께 웃었다.
풉! 푸하하-!
아직도 쉬지 않고 쏴아아- 물을 뿌려대는 호스의 끝자락엔 희미한 무지개가 보이는 듯 했다.
***
하이헬로방가방가~
여러분 오늘은 기분이 좀 나아져서 행복한 짘경을 들고 돌아왔어요
한 겨울에 여름이야기를 쓰려니 묘사가 힘들어서 집안에서 기모맨투맨+기모후드집업에 수면양말을 신고 이불을 덮고서 글을 썼지요*-_-*
어서 잘했다고 나를 칭찬해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제 새벽엔 정말 미치게 우울했는데 오늘은 나아져서 참 다행이예요
그래요 나란여자 이런 단순한여자......☆★
행복한 이야기를 쓰면서 덩달아 행복해했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