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오후 10시 30분이에요. 여기는 뀨의 숙소구요.
“아이고 나 죽네…!”
담력훈련을 모두 마치고 숙소에 들어서자마자 성열이가 힘든 얼굴로 거실에 대자로 뻗어버려요. 뒤이어 들어오는 다섯 명도 얼빠진 얼굴로 신발을 벗어 던져버리네요. 힘들단 소리조차 아까울 만큼 체력이 방전되었나봐요.
“난 아까 씻었으니까 세수만하고 잘래.”
일행중에서도 가장 기력이 딸리는 규인네가 제일 먼저 화장실로 들어가고나면 나머지 네 명도 성열을 따라 거실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버린다.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터져나온다. 리모컨을 찾아들어 전원버튼을 누르는 성열이가 금세 밝아진 얼굴로 제 무리를 향해 선수친다.
“그래도 오늘밤은 꼭 진실게임 해야된다?”
“아, 저런 미친 새끼.”
“넌 이와중에 진실게임을 꼭 해야겠냐?”
김명수가 손을뻗어 성열이의 머리통을 밀어버린다. 성열이의 표정이 구겨진다.
“아씨, 왜 밀어! 당연한거 아냐? 수학여행을 왔으면 진실게임을 해야지, 그게 진리잖아. 인생의 진리.”
“진리는 지랄.”
잔뜩 피곤한 얼굴로 성규가 화장실에서 나오자, 담력훈련 파트너였던 우현이 걱정스러운 듯 담담히 묻는다.
“내가 이불 깔아줄까?”
“됐어 새끼야.”
맹렬한 속도로 돌아오는 쌀쌀한 반응과 함께 성규가 방문을 닫고 들어가버리자 거실에 남은 우현이 적잖이 무안했는지 어깨를 으쓱해보인다. 아무래도 성규는 아까 전 담력훈련 때문에 자존심이 많이 상했나보다. 더군다나, 남우현 앞에서 칠칠치 못하게 울어버렸으니 아무래도 자다가 이불을 뻥뻥 차댈듯.
성규와 우현사이에 흐르는 이상한 기류를 느꼈는지 성열이와 명수가 남우현을 향해 작게 중얼거렸다.
“야, 규인네 갑자기 왜 저러냐?”
“그러게, 평소에 하던 욕이랑은 느낌이 좀 다르네. 원랜 됐thㅓ thㅐ끼야…!! 아닌가.”
아아… 그렇게 됐어. 그렇게 대답하는 남우현도 피곤했는지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실게임, 한 시간있다가 시작하자.”
“콜!”
아까 전, 성규가 제 방으로 들어가버리곤 코빼기도 안비치는게 내심 마음에 걸렸는지 우현의 시선이 자꾸만 성규방문으로 돌아간다. 진실게임에 집중할수가 없다.
“내 질문! 장동우, 오늘 담력훈련때 울었냐?”
뜨끔, 남우현이 이성열쪽을 돌아다봤다. 질문을 되짚어보니, 우현의 머릿속으로 오늘 담력훈련때의 성규가 스쳐지나갔다.
오늘 김성규도 울었는데…. “아니? 난 오늘 안 울었어! 호원이랑 꼭 붙어 있었거든.”
“에이씨, 싱거워….”
질문자였던 성열이가 원하는 대답을 얻지못했는지 입을 삐쭉거렸다. 질문권을 얻은 동우가 명수에게 물었다.
“너 제일 못나온 점수가 몇점이야?”
“음… 아마… 학교생활 통틀면 19점.”
“헐, 답안지 밀려 쓴 거야?”
“아니?”
시험에서 19점받은 명수(답안지 밀려 쓴게 아님)는 그래도 떳떳한 눈치였다. 이번엔 명수가 남우현을 지목했다. 무슨 대단한 질문을 하려나 지켜보니.
“너네집 그렇게 잘 살아?”
“어, 잘살아.”
부자의 위엄이 오밤중에도 느껴지는구나, 어쩜 지 잘산다는 대답을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명수가 재차 물었다.
“얼마나 잘 사는데?”
“마음만 먹으면 니들 대학등록금 대줄 수 있어.”
“헐 그정도였냐?! 야, 앞으로 니가 형해라. 형!”
…형?
‘시발―! 니들 나 형으로 쳐준 적도 없었잖아!’
아- 미친, 왜 또 김성규 생각이. 우현은 잡생각을 떨쳐내고자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본다. 정신을 차리고보니 질문권은 남우현 자신에게 넘어와 있는 상태, 누구한테 무슨 질문을 할까 고민해둔 것도 없는데.
우현이 네 사람을 쭈욱 훑어보다가 호원에게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이호원은 입모양으로 “나?”라며 묻는다. 그 모습이 어쩐지, 오늘 저녁식사때의 이호원과 겹쳐보인다. 장동우한테 친절히 반찬까지 얹어주는….
“너 장동우 좋아하냐?”
질문은 이미 던져지고 난 뒤였고, 모두가 숨을 죽였다. “…….”
늦었다.
“…….”
호원의 대답이 늦어도 한참이나 늦었다. 숙소거실이 찬물을 끼얹어놓은듯 고요했다. 질문에서 자신의 이름이 거론된 것이 놀라웠는지 동우는 재잘거리던 입을 급히 다물었다.
답변이 나오고도 남았을 타이밍이었기에 호원이가 수상했다.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면 진작에 아니라고했을 이호원인데, 대답대신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그에게서 망설임이 느껴졌다. 대답하기 곤란해서 망설이라는거라면, 그 곤란한 대답이 혹시…. 우현은 저도 모르게 던져버린 질문때문에 호원의 입장이 난처해졌다는 걸 잘 알았다. 무심코 판을 벌려놓았으니 책임도 제가 져야하는것이었다.
하지만,
대답만큼은 듣고싶었다. 대체 왜 동우에게만 지나친 친절을 베푸는 것인지, 제 짐작대로 정말 동우를 좋아하기 때문인 건지. 확실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었다. 앞으로를 위해서라도.
“…난.”
기다리다 못한 우현이 추궁하려던 찰나에, 호원의 입이 떨어졌다.
“그냥 귀여워서 잘해주는건데, 귀여워서.”
“그…렇지, 동우가 나이답지 않게 귀엽긴 하지! 그치? 하하!”
어색한 분위기를 깨보고자했던 성열은 어색하게 웃으며 호원의 대답에 맞장구쳤다. 답변이라고 내놓은 말도 석연찮았지만 우현을 제외한 모두가 그러려니 넘기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정말, 모두들 어색한 웃음기를 머금고 있다.
하지만 남우현의 머릿속은 말이 아니었다.
귀여워서 잘해주는거라고?
귀여워서?
‘왜 형같지가 않아! 왜!’
‘너 귀여워서.’
우현은 어렴풋 스쳐가는 기억에 고개를 두어 번 흔들었다. 분명 저도 성규를 귀여워한다고 제 입으로 말했었다. 그것도 찡찡거리는 김성규 앞에서 대놓고…… 아, 자신이 정녕 제 정신이었나. 제가 괴롭힐 적마다 짜증내는 성규를 늘 귀여워했던게 사실이지만, 그런 식으로 툭 내뱉을줄이야. 그때 자신이 하고 있던 얼굴은 무심한 말투와는 상반되는 표정이라 상상만 해도 쪽팔렸다. 어두운 공간이어서 차라리 다행스러웠다.
제가 혼란스러웠던 틈을 타, 호원이 말을 이어나갔다.
“장동우 성격은 남고에 몇 없는 천연기념물급인데다가, …내 친구니까 챙기게 되는건 당연한 거 아냐?”
“…….”
챙겨준답시고 반찬까지 상냥하게 얹어주면서 달래줄 이호원이 아닐텐데, 귀찮은건 딱 질색인 녀석인 걸 나도 알고 여기 있는 모두가 다 아니까. 게다가 이호원 지금, 말이 길어졌어.
이러한 생각이 우현의 뇌리에 박혀들자, 호원의 말이 곧이곧대로 들리질 않았다.
“아까도 말했지만, 장동우는 귀여워서….”
“됐어, 알았으니까 그만해.”
호원의 말허리를 대충 끊어버렸다. 더 듣고 있어봤자 득될 것도 없었다. 말도 안되는 변명거리를 늘어놓는 이호원이 처음으로 한심해 보였다. 평소에도 동우를 귀여운 친구로만 인식해왔다면, 대답은 왜 그렇게 늦게 튀어나온 건데? 그렇게 궁상맞은 대답을 할 바에야, 차라리 잘 모르겠다고 둘러대지 그랬어?
한 가지를 더 묻고 싶었지만 우현은 꾹 참았다.
그래, 그렇다고 치자. 믿어줄테니까.
“진실게임은 너희끼리 해라, 난 피곤해서 먼저 들어갈란다.”
그리고, 김성규가 훨씬 더 귀여워.
사실 뀨는 아이들이 진실게임을 이어가는 동안에도 멀쩡한 정신으로 깨어 있었어요. 피곤해서 눈을 붙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으나, 잠이 내 뜻대로 오질 않았기 때문이죠. - 담력훈련때 제가 대체 왜 눈물을 보였을까. 그까짓 귀신탈 쓴 사람이 뭐가 무섭다고 분위기에 쓸려서는…! 뀨는 본인을 끊임없이 자책하고 있었다고 해요. 창피함에 잠도 못들고 이불만 뻥, 뻥, 차대고 있던 성규는 불꺼진 제 방 안으로 들어오는 누군가 때문에 급하게나마 자는 시늉을 해보였어요.
- 근데 어떤 씨방새가 들어온 거여? 이 방은 내방이라고 그렇게 누누히 말했는데! “뀨.”
“… ….”
“김성뀨.”
헐, 내 방에 들어온 씨방새가 설마 남우현임? 근데 저 말투는 뭐임? 김성뀨라니?
나 그럼, 자는 척 코스프레 해제해야 하는건가? 아냐, 싫어!
“자나?”
“… ….”
“진짜 자는거야?”
“… ….”
“김성규 바보멍청이.”
“… ….”
“성규야?”
“… ….”
“어기야 디여라차!”
어휴, 저 못난새끼.
“성규야, 자기야아♡” “그래, 나 안잔다 이 징그러운 놈아!”
벌떡, 상체를 재빨리 일으켜 어두컴컴한 시야 사이에 우뚝 서있는 인영쪽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나무새끼 개새끼, 너 때문에 잠 다잤다. 뭐? 자기야? 이런 미친놈을 봤나. 진실게임판에 정신을 빼놓고 온 게 분명해.
푸스스 웃는 소리가 들렸다. 넌 이상황에 웃음이 나오냐― 한 마디 보태려던 것도 부질없다싶어 눈앞에 서있는 까만덩어리를 향해 가운데손가락을 치켜들며 말했다.
“빨랑 내방에서 사라져.”
“니방 내방이 어딨어~”
시야에 가득 들어온 까만 물체가 막을 겨를도 주지 않고 뒤에서 날 끌어안았다. 팔을 이리저리 휘저어보지만 결박된 두팔이 원활이 움직일 리 만무했다.
“야, 안 꺼져? 저리가!”
“내가 촛불이냐 꺼지게~”
헐, 이건 또 어디서 배워온 슈퍼개드립?
“좋은 말 할때 떨어져라―?”
“나쁜 말해도 안 떨어질 건데.”
“끄응…!”
성규의 몸부림이 심해지는 것쯤이야 우현에겐 별로 중요치도 않았다. 성규를 끌어안은 채로 이부자리 위에 드러눕자, 얼떨결에 같이 누워버린 꼴인 성규가 저에게 뭐라뭐라 욕을 퍼붓는 것도 같았지만 그 역시도 아무렇지 않았다. 우현은 제 품에서 나오려 버둥거리는 성규가 그저 애완동물 같았다.
귀여웠다. 내 앞에서 울어버린게 쪽팔리고 분한거지? “야 남우현! 이 방은 나 혼자 쓸거라니까 어딜 기어들어와서…! 끙.”
“다른덴 다 좁단말야. 이 옆방은 성열이가 자기 예민하다고 쫓아내고 거실은 동우잠버릇 때문에 같이 못 자.”
물론 뻥이었다. 진실게임 도중에 나온 자신이 동우의 잠버릇까지 알 턱도 없고….
“그럼 부엌에서 자던가!”
“아, 인정머리없어 김성규. 질풍노도의 시기인 남우현더러 차가운 부엌바닥에서 자라니? 너무 잔인한데.”
“끄응, 내 알빠냐?”
“근데 왜 이렇게 끙끙거려~ 가만히 있자.”
“내가 미쳤다고 너랑 같은방쓰냐? 팔 좀 풀어줘, 내가 나가서 잘래.”
“이거 왜이래? 나 때문에 안자고 기다린거 아냐?”
“누, 누가 널 기다려? 미친거 아냐? 너 기다린거 아니니까 이것 좀 놓으라고 멍청아!”
성규의 언성이 높아질수록 남우현의 즐거움은 더해갔다. 성규를 가득 끌어안고 있는 팔만으로는 부족했는지 한쪽 다리를 들어 성규허벅지에 터억- 올려놓는다. 질겁하는 규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우현은 눈꼬리가 휘어지게 웃었다.
“아, 편하다.”
천하태평한 우현의 목소리가 귓전을 울리자 성규의 얼굴이 구겨졌다. 아, 이 자식을 어떻게 떼어내지?
… 별로 내 타입은 아니지만 최대한 다정하게 타일러볼까? 지금 이 상황만 모면할 수 있다면야 잠깐 쪽팔린 것쯤은…. “나무야아―?”
“왜 그래 적응안되게?”
“흐응, 이 팔 좀 풀어줘어―.”
성규는 기억을 가다듬어 동우의 말투를 떠올렸다. 주욱 늘어지는 말꼬리에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목소리와 콧소리….
는 개뿔, 씨바아알! 누가 다리미 좀 갖다줘 손좀피게!!! “장동우 따라하려는거면 관둬라― 안 어울리니까.”
성규를 끌어안은 우현의 팔에 더 큰 힘이 실렸다. 성규도 이젠 제 체력에 부쳐서는 힘이 바짝 들어간 고개를 떨어트렸다. 제 신세를 한탄하는듯한 짙은 숨이 성규의 입안을 빠져나왔다.
“아 진짜, 알았으니까 떨어져서자.”
“왜 떨어져서 자?”
“불편하니까!”
“난 안 불편한데?”
“내가 불편하다고 미친놈아!”
“괜찮아~”
“뭐가 괜찮아? 괜찮은거 하나도 없거든!?”
다시금 버둥거리던 성규의 다리가 우현으로인해 턱없이 제지당하고만다. 성규는 안그래도 오늘 있었던 여정때문에 온몸의 근육과 뼈마디가 쑤셨기에 이 이상 에너지를 소비하다간 탈진으로 쓰러져버릴지도 모를일이었다.
하, 김성규 힘들어 쥬금
명수x성열 호원x동우 두 커플의 담력훈련 비하인드 스토리 ~ + 두 커플의 잠자리 스토리 ! (음..음란하지않아요...♥) = 4편에는 현성ㅇ..ㅣ...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