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T/정재현/이동혁/이민형] 愛夢 :: 애몽 37
"켈렉."
결국 감기에 걸렸다. 이동혁이 안다면 놀라서 펄쩍 뛸 일이다. 그렇게 감기 조심하라고 말했는데.
국왕을 피해다닌 지 사흘 째다. 밖에 나가면 국왕을 마주칠까 봐, 밖에 나가지도 못한 채 교태전 안에서 콜록거리며 버티고 있는 중이다.
최악의 경우, 숙의와 국왕을 함께 마주친다면 … 그저 고개만 한 번 숙인 채 가까이 가지도 않는 나를 보고 궁녀들은 또 입을 놀리기 바쁘겠지. 어의를 불러야 할 것 같지 않냐는 어영이의 말에 고개를 내저었다. 그랬다가는 국왕이 알 거 아니야. 유치하게도 짝이 없다. 그저 피하기만 한다고 해서 일이 다 해결될 거라고 믿는 것도 아니면서, 자꾸만 피하고 있다. 그냥, 이 상황이 싫어서.
자라나는 대나무 숲처럼, 퍼져가는 민들레 씨처럼 소문은 무성하게 퍼져 나갔고, 계속해서 와전됐다. 중전이 국왕에게 버림받아서 뭐가 어쩌고. 있지도 않은 뒷이야기까지 저들이 다 만들어 이제는 정말 사실처럼 모두가 믿고 있는 분위기였다. 사흘이나 계속해서 피해 다녔으니, 이젠 뭐 내가 먼저 찾아가지도 못 하는 꼴이 돼 버렸다.
그리고 국왕은 오늘로서 사흘 째다. 나를 찾아 오는 것이.
그 날 이후로 한 번도 빠짐 없이 교태전 앞까지 왔다가 산책을 나갔다거나 아직 잔다는 둥 여러 핑계를 대며 그를 돌려보냈다. 그리고 오늘도,
"마마, 전하께서…"
"아직 잔다고 전해드려."
사흘 째 쯤 되니 댈 핑곗거리도 얼마 없다. 매일같이 잔다고 하면 그것도 좀 이상하잖아.
"마마, 전하께ㅅ…"
"잔다고 전해 드리라니ㄲ…헙."
말을 다 잇지 못하고 밀려오는 기침에 입을 막고서 콜록댔다. 홍수처럼 터져 나오는 기침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문을 등지고 병풍을 바라본 채로, 그렇게 기침만 하고 있었는데
"마마, 그게 아니ㄱ…"
"아프면 말을 하든가."
뒤이어 들려오던 어영이의 말이 끊겼고, 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당연 국왕이었고, 몸을 트어 일어나려고 하니, 나를 다시 눕히는 그였다.
"왜 이러고 있냐고."
밑에서 본 그의 얼굴은 딱딱히 굳어 있었다. 얼굴에서 웃음이 싹 가신 채로 날 보며 내 옆에 앉았다.
"…미안해요."
작게 한숨을 쉬고 마른 세수를 하던 것이 여러번, 그는 드디어 입을 열었고 그의 입에서 터져나온 말은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이었다. 사실 조금 놀랐다. 사흘동안 피해다녔다가 아픈 모습으로 그를 처음 마주했을 때, 많이 화난 모습이어서 미안하다는 말이 먼저 나올 줄은 몰랐기 때문에.
"그 때 먼저 가게 상황을 만든 것도 미안하고, 따라나가지 못한 내가 원망스럽고."
"……"
"행복을 안겨 주고 싶은데, 잘 안 돼서 미안해요."
힘겹게 꺼낸 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자꾸만 타들어가는 국왕의 입술이 보였다. 나 역시도 국왕에게 아무런 말을 못 꺼내고 있었으니, 힘겹게 꺼낸 말이 당연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의 그런 말에,
"…나갈래요?"
같은 용기를 내어 내뱉었다.
일방적인 나의 피함으로 모두 쏟아졌던 우리의 퍼즐이,
다시 맞춰질 수 있을까 하는 그런 바람으로.
*
처음에는 극구 말리며 안 된다고 하던 그가, 결국 내 센 고집에 꺾였다. 계속해서 나가자고 부추기는 내 탓에 결국 그가 두손 두발을 다 들고는 나를 일으켜 세웠다.
"ㅇ…이렇게까지는."
"들어갈래요?"
"……"
그의 말에 입을 꼭 다물었다. 내 어깨를 꼭 잡고 부축하듯 나를 이끄는 그의 손길에, 말과는 다르게 나 또한 의지하고 있었다. 몸살 감기인가, 왜 이렇게 몸에 힘이 없지. 그는 내가 계속해서 기침을 할 때마다 괜찮냐고 물어보았고,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내 왼 쪽 어깨의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간 것을.
나란히 한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던 중, 문득 생각이 났다. 전에 출궁 때, 내가 아픈 소식을 듣고 그가 밥그릇을 들고 교태전에 찾아왔던 것을.
-
"체면도 없으십니다."
"부인 앞에서 체면이 어디 있어요."
"왜 죽을 드세요?"
"심신이 미약하신 중전을 앞에 두고 저만 맛있는 거 먹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싶어서요."
-
"푸흡."
"왜 그러십니까."
"전에 전하께서 저 아플 때 죽 드시겠다고 찾아오셨던 거 생각나서요."
그 얘기를 하니, 아…. 하고는 본인도 따라 웃는다. 새하얗게 쌓인 눈들 사이로 보이는 그의 웃음은 함박눈 같았다. 같이 웃고 있는 나를 보며 그는 갑작스레 물었다.
"좋으십니까."
"네."
"저도요."
"…네?"
"좋다고요."
나란히 향하던 발걸음이 잠시 엇갈리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의 말 뜻을 이해하지 못 해 멈춰서 앞으로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고, 그는 잠시 멈춰 뒤돌아 날 보더니 입을 열었다.
"은애합니다."
그리고는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그를 보며 얼굴이 빨개진 채로, 웃음을 참아가며 멈췄던 발걸음을 앞으로 향했다.
뒤에서 본 그의 귀가, 붉게 변했기 때문에.
*
"어떤 정책이 백성들에게 더 좋을 ㅈ…"
"전하!"
저번 예비수업 시간 때 비가 와 실내에서 법도를 배웠던 때가 생각이 난다. '중전'의 자리는 한 나라의 국모이며 국왕의 비, 그리고 그의 조력자라는 최상궁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는 내게 정치 얘기를 조심스레 털어놓았고, 나는 그에게 혹여나 누가 되지 않도록 정성껏 조심조심 말을 꺼냈다.
그러던 도중,나와 그의 앞쪽에서 누군가가 국왕을 부르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뭐 누군지 안 봐도 뻔했다. 숙의였다.
"…두 분께서 무슨 말씀을 나누고 계셨습니까?"
"……정치 얘기일세."
그녀는 나를 보고도 잠시 멈칫 하다가 국왕을 향해서 고개를 한 번 까닥일 뿐 다른 행동은 취하지 않았다. 그녀의 질문에 국왕은 표정을 굳힌 채 대답을 할 생각이 없어 보이기에, 내가 입을 열었다. 정치 얘기를 하고 있었다고. 그러자 그녀는 이번에도 내 시선은 무시한 채로 계속해서 말을 걸어왔다.
"정치 이야기요? 우와아… 제게도 조금만 일러 주시면 제가 전하께 도움ㅇ…"
"무례합니다!!"
순식간이었다. 재잘대던 그녀의 입이 멈춘 것은. 나는 옆에 있는 국왕에게 시선을 옮겼고, 그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말을 이어나갔다.
"…네?"
"본래 나랏일은 나와, 국왕의 비인 중전만이 나누는 것인데. 무식하기 끝이 없네요."
처음 들어보는 차갑고도 낮은 목소리였다. 그의 말에 놀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숙의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시선을 아래로 옮겼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맺혀 아래로 추락했다.
"……저는 전하께 도움이 되고 싶어서 그런 것인ㄷ…"
"언제까지 멍청한 척을 귀여움으로 둔갑해 아양을 떨 수 있을거라 생각하십니까."
"……"
"내가 모르는 줄 아십니까."
세게 쥐어진 그녀의 주먹은 부들부들 떨렸다. 놀랐다. 국왕이 그런 말을 할 줄이야. 세상 다정했던 그였는데. 이렇게 화난 모습은 또 처음 본다 싶다. 그는 "들어가세요." 하며 나를 이끌고 그녀를 지나쳐 가기 시작했다. 괜히 내가 다 겁을 먹어 아무 말 없이 그의 힘에만 이끌려 발걸음을 하니, 그가 입을 연다.
"너무 오래 있었죠. 추우실텐데 들어갑시다."
그런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강녕전으로 향했다. 가던 도중, 뒤를 한 번 돌아보니, 나를 노려보던 그녀와 눈이 마주쳤고 그녀는 눈이 마주치자마자 뒤를 돌아 씩씩대며 자신의 처소로 향하기 시작했다.
"감기 더 심해지셨으면 어떡합니까……."
그런 그녀에게서 신경 끄기로 했다. 내 어깨에 위치한 본인의 손은 빨개졌음에도 불구하고 나부터 걱정하는 그의 손을덥썩 잡았다. 그러자 그가 놀란 눈을 하고 나를 쳐다본다.
"……왜요."
"……."
"들어가자고 하셨잖아요. 왜 안 가세요?"
"…가야죠."
일방적으로 내가 잡았던 손은, 서로 맞잡는 손이 되었고
그렇게 두 사람의 발걸음은 강녕전으로 향했다.
*
"어흐."
어우 따뜻하다. 지금 나는 교태전 근처가 아닌, 강녕전 근처에서 몸을 적셨다. 어둠은 겨울을 근거로 일찍 찾아와 하늘을 덮었고, 갑자기 거세지는 눈보라에 어쩔 수 없이 이곳. 강녕전에서 자고 가라는 국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가만히 강녕전에서 기다리자 씻고 나온 국왕이 씻으라는 손짓을 했고, 나는 괜함 어색함에 후다닥 뛰어 나오니 내가 나온 방문 뒤에서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궁녀들을 다 내보낸 탓에 혼자 있는 시간이 생겼다. 따뜻한 몸에 물을 담그니, 몸이 물과 합쳐져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지금 이동혁은 무얼 할까. 이민형은? 그러다가 며칠 전 이동혁이 내게 건넨 말이 떠올랐다. 원래 온 세계로 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 하라고. 곰곰히 생각을 해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이민형은? 이동혁은? 그리고 국왕은? 그 세계에서 없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방금처럼 이제는 혼자 있는 시간에 이 세계에 있는 사람들 생각을 하는데.
한숨을 푹 쉬다가 궁녀를 불렀다. 나가야겠다. 혼자 있다간 또 생각들이 서로 꼬리를 물고 치고 박고 싸울 것이 뻔하니, 차라리 나가는 것이 낫겠다 생각했다.
뒤따라오는 어영이의 인사를 받고는, 강녕전 안으로 들었다. 문을 열자 보이는 것은, 큰 이불 하나와 베개 두 개, 덮는 이불. 그리고 앉아서 책을 읽는 국왕이었다. 그는 내가 온 것을 보자 자신의 옆자리에 있던 이불을 치우고는 들어오라는 듯 웃어보였다.
그는 그 뒤로 책에서 시선을 뗴지 않았고, 나는 괜히 방을 둘러보기도 하고 이불을 만지작거리기도 했다. 국왕이 앉아서 책 읽는데 먼저 잘게여. 할 수는 없잖아? 그러다가
"하암."
그 짓도 질려 하품이 나왔다. 그러자 그 때가 돼서야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는 그였다.
"재밌으세요?"
"네. 재밌습니다."
"저도 읽어 볼래요."
"못 읽으실 텐데."
"? 읽을 수 있거든요?"
지금 나 무시?. 씩씩대며 그의 옆으로 가 그가 내미는 책을 건네받았다. 그런데,
"? 엥?"
한자였다. 모든 글이 한자였다. 그는 한자로 된 책을 잘도 읽고 있었다. ……이 상황을 어떡하지 싶어 아는 한자를 눈으로 찾고 있는데
"그저 여러 백성들의 삶을 기록한 것입니다."
뒤에서 훅 들어온 국왕 떄문에 얼음이 됐다. 혹여나 무거울까 힘을 주지도 빼지도 못 하는 그런 상황. 목까지 힘이 빳빳하게 들어가 완전히 빳.빳. 하고 책을 읽는 척을 하자, 그가 뒤에서 웃음에 내 몸까지 같이 흔들렸다.
"저 진짜 읽을 줄 알아요."
"읽으세요."
"심…강…?"
대충 아는 단어같이 생긴 것들을 막 읽으니 그게 또 웃긴지 웃는다. 그러다가 결국 내가 책을 내려놓고는 그의 품에서 빠져나와 내 자리에 누웠다.
"못 읽는 것이 아니라 잠이 와서 그래요 잠이 와서……."
"알겠습니다."
고개를 돌려 그를 힐끔 보자, 그의 얼굴에 하얀 종이 같은 것이 붙어있어서 결국 다시 몸을 일으켜 그에게 다가가 종이를 떼 주려 손을 뻗었다. 그런데,
"……"
"……"
가깝다.
갑자기 맴도는 묘한 분위기에, 종이를 후딱 떼고는 내 자리로 돌아와 눈을 감고 이불을 목까지 덮었다.
"안녕히 주무세요!!!"
그는 작게 실소를 터뜨리더니 곧이어 촛불을 끄고 누웠다.
"내일 아침에 제가 없어지더라도 놀라지 마세요."
"네?"
"일찍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일 때문에."
그의 말에 네.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굳게 닫긴 창문이 눈보라에 휘청였고, 거센 바람소리와 함께 창문에 보이는 나무의 그림자가 이리저리 세차게 움직였다. 괜히 무서워 눈을 꼭 감자,
"주무세요."
내 손을 잡는 그의 손길에 다시 눈을 떴다가 "주무세요."하는 말에 눈을 다시 감았다. 혼자 잤으면 무서워서 큰일 날 뻔 했네. 어휴. 다시 마음을 편하게 잡고 눈을 감았다.
오른 손에서 전해져 오는 따뜻함에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밤이었다.
*
"킁…."
아침에 눈을 뜨니 어제 그가 말한대로 그는 없었다. 문을 열고 나가 최상궁을 마주하니, 그녀 역시도 내게 말했다.
"전하께서는 아침 일찍 …"
고개를 끄덕인 후 밖으로 나와 어영이가 받아온 물로 세수를 한 후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는데,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마마."
"……어쩐 일로."
두 가지의 의미였다. 이곳에는 어쩐 일로, 그리고 어쩐 일로 내게 인사를 다 하냐고. 그러자 그녀는 한 번 씩 웃어 보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마마를 뵙고 싶어 교태전에 가니, 마마께서 강녕전에 계시다 하여 찾아왔다니다. 이따 전하께 드릴 말씀도 있으니 강녕전에 들어가시죠."
내가 들어오라고 해도 되나 싶었지만, 어차피 할 말이 있다 하기에 그러자고 했다. 이부자리가 치워진 강녕전은 늘 그랬듯 넓고 깨끗했다. 상 바로 앞에 그녀가 상을 등지고 않았고, 나 역시 그녀의 앞에 앉으니, 그녀가 말을 시작한다.
"참으로 뻔뻔하십니다."
어이없게도 그녀가 처음으로 내뱉은 말은 뻔뻔하다는 말이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그녀를 쳐다보니,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고, 그녀가 이어가는 말은
"이게 무슨 무례한짓이야."
"이동혁."
숨을 들이마셨다가
"사랑하는 사람을 떼놓고 궁에 오시느라 마음고생 꽤 하셨겠습니다?"
내뱉기조차 어려웠으리라.
! 작가의 말 ! |
어제 다 날라가서 오늘 왔음에도 예뻐해 주신다면 사랑해요 T^T..♥ 늘 좋은 글 가지고 오려 하는데 마음에 드실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헝헝.
앗, 그리고 Q&A 계속해서 많은 질문 주세요 !! 완결 전에 Q&A편만 따로 쓸 거라서 많은 질문 사랑해요 ♥^♥ = http://www.instiz.net/writing?no=4110559&page=1&k=%EC%95%A0%EB%AA%BD&stype=9
♥ 늘 부족한 제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