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현은 경영학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선배 후배 동기였으면 좋겠다. 치인트 유정 같은 느낌. 공부도 잘하고 술도 적당히 즐길 줄 알며 집안도 좋아서 달라붙는 사람들까지 많은 거. 재현이는 그걸 또 알고 자기 처신 잘하는 아이였으면 좋겠다. 재현이는 어렸을 때부터 잘한다 잘한다 소리만 들었고 또 그런 소리만 듣기 위해 노력한 애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여주는 미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선배 후배 동기였으면 좋겠다. 174는 되는 키에 마른 체격, 머리 색은 진한 파랑색깔. (가장 애틋한 색 블루에 나오는 여주인공 머리 색을 떠올리면 된다.) 귀에는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피어싱을 뚫어서 피어싱이 정말 많았으면 좋겠다. 주로 검은색 옷을 많이 입고 담배도 피고 술도 즐겼으면 좋겠다. 또 주량이 세서 웬만한 남자들이랑 견주어도 밀리지 않고 오히려 이길 정도면 좋겠다. 또 실제로 주변에 남자인 친구들이 여자들보다 많았으면 좋겠다. 재현이랑 여주랑은 대학교 2학년 말까지 교양 과목 한 번 겹쳐 본 적 없어 인연이 없는 사람들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워낙 명성이 자자해서 서로 이름은 알고 있고 페이스북에서 태그한 사진을 통해 얼굴까지는 알고 있는 사이였으면 좋겠다. 재현은 양아치 같은 여주를 보면서 안 좋은 편견 같은걸 가졌으면 좋겠다. 그에 반해 여주는 남들에게 관심이 없듯 정재현에게도 일말의 관심도 없었음 좋겠다. 2학년 말에 여주랑 정재현이 인연을 가지게 된 계기로는 여주네 무리가 기말고사 시험을 치르고 오늘 죽자라는 식으로 모인 술집에서 정재현네 무리를 만난 거였으면 좋겠다. 여주 일행 중 한 사람이 재현의 무리 중 한 사람과 오랜 연인 사이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합석하게 되고 여주는 이미 소주 한 병을 해치워서 기분이 들뜬 상태였으면 좋겠다. 정재현은 이곳저곳 자리를 찾다가 자신을 부르는 사람이 저를 쫓아다니면서 애정을 갈구하던 여성이라 자연스럽게 거절하며 하는 수 없이 여주 옆자리에 앉았으면 좋겠다. 술자리가 무르익고 여러개의 벌칙주가 오고 가고 남은 사람은 몇 명도 채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근데 그마저들도 정신이 온전치 못 해서 지들끼리 농담하고 웃었으면 좋겠다. 당연히 소주가 센 여주는 맨정신으로 살아있고 술조절을 잘한 재현이도 맨정신으로 살아있으면 좋겠다. 여주가 정재현을 바라보고 정재현도 여주를 바라보다가 여주가 문득 이렇게 물었으면 좋겠다. "야. 너 술 잘해?" "못하는 건 아니고." "한 잔 따라봐." 재현은 의외로 여주의 얇은 목소리에 놀랐으면 좋겠다. 재현이는 살짝 취기가 돌아 얼굴이 복숭아처럼 붉어져 있었으면 좋겠다. 자연스럽게 여주의 술잔에 소주를 가득 따라주고 소주를 내려놓으면 여주는 낚아채서 재현이 잔에 술을 따라주겠지. 그 모습을 보면서 재현은 거절을 할까 하다가 그냥 한 잔 꿀떡 삼켰으면 좋겠다. 여주랑 유리잔을 짠 하고 부딛히고 소주를 삼키면 올라가는 고개에따라 시선을 내리깔며 눈 꼭 감고 쓴 소주를 음미하는 여주를 바라봤으면 좋겠다. 여주의 바다 같은 머리부터 여주를 훑다가 문득 부드러운 굴곡이 남은 콧대에서 예쁘다라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다. 거기서 묘한 감정을 느낀 재현의 볼이 조금 더 상기되었으면 좋겠다. 재현이는 그걸 가리려고 소주병을 붙잡아 재빠르게 술을 따르고. 술을 마시는 순간마다 여주의 여러곳곳을 사진 찍듯 기억하며 쳐다 봤으면 좋겠다. 야한 생각이 아니라 정말 순수하게 여주를 신기해하고 궁금해했으면 좋겠다. 순간 호기심이 든 거지. 그냥 단순한 호기심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어느새 고개를 테이블에 파뭍은 제현이 헤실헤실 웃었으면 좋겠다. 조금 덜 취한 애들이 취한 애들을 데리고 가는 형식으로 마지막엔 여주와 재현만 남아 술씨름을 하다가 재현이 먼저 꼬꾸라진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