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12
"… 들었어?"
"어어… 그러니까 그게……."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인 걸까. 화장실을 가려고 나오던 순간 들리는 도영과 태용의 목소리에 문 뒤로 내 모습을 감추었다. 내가 왜 그랬는진 나도 모르겠다. 근데 그러니까…… 내가 어, 들어버렸다. 나 김시민 좋아해. 그래. 그렇게 말하던 도영의 고백을 내가 의도치 않게 들어버렸고 내 앞에서 걸어오던 정재현이 김시민 너 뭐해? 라고 큰 소리를 내는 바람에 밖에 서 있던 도영과 태용이 내 존재를 알아버리고 만 거다. 정재현 저놈의 주둥아리를 어떻게 하지? 어? 널 어떻게 하면 좋을까 재현아?
"아, 맞다. 나는 선생님이 불러서 이만…."
제게로 향한 내 시선을 눈치챈 것인지 정재현은 머리를 긁적이다 선생님 핑계를 대며 이 자리를 벗어났다. 혼자 빠져나가는 게 어디 있냐고 진짜. 정말 최대한 천천히 걸으며 복도로 나갔는데. 태용은 내게 해맑게 웃으며 인사를 한 번 하더니 그대로 제 반으로 가버렸다. 야, 야 이태용 넌 또 어디 가…. 갈 거면 같이 가자니까? (울먹) 나는 도영이와 최대한 거리를 멀리 떨어져 서 있었다. 그래서인지 도영이가 어떤 얼굴인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얼굴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고개를 푹 숙였다.
"대답은 안 할 거야?"
"응?"
"시민아."
나를 부르는 도영의 목소리에 침을 꼴깍 삼켰다. 고개를 들었다. 진지한 시선이 내게 닿는다. 긴장해 어깨가 바짝 올라갔다.
"나 너 좋아해."
여름날의 바람이 창을 타고 불어와 코끝을 건드린다.
"모든 게 처음이라서 네가 답답할 수도 있는데."
코끝을 건드린 바람에서 네 향기가 난다.
"그래도 괜찮으면 우리……"
발갛게 달아오른 두 귀가 내 눈에 들어왔다. 너는 말할 듯 말 듯 입술을 달싹인다. 나만 긴장한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긴장이 풀리면서 바짝 올라가있던 어깨가 한결 가벼워졌다. 나는 내 눈을 똑바로 마주하지 못 하는 너의 모습을 보고 웃고 만다.
"사귈래?"
"어어, 어?"
"나도 너 좋아해. 도영아."
그리고 입을 연다. 누가 먼저 고백하던지 그런 건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서로 좋아하고 있다는 것.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 사람이 바로 내 앞에 서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느릿하게 걸어 네 앞에 섰다. 그제야 네 고개가 위로 들린다. 그리고 나는 너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꽈악 안았다. 당황했는지 머리 위로 버벅거리는 너의 음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곧 너의 긴 팔이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네 품은 생각보다 더 넓고 따뜻했다. 덥지 않았다. 신기하고 이상한 날이었다. 팔을 스치기만 해도 짜증이 솟구치는 그런 날씨였는데. 이상하게도 너를 안은 그 순간은 덥지 않았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진정 내가 그대 가까이 다가서는 만큼
이 세상이 아름다워질 수 있다면
그리하여 마침내 그대와 내가
하나 되어 우리라고 이름 부를 수 있는
그날이 온다면
봄이 올 때까지는 저 들에 쌓인 눈이
우리를 덮어줄 따스한 이불이라는 것도
나는 잊지 않으리
문학 시간이었다. 주번이라는 이유로 도영이가 시를 읽었고, 선생님은 칠판에 시를 쓰다 말고 입을 열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이었다.
"도영이는 좋아하는 사람 있니?"
"네?"
한껏 당황한 표정이 얼굴이 드러난다. 반 아이들이 하나같이 다들 킥킥거렸다. 어디선가 내 이름이 들린 것 같기도 했다. 내가 도영이를 안은 것까진 좋았는데, 우리 둘 다 생각 못한 게 있다면 그건 바로 장소였다. 고백을 하고 사귀기로 했던 그 장소는 복도였다. 그리고 쉬는 시간이었지. 보는 시선이 많다는 걸 그땐 왜 몰랐을까. 우리가 사귀게 된 지 1시간 밖에 안 된 지금 우리는 교내에서 가장 유명한 커플이 되었다.
"소문의 주인공이 되신 심정은?"
"그 입 안 다무냐?"
내 옆에 앉은 정재현은 시도 때도 없이 놀려댔고 박수영은 별 반응이 없었다. 자기는 사귈 줄 알았다나 뭐라나. 이민형 반응도 똑같았다. 급식실에서 마주한 태용이는 전과 똑같이 나를 대해주었다. 사실 자기도 사귈 줄 알았다는 말을 하면서. 아니 그럼 뭐야? 나만 몰랐어? 니들은 어떻게 알았는데? 입안 가득한 밥을 꼭꼭 씹으며 물어본 내 질문에 서로 묘한 눈으로 시선을 주고받다가도 이상한 미소를 띤 채 그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서로 장난을 치며 웃고 떠들었다. 평소와 똑같은 날이었지만 달라진 게 있다면 그건 동영이와 내 사이였다. 처음엔 끝과 끝자리였는데 어느새 도영인 내 옆자리에 앉아있다. 그 사실이 실감이 안 나서 몇 번이고 도영이한테 묻곤 했다.
우리 사귀는 거 맞지?
그때마다 도영인 바람 빠진 웃음을 흘려보내며 입을 열었다.
응, 맞아. 우리 사귀는 사이.
그렇게 말하며 내 손을 잡는 도영이가 좋았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Fin
어니언's
안녕하세요 여러분 어니언입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끝났네요. (짝짝)
사실 쓰면서 제일 걱정했던 게 약간 아니 조금 많이 오글거리면 어떡하나 생각이 들었어요. 독자님들은 어떻게 읽으셨는지 궁금하네요.
마지막 편인데 되게 짧게 끝내는 거 같아서 조금 시원 섭섭한 느낌이에요.
연인의 모습인 도영이와 시민이의 모습을 많이 그리고 싶었지만 더 오글거릴까봐 실패.
후기는 내일 밤에 올릴게요. 그때 또 봐요 여러분 - !
오늘은 재현니가 정글에 가는... 그런 날... (울컥) 슬퍼지네요...
그냥 어니언으로 계속 쓸까요 필명을 바꿀까요ㅠㅠ 이거 진짜 최대 고민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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