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다 젖었네. "
" 그러게,나도... "
방으로 들어온 우현과 성규. 장대비에 한 우산으로 사내 두 명이 써서 그런지 온 몸이 축축하게 젖어버렸다.
이미 우현의 와이셔츠와 안에 입은 하얀 반팔티는 빗물에 젖어 우현의 몸에 찰싹 붙어있었다. 성규가 입은 가디건도 젖어있었고 머리칼도 비에 젖어 축축해졌다.
서랍을 뒤져 회색 츄리닝바지와 하얀 반팔티,속옷을 성규에게 건네자 성규가 먼저 샤워를 하겠다고 말했다.
" 샤워 ? 천상사람들은 기분 안 좋을때만 한다고 하지않았나 ? ...너 지금 기분 안 좋냐 ? "
우현이 약간 근심이 어린 목소리로 묻자 성규가 아니라며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 ...그냥...기분이 자꾸 이상해져서 ..."
" 왜 ? 잉란에 대한 거야 ? "
" 아니...그게..."
그냥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다. 좋은 것도 아니고 암튼 그렇다고 나쁜 것도 아니고...늘 안정적이던 가슴이 오늘따라 이상하게 콩닥콩닥 소리가 들릴정도로 거세다. 샤워하고 나와서 얼른 이 기분을 노트에 적어야겠다.
*
성규가 샤워하는동안 우현은 침대가 젖건 말건 대충 수건을 깔고 철퍽 침대에 앉았다. 빗소리와 화장실에서 들려오는 물소리가 자꾸 기분을이상하게 만들었다.
비가 와서 감성이 촉촉해졌나 ? 우현이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있을때 화장실에서 '우현아!'하고 자신을 부르는 성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다 씻었나싶어 화장실로 다가가자 문을 빼꼼히 열고 얼굴만 내민 성규가 '나 물기 닦을 것 좀..'하고 손을 내밀었다.
" 어 ? 어어...존나 자,잠깐만... "
거실 테이블에 엄마가 곱게 개놓은 수건을 아무렇게나 집어간 우현이 화장실로 다가가는 순간 화들짝 당황하며 얼른 눈을 내리깔고 더듬거리며 수건을 건넸다.
성규 딴에는 나름 가린다고 문뒤에 숨어 빼꼼히 고개만 내민거겠지만 뒤에 있는 거울을 통해 성규의 뒷태가 훤히 보인다.
다행히 수증기가 서려있어서 엉덩이 부분부턴 뿌옇게 보였지만 살짝 보인 등판은 구름만큼 하얗고 뽀얗게 빛나고 있었다. 수건을 받아든 성규가 문을 닫았고 문 닫는 소리에 정신이 든 우현이 후다닥 방으로 향했다.
" 아,미친... "
못 견딜 정도로 더운 날이면 동우와 함께,혹은 명수와 함께 목욕탕으로 갔을때 흔히 보던 남자의 몸인데 성규의 뽀얀 몸을 보는 순간 뭔가 기분이 묘한 건 사실이다.
우현이 손을 쥐었다피는 걸 반복하며 자꾸만 더운 느낌이 들어 미니 에어컨의 전원을 켰다. 몇 분 뒤, 샤워를 마친 성규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 우현아,다 씻었어."
" 어어...너 헤어드라이기 안 쓰냐 ? "
" 그게 뭔데 ? 근데 물이 좀 이상한 것 같아. 천상에서는 한번만 털어도 보송보송했는데 계속 축축해..."
수건으로 머리를 부비적거리던 성규가 축축한 머리칼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울상을 지었다.천상에서는 샤워한 뒤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한번만 대충 털고 바람이 통하게 흔들어주면 바로 보송보송하게 말랐었다.
" 멍청아.천상이랑 여기랑 같냐 ? 맨날 까먹어 ? "
" 아아...맞다."
" ...여기 바닥에 앉아봐.침대에 등 기대고. "
성규가 군말없이 침대에 등을 기댄채 바닥에 앉자 우현이 화장실로가 구석에 박혀있던 헤어드라이기를 집어들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돌돌돌 말린 줄을 풀고 콘센트에 코드를 꽂은 우현이 침대위로 올라가 성규의 뒤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전원을 올리자 '위우우웅'하며 바람이 나오기 시작했고 갑자기 느껴져오는 따뜻한 바람에 성규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성규의 머리칼을 꼼꼼히 말려주던 우현이 뭔가 이상한 느낌에 물었다.
" ...킁킁...야, 너 샴푸 뭐썼냐 ? 화장실에 이런 냄새나는건 없을텐데... "
향긋하고 달달한 냄새가 폴폴 풍긴다.
샴푸에 약간씩 남아있는 화학냄새나 세제냄새가 아닌 뭔가...말로 표현하긴 애매한 부담없이 좋은 냄새.
" 샴푸 ? 나 그런 거 안 쓰는데... "
" 그럼 ? "
" 우린 그냥 물로 씻어.그걸로도 충분히 깨끗하거든."
" 아,그래 ?..."
" 근데... 이거 기분 좋다... "
성규가 눈을 감고 히이~웃으며 말했다.
에어컨에서 나오는 보송보송한 냉기와 섞여서 느껴지는 따뜻한 바람. 그리고 무심한 듯 세심하게 머리를 말려주는 우현의 손길에 자꾸만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힘없이 꾸벅거리는 성규의 머리통에 우현이 키득웃으며 슬쩍 바람을 머리에 가까이 갖다댔다.
" 앗뜨!!! "
" 다 됐어. 나 씻으러간다."
성규의 머리를 대충 헤집어준 우현이 헤어드라이기를 뽑아 돌돌말며 욕실로 향했다. 우현이 나간 후 아직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는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린 성규의 얼굴이 갑자기 붉어졌다.
" ...으으..."
기분이 또 이상해졌어.
*
동우를 병원에 데려다준 명수가 젖은 우산을 탈탈 털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아,벌써부터 심장이 떨려온다. 안에서 또 그 무지막지한 성열이 들어있다니...고개를 내저으며 도어락을 푼 명수가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 나왔다."
뭐가 이래.
TV의 볼륨은 귀가 찢어질 정도로 크게 틀어져있었고 소파에 올려져있었던 쿠션은 바닥에, 잡지는 펼쳐놓은 그대로. 아무도 없는 화장실에는 물이 틀어져있었고 불도 환히 켜져있어서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만 윙윙 울려댔다. 현관문에 서서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신발을 거칠게 벗은 명수가 자신의 방은 얼마나 어지럽혀있을지 상상을하며 쿵쿵 거리는 발걸음으로 다가가 자신의 방문을 열었다.
" 야 !!! "
" ....... "
예상외로 깨끗한 방의 모습. 침대로 고개를 돌리자 웅크린 자세로 새근새근 자고 있는 성열이 보였다. 지금 어지럽혀놓고 자는 척 하는 건가 ? '허!'하며 헛숨을 뱉은 명수가 침대로 걸어가 잠자는 성열의 하얀 볼따구를 검지로 쿡 찔렀다.
" 으음..."
" 야.자는 척 하지 말고 일어나. "
" ...... "
" 이성열. 진짜 얼른 일어나서 저거 치워. 안 그러면 너 진짜 내쫓는다."
" ...... "
응? 진짜 자나 ?
명수가 다시 한번 성열이의 볼따구를 쿡 찔렀다. 인상을 쓰며 볼을 긁적거린 성열이 잠시 뒤척이더니.다시 잔다.
" 아이씨,진짜... "
결국 가방을 벗어놓고 거실로 향한 명수가 하나하나 차근차근 다시 원래대로 정리를 하며 궁시렁거렸다.
어지르는 사람따로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있나.성규형은 착해보이는데 저 놈은 왜 저 지랄이야...
대충 거실 정리가 끝나고 화장실의 물과 불을 끈 명수가 정리를 마쳤을때 성열이 눈을 비비며 명수의 방에서 걸어나왔다.
" 어 ? 김명수왔네.심심해죽을뻔했는데 다행이다..."
" 야. 넌 어질렀으면 좀 치워야할 거 아냐. "
" 안 어질렀는데 ? 깨끗하구만. "
" 방금 내가 치웠거든 ? "
" 으으...심심해."
그러던 말던 성열이 소파에 털썩 누워 발을 동동동 굴렀다.
" 너 천사 맞는거지 ? 그치 ? "
" 뭐래,갑자기. "
" 이딴 천사가 어딨어,세상에."
명수가 혀를 차며 비에 젖어 찝찝한 와이셔츠를 들고 베란다에 놓인 세탁기에 집어넣었다.
" 천사들은 인간을 즐겁게 해주고 기쁘게 해주고 지켜주는 그런 게 천사 아니냐 ? "
" 내가 널 왜 즐겁고 기쁘고 지켜줘야하는데. "
" 헐 ? 적반하장 좀 쩔게 한다 ? 너 여기 우리집이잖아.우리집에 얹혀사는 주제에 어지르기나 하고...정신연령은 아직 초등학생이냐 ? "
" 까분다. 시끄러워. 재밌는거나 보여줘봐. 뭐,신기한 것도 괜찮고. 너네집은 너무 지루해. "
명수의 속이 부글부글부글 끓기시작했다. 더 이상 말을 섞다간 먼저 한 대 칠 것 같아서 분을 삭히며 갈아입을 옷을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후다닥 샤워를 마친 명수가 적당히 근육잡힌 팔뚝이 드러나는 검은색 민소매티와 축구바지를 입고 밖으로 나왔다. 소파에 누워있던 성열이 그 모습을 보며 '오,어쭈. 근육 좀 있다'하며 비웃자 머쓱해진 명수가 손으로 팔뚝을 슥슥 비비며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명수가 학교에 있는 내내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낸 성열은 명수를 따라 졸졸졸 따라갔다.
책장에서 만화책을 대량으로 뽑은 명수가 침대에 누워 만화책을 정독하기 시작했다. 그런 명수 옆에서 심심한 듯 명수를 빤히 쳐다보는 성열이. 한참을 쳐다봤는데도 명수의 눈은 만화책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결국 성열이 먼저 명수를 툭툭 건드린다.
" 왜 또. "
" 나 심심하다고. 너 학교가있는 내내 나 혼자 집에 있었잖아. "
" 그래서 어지르고 잘 놀았잖아. "
" 장난하냐 ? 넌 혼자 놀면 재밌디 ? "
" 어,재밌어. 그러니깐 저리가. "
성열에게서 떨어져 벽쪽으로 붙은 명수가 다시 만화책에 빠지자 성열이 침대위로 휙 올라갔다.그리고는 명수에게 다가가 괜히 검지로 옆구리도 찔러보고 볼도 꾸욱꾸욱 누르고 코도 찌르고 입으로 바람을 불어 눈을 맵게해봐도 꿈쩍하지않는 명수였다. 사실 굉장히 짜증났지만 반응했다간 성열의 놀잇감이 될 것 같아 꾸욱 참으며 만화책에 집중했다.
" 진짜 이러기냐 ? "
" ...... "
" 너 그 야한 거 나오는 그거 다른 사람들한테 소문 낼꺼야. "
명수가 움찔하는걸 느낀 성열이 씨익 웃더니 자신의 얼굴을 스윽 명수에게 들이대기시작했다.
처음엔 또 바람을 불겠거니하며 가만히 있던 명수가 성열이 점점 가까이오자 슬슬 뒤로 물러나기시작했다.
" 야,야. 왜,왜 이래.. "
" 그 인간들이 이렇게 했었나 ? "
" 아,알았어 !!! 놀아주면 되잖아!!! "
결국 만화책을 신경질적으로 접은 명수에 성열이 자주 써먹어야겠다고 다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나가자. "
" 뭐 ? 미쳤냐 ? 밖에 비오고 어두워졌는데 무슨 ... "
" 아이씨...그럼...음. "
심심하다고 징징댄 성열이였지만 명수가 놀아준다고 하니깐 막상 딱히 할 만한게 떠오르지않았다.
" 뭐 없나..."
" 야.난 저녁밥 먹을 꺼니깐 그거 구경이라도 하던가. "
" 오.좋아. "
*
부모님들도 집에 자주 들리지않고 명수도 그렇게 끼니를 꼬박꼬박 챙겨먹는 타입이 아니라 거의 배달음식아니면 라면을 먹곤 했다.평소처럼 라면을 먹으려다가 자신의 옆에 찰싹 붙은 상태로 부엌여기저기를 만져대는 성열에게 물었다.
" 너도 저녁 먹을꺼냐 ? "
" 저녁 ? 뭔데 ? "
" 이거 . 라면. "
" 뭐야."
명수의 손에 들린 라면 봉지의 그림을 본 성열이 ' 뭐가 이렇게 생겼어.쓰레기마냥.'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쓰레기라는 말에 자존심이 상한 명수가 성열의 손에서 라면을 홱 빼앗아갔다.
" 먹기싫음말고."
" 나 그거 먹고 싶어.그거. "
" 아오.식충...뭐가 먹고싶은데. "
" 그 뭐냐,아. 까먹었다.아,그 너 만났을때 먹은 거 그 빨간건데 막 말랑말랑하고... "
" 떡볶이 ? "
" 어어어어 !그거그거 ! 그거 먹고싶어.해줘. "
성열이 떡볶이란 말에 해맑게 웃으며 해달라고 졸랐다. 하지만 집에 떡볶이 재료는 커녕 가장 기초적인 떡도 없다. 명수가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대답했다.
" 미안한데 실현가능한 걸...아,분식집 전단지 어디서 본 것 같은데. "
가스레인지 옆에 라면을 얹어놓은 명수가 전단지를 모아놓은 박스를 뒤져 분식집 전단지를 찾아냈다. 하지만 커다랗게 쓰여있는 '2만원 이상만 배달'
'어떻게 두 사람이 2만원 어치나 먹어...'하며 전단지를 내려놓으려던 명수가 성열을 힐끗 보고는 마음이 변했다.
" 저 식충이라면 먹고도 남을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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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신작알림필수!!!!!!!!
연재는 8~10시 사이에!!!!!우어어억!!!!!!
이제 야동나오니깐 어서 댓글!!!!!!!!!!!!!!!!!!!!!!!!!!
꺄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