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모님들도 집에 자주 들리지않고 명수도 그렇게 끼니를 꼬박꼬박 챙겨먹는 타입이 아니라 거의 배달음식아니면 라면을 먹곤 했다.
평소처럼 라면을 먹으려다가 자신의 옆에 찰싹 붙은 상태로 부엌여기저기를 만져대는 성열에게 물었다.
" 너도 저녁 먹을꺼냐 ? "
" 저녁 ? 뭔데 ? "
" 이거 . 라면. "
" 뭐야."
명수의 손에 들린 라면 봉지의 그림을 본 성열이 ' 뭐가 이렇게 생겼어.쓰레기마냥.'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쓰레기라는 말에 자존심이 상한 명수가 성열의 손에서 라면을 홱 빼앗아갔다.
" 먹기싫음말고."
" 나 그거 먹고 싶어.그거. "
" 아오.식충...뭐가 먹고싶은데. "
" 그 뭐냐,아. 까먹었다.아,그 너 만났을때 먹은 거 그 빨간건데 막 말랑말랑하고... "
" 떡볶이 ? "
" 어어어어 !그거그거 ! 그거 먹고싶어.해줘. "
성열이 떡볶이란 말에 해맑게 웃으며 해달라고 졸랐다. 하지만 집에 떡볶이 재료는 커녕 가장 기초적인 떡도 없다. 명수가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대답했다.
" 미안한데 실현가능한 걸...아,분식집 전단지 어디서 본 것 같은데. "
가스레인지 옆에 라면을 얹어놓은 명수가 전단지를 모아놓은 박스를 뒤져 분식집 전단지를 찾아냈다.
하지만 커다랗게 쓰여있는 '2만원 이상만 배달'
'어떻게 두 사람이 2만원어치나...'하며 전단지를 내려놓으려던 명수가 성열을 힐끗 보고는 마음이 변했다.
" 저 식충이라면 먹고도 남을꺼야."
*
" 야 ! 그거 그렇게 만지지말라고 !! "
떡볶이를 먹을때 썼던 포크와 컵을 설거지하던 명수가 높은 선반에 놓인 유리 공예품을 툭툭 건들이는 성열이 때문에
화들짝 놀라며 달려와 성열을 끌어다 소파에 앉혔다.
" 아,왜 맘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게해."
" 누가 움직이지말랬냐 ? 맘대로 만지지말라고.저거 깨지면 어쩌려고 그래. "
" 안 깨졌잖아. 엄살은... "
아, 빡이 터온다. 진심 성인군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명수가 콧바람을 내쉬며 그냥 앉아있으라고 으르렁 거린뒤 다시 싱크대로 향해 설거지를 끝마쳤다.
손을 탈탈 털고 싱크대 서랍에 매달려있는 수건에 손을 닦자마자 전화벨이 울려댄다.
그 소리를 듣고 가만히 있을 성열이 아니기에 명수가 먼저 후다닥 달려가 전화기를 들었다.
" 여보세요 ? "
[ 어,아들. 엄마야. ]
" 어어."
[ 아휴. 갑자기 일이 몰리는 바람에 이렇게 되버렸네.밥은 꼬박꼬박 챙겨먹구 있는거야 ? ]
" 오오...뭐하는거야 ? "
성열이 명수의 옆으로 다가와 귀를 바짝대고 자신도 듣겠다며 칭얼댔다.
수화기를 막은 명수가 '아오,좀 저리 떨어져봐.'하며 성열을 옆으로 밀치고 다시 말을 이었다.
" 어어.잘먹고있어."
[ 근데 집에 누구 있니 ? ]
" 어 ? 아~! 친구..어,친구있어."
[ 그래. 너 용돈 넣었으니깐 확인해보고 일 끝나는대로 바로 올라갈께.아빠한테 전화 없었니 ? ]
" 응.아직."
[ 응. 엄마 바쁘니깐 전화 못 받을 수도 있어 ! 문자남겨,아들.]
" 어어.알았어."
전화를 끊자마자 성열이 바로 달려와 이것저것물어댄다.
" 이게 뭐야 ? 뭐하는 거야 ? "
" 진짜 그냥 말하면 안돼 ? 왜 이렇게 들이대면서... "
자신의 어깨에 턱이 닿을듯말듯한 성열을 밀어낸 명수가 거실불을 끄고 자신의 방으로 향해 침대에 누웠다.
" 자게 ? "
" 엉.난 내일 학교가야돼.넌 더 놀다가 자던지. "
" 왜 자는데 ? "
" 졸리니까 자지."
" 왜 졸려 ? "
" 오늘 하루종일 학교 있었으니깐 졸립지."
" 왜 학교에 있으면 졸려 ? "
" 당연히 그건 ...야!! "
" 아잌.."
" 나 잘꺼니까 조용히해.어지르지마,진짜."
선풍기를 틀고 자리를 정리한 명수를 빤히 보던 성열이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 야,김명수.근데 니가 거기서 자면 난 어디서 자. "
" 바닥에 이불깔고. "
" 뭐 ? 감히 나같은 천사님을 이런 누추한 바닥에서 잠을 자라고 ? "
" 누추 ? 죽을래 ? 그리고 넌 아까 낮에 잤잖아. 그냥 밤 새.천사니깐 괜찮을 것 아냐. "
" 천사도 피곤하거든 ? 싫어.내려와.나 침대에서 잘 거야. "
" 내 침대인데 왜 너가 자 ? "
" 그럼 여기 방바닥도 니 방바닥인데 왜 바닥에서 자는건 되냐,이 멍충아? "
" 아아아아아.암튼 싫어.너가 엊그제부터 침대에서 잤잖아. 그래서 내가 바닥에 이불깔고 잤고.그러니깐 오늘은 내가 침대에서 잘꺼야.잘자라,성열아~"
비웃음을 날려준 명수가 쿠션을 다리사이에 끼고 눕더니 눈을 감았다. 진짜 잘 모양인지 점점 숨소리가 고르게 변했다.
" 야,나 천상에서도 바닥에서 안 잤어. "
" 바닥도 폭신폭신해."
" 하긴..니 침대 너~무~너무 작더라.키작은 너한테는 맞을지 몰라도 키 큰 나한텐 안 맞더라구~ "
" ...... "
키얘기에 불끈하며 일어날뻔한 명수가 마음을 다스리는 심호흡을 하며 벽쪽을 보고 돌아누웠다.
" 아이씨,진짜. "
" ...... "
" 야,김명수."
" ...... "
'그럼 나도 침대에서 잘꺼야'하며 성열이 꾸역꾸역 침대에 올라오더니 명수의 베게를 홱 잡아당겨 자신의 머리를 눕혔다. 갑자기 쑤욱하고 빠진 베게때문에 머리를
덜컹한 명수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 야 ! 뭐하는 짓이야.얼른 내려가. "
" ....... "
" 야,내려가라고,좀."
" ...... "
" 진짜...넌... "
" ...... "
결국 명수가 투덜거리며 침대밑으로 내려와 이불을 깔고 누웠다.
잠시후 침대위에서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오더니 ' 잘자~명수야~'하는 성열의 웃음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편 빡침과 티격태격이 오고가는 명수의 방과 달리 달달하고 야릇한 우현이네방.
성규의 머리를 말려준 뒤 샤워를 하고온 우현이 방문을 열자마자 멈칫했다.
아까 침대에 기대있던 그 상태로 고개를 푹 숙인 채 잠이든 성규가 바닥에 널부려져있었기때문이다.
" 얜 졸리면 이불깔고 자지..."
머리를 탈탈 턴 우현이 쪼그려앉아 성규의 어깨를 잡고 살살 흔들었다.
" 야야. 일어나봐..여기서 자면... "
" ...... "
우현딴에는 살살 흔든다고 흔든건데 성규의 고개가 흔들흔들거리면서 우현쪽으로 기울더니 얼마안가 우현의 어깨로 쏙 떨어졌다.
어깨에서 자신의 얼굴쪽으로 고개를 들고있는 성규의 모습이 보이자 목부터 옆구리까지 모든 근육이 딱딱히 굳어가며 긴장되기시작했다.
우현이 손에 고이는 땀을 츄리닝에 대충 닦았다. 흐흥흐흥하며 나오는 성규의 콧바람이 자꾸 턱을 간지럽게 만든다.
그리고 떠오르는 어제의 찐한 oh파워입술박치기oh. 오우,shit. 댐댐갓댐.
우현이 절망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필 왜 그게 지금 생각나는거지 ?
안 그래도 아까부터 유난히 분홍빛에 형광등의 불빛이 비쳐 촉촉해보이는 성규의 입술이 어지간히 신경쓰이는 우현이었다.
예전 같았으면은 손으로 볼따구를 홱 밀어냈을텐데 지금은 몸이 굳어버려 그것마저 못하겠다.
" 아이씨,진짜..."
아무래도 이러다 너땜에 미치겠어 ~
우현은 며칠전 음악프로에서 봤던 노래가사가 불현듯 떠올랐다..진짜 미치겠다.
침을 한번 꿀꺽 삼켰다.지금 기분을 비유하자면 부모님이 동창회에서 오시기전에 컴퓨터에 깔아놨던 야동을 재탕하는 그런 쫄깃한 기분이다.
혀로 입술을 축인 우현의 표정이 굉장히 붉고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멍해있었다.
심장에서는 다람쥐 스무마 리가 팝핀댄스를 추는 것 마냥 연신 쿵쾅쿵쾅쿸웈옹오쾅거린다. 그래,이건 내가 아직 사춘기라서 호기심이 왕성해서 그런 탓일꺼야.
이 얄궂은 사춘기새끼같으니라구.
우현은 자신도 모르게 점점 아주 점점 느리게 자신의 얼굴이 성규에게 직행하는 것이 느껴졌다. 친구들앞에서,혹은 성규앞에서 온갖 똥폼에 쎈척은 다 했던 우현이가
지금은 아주 치와와마냥 달달달달떨고있다. 그러면서도 우현의 입술과 성규의 입술은 서로의 온기가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졌고 그렇게 닿을듯말듯 부르르떨던 우현이
무언갈 결심한 듯 눈을 아주 질끈 감더니 그대로 성규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쿡! 갖다댔다.
성규의 코가 맞닿는 느낌은 가슴 큰 미쿡누나들이 나오던 영상보다 더 야하게 느껴졌다.
*
" 으으..쉬마려.."
간병인 침대에 누워 잠을 자던 동우가 서둘러 병실을 나와 화장실로 향했다.
동우는 일주일에 두세번은 병원에서 자고 새벽에 일찍 집으로 향해 옷을 갈아입고 등교를 했다.
할아버지가 처음 병원에 입원했을때는 이렇게까지 안했지만 요즘 들어 자신이 없을 때 혹시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어쩌나싶어서 일주일에 두 세 번은 꼭 병원에서
자는 동우였다.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눈을 부비적거리며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새벽 4시 5분을 정확히 지나고 있었다.
잠에 취해 눈을 거의 감은채로 병실로 향하던 동우가 갑자기 뒤에서 자신을 지나쳐 달려가는 간호사들이 보였다.
" ...갑자기 무슨 일이지 ? "
간호사들이 동우의 할아버지가 있는 병실안으로 다급히 들어가자 갑자기 밀려오는 불안감에 동우가 후다닥 달려 병실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할아버지의 대각선 끝쪽에 누워있던 아주머니가 계시던 침대에 몰려있는 간호사들. 쭈뼛거리는 걸음으로 동우가 이미 깨어난 할아버지의 곁으로 향했다.
" 영숙이엄마,내 목소리 들려 !? 응 ? 들리지 ? 그만 자고 일어나봐! "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진 병실 안. 동우가 무서움에 떨며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았고 할아버지 역시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동질감의 동우의 손을 꼭 잡았다.
의사가 달려와 굳게 닫힌 아주머니의 눈을 살피더니 이동시키라는 손짓을 하자 간호사들이 서둘러 이동침대에 아주머니를 옮기고 어디론가 급히 달려가기시작했다.
어느새 다른 병실에서도 찾아와 안타까움과 탄식을 뱉었고 꿈을 안 좋게 꿨더니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다고 목소리를 높히는 아주머니도 보였다.
" 할아버지...나 무서워... "
동우가 중얼거리며 간병인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할아버지도 마음이 편치 않은 모양인지 착잡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며 톡톡 떨어지는 링겔주머니를 멍하니 바라봤다.
- 쯧쯧...이미 죽은 명,옮겨봤자 혼만 고생이지...-
동우의 바로 옆 창가에 걸터앉아 명부에 적힌 이름 하나를 지운 호원이 기지개를 켰다.
갑자기 봇물터지듯 죽은 혼들이 늘어나 눈코뜰새없이 바빠 잠도 제대로 못 잤다.
" 동우야,밖에 비 아직 오니 ? "
" 으응.잠깐만. "
동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호원이 앉아있는 창가로 오더니 그대로 팔을 뻗어 창문손잡이를 잡았다.
동우의 손이 호원의 몸을 뚫고 지나갔고 그 자리는 쉬익하며 연기처럼 일렁거렸다. 호원이 인상을 찌푸리더니 동우의 손이 지나갔던 곳을 매만지며 창가에서 슬쩍 옆
으로 물러났다.몸을 숨긴 상태라도 이렇게 갑자기 불쑥 인간들과 부딪히게 되면 꽤 불편한 기분이 든다.
" 비 그친 것 같아...근데 되게 으슬으슬거리네. 여름날씨치고는... "
동우가 침대에 놓인 담요를 뒤집어쓰고는 창가에 팔꿈치를 댄 채로 턱을 괴더니 조용한 새벽거리를 쳐다봤다.
동우 바로 옆에는 여전히 호원이 앉아 명부를 끄적거리고 있었다.
*
성규는 꿈을 꿨다.참 이상한 꿈.아니 해괴망측한 꿈.
우현이와 갔었던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열심히 아이스크림을 파먹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우현이 나타나 자신의 앞에 털썩 앉더니 '실례가 안 된다면...같이...먹
어도 될까?'라는 시공간이 오그라드는 멘트를 아주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말했고 자신은 스푼을 입에 넣은채 시골소녀처럼 얼굴이 붉어져 고개만 끄덕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아이스크림을 먹는 도중 우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상체를 굽히더니 갑자기 성규의 얼굴로 점점 다가오기시작했다. 그리고는 아이스크림이 묻어 촉촉한 성
규의 입술에 쪽 소리나게 뽀뽀를 하더니 난생 처음보는 환한 훈남미소를 지은 채로 이번엔 성규의 뒷통수를 잡고 그대로...그대로....!
아,꿈이네.
눈을 번쩍뜨며 일어난 성규가 깨어서도 붉어진 볼을 감싸며 심호흡을 했다.
근데 오늘따라 바닥이 푹신푹신한 것 같아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니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워있는 우현이 보였다. 내가 왜 침대에서 자고있지 ?
성규가 침대밑으로 살짝 고개를 내밀어 쿨쿨 자고 있는 우현을 쳐다봤다.
머리는 여기저기 산발이고 입은 '헤~'하고 벌려져있으며 윗도리는 훌러덩까져있었다. 근데 뭔가 이 부끄러운 기분은 뭔지 모르겠다.
야동이 조금밖에 안나왔다고 슬퍼말아요.
이제 질리도록 나올 타이밍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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