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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성규도 나름 밥이란 걸 먹을 수 있게 됐다. 비록 처음에는 힘들고 느낌이 묘했지만 하다보니깐 나름 적응이 됐다. 다만 청국장이나 냄새가 강한 음식은 아직까지 몰래 인상을 찌푸리긴하지만. 늦게까지 회사에서 일하는 우현의 아빠를 빼고 셋이서 먹는 저녁식사. 아주머니가 우현에게 물었다.
" 우현이 너 어째 하루만에 혈색이 좋아진 것 같다 ? 기운도 차린 것 같고 ? "
" 어 ? "
" 몸살감기는 원래 한 이틀동안 앓아눕거든. 성규가 병간호를 잘 해줘서 그런가 ? "
아주머니의 말에 성규가 부끄러운 듯이 웃으며 고개를 숙였고 우현은 그저 씨익 웃으며 밥을 퍽퍽 퍼먹기시작했다.
*
감기기운을 털어내려 샤워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온 우현이 익숙하게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있는 성규의 모습을 보고 눈썹을 꿈틀거렸다. 우현이 물기가 아직 묻어있는 발로 성규의 엉덩이를 투욱 밀어내며 말했다.
" 야.. "
" 어어 ? 왜 ? "
" 뭐하냐. "
" 응 ? 이불깔잖아. 자야지,이제. "
" 아니 그러니깐 왜 이불을 까냐고. "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으며 베게를 집어들고 일어선 성규가 '그러면?'하고 묻자 우현이 침대에 털썩 앉아 수건을 대충 의자에 걸어놓은뒤 칼칼한 목을 헛기침으로 가다듬었다.
" 이제. 침대에서 자."
" ..응 ! "
" 침대에서 자라고. "
" 아,아...저... "
치,침대에서?.더듬거리며 묻는 성규에게 '어,침대.왜?싫어?'라고 미간을 팍 구기며 말하자 성규가 이불을 다시 접고 고분고분하게 침대위로 올라왔다. 훗. 속으로 흐뭇하게 웃은 우현이 미간을 만지작거리며 자주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침대에 누웠다. 곧 대충 자리를 정리한 성규가 불을 끄고 후다닥 이불 속으로 들어왔다. 19살 남자와 24살 남자가 눕기엔 좀 작을 듯 했지만 나름 안락하고 포근한 느낌을 줬다. 24살인 성규의 사이즈가 작아서 다행이지 만약에 조금만 더 컸다면 아마 비좁았을 것이다.
" ...... "
" ...... "
아씨,또 정적이다.
요즘들어 정적이 불쑥불쑥 자주 찾아온다.재수없는 정적놈의 새끼. 우현이 어둠속에서 고개를 돌려 성규를 힐끗 쳐다보니 성규의 두 눈도 역시 말똥말똥하다.
" 야."
" ..응.. "
" 너는 나 좋아하냐."
" 어어 ?! "
왜 이렇게 몸을 흠칫흠칫거리는걸까.누가 보면 내가 자주 패는 줄 알겠다.
" 솔직히 말해서 나는."
" ...응.."
" 너 좋아해.존나."
이미 들킨 거 그냥 솔직하게 말해버렸다. 뭐,거짓말도 아닌데 숨길 필요가 있나. 우현의 계속되는 파워오글어택에 성규는 버릇처럼 이불을 들어 눈밑까지 끌어올렸다.
" 그러니까 넌 어떠냐고. "
" ...모,몰라."
" 뭐 ? 몰라 ? "
우현이 몸을 일으키며 성규를 쳐다봤다. 어둠속에서도 인상을 쓴 우현의 얼굴이 보이는 것 같아서 무섭다. 눈밑까지 올라간 이불을 홱 잡아내리려하자 성규가 파닥파닥거리며 이불을 꾹 잡는다.
" 어쭈. "
" 아,안돼. "
" 안되긴 뭐가 안돼. "
" 이씨... "
결국 이불이 쑥 내려갔고 우현이 협박에 가까운 말투로 물었다.'넌 어떠냐고.대답해.' 우현이 말할때마다 민트치약냄새가 솔솔 풍겨온다.
" ..모른다구."
" 죽을래 ? 모르는 게 어딨어 ? 그럼 너 왜 내가 뽀뽀할때 가만히 있었냐 ? 눈까지 감고."
으윽.정곡을 찔렸다.
눈알만 도르륵 도르륵 굴리던 성규가 이내 다시 이불을 뺏어 이번엔 머리꼭대기까지 뒤집어쓰고 중얼거렸다.
" ...좋아하니깐 그렇지..."
" ......"
아,막상 들으니깐 이상하게 귓바퀴부터 고막까지 흐물흐물거리며 녹는 것 같은 달달한 느낌이다. 우현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 야,여기까지 들린다. 너 심장 뛰는 소리."
" 아,아냐 ! 이건...그..."
" 난 잔다."
" 으응..."
성규가 이불을 조금 내려 빼꼼히 우현이 살핀 뒤 감긴 우현의 눈을 확인하고는 '휴우'한숨을 내쉬며 이불을 내려 편안한 자세를 취했다. 갑자기 성규의 이불속으로 들어온 우현의 손이 성규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 잡는다. "
이미 잡아놓고 잡는다라고 말하면 어찌하오리까.
성규가 몇 번 손을 꼼지락거리자 우현이 가만히 있으라는 무언의 협박으로 깍지를 껴 꾸욱 잡았다. 땀이 날 것 같았지만 상관없었다.
*
- 아이씨,어딨지 -
고요한 새벽의 병원을 돌아다니고 있는 호원이.
이제는 명부가 아닌 동우를 찾아다니며 실낱같은 희망에 매달리고 있다. 제발 그 애가 가져갔어야 다시 찾아오기가 쉬울텐데...허둥지둥대며 병실 여기저기를 들락날락거린 호원이 한 병실을 들어가자마자 씨익 웃었다.
- 여기가 분명해 -
호원이 '장기영'이라는 팻말이 붙어있는 침대로 다가갔다. 분명 이 할아버지에게 자주 찾아오던 남자애였다. 근데 오늘은 없네. 가끔은 여기서 자더니만. 호원이 인상을 구기며 창가에 털썩 앉았다. 저번과는 다르게 머리는 붕대로 감싸고 입에는 산소 호흡기까지 찬 상태였다. 호원이 그 모습을 보며 눈을 지그시 감고 느리게 뜨며 중얼거렸다.
- 할아버지도 얼마 안 남으셨어 -
에구...
쑤셔오는 허리를 두드린 호원이 창가에서 일어나 몸을 풀었다. 명부가 잃어버린채로 사관부 기숙사에 출입하면 바로 들통날 게 뻔하다. 오늘,아니면 내일안에 명부를 찾아야한다. 그러기위해선 그나마 가장 유력한 용의자인 그 남자애를 찾아야할텐데...
*
" 역시 남우현이 아플리가 없다니깐. "
" 좋은 아침. "
동우가 대문을 열고 나오며 싱긋싱긋 이슬 맺힌 싱그런 꽃잎마냥 웃고있는 우현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어제 아프더니 정신이 상했나.
" 그래.좋은 아침...벌써 다 나은거야 ? "
" 그럼. 암튼 얼른 학교가자."
" 어어... "
아팠던 사람치고는 힘있게 동우에게 어깨동무를 한 우현이 이렇게 싱글벙글인 이유는 아침에 있다.
평소와는 다른 느낌에 알람을 끄려고 눈을 뜨자 자신의 품에 쏙 안겨서 애기마냥 새근새근 자고 있는 성규의 모습이란. 아침부터 발가락에서 시작된 전율이 온 몸을 흔들었다. 첫 시작부터 오늘은 좋은날이다,우현에겐.
가는 길에 명수를 만나 세 명의 웃음소리는 더 커졌다. 특히 우현의 웃음소리가 제일 컸다. 명수가 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박장대소를 했고 동우가 재채기를 해도 박장대소했다.
" 아,미친놈. 왜 이렇게 웃어대."
" 그러니까말이야...야,우현아. 너 병원갔다오긴 갔다온거야 ? CT촬영 해봐야할 것 같아... "
동우가 진심으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우현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온도는 정상인데...
" 좀 웃은 것 가지고 무슨...야,지각하겠다. 뛰자! "
명수와 동우의 등짝을 팡팡 내려친 우현이 후다닥 달려갔고 명수와 동우도 뒤따라 소리지르며 모든게 다 잘 될 것만 같은 기분이다.
- 흠...-
호원이 공중에서 학교쪽으로 달려가는 동우의 머리통을 내려다보며 씨익 웃었다.
- 찾았다 -
*
" ...... "
" 저기 성열친구~ "
" ...크으으응...."
" 성열친구 ! "
" 아이씨...시끄러어..."
성열이 대충 손에 잡히는 베게를 잡아 귀를 막았다. 이제 곧 다시 일을 나가봐야하는 명수네 아주머니는 당황하며 명수의 침대에 누워 쿨쿨 자고 있는 성열의 몸을 살짝 툭툭 건드렸다.
" 성열친구.일어나봐,잠시만."
" ...아이...므야... "
성열이 눈을 부비적거리며 몸을 일으켰다가 명수네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치자 아차차하며 몸을 일으켰다.
" 안녕하세요. "
비록 억양은 어색했지만 나름 존댓말을 뱉은 성열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 응,그래. 아줌마가 지금 일을 나가봐야하거든. 찌개랑 어제 먹은 닭볶음탕은 가스레인지에 있으니까 데워먹으면 되고 명수친구라서 더 챙겨주고 싶었는데 아줌마가 일이 급해서... "
" 아이,괜찮아...요오."
" 그래. 자던 거 계속 자렴. "
아주머니가 조심스럽게 방문을 닫고 나간 뒤 곧 현관문까지 닫히는 소리를 들은 성열이 다시 침대에 드러누웠다.
*
" 여기서 미지수 x에 아까 나온 y값을 더하면! 답이 나온다.이거지... "
" 네에... "
여름날.
남고의 점심시간 전 4교시. 모두들 수업에는 관심이 없고 뒷문쪽으로 일제히 달릴 준비를 하고있다. 학교 안까지 따라들어온 호원이 몸을 숨긴채 창문에 바짝 기대 교실안을 이리저리 살폈다. 맨 뒤에 앉아 서로의 공책에 낙서를 하고 공책을 찢으며 멍청하게 놀고 있는 우현과 동우. 싱글벙글 웃고있는 우현의 얼굴을 본 호원이가 눈을 가늘게 뜨며 곰곰히 생각했다.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그리고 바로 성규의 얼굴이 동동 떠올랐다.맞다! 그 성규와 동맹맺은 인간.
" 이 쉐키들이 수업에는 관심없고 점심에만 관심이 있구만 ? "
" 예에!!! "
" ...쯥..에휴. 의욕이 없는데 해봤자뭐하냐.그래,밥무러가라. "
선생님의 말 한 마디와 함께 교실에 있던 모든 학생들이 함성을 지르며 급식실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갑자기 뛰쳐나오는 학생들에 호원이 주춤하며 뒤로 물러났고 이내 투닥거리며 나오는 우현과 동우가 보였다. 일단 말을 걸어야겠는데 학생들로 가득해서 몸을 나타내기가 어렵다. 동우에게만 얼른 나타내보였다가 명부가 있는지 없는지만 확인하고 다시 사라질 계획이였는데...결국 호원은 인상을 쓰며 동우와 우현의 뒤를 밟았다. 나름 사관부 사자로서 꽃미남 사자로 명성 좀 떨치고 실수 한 번없이 철두철미한 사자로 손 꼽혔는데 지금 자신의 꼴이 무척이나 우습다.하지만 지금은 우선 명부를 찾는 게 시급하기에 체면따위 차릴 시간이 없다. 하지만 동우와 우현의 관계는 젓가락마냥 따로따로 다니질 않았다. 밥을 먹을때는 명수까지 합쳐서 시끌벅적했고 교실로 돌아와서는 계속 둘이서 찌질이 초딩도 안 칠듯한 장난만 쳐댔고 심지어는 화장실도 같이 가서 한 놈이 오줌싸면 한 놈이 거울보고 머리를 만진다. 그러다가 물놀이나 하는 이게 무슨 고3인가. 유치원생들 같구만.
결국 학교가 끝날때까지 몸을 나타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동우의 머리위에 둥둥 떠다니며 동우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 나 간다~ "
" 오키.내일 봐 ! "
" 낼 봐~"
예쓰 ! 드디어 우현과 명수,동우가 갈라섰다. 대화내용을 대충 들어보니 우현은 집에 가는 듯 했고 명수는 정류장에 동우는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하는 듯 했다.
택시가 익숙한 희망병원에 멈춰서고 호원이 기둥뒤에 숨어있다가 동우가 기둥앞을 지나갈때쯤 홱 나타났다.
" 우악!!!!!!! "
" 아!!!!! "
동우가 발작을 일으키듯 몸을 들썩거리더니 주먹을 휘둘렀다.
뻑!하는 둔탁한 소리가 났고 호원이 턱과 입술을 감싸쥐며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바닥에 쓰러져 입술을 감싼 호원이 인상을 쓰며 신음을 흘렸다.
" 아,어,어떡해.죄송합니다! 아,근데 그렇게 갑자기 나타나시면...괘,괜찮으세요 ? 좀 세게 맞았던데..."
" 아,아으..."
눈물이 핑 돈다.
호원이 입술에서 손을 떼자 검붉은 피가 한가득 묻어나온다. ' 헐!!!어떡해!!자,잠시만요.'동우가 경악하며 가방에서 서둘러 똥쌀때쓰려고 모아놨던 휴지를 꺼냈다. 그리고 호원에게 다시 건네주려는데 방금까지 나왔던 피가 온데간데없이 깨끗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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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에 본격 야동 스토리.
댓글 많이 달아주세요~ㅎㅎㅎㅎㅎ
신작알림 필수!
에그몽은 매일 8~10시사이에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