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왜 자꾸... "
" 야...얼른... "
명수가 성열의 손을 꼬옥 잡은채 반대쪽 손으로 자꾸 성열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그럴때마다 간지럼을 타는 성열이 몸을 움츠렸고 명수의 찌름은 멈출 줄 몰랐다.
" 성열이, 이제 그만 성규 나오라혀.올라가야지."
" 할매 ! ...저기... "
성열이 명수의 눈치를 보며 할매의 팔뚝을 붙잡았다.
" 할매 먼저 올라가. "
" 그게 무슨 소리여. 잉란도 다 찾았담서 ? "
" 으응...근데 정리할 게 있어서... "
" 니가 정리할 게 뭐 있다고... "
그제서야 꼬옥 붙잡고 있는 성열과 명수의 손이 눈에 들어온건지 할매가 혀를 끌끌 차기 시작했다.
" 한달동안 잉란만 찾은건 아니였나보제 ? "
" ...아아~할매애...이틀만. 딱 이틀만 있다가 바로 올라갈께."
" 쓸데없는 소리 말어."
" 아아...할매...제발...안 올라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딱 이틀만 더 있다간다는 거잖아... "
" ...... "
" ...이틀 더 ? "
성열이 애교를 부리며 말하자 한숨을 내쉰 할매가 자신의 손에 들려있던 비약 두 병을 다시 성열에게 건넸다.
" 늦지말구와."
" 예쓰 !!! "
명수가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성열의 손을 잡은 손을 들어 성열의 손등에 뽀뽀를 쪽 했다. 할매는 혀를 쯧쯧차며 다시 천상으로 돌아가려는 듯이 몸을 돌렸다.
" 할머...아니 삼신님 ! 안녕히가세요 ! "
꾸벅 90도를 한 명수가 씨익 웃어보였다.할매가 대꾸없이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 고 놈... "
참 잘 생겼단 말이여...
*
" 진짜 많이 시들었네... "
잔뜩 시든 나무를 살짝 만지기만해도 검은 잎이 바스락거리며 떨어졌다.
김성규는 나와 같이 병실로 돌아왔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그런지 오늘따라 김성규가 참 예쁘고 올망졸망하게 생겼다는게 느껴졌다. 뭐,언제 안 이쁜 적이 있었겠느냐만...
이성열 덕분에 김성규는 일요일까지 있다가 가기로 했다. 그래봤자 벌써 금요일 오후다.
난 병실로 돌아오자마자 간호사 누나에게 신랄하게 까였고 간호사 누나는 단단히 나를 벼르고 있는건지 한시간에 한 번씩은 주기적으로 병실문을 열고 내 존재유무를 확인했다. 그래서 마음대로 김성규를 물고 빨지도 못하겠다.
김명수는 나와 김성규의 오붓한 시간을 위한다는 핑계로 이성열와 공원으로 데이트를 하러갔고 장동우는 몇 시간 전부터 코빼기도 안 보였다.
" 이거 다시 가져가야겠다."
" 다 시들었는데 ? "
" 다시 살아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우현이,너처럼.
그 말을 끝으로 김성규가 쑥쓰럽다는듯이 볼을 붉히는데 그 모습에 코피 퐝...
" 성규야."
" ...좋다."
" 뭐가 ? "
" 그냥. 너가 김성규 - 하고 부르다가 성규야 - 라고 불러주니까 좋아. "
" ...미리 말하지... "
이제 몇 번 못 불러볼텐데...
" 성규야."
" 응. "
" 김성규...성규야... "
" 왜 불러 ? "
" 병실에만 있기 답답하지 ? "
" 아니. 난 그냥 너랑 단 둘이 있고 싶었어."
아,예쁜 주제에 말도 예쁘게 한다.예뻐죽겠다는 표현이 이런 건가 보다.
" 나 어떡하냐."
" 왜 ? "
" 너 가고 나서 너무 힘들 것 같아. 이런 말 하면 너가 더 힘들어할까봐 안 하고 꾹 참으려고 했는데 못 참겠어. 솔직히 나 너무 무서워. 미리 준비하고 싶은데 도저히 못 하겠어. 그냥 가지말고 나랑 살면 안될까 ? "
" 우현아... "
역시 괜히 말한 것 같다.
" ......미안."
" 아냐아냐...이해해. 나도 그런걸. "
김성규를 향해 손을 벌렸다.
예전엔 쑥쓰러워하더니 이제 곧잘 안긴다. 김성규의 몸은 예전처럼 따뜻했다.푸근하고 편하고 기분좋은 느낌.
" ...... "
" ...... "
분위기가 딱 입맞추기 좋을 타이밍이다.
슬쩍 김성규를 마주보며 입술을 들이대려고 하니 깜짝 놀라며 서둘러 눈을 꼬옥 감는다. 존나 귀엽다.진짜 이렇게 예쁜게 어디서 떨어졌나싶다.아,하늘에서 떨어졌지. 하얗고 인절미같이 말랑거리는 볼을 주물럭거리며 입술을 맞추려는 순간 병실문이 열렸다. 김성규가 깜짝 놀라며 벌떡 일어섰고 난 아쉬운 입맛만 다셨다.
" 어머 ! 성규 있었네."
" 안녕하세요."
" 그래...근데 이상하다...되게 오랜만에 보는 것 같네..."
" 아...3일내내 바쁘셨잖아요.하하."
" 하긴...정신없는 3일이였지. "
" 이리 주세요,이거 냉장고에 넣으면 되는거죠 ? "
" 그래주면 아줌마야 고맙지."
엄마의 두 손에 들려있던 음료수통과 과일을 받아든 김성규가 엄마를 도와 미니 냉장고를 채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빤히 보자니 순간 명절날 엄마를 도와주는 며느리의 모습이 김성규 위에 오버랩되었다.
" 아,엄마."
" 응 ? 왜 ? "
" 성규...이번주 일요일 날 다시 시골로 내려간대."
" 어머,진짜니 ? "
" 네 ? 아...네에...이제 내려가보려구요."
" 아휴,하필 왜 이럴때...우현이 때문에 못 챙겨준 것도 많은데 좀 더 있다가지..."
엄마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고 김성규는 그저 웃을 뿐이다.
" 어디까지가 ? 아줌마가 데려다줄까 ? "
" 아니에요 ! 괜찮아요. "
" 그래도...그럼 차비는 아줌마가 줄께. 뭐타고 가니 ? KTX ? 버스 ? "
" 아뇨,정말 괜찮아요. 말씀만 감사히 받을께요. "
" 그래도..."
" 아우,괜찮대잖아,엄마...나라도 부담스럽겠다."
" 그런가...아무튼 다음에 또 놀러와,꼭. 아 ! 방학때 다시 놀러오면 되겠네.그치 ? "
네,그럴께요.
김성규가 환히 웃으며 대답했다. 그럴께요는 무슨...다신 못 올꺼면서.
*
" 어쨌든 다 잘 됐네요."
" 그러게. 행운목이 그 정도일줄은 몰랐어."
동우와 호원이 나란히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공원 벤치에 앉아 두런두런 떠들었다. 하지만 호원은 계속 동우의 눈치를 보며 무언가 말하려다가 끄응거리며 말을 삼켰고 결국 평소와는 다른 호원을 눈치챈 동우가 먼저 물어왔다.
" 빨리 말해요."
" 으응 ? "
" 자꾸 똥마려운 강아지마냥 끙끙끙끙거리잖아요. 고민있으면 눈치 못 채게 하던지...완전 티나게..."
" 많이 티났어 ? "
" 네. 무지무지."
" 그래도 똥마려운 강아지가 뭐냐 ! "
" 아무튼 말해봐요. 고민."
" 흠...이거 맛있네."
초코칩이 잔뜩 들어있는 아이스크림을 한 입 깨물어먹은 호원이 동우의 입가에 묻은 아이스크림을 슥 닦아준 뒤 주머니에서 무언갈 주섬주섬꺼내어 동우에게 건넸다.
" 이게 뭐에요 ? "
" 나 승급됐다."
" 승급이요 ? "
" 뭐...승진 비슷한거."
" 우와 ! 축하해요. 근데 이건 한자라서 못 읽겠네요."
" 사자에서 명부관으로 승급됐다는 확인서 겸 증명서야. "
" 우와~아!!대박!!......근데 명부관이 뭔데요."
" 명부 입력을 관리하는 사람을 말해. 사자들이 갖고온 명부를 확인하고 업데이트해주는 사람이지."
" 그걸 형이 한다구요 ?! 와,진짜 멋있어..."
동우가 엄지손가락을 높이 쳐들며 실실 웃었다. 역시 깊게 생각할 줄을 모른다. 호원이 동우의 밝은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잠시 뜸을 들이다가 동우의 손에 들려있던 종이를 다시 주머니에 접어넣은뒤 한숨을 쉬며 아이스크림을 한입 더 깨물었다.
" 이젠 자주 못 봐."
" 왜요 ? "
" 명부관은 거의 인간세상에 내려올일이 없어. 그저 하루종일 앉아서 도장만 찍는 거야. "
" 아..."
와플콘까지 와구와구 씹어먹은 호원이 손을 탁탁 털었다.
" 그럼...몰래 내려오면 ... "
" 몰래 내려올 수가 없어. 하루에 수백명이 확인을 받으러 오는 걸. 그것도 시도때도없이."
" ...그럼 하지마요.명부관. 그거 안한다고 하면 되잖아요."
" 내 능력밖이네,그건... "
동우가 아이스크림이 녹아 흘러내리는데도 얼른 핥아먹지않고 시무룩해져서는 바닥만 멀뚱히 쳐다본다. 아마 토끼처럼 귀가 달렸다면 추욱 늘어졌을것만 같다.
" 앞으로 이제 영영 못 보는 거에요 ? "
" ...다 녹는다,아이스크림."
결국 뾰족한 콘 끝에 방울방울 맺혀있던 방울이 바닥에 톡톡 떨어지기시작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터덜터덜 쓰레기통으로 다가가 아이스크림을 홱 버린다. 그리고 잠시 쓰레기통앞에 서서 호원에게 등만 보이던 동우가 뜬금없이 환하게 웃으며 뒤돌아 소리쳤다.
" 형 ! 우리 자전거타요. "
*
" ....... "
" 우와,이건 또 뭐래."
" 그거 ? 비요뜨라는 건데 이리줘봐. 이렇게..."
우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먹을 거 가지고 옹졸하고 치사하게 쿠사리를 놓고 싶진 않았지만 지켜보고 있자니 참 황당한 건 감출 수 없었다.
어디서 데이트를 하고 온 건지는 몰라도 룰루랄라하며 신나게 병실로 들어온 명수네 커플. 성열이 목이 마르다고 하자 익숙히 냉장고를 연 명수덕분에 성열이의 냉장고 탐구가 시작됐다. 야금야금먹고있는 성열이의 모습을 명수는 그저 한없이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큼...너네 둘 집에 안가냐 ? "
" 몇 신데 ? 헐 ? 벌써 9시여 ?"
" 그래. 벌써 9시니까 좀 꺼져. "
" 성규형은 안 가세요 ? "
" 응 ? 아아,난 여기서 자고 가려구."
" 오올..."
명수가 다 안다는 듯이 눈을 씰룩거렸다.
" 쯥. 그래. 우리 둘은 갈께. 성열아,가자."
" 아,참. 이거 깜빡했네."
성열이 안 주머니에서 비약 하나를 꺼내 성규에게 건넸다.
" 더럽게 맛없는 비약."
" 삼신님이 또 주신 거야 ? "
" 응. 들판할매한테까지 가서 얻어온 거야. 그럼 내일 봐 ! 거기 뒤에 남우현도. "
성열이 입가에 묻은 하얀 요플레를 혀로 낼름 핥은 뒤 명수와 함께 히히히거리며 병실을 나갔다.
" ...아,밉상들."
" 쓰레기 좀 봐... "
성열에게 받은 비약을 냉장고 안에 잘 넣어놓은 성규가 바닥에 떨어진 과자봉지와 과일 껍질을 쓰레기통에 넣기 시작했다.
" 불편할텐데...그냥 집가서 편히 자라니깐..."
" 싫어..."
니 옆에서 잘꺼란 말이야.
그런 성규의 중얼거림을 못 들었을 리 없는 우현이 간이 침대를 꺼내려는 성규의 팔을 붙잡았다.
" 그럼 진짜 내 옆에서 자. "
" 응. 그러려고 침대 꺼내잖아."
" 아니. 여기 위에서 같이 자자고. 평소처럼."
" 너 다리도 그렇고 머리랑 팔도 그렇고 불편하잖아. 내가 밑에서 자는게..."
" 안 불편해.오히려 더 좋아. 그러니까 위에서 자."
이젠 성규도 제법 솔직해진건지 '그래,그럼 뭐 어쩔 수 없지'하며 웃더니 우현의 옆에 풀썩 눕는다. 아,괜히 옆에서 자라고 했나 ? 예전엔 잘만 잤었는데 새삼스럽게 옆구리 근육이 딱딱히 굳는 기분이다.
" 김성규,사랑해."
" ...뭐야,갑자기..."
'좋아해'라고 해주던 우현이 갑자기 어색하게 '사랑해'라는 말을 해오자 발 끝 부터 머리 꼭대기까지 짜릿한 소름이 돋은 성규가 얇은 병원이불을 홱 잡고 버릇처럼 눈밑까지 끌어올렸다.
" 그냥. 내가 사랑해라고 한 적은 없는 것 같아서."
" ...... "
" 자자. "
우현도 좀 부끄럽다고 생각이 들었는지 괜히 창문을 열었다 닫으며 침대에 누웠다. 달빛이 밝아 병실안이 꽤 어둡지않았다. 우현의 손을 꼭 잡은채 끌어안은 성규가 금새 잠이 들었고 우현은 말똥말똥한 눈으로 천장만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성규의 얼굴을 한참이나 바라보며 머리속에 성규의 얼굴을 새겨넣었다. 그러다 깜빡 잠이 들어버렸다. 눈을 다시 떴을때는 새벽이였고 창밖에 보이는 거리에 불빛도 꽤 꺼진 상태였다. 성규가 베고 있는 베개를 다시 잘 정리해준 우현이 갈증을 느끼고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내려와 냉장고를 열었다. 그 많던 생수도 명수와 성열이 쳐먹어치운건지 딸랑 반이 담겨있는 생수병을 꺼내든 우현이 신경질적으로 뚜껑을 따 벌컥벌컥 마셔댔다. 그래도 성이 차지않아 생수병을 든 채 복도로 나와 복도에 놓인 공용 정수기로 다가가 생수병에 물을 담기 시작했다.
" 다음부턴 김명수랑 이성열 올땐 냉장고에 자물쇠라도 걸어놓든가 해야지..."
김명수가 예전엔 안 그랬는데...
우현이 고개를 저으며 물병의 입구를 꼭 닫고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 침대에 누워 새근새근 아기처럼 자고 있는 성규의 볼에 쪽쪽, 그리고 마지막에 입술에 쪽쪽 뽀뽀를 한 우현이 벌렁 까진 성규의 머리를 차분히 쓰다듬어내려주고 냉장고를 열었다. 생수병을 위 쪽에 얹어놓고 문을 닫으려는데 문득 달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하늘색 비약이 눈에 들어왔다.
" ...... "
한숨을 쉬며 문을 닫으려다가 잠시 멈칫했다. 그러다가 닫기를 한 번, 다시 열었다가 닫기를 또 한 번.그러기를 반복하던 끝에 결국 냉장고 문을 확 열어재낀 우현이 비약을 덥석 집어들었다.
" ...... "
이게 만약 없으면...
" ....... "
우현이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는 비약의 뚜껑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
어쩌다보니 완결까지 편수가 좀 더 늘어났네여 ㅎㅎ 38~40편까지는 갈듯 ? 흡...ㅎㅎㅎㅎ
시즌 2 진지하게 생각중 (생각만 하는 중.)
ㅎㅎㅎㅎㅎㅎㅎㅎ
댓글 컴온.
신작알림 필수
에그몽은 매일 8~10시사이에 연재됩니다.
오늘 좀 늦은거....
죄송해여,알라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