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손이 힘이 풀린채로 작게 움직인다.
"안예뻐해주나."
"……."
하지만 눈물이 나오려는 건 어쩔 수 없다.
정국은 일부러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귀가 들리지 않기에 고개를 들고 눈이 마주치면 무슨 말이라도 할까봐.
그 말을 내가 못듣는다는 걸 알아버릴까봐. 눈을 마주칠 용기가 나지 않는 것이다.
점점 날이 지날수록 정국은 소리가 더 들리지않았고, 정국이 그럴 때마다 졸리지도 않으면서 방에 들어가 눈을 감고 있을 때가 많았다.
여름이는 더 초조한 마음으로 수화를 배우기 바빴다.
씻을 때도, 자기 전에도 항상 핸드폰만 달고사는 여름에 정국은 그만 보라며 핸드폰을 뺏기도 했지만
여름이는 그런 정국을 향해 수화로 하지말라고 한다. 그런 여름이 귀여운지 작게 웃는 일이 많았다.
"곧 있으면 시상식이잖아.. 아, 나까지 두근거린다."
"네가 왜 두근거리냐."
"그냥.. 상 받을 거 생각하니까!"
"내가 안받을 수도 있는데."
"에이이! 받을 거면서!"
"김칫국이네."
"전정국인데!?"
"어."
"무반주로 노래 부르는 것도 완전 기대 돼. 반주없이 목소리만 들리면 얼마나 좋을까.. 으아.
조-금은 걱정도 되기는 하네!"
"걱정 되면 네가 올라와서 불러."
"나 음치야!"
"알아."
"어떻게 알아!?"
"흥얼 거리는 거 자주 들어봤어."
"그걸로 어떻게 알아!?"
"음이 하나도 안맞던데."
그렇게 평소처럼 쇼파에 앉아 평범한 일상을 보낸다. 어머님이 다쳤다고 생각이 들지도 않을만큼 정국이는 평소와 같이 행동을 해주었다.
한 것도 없는데 피곤한지 눈을 감은채로 쇼파 등받이에 기대어있기에 바보- 하고 작게 말하면
정국이는 지금 들리지 않는지 눈을 감은채로 그렇게 한참을 있는다.
아, 이 기회에 정국이한테 욕이란 욕은 다 해봐야겠다.
"멍청이."
"……."
"찌질이. 쪼잔이."
"죽을래?"
"들려!?"
"욕은 잘들리네."
"허얼.."
"여름아."
"응?"
뻘쭘한듯 표정을 짓고선 정국이를 올려다보자, 정국이는 여전히 눈을 감은채로 한숨을 내쉬더니 눈을 천천히 뜨며 말했다.
"아니야."
"…뭐야."
"나중에. 나중에 얘기해줄게."
"나중에? 더 궁금하잖아..!"
"우리 만나는 거."
"……."
"인정 하기로 했어."
"어!?"
"그러니까."
"……."
"우리는 더 행복해질 일만 남았어. 그치."
"……."
그치- 하고 다시금 눈을 감는 정국이에게 응- 하고 최대한 밝게 대답을 했다.
우선은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할일은 나영희를 감옥에 보내는 거잖아.
차근차근히 하면 뭐든지 다 잘풀릴 거야. 난 다 잘될 거라고 믿어.
"너는 눈이 많이 쌓인 날에 뭐 하고 싶어?"
"나..? 음.. 나는 그냥 너랑 같이 있고싶어. 너는?"
"…글쎄."
"글쎄?"
"어렵다."
"뭐가 어렵냐..! 나랑 같이 있고싶다고 해야지!"
"졸리다."
"맨날 자놓고 뭘 졸리대?"
"자도 자도 졸려."
"와아.."
"너 미쳤어!? 정국이 기사는 뭔 생각으로..!"
"마침 잘 오셨네요. 드릴 말씀이 있었는데..
정국이가 그렇게 해달래요. 이젠 정국이가 알아서 하게 납두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누구 마음대로. 아직 우리 회사 애야! 주식이 얼마나 떨어지는줄 알면서도 너!"
"죄송한데. 사장님."
"……."
"저 오늘 계약기간 끝나는 날인 건 아시죠.
저도 재계약 안할게요."
"…뭐?"
"솔직하게 나영희 회장님이 주신 돈으로 우릴 위해서 쓴 건 하나도 없잖아요.
우리 수입 다 가져간 것만 기억이 나는데요. 회장님한테 돈 몰래 받고 있던 거 진즉에 알고있었습니다."
"……."
"우리 연습생 애들 성추행 한 것도 알고 있구요. 얼마 전에는 애기가 와서 울면서 살려달라하더라구요."
"……."
"제가 따로 회사 차릴 거구요. 연습생 애들도 제가 다 데려갑니다."
"……."
"증거도, 증인도 있으니. 할말은 없으실 거고."
"……."
"3년동안 챙겨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윤기가 고개를 까딱이며 대충 인사를 건냈고, 윤기는 회사에서 나오자마자 회사 앞에 있는 팬들의 반응을 살폈다.
10분도 안 돼서 정국이와 여름이의 열애 인정 기사를 냈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욕을 많이 하지않았다. 딱 반 반 50대50.
"야. 슈가 얼굴 공개.. 이거 슈가래.. 생각보다 겁나 못생겼다.."
"헐.. 그러게.. 완전 아저씬데?"
학생들이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을 보고서 얼굴없는 작곡가 윤기의 얘기를 했고, 윤기는 주차가 된 차로 향하다가 곧 학생들의 옆에 서서 핸드폰을 가리키며 말했다.
"슈가는 나고."
"…네?"
"이건 우리 실장님인데."
"……."
"추운데 이거 하나씩 들고."
윤기는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핫팩을 꺼내 두명의 학생들에게 핫팩을 건내주었고, 학생들은 윤기가 가고나서 뒤늦게 헐! 하고 소리 지르기 바쁘다.
라디오를 틀어보자 온갖 정국의 열애 인정 소식 뿐이었고, 당연히 여름이의 얘기도 나온다.
이렇게 둘이 열애 인정을 한 게 맞는 걸까.. 시상식이 당장 내일 모레인데.. 정국이는 괜찮을까.
윤기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핸드폰을 보려고하자 정국이가 내 핸드폰을 뺏어갔다. 놀래서 그런 정국이를 올려다보면 정국이는 고개를 저었다.
"왜.."
"보지마."
"…괜찮아. 나는 악플 그런 거에 신경 하나도 안써."
"보지말라고."
"…알았어. 안볼게!"
정국이는 혹시라도 악플을 보고 힘들어 할 날 생각해 핸드폰을 뺏고선 주지 않았다.
하지만 반응이 궁금한 건 어쩔 수 없으니 빼꼼히 정국이 손에 들린 핸드폰을 곁눈질로 보면, 정국이는 물을 마시다가 무심하게 내 핸드폰을 방에 있는 침대 위로 던진다.
"와아..! 던졌어!!"
"모레까진 보지마."
"시상식 끝나면 볼 수 있어?"
"응."
"그래! 그때까지 참아볼게. 그럼.. 음.. 우리 바다 또 가자! 바다 보고싶다.."
"그것도 시상식 끝나면."
"헐.. 그럼.. 그럼.. 우리 놀이동산 또 가자!"
"그것도."
"뭐야아.."
그렇게 한참을 앉아서 티비를 보고있다가 어제 오늘 어머님을 보러 가지 않기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늘은.. 병원에 안가봐?"
"어."
"왜..? 어제도 안갔잖아.."
"시상식 끝나면."
"뭐야아.. 시상식 끝나면 다 하려고 해?"
"시상식만 끝나면 다 끝이니까."
"……."
"그때 다 하자."
"……."
"그때 놀이동산도 가고, 바다도 가자."
"……"
"해외여행도 하고, 네가 먹고 싶은 건 다 먹으러 가자."
"응! 빨리 시상식 했으면 좋겠다. 빨리 놀러가게! 그것도 너랑 단!둘이!"
평범한 얘기를 하다가도 뺑소니 가해자의 재판에 괜히 떨려서 심장부근에 손을 대고있으니 정국이가 내 머리 위로 손을 올려주었다.
석진은 의자에 앉아 한참을 손으로 얼굴을 가린채 있었다.
그 와중에 계속 핸드폰에 울리는 카드 긁는 문자에 석진은 손을 치우고선 테이블 위에 있는 핸드폰을 보았다.
석진의 어머니는 백화점에 가서 백만원을 넘게 쇼핑을 했고, 사람들은 부러운 눈으로 어머니를 보았다.
"제 아들이 김석진이에요. 배우 알죠? 유명한데."
그 말에 직원은 정말이냐며 눈이 커져서는 얼굴이 빨개졌고, 어머니 미애는 기분좋게 웃으며 수고해요- 하고선 백화점에서 빠져나왔다.
택시를 타려고 했을까, 갑자기 자신의 손목을 잡는 누군가에 고개를 돌린 미애는 안심하는듯 휴- 하고 숨을 몰아쉬었다.
"뭐야. 갑자기? 너도 쇼핑했니?"
"할말이 있어서."
"할말?"
나영희는 차에 타라며 자신의 차를 턱짓으로 가리켰고, 미애는 무거운 쇼핑백들을 들고선 차에 올라탔다.
"데려다주게?"
"김미애."
"응?"
"네 아들이 자수하자고 하든?"
"……"
"그래?"
"무슨 소리야?"
"말려. 자수 못하게."
"……."
"네 아들 입에서 자수 하지 않겠다는 말이 나오게 해. 안 그러면."
"……."
"친구고 뭐고 없어. 당장 널 죽일 거니까."
미애는 그 말에 표정이 굳었다. 평소엔 그렇게 뻔뻔한 표정을 짓더니 나영희의 말에는 한마디도 못한채 고개를 끄덕였다.
"내.. 아들은 내가 잘 알아. 절대로 자수 못하게 할게."
"살인자 두명을 이렇게 오래 행복하게 살게 해줬으면 은혜를 갚아야지. 어디서..."
"…미안해."
"석진이 집으로 가면 되니?"
"응…."
지금 재판은 한참 진행중이라고 했다. 정국이에게 가자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정국이는 가지 않겠다고 했다.
이유는 묻지 않았다. 어머니에 관련 된 거라면 최대한 묻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고있다.
좋은 소식이 들릴 거야.. 내 말에 정국이는 내 목소리가 들리지않는지 한참 나를 보았고, 나는 음.. 하고 조금 배우고있던 수화를 했다.
내 수화가 틀렸는지 다시금 알려주는 정국이에 바보처럼 헤헤- 하고 웃으면 정국이는 내 볼을 쭉- 잡아당긴다.
나는 너의 목소리를 들을 수는 없지만, 너의 손을 잡을 수 있다.
이것만으로 만족한다. 너의 손을 꼭 잡고선 손장난을 하면, 너는 하지말라는듯 손에 힘을 준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네가 말을 하지 못하고, 들리지 않는다고 해도 널 사랑할 수 있어. 그리고 우리는 항상 아름다울 거니까.
어머님도 그렇게 생각할 거야.
정국이와 마주보고 누워서 숨결을 느꼈다. 정국아- 하고 불러도 대답이 없는 정국이는 지금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네가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말한지 며칠이 지났다.
그리고 그 며칠사이에 너의 상태는 더 나빠졌다.
하루에 절반은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난 그래도 너에게 말한다.
"좋아해."
"……"
"나는. 네가 평생 귀가 들리지 않는다고 해도 널 사랑할 수 있어."
"……."
"그러니까.. 스트레스 더이상 받지마."
"……."
"빨리 시상식 지나가라! 빨리 너랑 데이트 하게.."
들리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여름이 그 말을 하고선 바로 잠이 들었을까, 정국은 소리가 나지 않게 움직여 침대에 앉았다.
그리고 정국의 눈에선 눈물이 흐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