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선 마냥 커다랗고 시린 공간은 어두운 내면을 숨기지 않고 저를 맞았다. 그 암흑에 당장이라도 매장되어버릴까봐 재환은 조금, 몸을 움츠렸다. 검은 허공에 발을 내딛는다. 기대했던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오직 문틈만이 차가운 소음을 내며 메워졌다. 오늘은 나의 생일이다. 부모는 나의 존재를 소실했다. 몸을 섞어 탄생시킨 아이가 괴물이었으니 그들에게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괴물을 낳았다. 저런 끔찍한 종자를 뱃속에 안았다. 모친의 절망은 아무런 통제없이 고스란히 제게로 전해졌다. 그녀는 밤마다 울음을 터뜨렸다. 흔들리는 어깨 너머 지켜보는 아이가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로. 부친은 담배를 피워댔다. 부와 명예를 손에 거머쥐었으나 그들의 인생에는 커다란 먹이 칠해졌다. 괴물 아들이라는 치명적인 오점이었다. 이런 저런 생각에 묻힌 채로 발걸음을 옮겼다. 드넓은 거실을 울리는 소리는 혓바닥을 숨기고서 금세 자취를 감추었다. 마치 책망하는 듯. 문 밖으로 등을 떠밀 듯. 감겨 있던 커다랗고 깊은 재환의 눈이 뜨였다. 빛이 서려 있었으나 그것은 희망이나 기쁨의 빛과는 거리가 먼. 잉태될 때부터 제가 가지고 있던, 어쩌면 불행의 빛과 같았다. 시섬. 바라보는 것만으로 생명을 끊을 수 있다. 손에 들린 종이 박스가 덜렁였다. 달큰한 케이크 향이 퍼졌으나 초라하기 그지 없다. 피부 조직에 들러 붙는 괴리감은 이미 익숙해져 감각이 없을 만큼 도졌다. “비 오네.” 그래도 생일이었다. 열 달 동안 어미의 품 속에서 자란 아이. 축복 받아 마땅했다.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눈 좀 떠봐. 들리는 무언가는 끝이 뭉개져 본원의 것을 알아들을 수 없다. 눈꺼풀이 무겁다. 목소리가 웅웅대며 귓가를 파고들었다. 비를 온몸으로 받아낸 결과는 혹독했다. 끽끽대며 돌아가는 관절이 요동쳤다. 빗소리와 함께 얼룩진 그것은 공기를 타고 흘러 제 몸 곳곳을 찔러댔다. 송곳과도 같은 날카로움을 지녔다. 눈가를 타고 흘러 내린다. 모든 것이. 낯선 목소리 고개를 들어 올릴 수 없다. 눈을 뜨고 말을 붙인 이의 얼굴조차 똑바로 볼 수 없는 가련한 삶. 그것이 제 모든 것. 불행하지만 결코 동정 받을 수 없었다. 눈을 마주치기만 해도 붙어있던 숨이 단 시간에 거두어진다. 그럼에 그들은 나를 볼 수 없다. 나 또한 그들을 볼 수 없다. 걱걱대며 호흡을 골랐다. 빗물이 닿는 족족 흉터 딱지를 솎아내듯 따갑고 쓰렸다. 고개를 들지 않은 재환의 메마른 입술이 갈라졌다. 피가 새어나왔다. “생일이야.” 아무렇게나 지껄였다. “이렇게 비가 내려도.” 무릎을 끌어 안아 고개를 파묻었다. 희미하게 찾아들었던 빛이 다시금 소멸되었고, 포근함을 가장한 어둠이 가늘게 뜨여진 시야를 온전히 잠식했다. “왜 우니.” “난 안 울어.” “생일에 우는 건 멍청해.” 이건 빗물이야. 내뱉는 혓바닥에 비릿함이 스몄다. 여전히 비는 내리며 얼굴께를 때렸다. 한동안 아무런 말이 없다. 축축한 비냄새가 거리를 메우고 바짓단이 젖어들었다. 어두운 것을 극도로 싫어하였으나 함께 공생할 수밖에 없었다. 밝은 곳은 언제나 모든 것이 존재했다. 그 모든 것들은 저를 거부했다. 그에 반해 어둠은 시렸으나 홀로 설 수 있었다. 아무도 없었다. 정말 아무도 없었다. “고개 들어 봐.” 아무도. “눈 떠보라고.” 없었는데.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조금 더, 쓰라린 빗물이 닿았다. 턱끝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을 손바닥으로 훑어내었다. 체온에 식은 습기가 흩어졌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콧등으로 호흡이 느껴졌다. 너 앞을 보지 못하니. 뱉어진 음성의 근원지는 가까웠다. 네 입술 조개 껍데기 같아. 음색이 퍽 장난기를 머금고 있다. “조개 껍데기. 눈 좀 떠보라니까.” “눈동자는 파랗거나 백탁할 거야.” “뭐라고?” “그걸 보면 너는 죽겠지.” 괴물에 의해 비참하게 죽을 것이다. 여느 이들처럼. 새삼스레 불쌍해지는 부모. 저를 죽이지도 못하고 살리지도 못하는 불쌍하고도 불쌍한 사람들. 재환아. 생명에는 귀천이 없단다. 제 눈 위에 검은색 붕대를 감으며 읊조려지는 모순. 한참 후 그에 대답했다. 어머니. 손이 떨려요. 마치 괴물과 마주친 것처럼. 두려운 마음은 본색을 감추지 못하고 드러난다. 그것은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미처 젖을 떼지도 못한 어린 아기. 눈이 뜨이자 마자 외삼촌이라는 남자의 숨통을 끊은 끔찍한 소생. 그 작디 작은 눈동자에 한 아름 담겼던 질린 안색들. 떨리는 손등. 구겨진 마음들. “죽어도 상관없어.” 예쁜 눈동자를 보고 죽는 것도 나쁘진 않을 테니까. 이상한 말을 한다. 제 눈 앞의 이는. “죽기 전에 이름이라도 알까.” “이름?” “그래. 나는 차학연이야.” 나의 이름이 뭐였더라. 머리가 새하얗게 말라붙었다. 속눈썹에 매달린 물방울 덕에 눈두덩이가 더욱 무거이 내려앉았다. 재촉하는 어투가 퍽 사납다. 이름이 뭐냐니까. 그제서야 생각이 났다. 내 이름. 내 이름은. “이재환.” 차학연은 바람 새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이름은 멀쩡한데. 이제는 익숙해진 목소리가 윙윙대며 맴돌았다. 예쁜 눈동자 보여 줘. “내 목숨 만큼의 값어치를 해.” “…….” “죽을 힘을 다해 예쁘게 빛내란 말이야.” 먹구름이 지상으로 곤두박질 쳤다. 눈꺼풀을 서서히 들어 올렸다. 침투하는 빛으로 보아 동이 텄다. 눈동자는 빛을 내며 누군가의 얼굴을 담아낼 것이다. 누군가가 자처하여 나를 본다. 나 또한 그를 보게 된다. 머지않아 희미한 잔상이 잡혔다. 안개처럼 흐렸다. “생일 축하한다고 해줘.” “생일 축하해.” 그 얼굴엔 어째서인지 미소가 서려 있었다. - 재환아, 생일 축하해 ㅎㅅㅎ 가볍게 쓴 글이니, 가볍게 즐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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