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민과 김태형, 그 둘은 밖에 있던 다른 암살자들에게 뒤처리를 맡기고 나를 마차에 태웠다. 박지민은 나를 마차에 데려가는 내내 이렇게 말했다. 잘했어, 네가 나한테 실망하는 일은 없을 거야. 약속할게.
"그나저나 너 진짜 대단하네. 어떻게 황녀를 죽일 생각을 했어?"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어요."
"어떻게 보면 황녀보단 얘가 더 나을지 몰라. 황녀가 어떤 성격인 지는 모르겠지만 순순히 우리 계획에 따르지 않았을 거라는 건 확실해."
김태형은 손잡이에 진주나 크리스탈 등이 박힌, 내가 황녀를 죽인 단검을 암살자 답게 돌리며 말했다. 떨어져 비싼 마차에 흠이 가면 어쩌나 싶었지만 왕족에게 반말까지 서슴없이 하는 김태형인데 마차에 흠이 가는 것 정도야 어떤가 싶었다. 그는 내가 왜 황녀를 죽였는지 의문이 많은 듯 했다. 내가 얼버무리자마자 박지민은 내가 말하기 싫어하는 걸 눈치챈 듯 했다. 바로 말을 돌리는 것을 봐선 그랬다.
"잃어버렸던 황녀를 정말 마녀 말대로 찾았다는 걸 제 3왕자가 알면 무슨 얼굴을 할까?"
"전정국 그 놈은 마녀 말을 가벼이 여긴 죄 좀 받아봐야 해. 왕권을 가진 또 다른 존재가 나타난 것도 모자라 제 사촌과 결혼한다니, 전정국한테는 청천벽력이겠지."
"아 참,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네 이름이 뭐야?"
그걸 이제야 묻다니, 나는 작게 숨을 내쉬고 내뱉었다. 숨을 내뱉는 것보다는 어려웠다. 내 이름을 말하는 게.
"여의주? 여씨 가문의 여식이란 말이야 네가?"
"왜, 지민아. 뭔데 여씨 가문이."
"약 20년 전 있었던 전쟁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여휘영 기사의 가문이야. 너도 여휘영이라는 이름은 들어 봤을텐데?"
"근데 여휘영은 아내랑 같이 식물인간. 아, 미안."
"괜찮아요. 이미 복수는 했으니까."
'여휘영'이라는 이름이 이 나라에서 참 유명 했다. 덕분에 나도 어렸을 때는 정말 풍족하게 살았었지만 두 분 다 마차에서 굴러 떨어지시는 바람에 식물인간이 되어버렸다. 간간히 이어가던 생명을 황녀가 끊었지만 복수를 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식물인간이 된 건 마차에서 떨어진 사고 때문이라고 들었는데."
"맞아요, 다만 죽은 건 황녀 때문이었죠. 이제 해답이 돼요?"
김태형은 언짢은 듯한 내 말에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난 정말 네가 마음에 들어. 하지만 어떡하냐, 이제 넌 네 이름을 버려야 해. 네가 여의주로 있는 시간은 이제 없어. 박지민을 위해서, 너를 위해서도.
"김태형이 네 심기를 거스르는 의문을 품었던 건 내가 대신 사과할게. 하지만 나도 궁금했었으니까 김태형한테만 너무 뭐라고 하지는 마. 일단 너와 나의 최고 조력자니까. 김태형이 죽으면 너도, 나도 죽어."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대체 왜 암살자랑 손을 잡았어요? 우리 나라 왕실이 가장 싫어하는 집단이 암살자들 아니었어요?"
"그 점을 노린 거지. 그 누가 왕족이 암살자와 손을 잡았다고 생각하겠어?"
박지민이 왕의 자질이 충분하다고 단언 할 수는 없지만, 이것 만큼은 확실히 느껴졌다. 그는 사람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인간을 다루거나 지배하는 능력은 왕이 되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능력인데, 그는 이미 이것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얼마든지."
"왜 왕이 되고 싶어요?"
"그건 ‥."
"내가 아니면 왕이 될 사람이 없거든. 나는 이 나라 왕족의 피를 갈아버릴 거야."
"내가 박지민과 손을 잡은 이유야. 난 이 나라 왕족이 싫어. 뭐, 굳이 따지자면 이 새끼도 왕족 피 이긴 하지만 적어도 오늘 죽은 왕의 직계 자손은 아니잖아?"
그들의 말을 듣고 있으니 이 모든 게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왕의 죽음,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벽난로를 피우는 데 나무가 부족하다는 느낌은 없었는데 오늘 아침 나무를 해야겠다고 말하던 기사의 말.
"왕이 죽은 것도, 오늘 황녀의 집에 나무가 적어진 것도. 설마, 다 ‥."
"당연히 왕이 되려면, 왕을 죽여야지."
제 2화 황녀가 돌아왔다.
*정국 (제 3왕자) 시점*
숙부의 아들, 그러니까 사촌 형이 오랜만에 궁에 입궐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어떤 여자를 데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결혼이라도 허락 받으려 온 건가 싶어 옷 매무새를 다듬었다. 빨리 박지민이 결혼을 해야 했다. 최대한 그가 가장 사랑하는 여인으로, 최대한 수준이 떨어지는 여인으로. 그래야 파멸으로 몰고 가기 쉬우니까.
"형, 오랜만이야. 그리고 그 옆은 ‥."
최대한 얄밉게 말해 줄 생각이었다. 그 옆은, 결혼할 여자인가 봐? 라고. 하지만 햇빛을 받아 찬란하게 부서지는 여자의 금색 머리카락은 저절로 내 입을 닫게 했다. 왕족 중에서도 거의 나오지 않는 금발은 왕좌를 받을 때 아주 유리하게 작용하곤 했다. 언제나 희소성 높은 것들은 높게 쳐 주니까. 나는 머리 색에 크게 상관을 하지 않지만 아버지는 달랐다. 아버지는 나와 같은 금발도 아닌, 그렇다고 흑발도 아닌 옅은 갈색의 머리카락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좌를 차지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완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평생을 가장 시기하고 질투 했던 대상은 금발이었으며, 그가 가지지 못했던 것을 가졌다. 아버지가 평생을 사랑한 여인, 그 여인은 금발의 숙부에게 반했고 아버지는 평생 자신의 머리 색을 저주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내가 태어났을 때 나의 머리 색을 보고 절망했다고 했다. 본처에게서 낳은 막내 자식이 자신과 같은 머리 색이라니. 제 1왕자도 흑발이었지만 옅은 갈색은 아니었기에 아버지의 분노를 피해갈 수 있었는데 나는 아니었다. 자신과 똑 닮은 머리 색을 보고 아버지는 내 미래가 그려졌다고 했다. 너는, 나와 같은 운명을 타고 났구나.
처음에야 내가 왕좌를 이어받겠구나 싶어 그 말을 그렇게 좋아했던 나였는데. 이제서야 그 말을 깨달았다. 아버지는 보았던 것이다. 내가 형제의 여자를 탐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왕좌의 게임
박지민과 김태형, 그 둘은 밖에 있던 다른 암살자들에게 뒤처리를 맡기고 나를 마차에 태웠다. 박지민은 나를 마차에 데려가는 내내 이렇게 말했다. 잘했어, 네가 나한테 실망하는 일은 없을 거야. 약속할게.
"그나저나 너 진짜 대단하네. 어떻게 황녀를 죽일 생각을 했어?"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어요."
"어떻게 보면 황녀보단 얘가 더 나을지 몰라. 황녀가 어떤 성격인 지는 모르겠지만 순순히 우리 계획에 따르지 않았을 거라는 건 확실해."
김태형은 손잡이에 진주나 크리스탈 등이 박힌, 내가 황녀를 죽인 단검을 암살자 답게 돌리며 말했다. 떨어져 비싼 마차에 흠이 가면 어쩌나 싶었지만 왕족에게 반말까지 서슴없이 하는 김태형인데 마차에 흠이 가는 것 정도야 어떤가 싶었다. 그는 내가 왜 황녀를 죽였는지 의문이 많은 듯 했다. 내가 얼버무리자마자 박지민은 내가 말하기 싫어하는 걸 눈치챈 듯 했다. 바로 말을 돌리는 것을 봐선 그랬다.
"잃어버렸던 황녀를 정말 마녀 말대로 찾았다는 걸 제 3왕자가 알면 무슨 얼굴을 할까?"
"전정국 그 놈은 마녀 말을 가벼이 여긴 죄 좀 받아봐야 해. 왕권을 가진 또 다른 존재가 나타난 것도 모자라 제 사촌과 결혼한다니, 전정국한테는 청천벽력이겠지."
"아 참,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네 이름이 뭐야?"
그걸 이제야 묻다니, 나는 작게 숨을 내쉬고 내뱉었다. 숨을 내뱉는 것보다는 어려웠다. 내 이름을 말하는 게.
"여의주? 여씨 가문의 여식이란 말이야 네가?"
"왜, 지민아. 뭔데 여씨 가문이."
"약 20년 전 있었던 전쟁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여휘영 기사의 가문이야. 너도 여휘영이라는 이름은 들어 봤을텐데?"
"근데 여휘영은 아내랑 같이 식물인간. 아, 미안."
"괜찮아요. 이미 복수는 했으니까."
'여휘영'이라는 이름이 이 나라에서 참 유명 했다. 덕분에 나도 어렸을 때는 정말 풍족하게 살았었지만 두 분 다 마차에서 굴러 떨어지시는 바람에 식물인간이 되어버렸다. 간간히 이어가던 생명을 황녀가 끊었지만 복수를 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식물인간이 된 건 마차에서 떨어진 사고 때문이라고 들었는데."
"맞아요, 다만 죽은 건 황녀 때문이었죠. 이제 해답이 돼요?"
김태형은 언짢은 듯한 내 말에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난 정말 네가 마음에 들어. 하지만 어떡하냐, 이제 넌 네 이름을 버려야 해. 네가 여의주로 있는 시간은 이제 없어. 박지민을 위해서, 너를 위해서도.
"김태형이 네 심기를 거스르는 의문을 품었던 건 내가 대신 사과할게. 하지만 나도 궁금했었으니까 김태형한테만 너무 뭐라고 하지는 마. 일단 너와 나의 최고 조력자니까. 김태형이 죽으면 너도, 나도 죽어."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대체 왜 암살자랑 손을 잡았어요? 우리 나라 왕실이 가장 싫어하는 집단이 암살자들 아니었어요?"
"그 점을 노린 거지. 그 누가 왕족이 암살자와 손을 잡았다고 생각하겠어?"
박지민이 왕의 자질이 충분하다고 단언 할 수는 없지만, 이것 만큼은 확실히 느껴졌다. 그는 사람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인간을 다루거나 지배하는 능력은 왕이 되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능력인데, 그는 이미 이것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얼마든지."
"왜 왕이 되고 싶어요?"
"그건 ‥."
"내가 아니면 왕이 될 사람이 없거든. 나는 이 나라 왕족의 피를 갈아버릴 거야."
"내가 박지민과 손을 잡은 이유야. 난 이 나라 왕족이 싫어. 뭐, 굳이 따지자면 이 새끼도 왕족 피 이긴 하지만 적어도 오늘 죽은 왕의 직계 자손은 아니잖아?"
그들의 말을 듣고 있으니 이 모든 게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왕의 죽음,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벽난로를 피우는 데 나무가 부족하다는 느낌은 없었는데 오늘 아침 나무를 해야겠다고 말하던 기사의 말.
"왕이 죽은 것도, 오늘 황녀의 집에 나무가 적어진 것도. 설마, 다 ‥."
"당연히 왕이 되려면, 왕을 죽여야지."
제 2화 황녀가 돌아왔다.
*정국 (제 3왕자) 시점*
숙부의 아들, 그러니까 사촌 형이 오랜만에 궁에 입궐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어떤 여자를 데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결혼이라도 허락 받으려 온 건가 싶어 옷 매무새를 다듬었다. 빨리 박지민이 결혼을 해야 했다. 최대한 그가 가장 사랑하는 여인으로, 최대한 수준이 떨어지는 여인으로. 그래야 파멸으로 몰고 가기 쉬우니까.
"형, 오랜만이야. 그리고 그 옆은 ‥."
최대한 얄밉게 말해 줄 생각이었다. 그 옆은, 결혼할 여자인가 봐? 라고. 하지만 햇빛을 받아 찬란하게 부서지는 여자의 금색 머리카락은 저절로 내 입을 닫게 했다. 왕족 중에서도 거의 나오지 않는 금발은 왕좌를 받을 때 아주 유리하게 작용하곤 했다. 언제나 희소성 높은 것들은 높게 쳐 주니까. 나는 머리 색에 크게 상관을 하지 않지만 아버지는 달랐다. 아버지는 나와 같은 금발도 아닌, 그렇다고 흑발도 아닌 옅은 갈색의 머리카락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좌를 차지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완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평생을 가장 시기하고 질투 했던 대상은 금발이었으며, 그가 가지지 못했던 것을 가졌다. 아버지가 평생을 사랑한 여인, 그 여인은 금발의 숙부에게 반했고 아버지는 평생 자신의 머리 색을 저주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내가 태어났을 때 나의 머리 색을 보고 절망했다고 했다. 본처에게서 낳은 막내 자식이 자신과 같은 머리 색이라니. 제 1왕자도 흑발이었지만 옅은 갈색은 아니었기에 아버지의 분노를 피해갈 수 있었는데 나는 아니었다. 자신과 똑 닮은 머리 색을 보고 아버지는 내 미래가 그려졌다고 했다. 너는, 나와 같은 운명을 타고 났구나.
처음에야 내가 왕좌를 이어받겠구나 싶어 그 말을 그렇게 좋아했던 나였는데. 이제서야 그 말을 깨달았다. 아버지는 보았던 것이다. 내가 형제의 여자를 탐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왕좌의 게임
박지민과 김태형, 그 둘은 밖에 있던 다른 암살자들에게 뒤처리를 맡기고 나를 마차에 태웠다. 박지민은 나를 마차에 데려가는 내내 이렇게 말했다. 잘했어, 네가 나한테 실망하는 일은 없을 거야. 약속할게.
"그나저나 너 진짜 대단하네. 어떻게 황녀를 죽일 생각을 했어?"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어요."
"어떻게 보면 황녀보단 얘가 더 나을지 몰라. 황녀가 어떤 성격인 지는 모르겠지만 순순히 우리 계획에 따르지 않았을 거라는 건 확실해."
김태형은 손잡이에 진주나 크리스탈 등이 박힌, 내가 황녀를 죽인 단검을 암살자 답게 돌리며 말했다. 떨어져 비싼 마차에 흠이 가면 어쩌나 싶었지만 왕족에게 반말까지 서슴없이 하는 김태형인데 마차에 흠이 가는 것 정도야 어떤가 싶었다. 그는 내가 왜 황녀를 죽였는지 의문이 많은 듯 했다. 내가 얼버무리자마자 박지민은 내가 말하기 싫어하는 걸 눈치챈 듯 했다. 바로 말을 돌리는 것을 봐선 그랬다.
"잃어버렸던 황녀를 정말 마녀 말대로 찾았다는 걸 제 3왕자가 알면 무슨 얼굴을 할까?"
"전정국 그 놈은 마녀 말을 가벼이 여긴 죄 좀 받아봐야 해. 왕권을 가진 또 다른 존재가 나타난 것도 모자라 제 사촌과 결혼한다니, 전정국한테는 청천벽력이겠지."
"아 참,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네 이름이 뭐야?"
그걸 이제야 묻다니, 나는 작게 숨을 내쉬고 내뱉었다. 숨을 내뱉는 것보다는 어려웠다. 내 이름을 말하는 게.
"여의주? 여씨 가문의 여식이란 말이야 네가?"
"왜, 지민아. 뭔데 여씨 가문이."
"약 20년 전 있었던 전쟁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여휘영 기사의 가문이야. 너도 여휘영이라는 이름은 들어 봤을텐데?"
"근데 여휘영은 아내랑 같이 식물인간. 아, 미안."
"괜찮아요. 이미 복수는 했으니까."
'여휘영'이라는 이름이 이 나라에서 참 유명 했다. 덕분에 나도 어렸을 때는 정말 풍족하게 살았었지만 두 분 다 마차에서 굴러 떨어지시는 바람에 식물인간이 되어버렸다. 간간히 이어가던 생명을 황녀가 끊었지만 복수를 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식물인간이 된 건 마차에서 떨어진 사고 때문이라고 들었는데."
"맞아요, 다만 죽은 건 황녀 때문이었죠. 이제 해답이 돼요?"
김태형은 언짢은 듯한 내 말에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난 정말 네가 마음에 들어. 하지만 어떡하냐, 이제 넌 네 이름을 버려야 해. 네가 여의주로 있는 시간은 이제 없어. 박지민을 위해서, 너를 위해서도.
"김태형이 네 심기를 거스르는 의문을 품었던 건 내가 대신 사과할게. 하지만 나도 궁금했었으니까 김태형한테만 너무 뭐라고 하지는 마. 일단 너와 나의 최고 조력자니까. 김태형이 죽으면 너도, 나도 죽어."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대체 왜 암살자랑 손을 잡았어요? 우리 나라 왕실이 가장 싫어하는 집단이 암살자들 아니었어요?"
"그 점을 노린 거지. 그 누가 왕족이 암살자와 손을 잡았다고 생각하겠어?"
박지민이 왕의 자질이 충분하다고 단언 할 수는 없지만, 이것 만큼은 확실히 느껴졌다. 그는 사람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인간을 다루거나 지배하는 능력은 왕이 되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능력인데, 그는 이미 이것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얼마든지."
"왜 왕이 되고 싶어요?"
"그건 ‥."
"내가 아니면 왕이 될 사람이 없거든. 나는 이 나라 왕족의 피를 갈아버릴 거야."
"내가 박지민과 손을 잡은 이유야. 난 이 나라 왕족이 싫어. 뭐, 굳이 따지자면 이 새끼도 왕족 피 이긴 하지만 적어도 오늘 죽은 왕의 직계 자손은 아니잖아?"
그들의 말을 듣고 있으니 이 모든 게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왕의 죽음,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벽난로를 피우는 데 나무가 부족하다는 느낌은 없었는데 오늘 아침 나무를 해야겠다고 말하던 기사의 말.
"왕이 죽은 것도, 오늘 황녀의 집에 나무가 적어진 것도. 설마, 다 ‥."
"당연히 왕이 되려면, 왕을 죽여야지."
제 2화 황녀가 돌아왔다.
*정국 (제 3왕자) 시점*
숙부의 아들, 그러니까 사촌 형이 오랜만에 궁에 입궐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어떤 여자를 데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결혼이라도 허락 받으려 온 건가 싶어 옷 매무새를 다듬었다. 빨리 박지민이 결혼을 해야 했다. 최대한 그가 가장 사랑하는 여인으로, 최대한 수준이 떨어지는 여인으로. 그래야 파멸으로 몰고 가기 쉬우니까.
"형, 오랜만이야. 그리고 그 옆은 ‥."
최대한 얄밉게 말해 줄 생각이었다. 그 옆은, 결혼할 여자인가 봐? 라고. 하지만 햇빛을 받아 찬란하게 부서지는 여자의 금색 머리카락은 저절로 내 입을 닫게 했다. 왕족 중에서도 거의 나오지 않는 금발은 왕좌를 받을 때 아주 유리하게 작용하곤 했다. 언제나 희소성 높은 것들은 높게 쳐 주니까. 나는 머리 색에 크게 상관을 하지 않지만 아버지는 달랐다. 아버지는 나와 같은 금발도 아닌, 그렇다고 흑발도 아닌 옅은 갈색의 머리카락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좌를 차지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완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평생을 가장 시기하고 질투 했던 대상은 금발이었으며, 그가 가지지 못했던 것을 가졌다. 아버지가 평생을 사랑한 여인, 그 여인은 금발의 숙부에게 반했고 아버지는 평생 자신의 머리 색을 저주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내가 태어났을 때 나의 머리 색을 보고 절망했다고 했다. 본처에게서 낳은 막내 자식이 자신과 같은 머리 색이라니. 제 1왕자도 흑발이었지만 옅은 갈색은 아니었기에 아버지의 분노를 피해갈 수 있었는데 나는 아니었다. 자신과 똑 닮은 머리 색을 보고 아버지는 내 미래가 그려졌다고 했다. 너는, 나와 같은 운명을 타고 났구나.
처음에야 내가 왕좌를 이어받겠구나 싶어 그 말을 그렇게 좋아했던 나였는데. 이제서야 그 말을 깨달았다. 아버지는 보았던 것이다. 내가 형제의 여자를 탐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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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누나야, 잃어버렸던 네 누나. 황녀 민여주. 그리고 나와 결혼 할 사람이지."
*여주 (의주) 시점*
왕족끼리는 근친이 심하다고 들었지만 이렇게 당당히 제 3왕자에게 말할 줄은 몰랐다. 박지민은 얼빠진 제 3왕자의 얼굴을 보고 나를 제 품으로 끌어당긴 후 곧바로 다른 곳으로 향했다. 인사 같은 거 안 해도 돼요? 라는 내 물음에 그는 황녀의 시체 앞에서 웃었던 것처럼 웃었다. 누가 네게 인사 안한다고 네게 손을 대면 이 천장 어딘가 붙어 있을 김태형이 가만히 둘 거 같아? 그리고 어차피 저 새끼는 내 밑이라 상관 없어. 너도 명색이 황녀인데 아무한테나 고개 숙이지 마. 알겠지 여주야?
박지민이 왕자보다 위라니, 그건 아마 겉으로 보이는 서열을 얘기하는 건 아닐 것이다. 지금 박지민이 말하는 '위'는 실제 서열을 뜻하는 것일 게 분명했다. 새삼 박지민이 대단해 보이기 시작했다. 것으로는 유한 웃음을 보이며 천장에는 자신을 보호할 암살자를 데리고 다닌다. 왕좌을 가지기 위해 황녀의 죽음을 묵인하고 황녀의 시녀를 황녀로 세우기까지. 그에게 무서운 게 있긴 할까?
"제 1왕자를 뵙습니다."
"오랜만입니다. 옆은 누구?"
빨리 만날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갑자기 만날 줄은 몰랐다. 김석진이었다. 제 1왕자이자 황녀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사람. 나는 그에게 최대한 얼굴을 보이지 않도록 노력했다. 하지만 고개를 숙이고 있지 말라고 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고개를 숙이냐는 얼굴을 한 박지민에 억지로 고개를 들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알고 있다. 김석진은 사람의 얼굴을 분간하지 못한다. 후천적인 장애라고 했다. 무슨 사고의 후유증이라고. 아주 자주 보거나, 가족 같은 경우에는 희미하게 이목구비가 구별이 된다고 했지만 웬만한 사람들을 그는 구별하지 못했다. 그가 제 어머니를 따라 황녀의 집에 오긴 했지만 자주는 아니었고, 나는 시녀였으므로 항상 고개를 수그리고 있었다. 그가 내 얼굴을 알아볼 리 없었지만 괜히 찔리는 마음에 고개를 숙인 건 사실이었다. 김석진은 박지민이 대동 한 '금발' 여인에게 아주 큰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내가 금발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학교는 다니지 않았으니 또래 중에도 없었고, 황녀의 집에 들어가고 나와 집으로 들어갈 때까지, 혹은 자기 직전까지 나는 모자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왕족도 아닌데 금발인 머리는 어디에서나 논란거리가 되기 쉬웠다. 지금은 아까 박지민이 모자를 들춘 후로 모자를 벗고 땋았던 머리를 풀었기 때문에 허리까지 오는 금발 머리가 곱슬거리고 있었다. 혹여 체형으로 알아볼 순 있어도 항상 모자를 썼던 시녀가 긴 머리카락으로, 그것도 금발로, 황녀의 자격으로 제 앞에 서 있으리라는 생각은 못하겠지.
나는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황녀를 죽일 때와는 다른 심장 박동이 울렸다. 나는 그를 남몰래 짝사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눈을 마주친 건 딱 한 번 뿐이었다. 나머지는 그의 신발을 본 채로 그의 목소리만 들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좋았다. 그는 항상 다정했으니까, 한낱 시녀인 내게도.
"제 1 왕자를 뵙습니다."
"잃어버리셨던 황녀이십니다. 제일 먼저 모시고 가려고 했는데, 도중 제 3 왕자를 만나서요."
"아, 동생을 먼저 만나셨군요. 궁으로 돌아오신 걸 축하드립니다. 저 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황녀를 기다렸을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저도 뵙게 되어 영광 ‥."
"잠깐,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지 않아요?"
나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이빨로 짓이겼다.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들은 것만큼, 그도 내 목소리를 들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아직 김석진과 내가 만났다는 걸 모르는 박지민은 예상치 못한 김석진의 반응, 그리고 나의 반응에 적잖이 놀란 듯 했다. 그는 내게 빨리 설명해보라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여기서 설명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그럴리가요. 지민이 구해주지 않았다면 전 아직도 해적선에 있었을 텐데요."
지민은 내가 이곳에 오기 전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미리 외워두라고 했다. 지민은 태형과 만날 때마다 항상 해적 소탕을 목적으로 공식적으로 나간 후 배에서 몰래 만남을 가진다고 했다. 해적 소탕을 하는 그가 해적을 소탕하는 도중 금발 머리 황녀를 구했다는 건 그 누가 봐도 앞 뒤가 맞는 일이었으므로 김석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착각을 했나보네요. 죄송합니다. 편히 쉬시죠, 아마 황녀가 돌아오셨다는 걸 알면 당신의 어머니께서 아주 기뻐하시며 곧 파티를 열 텐데 그 때 엄청나게 피곤할 겁니다.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곧 자리를 떠났다.
"설명해 봐."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는 아니에요. 황녀를 빼돌린 제 1 왕자의 어머니가 자주 황녀를 보러 왔는데 그 때 제 1 왕자가 따라왔었어요. 그 때 잠시 시중든 게 다에요."
"넌 그걸 지금 말하자면 어쩌자는 거야!"
"저도 정말 이렇게 일찍 만날 줄은 몰랐어요."
"너 일부러 말 안 했지. 우리가 죽일 까봐."
"‥ 아직 죽고 싶지 않았어요."
"씨발, 너 따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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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오랜만이에요 ㅠㅠ SOW입니당. 원래 블로그에만 연재하려고 했는데 이 글은 검정 바탕이 아니면 안 써질 거 같아서 이곳으로 오게 되었어요! 아직까지 절 기억해 주시는 분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오랜만에 악마와 아이의 일상 느낌 나는 글을 들고 찾아왔습니다! 아직 윤기가 안 나왔죠? 윤기는 제 최애니깐여 저만 독점할거야학,,, 사실 아니구여 다음 화에 나올겁니다! 기대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