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사무실 들어오는데 다들 모니터만 뚫어져라 보시면서 서류 넘기고 다 바쁜 거야.
너무 열심히들 하시니까 인사하기 좀 눈치가 보이는 거야 ㅋㅋㅋ 조용히 인사하고 자리에 앉아서 바쁜 축에 끼려고 얼른 컴퓨터 켰음.
앞에 박 대리님이 화면 보다 말고 나한테 두 손 흔들면서 인사하시더니 입 모양으로 '오늘 꼭 같이 밥 먹어요' 하는 거야.
알겠다고 고개 끄덕이니까 만족스러운 듯이 웃으시더니 다시 눈에 불을 켜고 모니터 보시더라. 늘 느끼는 건데 눈 참 크신 거 같음.
이렇게 일하다간 조기퇴근이라도 할 수 있을 거 같아서 덩달아 나도 더 꼼꼼히 문서 작성하는데 한 시간 정도 지나니까
한 분 한 분씩 입이 심심하다고 말하시는 거야. 이럴 땐 커피라도 타와야 되나 싶어서 눈치 보면서 커피라도 드실래요 ㅎㅎ..? 물으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여기저기서 나도!, ㅇ사원 부탁해요~ 하시길래 눈대중으로 사람 수세고 동전 챙겨서 사무실에서 나옴.
사무실 바로 앞 휴게실 안에 자판기 있길래 동전 넣고 커피 뽑는데 이게 커피셔틀이라는 건가 싶어서 실없이 웃어버림.
사람 수대로 뽑아서 쟁반에 들고가는데 휴게실 입구에 박 대리님이 다리 꼬고 서 계시는 거야. 진짜 잘 생기셔서 심쿵.
얼어있으니까 박 대리님이 긴 다리로 걸어오시더니 쟁반 대신 들어주시면서 들어가자고 씩 웃으시는데 또 심쿵 ㅋㅋㅋ
박 대리님이 설레 죽으라고 작정하셨나 봐. 어쨌든 사무실 들어가서 한 잔씩 드리고 자리에 앉아서 커피 홀짝이는데
경리 씨가 하품하다 말고 팀장님은요? 하고 사람들한테 묻는 거야.
"어? 진짜, 왠지 허전하다 싶었는데 팀장님이 안 오셨구나.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에요?"
"일 빨리 끝낸다고 정신없었긴 없었나 보네. 우리 김 팀장님 출근한 지도 모르고."
"전화 넣어볼게요. ㅇ사원! 결재서류 좀 팀장님 책상에 나둬 줘요!"
"네..!네!"
아무도 없으니까 몰래 훔쳐보는 기분이 드는 거야 결재서류만 올려두고 나가려는데 책상 한쪽에 액자가 눈에 밟히는 거임.
액자 안에는 내가 입사하기 전에 회식자리로 보이는 곳에서 사원들끼리 찍은 사진이 들어있는 거야. 얼마 안 된 사진인지 지금이랑 똑같은 모습들이었어.
사진 찍는 거 좋아하는 건 여전한지 컴퓨터 모니터에 붙여진 폴라로이드가 몇 개 보이더라고.
나도 옛날에 따라서 폴라로이드 진짜 많이 찍었었는데, 항상 같이 찍어서 그런지 혼자 찍힌 모습이 내 눈엔 조금 어색해 보이더라.
또 옛날 생각나서 폴라로이드만 뚫어져라 보는데 밖에서 막내 사원 어디 갔어? 하는 소리에 얼른 팀장실에서 나왔음.
팀장실에서 나오니까 아까 나 부르던 경리 씨가 얼른 오라고 손짓하길래 총총 달려가는데 딱 팀장님이 사무실로 들어오는 거야.
심쿵했던 게 팀장실에서 더 있었으면 어색하게 마주쳤을 거 아니야.
다행이다 싶어서 팀장님한테 인사하고 경리 씨한테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까 작게 속삭이시는 거야
"우리 막내 사원, 부르는 데가 너무 많아서 정신없고 바쁘지? 이거 먹고 일해. 이거 때문에 부른 거야."
"..ㅠㅠㅠㅠㅠㅠㅠ"
그리곤 마카롱 하나씩 포장된 거 한가득 쥐여주시더라고. 사실 힘든 건 아니었는데 챙겨주시니까 너무 감동인 거야.
울듯이 쳐다보니까 회식 때 더 이야기하자고 예쁘게 웃으시는데 진짜 여자가 봐도 반할 뻔했어 ㅋㅋㅋ
고맙다고 한 번 더 인사하고 자리 돌아와서 마카롱 하나 까먹는데 앞에 있는 박 대리님이랑 눈이 마주침.
씹지도 않고 손에 있는 마카롱 하나 아무도 안보게 넘겨주니까 소리 없이 끅끅거리면서 웃으시는거야.
당황스러워서 입 모양으로 '왜요ㅠㅠㅠㅠ' 하니까 박 대리님이 한참 웃으시더니 눈물 닦으면서 입 모양으로
귀여워서요, 귀여워서. 하는데 민망해서 마카롱이나 씹었다.
그리고 뭐 별일은 없었어. 부서 사람들 전부 다 점심시간 전까지 거의 일만 했어. 점심시간 다 돼갈 쯤에 팀장님이 나오시더니 놀라더니
좀 쉬면서 일하라고 다그치니까 다들 기지개 펴시면서 점심 먹으러 나가려고 준비하는데 내가 박 대리님이랑 같이 먹기로 약속했었잖아.
근데 먼저 밥 가자고 하기 민망해서 손만 만지작 거리고 있는데 박 대리님이 나한테 뭐 먹고 싶냐고 묻는거임.
괜히 신나서 뭐 먹을지 고민하고 있는데 박 대리님 바로 옆에 있었던 팀장님이 나랑 박 대리님 번갈아 보면서 묻는거야.
"언제 막내 사원이랑 친해졌어요 박 대리? 벌써 점심도 같이 먹고."
"샌드위치 덕분인가, 팀장님은 모르실 거에요. 그쵸 ㅇ사원?"
박 대리님이 샌드위치 이야기하니까 웃던 얼굴이 순간 일그러지는 거야. 덩달아 나도 얼굴 굳어서 손만 꼼지락 거리고 있으니까
박 대리님이 같이 드실래요 팀장님? 하고 팀장님한테 묻는 거야. 박 대리님이 나랑 팀장님 사이에 있었던 일들 모르는 거 알지만
그 순간만큼은 박 대리님이 너무 미운거야ㅠㅠ 그렇다고 같이 먹기 싫다고 할 수 도 없고, 내가 회사에서는 서로 모르는 척하자고 말했었는데
내 감정에 내가 휘둘리는 거 같아서 일부러 표정 풀고 박 대리님 따라서 같이 먹자고 말하니까 팀장님이 아까보단 확연히 굳은 목소리로
"미안해요, 선약이 있어서. ㅇ사원이랑 맛있게 먹고 와요."
하더니 사무실에서 나가는 거야. 박 대리님이랑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가는 내내 팀장님 표정이 걸리는 거야.
역지사지라고 하잖아, 만약에 내가 김종대한테 아침 안 먹어서 샌드위치 사줬는데 그걸 다른 사원한테 준 걸 내가 본다면
얼마나 허무할까, 생각이 들고 미안한 마음이 확 드는 거야.
"ㅇ사원. 무슨 일 있어요?"
"네, 네? 아니요!"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직 뭐 먹으러 갈지 못 정한 거에요?"
"아, 네 ㅎㅎ.. 그냥 아무거나 괜찮아요."
"..그럼 바지락 칼국수 어때요? 회사 근처에 잘하는 곳 있는데."
"완전 짱!"
내가 말했지만 모르는 사람처럼 대하기가 마음처럼 쉽진 않았음. 시간이 지날수록 무뎌지겠지만 그 과정들이 힘드니까, 지금처럼.
칼국수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른 채 대충 먹고 사무실 들어오니까 벌써 일하고 계시길래 양치도구 들고 눈치 보다 나옴.
박 대리님이랑 점심 먹으면서 딱히 무슨 일은 없었어. 그냥 박 대리님이 입 안 벌려진 바지락 젓가락으로 까다가 얼굴에 국물 튀긴 일?ㅋㅋㅋㅋ
괜히 우울했는데 박 대리님 덕분에 또 웃게 된 거 같음.
양치질만 하고 나면 왜 항상 따뜻한 우유가 땡기는지 모르겠다. 한 잔만 얼른 뽑아 먹고 가려고 휴게실 들어갔는데 자판기 앞에 팀장님이 서 있는 거야.
마주치면 껄끄러우니까 뒤돌아서 나가려는데 팀장님이 뒤도 안 돌아보고 말하는 거야
"왔으면 마시고 가요."
"..아 쓰레기 버리러 온 거에요.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쓰레기는 무슨 양치 도구밖에 없었는데 일부러 쓰레기통 입구 부분 퉁퉁치면서 나가려는데 팀장님이 뒤에서 'ㅇ사원.' 하고 부르길래
말없이 눈만 크게 뜨고 쳐다보니까 자판기에서 걸어오더니 내 손에 종이컵 하나를 쥐여주는거야. 보니까 따뜻한 우유였음.
"잘못하고 우유를 눌러서요."
"......"
"ㅇ사원 마셔요."
얼른 마시고 들어오라는 말만 남기고 휴게실 나가시는 거임.
휴게실 의자에 앉아서 손에 쥔 우유만 내려다보는데 참 습관이란 게 무섭긴 한가 봐.
연애할 때 김종대가 우리 집에서 살다싶히 했거든? 같이 밥 먹고 양치하면
늘 먼저 일찍 나가서 따뜻하게 데운 우유잔 쥐여주던 생활이 거의 습관적이어서
헤어지고 나서도 한동안은 양치하고 나면 김종대가 데워주던 우유가 생각나곤 했거든.
그 때처럼 직접 데운 우유는 아니었지만, 김종대가 우유 주니까 익숙한 기분이 들더라.
말 그대로 진짜 실수인지, 아니면 내가 양치하고 나면 우유 먹던 일을 아직 기억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되게 편안한 기분이 드는 거야. 또 집가서 씻고 나면 데워주던 우유생각날 거같고 ㅋㅋ..
우유가 완전히 식을 때까지 한참을 종이컵 보다가 들어가야 할 거 같아서 한입에 털어 넣고 얼른 사무실로 들어갔음.
늦게 들어갔다고 조금 혼나서 진짜 열심히 일했다. 우유는 다 식었었는데 속이 따뜻해서 더 열심히 했던 거 같아.
아침에 설마 했던 조기퇴근이 진짜로 하게 생겼어ㅋㅋㅋ 여섯 시쯤 되니까 주위에서 결재서류 들고 팀장실 들어가고
옆에 계시던 분이 나한테 뭐 도와줄 거 없냐고 물어보시더라. 아직 퇴근까지 한 시간 남았는데 거의 퇴근 분위기였어.
아까보단 소란스러운 분위기에 팀장님이 사무실에서 나오더니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여기로 집중하라고 두어번 박수을 치는거야.
"왜 이렇게 소란스러워요. 아깐 열심히 하더니, 일은 다 끝낸 거에요?"
"시간 남아서 그래픽도 만졌어요 팀장님.."
"조기 퇴근하죠 팀장님. 오늘 회식이잖아요!"
팀장님이 말 끝나자마자 여기저기서 일 끝났다고 말하시는데 아 다들 이걸 노리셨구나 ㅋㅋㅋ했다.
난 아직 잘 모르니까 다 끝낸 문서 맞춤법 검사나 돌리고 있는데 팀장님이 내 뒤쪽에 있었거든? 고민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신입사원 환영회니까, ㅇ사원이 하고 있는 일만 끝나면 조기 퇴근하기로 하죠.
ㅇ사원은 다 끝내면 들고 팀장실로 들어와요."
팀장님이 다시 들어가자마자 다들 말없이 나만 쳐다보시는데 박 대리님도 다 끝냈냐고 묻는 거야.
웃으면서 저장 버튼 누르고 유에스비 뽑으니까 다들 환호성 지르시더니 주섬주섬 퇴근 준비를 하시더라고.
다 안 끝냈으면 어쩔 뻔했나 싶었음.
유에스비 챙기고 팀장실 문 앞에서 좀 망설이다가 노크하니까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리길래 쭈뼛거리면서 들어가니까
서류 보던 거 멈추더니 나 보면서 살짝 웃는 거야. 유에스비 줘야 한다는 생각도 잊어버리고 멍하게 웃는 얼굴 보다가
덩달아 나도 살짝 웃어버렸어.
순간 아차 해서 어색하게 웃으면서 유에스비 올려두니까 좀 씁쓸한 표정으로 바뀌더니 다시 웃으면서 유에스비 집어 드는데
괜히 웃었나 싶었음.. 팀장님이 유에스비는 서랍 안에 넣더니 대뜸 뭐가 먹고 싶냐고 물어보는 거야.
"환영회인데 ㅇ사원이 먹고 싶은 거 먹어야죠.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어, 말씀은 감사한 데 딱히 없어서요. 다들 편하신 대로 가요."
"그럼 갈빗살 먹을까요?"
고기집 갈 줄 알았는데 뭐 먹고 싶은 거 있냐고 물어보길래 좀 놀랬다. 원래 신입 사원이 정하는 건가 싶어서 고민하다가
위에서 회식 하라고 보너스 내려온 것도 아니고 팀장님이 사는 거라서 좀 말하기 그렇잖아. 또 신입사원인데.
그냥 아무 곳이나 가자고 말하니까 갑자기 내가 좋아하는 갈빗살 말하면서 먹으러 가자고 말하는데 그냥 싫었어.
점심때 건넸던 우유도, 내 입맛을 아직도 기억하는 일 때문도 아니고
정말 혹시라도 팀장님이, 아니 김종대가 나한테 미련이라도 있을까. 또 착각을 해버려서 싫었어.
"죄송한데 전에 갈빗살 먹고 크게 체한 적이 있어서 못 먹을 거 같아요. 죄송합니다.."
"...아 그러면 회사 근처 고깃집 괜찮죠? 이만 나가 봐요. 곧 나갈게요."
터덜터덜 팀장실 문 닫고 나오니까 들떠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박 대리님이 다가오시더니 무슨 일이냐고 걱정스럽게 묻는 거야.
그냥.. 힘이 없었어.
고개만 절래 흔들면서 괜찮다고 답하니까 더 이상은 묻지 않고 퇴근 준비하라고 어깨 다독여주시는 거야.
괜히 눈물 나올 거 같아서 활짝 웃고 있는데 곧바로 팀장님이 나오는 거야. 뒤돌아 보니까 팀장님 시선이
내 어깨에 올려진 박 대리님 손 위로 잠깐 닿았다가 고개 돌리는데 괜히 뒤돌아 봤나 싶었음.
중독 종대 예쁘쟈나............ 종대생 우럭
여주도, 종대 마음도 아직 확실하지 않아서 잘 모르시겠죠? 네 잘 압니다 빨리 풀도록 할게요!
그리고 박 대리를 확실하게 안 잡아둬서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어요. 좀 있다가 최대한 독자님들 의견으로 연재하도록 할게요.
아, 회식 편 다음으로 과거편 천천히 풀려고해요. 쓰고 싶은 브금이 있었지 말입니다? 드디어 쓰네요 힣ㅎ히찌암하핳ㅎ하항암
혹시 암호닉 빠지신 분은 꼭 말씀해 주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암호닉 <('ω')/
마지심슨, 예헷, 에쏘, 뭉이, 몽실이, 구금, 마녀, 롯데월드, 랄랄, 눈누난냐, 체리, 윤아얌, 잉여킹, 초코송이♥, 딸기, 요를레이, 망고, 쒀나, 블랙앤화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