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어어, 어 이것부터 받아봐 아니 거기 말고 새끼손가락에 걸린 거!
윤기: 뭔 짐이 이렇게 많아요?
탄소: 내가 산 건 아니고, 같이 밥 먹은 오빠가 너 좀 잘 챙겨주라면서 아까 차에서 내릴 때 트렁크에서 엄청 꺼낸 거 그대로 받아온 거야 다 네 꺼래
윤기: ...왜요? 내가 아는 사람이에요?
탄소: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어쩌다 티비에서 무대 하는 걸 봤는데 네가 너무 마르고 그래서 안쓰러웠나봐
윤기: (의문) 그렇다고 생판 남한테 이런 선물을 한다고요?
탄소: 너 그 다쳤을 때 내가 대타로 뛰었잖아 연말에, 오빠가 그거 기억하고 있거든 또 쓰러지거나 이러면 나 고생한다고 미리 미리 챙겨주래 체력 부족하지 않게 살도 좀 찌워두고
윤기: 허; 난 또 뭔가했네
어째서 윤기가 탄소의 가방 가격을 알고 있는가. 그건 아직 두 사람이 말을 놓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약속이 있다며 나갔던 탄소가 쇼핑백을 잔뜩 안고 돌아오는 길에 윤기더러 마중 좀 나와달라 연락을 했던 어느 날이죠.
탄소: 혼자 들 수 있는 정도면 모를까, 이건 좀 무게를 떠나서 너무 많으니까 앞이 안 보이더라고
윤기: 대체 뭘 얼마나 산 거래요?
탄소: 글쎄... 이것저것 샀다고는 하는데...
우선 탄소의 방에 짐을 내려놓고 내용물이 뭔지 확인하자며 의견을 맞춘 둘은 다른 멤버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스럽게 움직였네요. 크게 숨길 이유는 없지만 혹시라도 누가 본다면 설명해야 하는 과정이 귀찮게 느껴졌거든요.
누나의 방으로 따라 들어온 윤기는 바닥에 쇼핑백들을 좌르륵 늘어놓으며 손을 한 번 털었습니다. 무게가 상당한 것도 있고, 보면 볼수록 방대한 양의 쇼핑백이 모두 제게 온 선물이라는 게 믿기지 않아서요. 정말 뭐가 들었을까. 탄소는 쇼핑백들을 내려놓는 동시에 어깨에 매고 있던 크로스백을 침대 위로 던집니다. 아까 너한테 전화할 때 가방에 있는 휴대폰을 꺼낼 수가 없어서 진짜, 환장하는 줄 알았어.
탄소: 이건 겉보기에만 예쁘지 막상 급할 땐 안에 들어있는 걸 꺼내기가 힘들어서 짜증난단 말이야 (휙)
윤기: 어, (나이스캐치)
탄소: ...무슨 농구 패스하는 것도 아니고...
윤기: 암만 그래도 막 던지면 안될 것처럼 생겼는데 나중에 가서 가방 망가졌다고 후회하는 거 아녜요?
탄소: 어차피 집에 있던 거 아무거나 들고 다니는 거라 상관 없어, 색만 다른 걸로 또 있을 걸? 망가지면 본가에 잠깐 가서 새로 가져오면 돼
윤기: 그래도 좀 (떨떠름) ...? 어 잠깐만
탄소: 아 이건 또 왜 여기 굴러다녀
점심 때에 나가면서 어떤 가방이 무난할까 고르느라 평소완 달리 꺼내진 물건이 많았던 탄소의 방이죠. 발에 툭툭 차이는 가방을 발견하곤 그걸 주워들기 위해 탄소가 자세를 낮추는 사이, 금방 던져진 가방의 브랜드를 확인한 윤기의 표정이 찌푸려지네요.
윤기: 이게 집에 있던 아무거나라고요?
탄소: 왜?
윤기: 가방에 박힌 거 큐빅은 아닐 거 같은데
탄소: 어 아마 다이아?
윤기: ???? (황당) 근데 던졌어요???
탄소: 그 조그만 거 누가 신경 쓴다고...
윤기: 와, 나 진짜 (대환장)
이때는 아직 러브유어셀프 투어를 돌기 전, 그러니까 탄소가 조화 장미 꽃다발로 석진에게 다이아 박힌 반지를 선물하기 전입니다. 그 반지에 다이아가 박힌 걸 아는 것도 석진과 윤기 뿐이에요. 다들 누나의 무대 직전 선보인 조화 드립의 환장쇼만 기억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윤기가 암만 부르짖는 탄소의 진실에도 모함이라며 먹이금지를 시전합니다. 문득 짠해지네요. 거의 양치기 소년급. 윤기의 쓸쓸한 외침은 이때부터 시작이었던 걸까요?
탄소: 사람이 그런 사소한 거에 연연하면 못 써
윤기: 이게 뭔 사소한 거예요!!
탄소: 인간적으로 가방에 실용성이 없는데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보석이 대수야?
윤기: 아니...! (울화통)
탄소: 너도 뭐냐, 백만원 넘는 라이더 입고 그러잖아
윤기: 그걸 던진 적은 없거든요? 완전 소중하게 다루는, 뭣보다! 애초에 이건 그거의 몇 배는 될,
탄소: 아 몰라 갖고 싶으면 말해 똑같은 거 사줄게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라서 윤기는 대화를 포기했습니다.
탄소: 너네도 가방 비싼 거 들고 다니잖아... 나한테만 뭐라 그래...
윤기: 던진 적은 없다니까요!
탄소: 알았어 물건 던지는 게 좋은 건 아니니까 고칠게...
포인트를 잘못 짚은 탄소 때문에 한 마디라도 더 이어나간다면 험한 말이 튀어나갈 것 같았거든요.
윤기: (착잡) 그래서 뭐부터 열어요?
탄소: 어차피 네 선물인데 마음대로 해
그리고 탄소는 주워든 가방을 침대로 살포시 던졌습니다. 윤기의 눈치가 보여 나름 신경을 쓰긴 했는데, 던진 건 던진 거죠.
윤기: ... ...
탄소: 미리 말하지만 살포시 안겨준 거야, 푹신한 침대의 품으로
윤기: 말을 말자
조용히 쇼핑백에 들어있는 걸 꺼내어 살펴보면 헛웃음이 절로 나옵니다.
탄소: 오, 몸에 좋다는 건 싹 쓸어왔나보네
윤기: 약간 할 말이 없거든요 지금 되게 부담스러워요
탄소: 이참에 건강 챙기고 좋은 게 좋은 거지
윤기: 모르는 사람한테 이렇게 받아봤자...
탄소가 걱정할 거 하나 없다며 말해주기를, 먼 친척 어른에게 뜻밖의 두둑한 세뱃돈을 받은 셈치면 되지 않겠냐고 합니다. 어처구니가 없어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 따지니 옷장을 열고 그 안에 있는 가방들을 꺼내어 침대 위로 툭툭 던져대는데요.
탄소: 어릴 때부터 집에 쌓여있던 가방들 중에 여기 있는 걸로만 따지면 최소 삼백에서 제일 비싼 건 못해도, 억은 넘긴댔나
윤기: ??????
탄소: 나 태어난 거 축하한다고 예전에 어디 브랜드 수석 디자이너가 딱 하나 만들어 선물한 거랬어
아이가 자라서 소녀가 되고 숙녀가 될 때, 중요한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제 생일과 같은 날 완성되었던 이 가방과 함께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어요.
탄소: 근데 이게 그 디자이너가 은퇴하기 전까지 만든 가장 마지막 가방이래, 그래서 부르는 게 값이라나봐
세상에 단 하나뿐인 너를 위해 어디에도 없을, 너만을 위한 선물을 준비했단다.
탄소: 난 본 적도 없는 사람이지만 이런 엄청난 걸 받았단 말이지
윤기: 아니, (최소 억...?)
탄소: 부담스럽다는 건 그 사람의 정성을 제대로 받아주지 않는 거랑 다를 게 없잖아
윤기: (안 들림)
탄소: 그러니까 너도 그런 말 하지 말고 좋은 마음으로 받아 내가 다른 가방은 전부 험하게 다뤄도 이건 그렇게 하지 않는 것처럼, 그게 선물해준 사람에 대한 예의니까
이건 얼마고 저건 얼마고, 하는 그 선물의 값을 떠나서 그걸 고른 사람의 마음을 먼저 이해하란 말이야.
윤기: 근데 그 가방은 마음을 떠나서,
탄소: 저기 있는 가방도 맞으면 억 소리 나는데 던져줘?
윤기: 죄송합니다
윤기는 이렇게 탄소가 들고 다니는 가방의 가격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탄소에겐 정말 물건의 값어치를 떠나서 담겨있는 의미가 더 중요하단 걸 실감한 순간이기도 하죠. 약간 인터넷에 나오는 그런 거 있잖아요. 난 이깟 돈이 아니라 진심 어린 축하를 받고 싶었어!
호석: 나한텐 돈만 보고 다가오는 사람 밖에 없다면서 한강이 보이는 고층 빌딩 옥상에서 이 건물이 대체 뭐라고 이러는 거냐 소리 질러보고 싶다, 막 내가 그 건물주인이고 그런 거
탄소: ...뭐야...
호석: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더이상 상처받지 않겠다고 니들이 원하는 대로 나도 돈으로 사람을 사겠다 외쳐보고 싶다
탄소: 잠 덜 깼니?
남준: 형하고 저는 회사가 아니라 아버지가 필요했던 거라고요! 하면서 화내보고 싶다
탄소: 너 여동생 하나잖아
남준: 복권 당첨됐는데 재미삼아 해본 게 당첨이네? 근데 생각보다 액수가 많진 않다, 라면서 그 수령금을 아무렇지 않게 모두 사회에 기부하고 싶다
지민: 그럼 전 생일선물로 건물 몇 개 받고 우울해져서 방문 쾅 닫고 들어가는거요 그럼 이제 밖에서 경호원들이 도련님 왜 그러십니까 묻고 나는 침대에 엎어져서 이런 걸 바란 게 아니야... 난 그냥 어머니가 해주신 미역국이 먹고 싶었을 뿐이라고, 하면서 우는 거죠
석진: 생일이면 이거지, 어릴 때 생일에 아버지가 놀이공원에 데려가준다고 약속하셨으면서 막상 생일 되니까 일 때문에 바빠서 비서 아저씨가 대신 온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아서 놀이공원을 싫어하는 거
남준: 좀 하루가 잘 안 풀릴 때 집 들어오면서 현관에 놓인 온갖 고가의 신발들 전부 거슬린다면서 그냥 발로 다 밟고 온 몸에 두른 명품 악세사리, 옷 그런 걸 모두 찢듯이 벗어던지면서 진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화내면서 악 지르고 싶은 그 느낌?
정국: 어 다들 나랑 생각이 다르네여 전 블랙카드로 소액 결제하다가 카드 정지 먹어서 난 너 그렇게 가르친 적 없다 잔소리 들어보고 싶은뎅!
탄소: 단체로 돌았냐고 그냥 요플레 뚜껑만 핥고 요플레를 버린다고 해;;
탄소와 지한 남매라면 충분히 할 수 있을 법한 멤버들의 망상이죠. 이미 몇 가지는 해본 적도 있습니다.
탄소: 이깟 구두가 뭐라고! (굽을 부러트린다)
열여덟 생일 선물로 도착한 택배와 함께 성인이 된 딸이 이 구두를 신는다면 무척 예쁠 것 같단 엄마의 짧은 쪽지에 상자를 열어보고 스무살이 되길 기대했던 탄소. 하지만 정작 스무살이 되어 한참 만에 만난 어머니는 자신이 선물한 구두를 신은 딸에게 예쁜 구두를 샀다며 칭찬하셨었죠. 엉망진창으로 망가진 기분에 또 금방 떠나는 뒷모습을 보며 지미추 구두를 그렇게 박살냈던 누나와,
지한: 밥 사먹으라고 준 카드인게 뭔 상관이야, 일단 뭔갈 사라고 준 건 맞잖아
아빠카드를 가져다 사라는 밥은 안 사먹고 엉뚱한 차를 뽑은 동생이니까요. 일단 둘다 어릴 때부터 건물주였잖아요.
탄소: 다른 집처럼 돈 때문에 너네 하고 싶은 거 못하게 막은 적 없다고? 아, 예, 참 대단하신 발언이세요 그래서 다른 집처럼 애가 하고 싶어하는 가족끼리 외식하기, 놀러가기 이런 거 한 번을 못해주셨어? 내가 지한이한테 우린 엄마 아빠가 왜 집에 없냐고, 왜 다른 애들처럼 같이 놀아주지 않냐고 들을 때마다 뭔 생각했는지 알긴 해요? 단 한 번이라도 날 이해하려고 노력한 적은 있냐고!
멤버들의 상상과는 달리 그게 제 삶의 일부인 탄소. 사실 그 장난스러운 대화를 들으면서 내심 마음이 아렸습니다.
얼굴 모르는 사람의 정성 어린 선물에 더 감동 받는 이유라면 부모님에게서 받아보지 못한 진심이 있기 때문이에요. 똑같은 고가의 선물이라도 말 한 마디 적힌 선물에 마음 가고, 그저 짧은 쪽지와 함께 보내진 상자는 그 내용물이 어떻든 소홀해지는거죠. 물질적인 것으로 흔들리기엔 사람의 정이 더 그리워서.
탄소: 내가 가진 것만 보고 달려드는, 엮여보려는 사람들이 너무 싫어
지한: 그럼 그걸 이용해서 역으로 누나를 건드리지 못하게 막아
탄소: ... ...
지한: 비참할 때 비참해도 돈이 있으면 덜 비참해보이는 법이야
탄소가 큰 돈을 가지고 노는 데에 거하게 일조한 것은 동생인 지한.
하지만 이때 한 말의 결과가 폐공장을 사다가 건물 외벽에 멤버 얼굴을 그리고 내부에는 사진을 전시하는 걸줄은 몰랐겠지요. 생일축하 한 번 하려다 이 무슨 난리인지.
지한: 난 그때 뭔 생각으로 짓걸인 걸까
탄소: (꿈나라)
전편에서 지민과의 통화를 끊은 지한은 마른 세수를 할 뿐입니다.
도무지 예상할 수 없는 방향에서 말 잘 듣는 누나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