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 막상 밥 사주려니 감당이 안될 것 같아?
탄소: 제가 왜 댁한테 밥을 사요?
외국 콘서트에서 공연 끝내고 대기실에 찾아온 낯선 한국인. 다짜고짜 아는 척을 해대니 짜증스러운 탄소는 아무래도 사람을 착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번에 마주친 미친놈처럼 돈 많은 집 망나니라고요. 불신과 꺼림칙함이 들여다보이는 탄소의 눈빛에 한숨을 쉬며 머리를 쓸어넘긴 이현은 앞을 막는 태형을 밀어내고 탄소의 뒷목에 손을 얹으며 얼굴을 바짝 당겨 속삭입니다.
이현: 내가 진짜 이렇게까진 안하려고 했는데 (한숨)
탄소: 죄송한데 입냄새 날 것 같아요, 떨어져서 말씀하세요 우리 애 민 거 사과하시고요
호석: 뭐야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이야 (소곤)
남준: 나도 몰라... (속닥)
역으로 입술을 가까이 대고 말하는 탄소로 두 동창의 분위기가 흥미진진한데요. 호석과 남준은 모솔이라고 주장하던 탄소와 다른 말을 하는 동창으로 인해 난리가 났습니다. 탄소가 살면서 이성적으로 좋아한 사람은 석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줄 알았는데요. 뭐, 입냄새 얘기를 하고 있단 걸 모르니 흥미진진해 보이는 거겠지만요.
매니저: 아이고 뉘신데 우리 탄소한테 수작질이세요!!!
이현: (봉변)
매니저: 저희 애가 뺨 때리기 전에 살려드린 거니까 노여워는 마시고요!!!
탄소: 아니 뭔 사람을 깡패로 만들어요
매니저: 다른 스태프들은 왜 말리지 않고!!
호석: 제가 데려왔어요... 여기까지 올 수 있는 건 우리 지인 아니면 못 들어오니까 처음부터 다들 말릴 이유가 없죠...
남준: 예에.. 호석이 지인이에요
매니저: 그럼 호석이 네 지인은 뭐한다고 탄소한테 난리야! 설마 둘이 키 비슷하다고 사람을 착각한 건 아닐 거 아냐!
호석: 갑자기 키 얘기가 왜, 왜 나와요
뒷정리가 한창인 스태프들 사이에서 달려나오는 건 다름 아닌 매니저. 다같이 모여있나, 싶었더니 무슨 장정 하나가 더 있는 게 아닌가요? 거기에다 매니저가 본 각도에선 절묘하게 입맞춤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기겁에 경악을 하며 뛰어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구석에 있는 석진의 표정은 관리되지 못해 입은 웃고 있지 않으나, 눈은 살며시 접힌 부조화를 이뤘으며 정국과 지민은 힐끔 눈치를 보고 윤기는 시큰둥해보이지만 결국 궁금해하는 눈치! 호석과 남준은 둘이서 뭔 비밀얘기가 오가는지 붙어있고, 태형은 탄소와 장정의 가장 가까이 있었죠. 남자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탄소의 눈빛이 장난아니게 사나워서, 사고 치기 전에 냅다 몸통박치기로 남자를 밀어낸 매니저입니다. 듬직하네요.
지민: 누나?
이현: 뭘 봐
탄소: 혹시 안경태씨,
이현: 아니거든
탄소: 희준오ㅃ,
이현: 아니야
탄소: 박정ㄱ,
이현: 아니라고
탄소: ...강이안?
이현: ... ...
탄소: 민석씨? 혜정이네 사촌? 아니면 누구, ...유라언니 거래처 대표님?
이현: 다 틀렸어
태형: 누나 아는 남자 좀 줄여요...
석진: 태형이 이리 와, 거기 있지 말고
탄소: ... (아차)
윤기: (입꼬리 경련)
뜻밖의 티엠아이를 들은 석진의 표정이 말로 형용할 수 없게 심각합니다. 표정관리를 관뒀군요. 그럴만 합니다. 잠깐 사이 나오는 것만 일곱이에요. 아는 이름은 하나도 없고, 연예인 이름은 나오지도 않은 걸 보니 대충 떠오르는 것만 말한 모양인데 그럼 제대로 입 털면 어떻게 된단 말인가요. 새삼스럽게 탄소에게 관심 많은 남자가 수두룩하단 걸 느껴 유쾌하지 못한 기분이네요.
나도 아는 여자가 없는 건 아니지만, 친구 중에 남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친한 지인 중에 여자가 있는 것도 맞지만 그래도 불편한 마음은 감출 수가 없죠. 탄소의 선샤인한 미소를 나만 보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다는 걸 너무 현실적으로 뼈 때리게 맞는 느낌이라서요.
그리고 그런 형의 표정을 보고 뒤늦게 아차하는 누나까지 본 윤기는 뒤를 돌아 코를 잡을 정도로 필사적인 자세를 통해 웃음을 참으려 노력합니다.
탄소: ...아, 정호석 네 지인이라며 누구야?
호석: 그게...
이현: 이 망나니를 어떡하지?
탄소: 제가 망나니면 댁은 개망나니고요, ...망나니?
언동이 몹시 막된 사람더러 망나니라고 하잖아요.
탄소: 옛다 선물
이현: 뭔데
탄소: 내 사물함에 누가 넣어놨던데
이현: 니 사물함에 있던 걸 나한테 던지는 이유가 뭐냐고
탄소: 학교 망나니를 위한 프레젠트면 너한테 주는 거 아니냐
이현: ...너 반에서 외면 당해?
탄소: 내가?
이현: 아니야?
탄소: 너 아니고?
탄소와 이현에게 있어 망나니라는 단어는 둘만의 오랜 추억이 담겨 있는데요. 아직 어리고 응애인 중학생 시절, 점심 시간 동안 탄소 수강자는 원치 않으나 이현 선생님의 적극적인 학구열에 따라 음악실에서 개인 강습을 받던 때입니다. 곡 하나를 완성시키는 데에 필요한 기본 작업 같은 걸 배웠죠.
이현: 내가 왜 외면을 당해
탄소: 친구 없으니까 점심 시간마다 밥 안 먹고 나 부르는 거잖아
이현: 너 안 오는 날엔 그럼 뭐하는데
탄소: 여기에 혼자 틀어박혀서 무릎 끌어안고 엉엉 울기
이현: 착각은 자유라지만 미안하게도 매일 급식 잘 먹고 다닌다 친구'들'하고 (강조)
탄소: 그럼 됐고
이현: 그러는 너야말로 갈 곳 없으니까 나한테 오는 거잖아
탄소: 뭐래, 지민이한테 밥 빨리 먹자고 닦달해서 겨우 오는 거거든? 간곡하고도 애절한 부탁을 매번 거절하기가 너어~무 미안해서?
이현: 말 한 번 재수없게 잘하네
생각보다 과격한 언사로 서로를 대하던 두 동창이에요. 딱 교복 입기 시작한 꼬맹이들이 할 법한 대화이기도 하고요. 물론 둘 다 덩치는 꼬맹이가 아니었지만.
이현: 솔직하게 박지민인가 하는 걔 말곤 친구 없지
탄소: 친구는 없고 팬은 많아
이현: ;;
탄소: 뭘 봐
이현: 너 같은 애를 두고 망나니라고 하는 거야
탄소: 사람 면전 앞에서 망나니라고 말하는 네가 더 개망나니
이현: 넌 만두보다 갈등을 잘 빚겠다
탄소: 어, 나 만두 완전 잘 빚는데! 마치 티끌 한점 내려앉지 못하는 매끄러운 이 피부처럼
이현: 박지민한테 평생 절하면서 살아라, 너 같은 애랑 친구 해주는 게 기적이다
탄소가 던진 선물을 함께 열어본 결과, 작은 쪽지와 같이 들어있던 두 개의 실팔찌를 확인합니다.
이현: 망나니 같은 너를 붙잡아줄 수 있는 애랑 나눠끼라고 한 걸 보면 박지민 말하나본데
탄소: 갖다버려야겠네
이현: 왜?
탄소: 한 두 번 받은 것도 아니고, 불쾌해
이현: 어떤 점이?
탄소: 이거 우리 학교 애가 넣은 거 아닐 수도 있어
이현: 그럼 누가 넣어, 네 사물함인데
탄소: 모르지, 내가 아는 건 나랑 박지민을 자기가 보는 연애소설의 주인공쯤으로 생각하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니까, 그래서 이런 걸 선물하고 이런 말을 적은 쪽지를 쓰고
이현: 버리는 건 아까운데 영 그러면 박지민 말고 다른 애랑 하지 그래, 예를 들면 네 옆에 있는 나?
탄소: 농담이지?
이현: 난 이거 마음에 들어
탄소: 그럼 다 가져
이현: 혼자 팔찌 두 개 차고 다닐 욕심은 없어서
탄소: 개망나니라고 하니까 진짜 막 나가네
이현: 너도 나한텐 그래
이 선물을 보낸 의도가 불쾌하면 바꿔 생각해. 이건 너랑 내가 맞춘 거고, 나눠가진 거라고.
이현: 서로 망나니라고 부르는 걸 기념해서 하나씩 서로한테 준거야
탄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더니...
이현: 마침 색도 빨간색이네
탄소: 그러니까 더 버리고 싶다고 (끔찍) 의도가 너무 투명해서 짜증난다니까
이현: 나랑 이런 거 하는 게 싫어? 너 나 별로야? 안 좋아해?
탄소: 당연히,
이현: 참고로 싫다고 말하면 울거야
탄소: ... ...
이현: 보기보다 마음 여려
탄소: (마른 세수) 진짜 제정신은 아냐...
이현: 생각보다 감성적이고
탄소: 아 됐어 나 너 좋아해, 팔찌 줘! 손목에 찰 거니까
이현: 내가 해줄게
탄소: 징그러운 짓 하지마
이현: 마음 여리고 감성적이라 했잖아
탄소: 네 마음대로 해
김탄소와 서이현이 팔찌를 맞춘 것부터 탄소가 이현에게 좋아한다 말했다는 전부가 이렇습니다. 교묘하게 악의적인 편집을 사용한 이현을 보고 있자니 어째 지한이 떠오르네요. 첫등장에서 멤버들에게 환장과 혼란을 가져다주었잖아요.
지민: 망나니가 왜요...?
탄소: 세에상에, 나한테 살면서 평생에 망나니라고 말한 게 딱 하나야, 내가 개망나니라고 부른 쟤
이현: (언짢) 물건도 아니고 말한, 게?
탄소: 니가 왜 여기 있어?
이현: 생각보다 안 반겨주네
탄소: 그럼 뭘 바라는데
이현: 안아줘
탄소: 개 짖는 소리하는 거 보니까 서이현 맞잖아 (소름)
이현: 뭐야?
탄소: 어쩐지 재수없게 생겼더라!
이현: 듣자 듣자 하니까 이게,
탄소: 넌 어떻게 된 애가 역변을 했냐
이현: (말문 막힘)
탄소: 어쩜, 내가 답지않게 이런 상스러운 말이 튀어나온 건 습관 때문이었나봐! 오빠, 소개할게요 이쪽은 내 동창 서이현
매니저: 너 여고 나왔잖아
탄소; ...중학교 동창 (어금니 꽉)
매니저: ...그럼 너랑도 아는 사이라는 거지?
이현: 알다마다요, 김탄소 중학생 때는 얘 동생도 모르는데 전 다 압니다 몇 반 누구한테 고백을 받았고 어느 누구한테 러브레터를 받았으며,
탄소: 나대지마
매니저: 아는 사이면 됐어, 이따 부르러 올 테니까 애들하고 같이 어디 멀리 가지만 말고
탄소: 네~
매니저가 떠나자마자 탄소에게 시비 거는 이현.
이현: 나이 먹고 경박하게 나대지마가 뭐냐
탄소: ???? 경바~악? 내가 대통령하다가 망한 명박은 아는데 경박은 처음이다 진짜
호석: ????? 두 분 일단 진정하시고요,
정국: (충격)
석진: 탄소야알
다마다요, 천연덕스러운 대꾸를 하는 건 이현. 탄소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친근함을 표시합니다. 십년도 더 지나서 만났으니 사실 남이라고 봐도 무방한데 저렇게 스스럼 없는 걸 보니 대담하네요. 스킨십에 민감한 탄소도 불편해서 밀어내는 눈치는 아닙니다. 경박하다는 말에 욱해서 팔을 밀어내며 맞받아치는 걸 보니 학교 다닐 때 어땠는지 알 것도 같고.
석진은 어느 정도 둘의 관계를 이해한 후에야 탄소의 이름을 부를 엄두를 냈습니다. 석진에게도 이현을 소개하려는지 눈을 깜박이는 탄소.
탄소: 오빠한테 하는 말 들어서 알겠지만,
이현: 여기에도 박지민 있다면서?
지민: ... ...
탄소: 좀 다물어봐
이현: 내 입으로 내가 말하겠다는데
탄소: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거 보여줄까?
이현: 아니
탄소: ... (마른 세수) 인사해 이쪽이 나랑 같은 92년생, 진
이현: 안녕하세요
어느 틈엔가 탄소의 허리로 내려가있는 이현의 팔이 무엄하네요. 그걸 너무 아무렇지 않게, 눈치챌 이유도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탄소는 이현의 손이 어디 있는 지도 모르는 것 같고요. 오랜만에 만나면 있던 살가움도 없어져서 낯설지 않나.
이를 꽉 깨문 석진은 이현이 내민 손을 잡고 악수를 하며 억지로 웃습니다.
탄소: 근데 왜 이렇게 치대?
이현: 한국에 없는 너 보려고 이 먼 거리를 날아왔어
탄소: 근데
이현: ...말을 말자 뭘 바라냐
석진: ... ...
태형: 누나는,
이현: ?
태형: 제 거예요
이현: 실례지만 얘가 누구 거라고요?
호석: (경악)
호석과 남준은 무언가 실수했다고 생각합니다. 만나게 하지 말았어야 했다. 망했다. 석진 형한테 혼날 일만 남았네. 태형이한테도.
탄소: 너 아까 애 민 거 사과 아직 안 했지, 지금 사과해
이현: 야 아니 잠깐만
탄소: 해
이현: 어린 애는 죽어도 안된다고 했었잖아
탄소: 눈에 힘 풀고
이현: 언제부터 사귄건데
탄소: ??? 나 애인 없어 미친놈아
그렇죠. 탄소는 현재 이별 후 계속 솔로 중. 석진의 속이 타들어갑니다. 틀린 말은 아닌데 여기서 가만히 있자니 열불나고, 그래요.
이현: ...아, (정신 차림)
탄소: 사과 안 해?
이현: 아깐 너무 미안했어요
안도하듯 웃는 이현의 표정에 입술을 깨문 태형. 탄소는 제대로 하라며 이현의 뒷통수를 때립니다.
이현: 날 못 알아보니까 너무 서운해서, 애타서 실례했습니다
태형: ... ...
이현: 방금 웃은 것도 사과할게요 이건 그냥 좀,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서요
탄소: 다행이긴 뭐가 다행이야 인성이 글러먹었는데
이현: 같이 글러먹은 네가 먼저 솔로탈출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왜
석진: 저기요
이현: 네?
모름지기 서브의 가치란 메인을 후회하게 만들고 안달나며 위태롭게 위협할 줄 알아야 된다 배웠습니다. 그렇게, 석진이 이현을 부르고 한 말은 뭘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