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진: 저기요
이현: 네?
여행 다녀오는 직후에 병이 나서 오늘에야 퇴원한 꽃놀이패의 머쓱한 환영쇼~ 임시저장한 글들이 모두 지워진 두 달의 공백 (박수)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다들 건강하셨나요.
석진: ... ...
석진은 정작 할 말을 찾지 못해 입만 뻐끔거립니다. 하기야,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정식으로 재결합한 사이도 아닌데 제가 이 친구의 전애인이니 보기에 불편하여 떨어져주시겠습니까, 는 너무 어처구니 없는 요구죠.
이현: ?
탄소: ...야 아니 왜 말을 못해? 이 여자가 내 여자다 말을 하란 말이야!!!
남준: ???? 누나????
탄소: 서이현보다 네가 못한 게 뭔데엒!!!! (극대노)
태형: ???????
이현: 김탄소 이거 왜 이래;; 너 정신 나갔어?
탄소: 방해되니까 꺼져 좀!
이현: 어떻게 그런 심한 말을...
허리에 감긴 이현의 팔을 털어내기까지 걸린 시간 5초. 그렇습니다, 학창시절 탄소가 검도를 하면서 기른 악력은 여전히 강철이죠. 중학생 때에 시작해 고등학교 입학 전까지 배웠던 검도는 더 오랜 시간을 들인 발레보다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같은 중학교를 나온 이현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는데요. 하도 오랜만에 보는 지라 잠깐 까먹고 방심한 사이 된통 당하는 모습이 일품이네요.
반쯤 안겨있던 몸을 빼내는 동시에 팔을 비틀어 꺾은 탄소는 순식간에 이현을 제압합니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아프다며 악 소리내는 이현과 시끄럽다며 표정으로 욕하는 탄소. 입으로는 꺼지라고 했지만 곧이 곧대로 꺼질 것처럼 보이지 않았는지 과감하게 팔을 꺾은 모양새가 퍽 익숙해보입니다. 10년도 더 지나서 만났다는 두 얼굴이 이토록 거리낌 없을 수 있을까, 남준과 호석은 동공지진이 일어나네요. 일단 누나랑은 확실히 아는 사이구나.
탄소: 난 얼굴도 모르는 니 첫 여자친구가 신경쓰여서 쌩난리를 쳤는데!!! 이 파렴치한 샛기가 나한테 달라붙어도 왜 한 마디를 못하는 거야, 왜앢!!!!
이현: 애인 없다매!!!
탄소: 니 알빠냐고!!!!!
이현: (황당) 뭐야?
탄소: 어떻게,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니가!!!! 이러고도 잘 살 것 같애?!!!!
석진: (마른 세수) 탄소야 잠깐, 일단... 일단 진정을 좀 하고...
탄소: 뭐 알아서도 잘하니까!!! 이렇게!! 잘!!!! 하니까!!!! (우드득)
이현: 악!!!!!
호석: 야 어떡해... 팔 부러진 소리 난 거 아냐...? (소곤)
남준: 몰라 진짜 어떻게 해... (속닥)
태형과 석진의 눈치를 볼 일이 아니었나 봅니다. 오히려 누나를 만나겠다는 동창을 다른 의미로 (살리기 위해서) 만나지 못하게 막았어야 했나 싶은 이 심정이죠. 정국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누나의 과격한 모습에 겁을 먹었는지 윤기의 뒤로 슬금슬금 숨었습니다. 까불거리는 호석과 윤기를 응징할 때에도 적극적인 태세를 갖추지 않았던 누나거든요. 그냥 좀 쫓아가서 엉덩이 한 대 발로 까주는 걸로 끝내던 누나가 사실은 이렇게 무서운 사람이었습니다.
내일이 없던 미성년자 시절, 누나가 너 성인만 되면 두고 보라던 말을 그렇게나 비웃었는데 전혀 가볍게 넘길 말이 아니었네요. 성인이 되고서도 저 어린애 혼낼 구석이 어디 있냐고 봐주던 걸 감사해야겠어요.
탄소: 나서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 정리하니까!!!! 그래서 신경 안 써도 된다 이거야?!!!!!
석진: 아니야!!!!
탄소: 아니긴 뭐가 아냒!!!!!!
정국: 난 눈 멀어ㅆ... (눈치)
탄소: 사랑은 뭐가 사, 전정구욱!!!!! 누나 말하는데 끼어들지 말랬지!!!!!
정국: (화들짝)
윤기: ... 그래 정국아 이번엔 네가 눈치가 없었다
평소라면 같이 받아쳐줬을 탄소지만 눈에 보이는 게 없는 지금, 막내의 장단에 맞춰줄 여유는 없어 보입니다. 사실 정국이 무의식적인 습관으로 뒷가사를 부른 게 실수이긴 했지만요. 자기의 두 배쯤 되는 체격의 이현을 아무렇지 않게 잡아두고 엉뚱한 곳에 욱하는 탄소. 아직도 석진의 첫 여자친구가 궁금한가봅니다. 게다가 탄소의 지인들 앞에서 제대로 말을 못하고 감추는 석진의 태도가 답답하기도 했고요.
다른 곳에서나 그래야지 싶은 거지, 뒤에서는 마음 졸인다면서 겉으로는 내색 않는다고 지인들 앞에서 입을 꾹 다무는 게 여간 속 터지는 일이었을까요. 밖에 나간다고만 하면 잔소리해대는 것도 환장할 노릇인데, 막상 잘라내서 말해야 할 타이밍엔 가만히 있는다니요. 그럴거면 처음부터 내가 누굴 만나든 간섭하지 말든가.
매니저: (경악) 김탄소!!!!!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이현: 여기 약 먹을 시간 지난 미친 여자 하나 있어요!!!!! 살려주세요!!!!!
탄소: 이게 말이면 단 줄 알아?!!!! 너 오늘 딱 걸렸어, 너 십년전에 나한테서 빌려간 십만원 내놔!!!! 우리 지민이 고기 사주게 돈 내놓으라고 이 양아치 날라리 딴따라앾!!!!
지민: (환장파티)
동창의 얼굴은 알아보지 못했지만 빌려간 돈의 액수는 정확하게 기억한다는 김탄소. 이 난장판 속에서도 지민의 생일만은 잊지 않았습니다.
매니저: 십만원 내가 줄게!!!! 내가 줄 테니까 이건 놓고 얘기하자 제발...!!!
탄소: 오빠가 나한테서 돈 떼먹었냐고요!!!!!!
매니저: 아니!!!!!!
이현: ?! 야 십만원 그거,
탄소: 김석진 너 진짜 끝까지 이럴 거냐고!!!!!
석진: 내가 뭘 어쨌는데!!!!!!
이현: 김탄소 너 나 이용해서 사랑싸움 할 거면 이거 놔!!!!!!
탄소: 어 그래
이현: ?
매니저: ??
여지껏 팔이 꺾인 채로 고생 중이던 이현은 놀라우리만치 황당하게 풀려납니다. 탄소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이쪽을 보는 해외 현지 스태프들에게 웃어주며 단지 장난을 치는 중이라고 거짓말을 하네요. 함께있던 빅힛 크루 소속 스태프들은 어색하게 오케이 사인을 보낼 따름이죠.
탄소: 오빠, 여긴 아무 일 없으니까 그만 가보셔도 돼요
매니저: 너 방금 전까지,
탄소: 즈ㅏ~ 저어기서 우리 오빠를 찾는 것 같은데여~ 아 예~ 갑니다~
종 잡을 수 없는 태세전환에 갈피를 잃은 매니저의 시선. 탄소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혼란스러운 틈을 타 매니저를 돌려보냅니다. 부르러 오면 바로 튀어나갈게요, 라는 말과 함께 말이지요. 자신을 가로막을 수 있는 매니저를 보내고 차분하게 머리를 쓸어넘긴 탄소가 다시 입을 여네요.
탄소: 그래 뭐, 정신이 없어서 이제야 묻는 건데 네가 정호석이랑 어떻게 아는 사이길래 지인이라면서 여길 들어와?
남준: (휘둥그레) 저, 누나...?
이현: 아 그거~ 친구가 방탄 멤버랑 같은 학원에서 연습했었다길래 연락처 받아냈지, 야 근데 너 그 자세 뭔데, 뭐, 아, 아악 아! 야 김탄소! 정강이는 왜 까는데!!!!
탄소: 니가 뭔데 날 내려다보는거야, 당장 공손하게 자세 갖춰
태형: 누나,
탄소: ...맞아, 태형이한테 사과도 장난으로 건성건성 대충 했지
이현: (기겁) 아니?! 쳔년의 진심을 담았는데?!
탄소: 머리털 다 뜯기고도 그 개 짖는 소리 나오나 한 번 볼까?
태형: 나, 난 괜찮아요 (동공지진)
탄소: 닌 진짜 다음에 또 이러면 사회적으로 매장 시켜버린다, 거기 정호석
호석: ㅇ, 예?
탄소: 누나가 말했지 네 개인정보 막 뿌리고 다니는 사람하곤 상종도 하지 말라고
호석: 어 아니 그거는...
이현: 야 나니까 알려준 거지, 걔도!
눈빛으로 사람 기 죽이는 탄소. 아, 이렇게 두 동창의 학창시절을 엿보게 되는 건가요.
탄소: 뭐! (으르렁)
이현: 니가 사람이지 짐승이야?!
호석: 지민아 너 생일이니까 그걸로 어필해서 누나 좀 말려봐 (소곤)
지민: ...진심이에요?
호석: 저러다 누나 동창 머리털 다 뽑힐 것 같아서 그래...!
지민은 큰 용기를 내어 말해보기로 합니다.
지민: 누나 저 오늘 생일인데 계속 싸울 거예요?
탄소: 아니!!!
윤기: 아, 놀래라... 기차 화통 삶아먹은 줄 알았네
이현: 어, 박지민 동명이인이 저 사람이야?
탄소: 우리 지민이 생일날 기분 나쁘게 그 이름 꺼낼래
지민: (동명인데...)
결국 탄소가 불안하기도 했고, 숙소로 돌아가야 해서 멤버들을 데리러 온 매니저 덕에 상황은 끝났습니다.
매니저: 아니 왜 바닥에 무릎을 꿇고... (황당)
이현: 쟤 아이돌 아니고 그냥 돌아이 맞죠
탄소는 매니저 오빠한테 혼났습니다.
탄소: (시무룩)
정국: 거, 누나 너무 그러지 말고...
탄소: 오빠 미어 (힝)
매니저: 그러든가
탄소: ㅠㅠㅠㅠ나만 미워해ㅠㅠㅠㅠ
남준: 누나 방금 미워를 미어라고 한 거예요? 형한테 혼난 게 서운하단 이유로?
지민: 와 진짜 누군 연상 못해서 살겠나
매니저: 너넨 또 뭐야?...
이현에게는 따로 약속을 잡으라며 양해를 구하고 멤버들을 차에 태운 매니저. 이현은 탄소의 연락처를 받아내곤 자리를 떠났습니다. 나이는 서른을 앞두고 있는 애가 오랜만에 만난 동창과는 무릎이나 꿇게 하고 있다니 생각할수록 기가 막힌 매니저는 운전을 하다 말고 신호에 걸려 차가 멈추자 뒤를 돌아보는데요.
탄소: (도롱도롱)
매니저: ...쟤 설마 자는 거야?
정국: 아 누나 깨잖아여 쉬잇...!
매니저: (얼탱)
세상 모르고 순하게 잠든 탄소가 정국에게 안겨 있습니다. 딱히 전후 상황을 보지 않아도 탄소가 졸기 시작하니 불편해보이는 누나를 조금이나마 편하게 해주려 제게 기대도록 했을 정국인걸 짐작할 수 있네요. 두 눈으로 보아도 믿기지 않는 극과 극인 모습에 혀를 내두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죠. 하여간에 깨어 있으면 악마, 자고 있을 땐 천사라고 불리는 유아기의 어린 아이와 다를 게 뭔지 모르겠습니다.
매니저: 나보곤 탄소 깬다고 뭐라 하는데 그럼 잠든 누나 만지작대는 너넨 뭐냐
남준: 저, 전 안 만졌는데요
매니저: ... ...
지민: 아 솔직히 형, 누나 볼 콕콕 찔렀잖아요 말랑해보인다고
남준: 그러는 너는!
지민: 생일 찬스요
정국: 아 됐어여 둘 다
마음을 비우기로 한 매니저는 운전에만 집중하기로 합니다. 탄소가 난리를 칠 때엔 낯설다고 겁 먹었던 정국은 상황의 종료와 동시에 누나에게 엉겨 붙고 지민은 남준의 팔을 끌어당겨 차에 올라탔던 게 아까 전의 일. 분명 태형이나 석진이 타지 못하도록 가까이에 있던 남준을 데려온 게 확실한데요. 이러나 저러나 탄소가 가장 큰 문제인 건 변함 없죠. 어떻게 잠시라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는지.
매니저: 거의 다 와 가니까 탄소 깨워
정국: 그냥 제가 안아서 데려다주면 되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여
지민: 아니 누나 깨워
정국: ...왜요
남준: 그러게, 왜?
지민: 누나랑 같이 지한이한테 전화 걸게요
남준: ...너어는 진짜...
정국: 아 뭔데여!
정국의 움직임에 깨어난 탄소. 꼬물거리며 눈을 뜨더니 창 밖의 풍경을 보고 내릴 준비를 합니다. 아직 잠에서 덜 깨어난 탓에 휘청이는 움직임은 지민이 잡아주네요. 방으로 가서 씻기 전에 지한에게 잘 있는지 영상통화나 하자는 말에 냉큼 고개를 끄덕입니다.
탄소: 지한아 누나 안 보고 싶었어?
지한: 왜 또 박지민이랑 같이 있는데
탄소: 아니 둘이 친해졌으니까...
지민: 누나한테 보고 싶었단 말 전에 그렇게 구박부터 해야겠어?
지한: ...나도 보고 싶었어 누나
탄소: (행복)
지민: 빨리 누나 사랑한다고 해
지한: 뭐야? 그걸 어떻게 해!
지민: 나 하는 거 보고 따라하라고, 누나 사랑해요
지한: 아 싫어
탄소: 누나도 지한이 사랑해~~
지민: 야 누나 기다리잖아
지한: 하씨, 누ㄴ, ...야 박지민 너 그거 니 사심 채우는 거잖아 뭐, 누나 사랑해요?
지민: 어쨌든
탄소: (두근두근)
지한: ... ...
지민: 사랑한다 하라고!
지한: 아 왜 승질이야!
지민: 내가 너였으면 평생 누나 데리고 살겠다 노래를 부르고 맨날 업고 다녔겠다!
지한: 그럼 니가 동생 하시든, ...그건 안될 일이지, 누나는 누구도 못 줘
탄소: ...지민아, 들었어? 우리 지한이가, 지한이가... 내가 좋대ㅠㅠㅠㅠ
지한: ??
지민: ???
한국에 돌아가기까지 앞으로 얼마나 남았을까, 매일 휴대폰 캘린더에 세어보는 탄소. 동생도 모르고 지민도 잘 모르지만 사실 누나는 아픈 동생을 두고 온 한국이 꿈에라도 아른거려 매우 마음 아프다고 합니다. 하기야 지한은 이미 퇴원을 해서 어느 정도는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정도에 지민은 좋아진 몸상태를 알고 있으니 누나의 걱정을 알 리가 없죠. 탄소는 지한이 다쳤던 날의 기억으로부터 아직도, 가끔 악몽을 꿉니다.
완전히 회복한 상태가 되기 전까진 퇴원 사실을 숨기고 싶다는 지한과 그 비밀을 지켜주는 지민이 간과한 일이죠. 날이 갈수록, 자기 몸이 힘들어질수록 동생 생각이 간절해지는 탄소의 마음은 누구도 모르게 꽁꽁 숨겨져 있으니까요.
탄소: 얼른 나아야 할 텐데, 그래야 내가 한국 갔을 때 같이 놀러도 가보고 그러지
지한: 어어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탄소: 걱정을 안 하긴 뭘 안 해... 아직도 병상 위에 누워서 골골대는 애가
지한: (저녁으로 치킨 먹었다) 으응... 골골대는구나 내가...
탄소: ㅠㅠㅠㅠ
지민: ...어어, 아 나 오늘 생일인데 축하한다고 해주라
지한: 생일이었어?
지민: (하찮)
탄소: 너네 친하다며
지한: 진정한 우정은 사소한 기념일에 연연하지 않는 법이야
탄소: 지민이 생일이 사소해?
지민: 너 진짜 말이 심하네
지한: 내가 잘못했어
지민: 내 생일 선물로 누나 하루만 빌려줘
탄소: ?
지한: ?? 그건 어디서 튀어나온 말이야
지민: 생일 선물 고맙다, 잘 받을게~
지한: 야 나 아직 준다고 말 안 했,
탄소가 들고 있는 휴대폰 화면의 종료 버튼을 꾹 누르는 지민. 한국에 있는 지한도, 옆에 있는 누나도 당황하는데요. 아무래도 이현의 등장으로 위기 의식을 느끼는 건 석진이 아니라 지민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