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만의 시간
3부
19.
종인이와 손을 잡고 며칠 동안 지냈던 형의 집을 나섰을 때, 형은 아무런 타박도 않고 그저 사람 좋은 얼굴로 우리를 배웅해주었다. 미안하다는 내게 한마디 덧붙였다면 앞으론 혼자 오지 말고 둘이 오라는 말을 전했다. 그 말에 민망하다는 듯이 웃은 건 나뿐만 아니라 옆에 있던 종인이도 마찬가지였다.
집으로 향하는, 우리에겐 아주 익숙한 길을 두 손 꼭 잡은 채 걸으며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다. 마주한 손으로 전해지는 그 애의 온기가 그저 좋았고, 가끔씩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에 다른 말을 찾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저녁이 되자 심해진 감기기운에, 콜록이며 기침을 하면 걱정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괜찮아? 하고 물어주는 네가 있어서 몸이 아픈 것도 잊은 채 마냥 행복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럼 너는 내 웃는 얼굴에 반사적으로 따라 웃고 만다. 네 얼굴에 피는 웃음을 보고 난 후에야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은 것 같았다.
서로의 집을 앞에 두고 각자 집으로 들어가기를 망설였다. 며칠간 연락도 없이 지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 애와 떨어지는 것이 싫었다. 집 안에 떡하니 버티고 있을 혜인누나 때문이기도 했고. 잡은 손을 놓으며 내일 또 보자 인사하는 종인이의 팔을 붙잡았다. 그 애가 조금 놀란 눈으로 돌아본다.
“왜?”
“집에 안가면 안 돼? 더 있고 싶다….”
내 말에 그 애가 아랫입술을 깨물며 슬쩍 웃는다.
“같이 있고 싶어?”
당연하다는 듯 얼른 고개를 끄덕이자, 종인이가 웃는 얼굴을 지우지 않은 상태로 한 걸음 내게 다가와 다정한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는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어도 같이 있고 싶은데, 그동안은 어떻게 참았는지 몰라. 토닥토닥, 머리를 쓰다듬는 그 손길이 마치 나를 타이르는 것 같아서 머리 위에 있는 손을 잡아 내리며 그 애를 올려다봤다.
“네 손이 나한테 말하고 있어.”
“뭐라고?”
“안 돼. 경수야, 집에 가자…. 맞지?”
“…응?”
“뭐야, 아니라고 안하는 거 봐... 나쁘다, 김종인.”
살짝 토라진 얼굴로 아직 내 손 위에 있던 그 애의 손을 내팽개쳤다. 내 행동에도 아무렇지 않은지 종인이는 태연한 얼굴로 다시 그 손을 들어 이번에는 내 볼을 감싼다. 그러면서 살살 어루만져주는데 괜히 억울했다. 이것도 어서 집으로 들어가라고 타이르는 행동 같아서. 사실 따지고 보면 종인이는 아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나 혼자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건가 싶기도 했지만, 같이 지낸 시간이 몇 년인데. 이런 건 말 안 해도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고.
“됐어. 나 집에 갈 거야.”
나만 같이 있고 싶은 건가. 나만 혼자 좋아서 안달 내는 건가.
그게 아니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 그 애가 미워서 내 볼을 만지던 그 손을 잡아 내리고선 등을 돌렸다. 진짜 집으로 들어간다? 나 이대로 집에 간다? 지금 간다니까? 쿵쿵. 일부러 큰 보폭으로 우리 집 대문 앞까지 걸었다. 보통 여섯 걸음 걸릴 거리를 세 걸음 만에 도착했다. 이건 누가 봐도 나 삐졌다는 걸 알아달라고 하는 행동인데. 이상하다? 지금쯤이면 잡아야 되는데 왜 안 잡지? 차마 뒤를 돌아보지는 못하고, 종인이가 정말 나랑 같이 있는 것 보다 각자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건가. 많이 피곤한가. 오늘은 그냥 집에 가서 쉬고 내일 보는 게 나을까. 뭐, 그런 생각까지 드는 거다. 혼자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대문을 밀고 들어가려는데,
“으이구,”
“…….”
“내가 너 때문에 못살겠다.”
어느새 성큼성큼 우리 집 대문 앞으로 걸어온 종인이가 뒤에서 나를 감싸 안았다. 등을 뒤덮는 포근한 기운에 웃음부터 나왔으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 퉁명스럽게 물었다.
“나랑 같이 있기 싫은 거 아니었어?”
그랬더니 종인이가 안고 있던 팔을 푼다. 그 대신, 내 손을 잡아 마주볼 수 있도록 몸을 돌리더니 한 손으로 아프지 않게 내 머리를 콩하고 쥐어박는다.
“너 아프잖아. 바보야. 그래서 꾹 참았는데…. 내 맘도 모르고 삐치기나 하고.”
“…나 안 아픈데.”
“거짓말 하지 마.”
“거짓말 아니야…. 아까는 진짜 아팠는데, 지금은 괜찮단 말이야.”
“내 눈엔 하나도 안 괜찮아 보이는데? 너 빨리 집에 가서 쉬어야 돼. 그래야 빨리 낫지.”
“진짜야! 너랑 있어서 하나도 안 아파!”
“…….”
“진짠데….”
“안되겠다, 너.”
혹시나, 또 내가 아파서 안 된다고 할까봐 눈치를 보며 그 애의 손을 찾아 꼬옥 잡았다. 나를 혼내는 듯, 탓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 눈빛에 입술을 삐죽 내밀고 땅만 바라보고 있었다. 안되겠다, 너. 그래놓고 한참을 말없이 서있던 종인이가 내가 잡은 손을 슬쩍 밀어서 내 손을 밀어버린다. 정말 혼낼 건가. 오늘은 안 되는 건가. 나는 왜 아픈 거지…. 집으로 돌아갈 생각에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축 늘어트리는데, 그 애가 다시 내 손을 꽉 잡아온다. 조금 놀라서 눈을 크게 뜬 채 고개를 들어 그 애를 바라보자 종인이가 나를 향해 씩 웃는다.
“나랑 있어야겠다.”
一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은은하게 풍겨오는 종인의 향기에 나는 혼미해지는 정신을 붙잡고 입술을 부딪혀오는 그 애를 받아들였다. 입술과 입술이 부딪히고 멀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동안 많이 보고 싶었다는 말 대신 온 몸으로 서로를 갈구하고 또 갈망했다. 며칠간 음식이라곤 입에 담아보지도 않은 사람들처럼 서로에게 굶주린 듯 행동했다. 입술을 부딪치고, 매끈한 혀가 이리저리 얽혀 서로의 타액을 나누었다가 멀어졌을 때, 이미 힘이 반쯤 빠져버린 팔을 들어 올려 그 애의 뺨을 쓸어내렸다. 그 손길에 감은 눈을 뜬 그 애가 아주 짧게 내 입술에 닿았다 멀어진다. 그리고선, 볼을 쓰다듬는 내 손을 잡아 손가락 하나하나에다 일일이 입 맞추었다.
“…종인아.”
간질거리는 느낌이 손가락 하나하나에 느껴져 온다. 짧은 순간 닿아오는 따뜻한 입술의 촉감에 눈을 감으며 그 애의 이름을 부르며 살짝 웃었다. 그동안 너무 그리웠다고. 따스하게 나를 감싸주는 네가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고…. 말하는 대신에 다른 한 손으로 종인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손길에 그 애는 손가락에 입 맞추던 것을 멈추고 내 손을 잡아 내리며 슬몃 올라가있는 입술을 다시 찾았다. 입술로 전해지는 온기가 말을 대신했다.
나도, 네가 너무 보고 싶었어.
끝없이 입술을 마주한 채 입구에서 멈추고 있던 걸음을 차근차근 옮겼다. 두 손으로 내 허리를 받치며 침대로 서서히 리드하는 그 애에게 온 몸을 맡겼다. 그리고 곧이어, 등 뒤에 닿아오는 포근한 촉감을 느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하아….”
입고 있던 셔츠와 바지는 그 애의 손길에 의해 차례로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얇은 팔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그 애의 목을 감았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온통 새카만 눈을 한 종인이가 나를 내려다본다. 그 애 또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였다.
“괜찮겠어?”
걱정이 가득담긴 얼굴이다. 물론, 감기 기운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그 어떤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내가 아팠던 건, 감기 바이러스 때문이 아니었던 것 같았다. 그 애가 옆에 있는 지금, 다 괜찮은 걸 보면. 네가 보고 싶어서였나봐.
괜찮다는 말 대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자, 그 애가 이마에 붙은 내 머리칼을 쓸어넘겨준다.
지금 이 순간이 마치 꿈만 같았다. 그동안 우리에게 있었던 지난 일들이 모두 믿겨지지 않았다. 우리는 왜 울었을까. 바로 옆에 있는 너를 두고. 나는 왜 바보처럼 혼자 울었을까. 내가 울면, 눈물을 닦아줄 네가 있는데…. 서로를 위하는 일인 줄 알았다. 그래서 숨겼고, 억지로 이해해보려 노력했다. 숨기면 숨길수록 오해만 커져가는 걸 모르고. 바보처럼 너를 원망하고, 미워했던 시간들이 지나가고 결국 지금 너는 내 옆에 있다.
이렇게 좋은 네가, 앞으로도 영원히 내 옆에 있어주었으면 해….
괜히 찡해지는 가슴에 나는 아무 말 없이 감은 그 애의 목을 끌어당겨 먼저 입을 맞추었다. 기다렸다는 듯 그 애의 입술이 열리고, 열린 틈 사이로 들어온 그 애의 혀가 내 혀를 찾아 옭아매었다. 서로의 숨결을 공유하는 순간은 늘 행복했다. 익숙한 키스가 이어지고, 자연스럽게 그 애의 손이 가슴과 배를 미끄러지듯 지나쳐 허리에서 허벅지를 향하는 동안 생각했다.
그 어떤 일이 우리에게 일어난다고 해도, 오늘의 감정은 잊지는 않겠노라고.
“…흐…응…”
“…으읏…경수…야.”
“…….”
“…많이, 보고…싶었…어….”
거친 숨과 함께 격렬한 운동이 시작되었다. 내 안으로 들어온 종인이는 더욱 깊은 곳으로 가기를 열망했고, 나 또한 그 애를 더 깊숙이 받아들이려 애를 썼다.
“…하아…종인…아…”
“…….”
“…나도.”
“…….”
“…보고 싶었어.”
탄탄한 그 어깨를 끌어안으며, 조금 울었다. 지금 흘리는 눈물은 슬픔이 아니라 기쁨이라고…. 나는 지금 하나도 슬프지 않아, 너무너무 행복해.
“…사랑해.”
“나도, 너무너무 사랑해….”
一
“안 아파?”
“..아파.”
“아파? 어디가 아파.. 이거 봐, 내가 너 이럴까봐 집에 가라고 했지.”
사실은, 하나도 안 아프다고 말하며 그 애의 품안을 파고들었다. 아픈 걸로 장난치지, 도경수. 하며 화낸 목소리를 내면서도 품을 파고든 나를 꼬옥 껴안아준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보드라운 살결이 몸에 그대로 닿아오는 느낌이 좋았다. 아, 좋다. 정말로, 좋다.
“아프면 숨기지 말고 바로 말해야 돼. 알았지?”
“어디가 아프면?”
“어디든…. 어디든, 아프면 말해.”
“너한테 말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내가 대신 아파줄 건데?”
“…음.”
“……?”
“나 여기도 아프구, 여기도 아프구, 여어기도 아파. 자, 빨리 대신 아파해!”
나 대신 아파줄 거라는 그 말에 장난을 치며 손가락으로 머리와 입술과 배를 가리키며 이곳저곳 안 아픈 곳이 없다 말했다. 내 손을 따라 그 애의 시선이 움직이고. 머리를 가리켰을 때 살짝 걱정 어린 눈빛으로 변했다가, 곧이어 입술과 배를 가리키자 장난끼가 스민 웃음으로 변한다. 그러면서도 내 머리와 입술과 배에 차례대로 쪽하고 입술 도장을 찍는다. 이젠 안 아프지? 예쁘게 휘어지는 눈꼬리를 보는 것만으로도 좋아서 아픈 척을 하던 나도 결국엔 따라 웃고 말았다.
“하나도 안 아파.”
“내가 다 가져갔으니까.”
“응. 그러니까….”
“……?”
“너도 아프면 나한테 다 말해야 돼.”
“…….”
“나는 대신 아파주는 거 말고, 같이 아파해 줄래.”
내 말에 종인이가 대답은 못하고, 빤히 나를 바라보기만 한다. 내가 혼자 아픈 걸 네가 싫어하듯이, 나도 똑같아. 나도 네가 혼자 아픈 건 너무 싫어…. 그러니까 앞으로는 제발, 혼자 아프지 마.
그 모든 마음을 담아 반쯤 몸을 일으켜 그 애의 이마부터 입술과, 가슴팍에 차례로 입을 맞추었다.
“특히, 여기.”
배가 아프면 배를 쓰다듬듯이, 손바닥으로 그 애의 드러난 가슴팍을 살살 문질렀다.
“여기 아픈 건 숨기지 말고 바로바로 말해야 돼.”
“…….”
“알았지?”
“…….”
“알았어, 몰랐어?”
“…경수야.”
“응.”
“사랑해.”
고개를 들어 종인이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내가 하는 행동을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끝내 가슴팍을 쓰다듬으며 하는 말에 울컥했는지 눈가가 발갛게 부어올라있다. 또 눈물을 꾹 참고 있는 것 같아서 조용히 그 애의 품에 가서 안겼다. 그리고 너른 등에 손을 둘러 아주 느린 손짓으로 토닥토닥. 울어도 괜찮다고, 그 애를 위로했다.
그동안, 혼자서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끙끙 앓았을까. 내가 먼저 그런 너를 알아차리지 못해서 미안해. 의심해서 미안해. 미안해.
천천히 계속되는 토닥거림에, 그 애가 나를 세게 끌어안으며 어깨에 얼굴을 묻는다.
“나 안 울어, 바보야.”
“지금은 울어도 돼. 멍충아.”
“…….”
“종인아.”
“응?”
“이제는 같이 하자.”
“…….”
“아픈 거, 슬픈 거, 기쁜 거. 다 같이 하자.”
“…응.”
“솔직히 좀 감동받았지?”
“전혀.”
“나 좀 멋있는 것 같아. 그치?”
“응. 내 애인이잖아.”
“너도 멋있어. 내 애인이라서.”
“경수야, 나 지금 눈물나려고해. 울어도 돼?”
“억지로 쥐어짜내지는 마. 티나. 바보야.”
“알았어.”
“종인아.”
“…응.”
“나도 사랑해.”
“…….”
“…….”
“응….”
***
저 빨리 왔죠?^0^ 칭찬해주세요~!
앞으로는 이렇게 연달아 일찍 올 수는 없겠지만 시간 있을때 스퍼트 내겠다는 마음으로 영혼을 불태웠습니다!!!
몇 번 써본적 없지만, 씬은 항상 부끄러워요...☞☜
써도써도 부족하고 써도써도 예쁘지가 않아.....흑흑... 망할 똥손!!!!!!!!
내일 오후부터 다시 날씨가 추워진다고해요!!
감기 조심하시구, 충치도 조심하세요ㅜㅜㅜㅜ
뜬금없이 충치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제가 3월 초부터 내내 치과에 출근도장찍고 있거든요...ㅜㅜ
치과 무섭다고 미뤘다가 더 큰일 생길지도 몰라여!!
아무튼, 각설하고.
부족함이 많은 글 항상 예쁘게 봐주셔서 늘 감사함 잊지 않고 있어요^^
여러분 좋은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