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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DE & SEEK

 

4.

 

 

 

 

 

 

 

 

 

 

 

아, 망할 놈의 일 교시.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떠 올리며 횡단보도를 건넜다. 전공도 아닌 교양 때문에 이 시간부터 학교를 가야 하는 게 조금은 억울하다. 구겨 신은 운동화를 제대로 고쳐 신으며 걸어서 십분 거리인 정문을 향해 털레털레 걸어간다.

 

어젯밤엔 잠이 오지 않아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하루를 의미 없이 보내서일지도 모르겠다. 마음 같아선 수업이고 나발이고 늘어져 자고 싶은데 성격상 그게 또 안 된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다 멈칫했다. 밥도 안 먹었는데 편의점이라도 들러야 하나. 가만히 서서 고민해본다.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을 리 없다. 멍하니 서 있는 것도 잠시, 얼른 머리를 털며 눈을 감았다 떴다. 잠깐 서 있었을 뿐인데 잠이 들 뻔했다. 본능에 몸을 맡기며 높게 솟아있는 정문의 조형물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러다 슬쩍 몸을 돌려 근처 편의점으로 방향을 튼다. 정문 근처에 편의점이 하나 있으니 그 곳에 들러야겠다. 입을 쩍 벌려 하품을 했다. 벌써 몇 번짼지 모르겠다. 이 정신으로 수업 시간에 졸지나 않을지 걱정이 된다. 그래도 결석하는 것 보단 조금 더 생산적인 일이 아닐까. 쓸데없는 생각이 머릿속에 머문다. 잠이 와서 이러는 거다. 잠이 와서.

 

그나저나 오늘은 일 교시부터 사 교시까지 연강이라 우유라도 마셔서 배를 채워놓는 편이 좋았다. 그런데 내 상태를 고려해선 우유고 뭐고 커피를 마시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하고. 일단은 편의점이나 가야 겠다 하며 걸어가고 있는데 누군가를 부르는 듯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온다.

 

 

“선배!”

 

 

정문 앞에서 선배를 찾으면 돌아보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름도 없이 불리는 호칭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아니겠지, 나는 아닐 거야. 라고 생각하면서.

 

 

“..선배!”

“…….”

“선배, 이쪽이요!”

 

 

뒤를 돌아봤는데도 아는 얼굴이 없어서 그럼 그렇지, 하며 다시 가던 길이나 마저 가야지 하고 있는데 어딘가 굉장히 익숙한 목소리가 방향을 제시한다. 익숙한 목소리? 여기가 인문대도 아닌데 익숙한 목소리는 무슨. 잠을 못자서 착각하는 걸까. 선배, 선배 부르는 그 목소리가 꼭 나를 부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뭐에 홀린 것 마냥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그 곳엔 김종인이 서 있었다.

 

 

 

 

 

 

 

 

 

 

 

 

 

 

 

 

 

 

 

 

 

아홉시도 채 되지 않은 이른 시간인데도 녀석은 말끔한 모습이었다. 흰색과 검정색이 교차하는 스트라이프 티셔츠에, 검정색 진을 입고 한쪽 어깨에 백팩을 걸친 채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 했었지. 그리고는 아주 멀쩡한 얼굴로 내내 웃고 있다. 정문에서부터 줄곧. 그런 주제에 아침이라 제가 좀 부었죠? 하며 넉살 좋게 말을 붙이는데 짜증이 나려고 했다. 그게 부은 얼굴이면 나는.

 

..모자나 쓰고 올걸.

 

 

“선배, 아침 드셨어요?”

 

 

어제처럼 스스럼없이 말을 건네 오는 녀석을 힐끔 쳐다보았더니 웬걸. 어울리지도 않게 손에 우유팩을 쥐고 있다. 그것도 빨대까지 꽂은 상태로. 내 시선이 그 곳에 닿는 걸 지켜보던 녀석이 씩 웃으며 말한다. 나는 입을 열지도 않았는데 그런 것 따위 개의치 않으면서. 아침 안 드셨구나. 딱히 대답하고 싶지 않아서 침묵을 지키며 앞만 보고 걸었다.

 

편의점에 들르려고 했는데 중간에 이 녀석이 따라붙는 바람에 노선이 꼬였다. 인사만 하고 지나갈 줄 알았더니 어느 샌가 나란히 걷고 있어서. 이놈을 달고 편의점을 가기엔 또 싫고. 그래서 혼자 방향을 틀려는데 자꾸만 생글생글 웃으며 나를 쫓아오는 바람에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굶어 죽으라는 신의 계시구나. 그래, 그렇구나. 시발.

 

잠이 부족한 것도 있고, 아침부터 계획한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고 꼬인 것도 그렇고. 방해 한 게 김종인인 것 까지. 무엇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어서 살짝 미간을 좁혔다. 짜증나.

 

 

“마침 잘됐다. 잠깐만요.”

 

 

내 얼굴이 어떻든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웃는 낯으로 제 할 말만 쏟아내던 녀석이 백팩을 뒤적이며 우유 하나를 꺼내 든다. 그러더니 입구를 뜯어서 불쑥 내게 내민다. 왜. 뭐.

 

 

“드세요.”

 

 

그걸 받아들 생각은 않고 빤히 쳐다보고 있으면, 녀석이 나를 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말을 덧붙인다. 아침을 걸러서 편의점에서 우유를 샀는데 원플러스원 행사를 하더란다. 내용이 썩 우습다. 녀석과 원플러스원은 매치가 되질 않아서. 우유에 빨대를 꽂아 무는 것도 나름 신선한 충격이었는데, 의외성이 많네. 픽 웃음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았다. 여기서 웃으면 비웃는 것처럼 보일까봐서.

 

 

“..선배?”

 

 

멍한 얼굴로 녀석의 손에 들린 우유팩을 바라보기만 했더니 녀석이 나를 부른다. 그래서 또 멍한 눈빛으로 그 시선을 녀석의 얼굴로 옮겼다. 안 받고 뭐하냐는 듯한 얼굴.

 

아, 이게 문제야. 잠이 부족하면 시도 때도 없이 멍해져서. 여러번 눈을 깜빡이다가 정신을 차리려고 고개를 저었다.

 

 

“아침 먹었는데.”

 

 

어제 그 드링크제도 그렇고, 오늘 우유도 그렇고. 별거 아닌 호의가 계속되는 거, 싫다. 이런 식으로 녀석과 자꾸 부딪히는 게 싫었다. 그래서 거짓말을 했다. 배가고플지언정 놈이 주는 우유는 먹고 싶지 않아서.

 

 

“그래도 드세요.”

 

 

단호한 내 말에도, 녀석이 쉽게 물러나지 않는다.

 

 

“..뭐?”

 

 

또 뇌물이니 뭐니 잘 봐달란 헛소리를 할 거면 짜증을 내려고 했다. 나는 네가 불편해. 이런 얼굴로 녀석을 돌아보았다. 내가 먹기 싫다는데 네가 뭔데 먹으라 마라야.

 

 

“저 벌써 땄는데? 선배가 안 드시면 안 돼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런 소릴 꺼낼 생각은 없어 보인다. 단지 활짝 열린 우유팩의 입구를 보며 난감한 얼굴로 서 있을 뿐.

 

 

“네가 먹으면 되잖아.”

“전 배 불러서 더 못 먹어요.”

 

 

그러고 보니 양 손에 각각 우유팩을 쥐고 있다. 그러게 왜 니 멋대로 개봉을 하느냐고. 말투는 꽤 단호한데 표정은 더없이 유하다. 그래서 뭐가 진심인지도 모르겠다. 잠이 와서 제대로 판단을 못하는 거겠지? 그래, 그런 거다. 난 지금 잠이 와서 이 새끼한테 말리고 있는 거야.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고 빤히 보고 있으면, 딱 그런 얼굴로 나와 눈을 맞춘다.

 

선배가 안 받으시면 아깝지만 어쩔 수 없이 버려야겠네요.

 

 

“…….”

 

 

내가 알게 뭐야, 버리든 말든.

 

 

“…….”

 

 

알게 뭐냐고, 시발.

 

 

“이리 줘.”

 

 

어쩔 수 없이 녀석에게 툭 말을 던진다. 그냥 버리면 아까우니까 그런 거다. 진짜로. 아무 이유 없고, 딱 그거 하나다.

 

내 말에 녀석이 웃음을 되찾는다. 뭐가 좋다고 웃어, 웃기를. 짧은 한숨을 내쉬며 건네는 우유팩을 받아들었다.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아까워서 받은 거라고. 그래, 그런 거라고.

 

 

 

 

 

 

 

 

 

 

 

 

 

 

 

 

 

 

 

 

 

 

 

“전공은 3교시부턴데, 학교 일찍 나오셨네요.”

“..어.”

“교양 들으시나봐요?”

“어.”

“무슨 수업인지 물어도 돼요?”

 

 

말끝마다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뭐가 이렇게 궁금한 게 많아? 우유를 마시다 말고 스윽 녀석을 돌아보면, 여전히 웃는 얼굴이다. 왜 자꾸 웃어. 마음에 안 들게.

 

 

“..범죄와 인권.”

“아, 김상진 교수님 수업이요?”

“어.”

“혼자 들으시는 거예요?”

“아니, 변백현이랑.”

 

 

그랬더니 또 뭘 안다고 아-, 하는 탄식이 흘러나온다.

 

 

“교양동까지 가셔야겠네요. 교양동에서 수업 하는 거 맞죠?”

“..어.”

 

 

단답으로 일관하며 나는 네가 귀찮다고 온 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나를 모르는 건지 아니면 모른 척 하는 건지. 저 혼자 고개를 몇 번 주억거리던 녀석이 또 말을 걸어온다.

 

 

“선배도 3교시 conversation 맞죠?”

 

 

외국에서 살다 왔다더니, 발음 좋네.

 

이번엔 진짜 대답하지 않으려고 했다. 나란히 걷는 지금이 너무 불편하니까 눈치껏 사라져줬으면 해서.

 

 

“..어.”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녀석은 대답할 수밖에 없게끔 만든다. 진짜 징한 놈이구나, 너. 멀리서 지켜봤을 땐 몰랐었는데 꽤 말이 많다. 혼잣말이.

 

 

“저는 과사에 볼 일이 있어서 일찍 왔어요.”

 

 

이젠 묻지도 않은 말까지. 내내 질문만 던지다가 뜬금없이 제 얘기를 꺼내는 녀석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리고 이번엔 일부러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데 뭐. 나랑 그게 무슨 상관인데.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자 나와 눈을 맞추던 시선이 아래쪽으로 내려간다. 내 손에 쥔 우유. 끊임없는 질문 공세에 시달리며 홀짝홀짝 들이키다 보니 벌써 다 마셨다. 처음 쥐었을 때와는 달리 확연하게 가벼워진 빈 우유팩. 그거 버려드릴까요? 묻는 말에 고개를 저었다. 네가 왜. 머쓱한지 뒷머리를 쓰다듬으며 웃다가 녀석이 걸음을 멈춘다.

 

 

“전 먼저 가볼게요, 선배.”

 

 

언제 여기까지 온 건지, 벌써 인문대 앞이었다. 살짝 숙였다가 올라오는 머리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나중에 봬요. 여전히 웃는 낯으로 선배를 연발하며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던 녀석이 이번에도 대답을 않는 나를 힐끔 쳐다보다가 이내 시선을 돌리며 인문대 쪽으로 향하려고 몸을 튼다.

 

내가 대답하지 않을 줄 알았다는 듯, 끝까지 아무렇지 않게 웃는 얼굴이었다.

 

 

“....근데 너, 이름이 뭐냐.”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반응이 어떻든 신경 쓰이지 않으며 행동하는 그 모습이.

 

툭 내던져지는 질문에 몇 걸음 걸어가던 녀석이 몸을 돌린다. 그렇게 큰 목소리가 아니었는데도 들은 모양이다. 눈을 똑바로 바라보자 꽤 놀란 듯 벙찐 얼굴이다. 그런 바보 같은 얼굴로 여러 번 눈만 깜빡인다. 아까는 속없는 사람처럼 잘만 웃더니. 이런 표정도 지을 줄 아네.

 

 

“…….”

 

 

짧은 침묵이 흐른다.

 

내가 질문을 해서 당황스러운 건지, 아니면 그 내용에 놀란 건지. 뭐 그리 어려운 걸 물어봤다고 침묵으로 대치하던 것도 잠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던 얼굴이 언제 그랬냐는 듯 여유를 찾는다.

 

휘어지는 눈꼬리와 올라가는 입 꼬리. 특유의 웃는 얼굴로 나를 보며 또박또박 한 글자, 한 글자 제 이름을 알려준다.

 

 

“..김종인이요.”

 

 

알았다는 듯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이번엔 내가 먼저 등을 돌렸다. 등 뒤로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하게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하니 여덟시 오십분 남짓. 아직 교양동까진 갈 길이 멀다. 머릿속으로 혼자 걸어가야 하는 거리를 어림잡아 계산해 본다.

 

 

“.....김종인.”

 

 

까먹지 마세요, 선배. 이름 뒤에 덧붙인 말을 못들은 척 했다.

 

알아, 네 이름.

 

천천히 교양동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결국 수업시간 내내 정신을 못 차리고 졸았다. 옆에 앉은 백현이 몇 번이고 깨웠지만 이미 깊은 수마에 빠져 제정신이 아니었기에 소용이 없었다. 교양동에서 인문대까지 무슨 정신으로 걸어왔는지도 모를 정도로 멍한 상태였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제 시간에 잠을 자야겠다. 자비로운 교수님이 30분이나 일찍 끝내줘서 지옥 같은 연강에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3교시는 절 대 잘 수 없는 회화 시간이니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는 게 좋았다. 뻐근한 뒷목을 주무르며 백현이 내게 노트를 건네는 걸 받아들었다.

 

 

“너 정신 못 차리고 자더라? 어제 잠 못잤냐.”

“..잠이 안 와서.”

“게임도 안 하는 놈이.”

“그러게 말이다.”

“이 형님이 필기 열심히 했으니까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널 누가 구제해.”

“..형님은 얼어죽을.”

“어? 이렇게 나오면 재미 없는데?”

 

 

그렇게 말하며 노트를 빼앗아 가려기에 얼른 가방 안으로 집어넣으며 말했다. 밥 살게. 그제야 뻗은 손을 거둬간다. 그나저나 아까부터 줄곧 핸드폰만 붙잡고 절절 매고 있다. 보진 못했어도 짐작하건대, 수업 시간 내내 이러고 있었을 거다. 수업 듣다 말고 핸드폰 보고, 또 필기 하다 말고 핸드폰 보고.

 

 

“..누군데?”

 

 

여전히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백현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슬쩍 고개를 돌려 나를 본다.

 

 

“뭐가.”

“뭐긴. 너 그렇게 애태우는 사람. 누구냐고.”

“아...”

 

 

꽁꽁 숨겨 놓더니 아직도 멀었는지 말을 얼버무리며 난감한 웃음을 짓는다.

 

 

“뭐야 그 웃음은.”

“다음에.”

“나중에 말해준다더니 또 빼냐.”

“나야 지금 말해도 상관없긴 한데, 네가 충격 받을 까봐 그러지.”

“왜. 내가 아는 사람이야? 장미?”

 

 

너 영원히 자고 싶냐. 어? 목을 조르며 역정을 내는 꼴이 웃겨서 조금 웃었다. 지금 밝히기 싫다는데 굳이 캐묻고 싶지도 않아서 이쯤하고 묻어두기로 한다. 때가 되면 알고 싶지 않아도 알아서 보고를 하는 녀석이기 때문에. 그나저나 수업 전에 빈 강의실에서 살짝 눈 붙이려는데 변백현이 굳이 나를 과방으로 이끈다. 어색한 건 딱 질색이라 싫다고 짜증을 내는 데도 막무가내다.

 

 

“언제까지 아웃사이더 흉내 낼 건데, 나도 있잖아? 어? 이제 그만하고 좀 가자.”

“싫다니까?”

“너나 빼지마라. 어디 못갈 데 가는 것도 아니고 과방 가는 건데 왜 이렇게 질색 팔색이야?”

“..싫다고 했다.”

“싫으면 시집가든지.”

 

 

 

시발 언제 적 개그야 대체. 잠이 부족해서 그렇지 않아도 신경이 곤두서있는데 변백현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나를 과방 근처까지 끌고 간다. 하루의 첫 단추를 잘못 잠갔더니 이 모양 이 꼴이다. 김종인도 내 반응 따위 개의치 않아 하더니, 변백현까지…. 괴롭다. 진심으로.

 

 

“너 후배들 있을 까봐 이러나 본데, 괜찮아. 어차피 수업 시간이라 없을 거거든?”

“그런 거 아니다.”

“아니기는. 내가 널 모르냐. 도콩. 널 몇 년을 봤는데, 어?”

 

 

과방 앞에서 실랑이를 벌이다가 벌컥, 문을 열어 나를 밀어 넣고야 만다.

 

 

“…….”

 

 

열린 문틈 사이로 변백현의 힘에 의해 불쑥 끼어들면 그 안에 있던 두 개의 눈동자가 빤히 나를 본다.

 

 

“…어?”

“…….”

“도 선배!”

 

 

다행히 아는 얼굴이었다. 오세훈. 1학기 때 조별 과제를 같이 해 안면을 튼 녀석이었다. 내 얼굴을 확인한 녀석이 번쩍 손을 들어 나를 반긴다. 오랜만이에요! 그동안 잘 지내셨죠? 반가운 티를 내는 목소리에 피식 웃음이 난다.

 

 

“어.”

“뭐야 또 단답이야. 선배 그거 알아요? 선배랑 대화하기 진짜 힘든 거?”

“오세훈. 난 안보이냐?”

“당연히 보이죠, 변 선배.”

 

 

내 등을 떠밀며 과방으로 들어 온 백현에게도 살랑거리며 온 몸으로 반가움을 표시한다. 세훈이만 있는 걸 확인하고 마음이 편해져서 표정이 한결 부드럽게 변한다. 그 변화를 알아차린 건 나뿐만이 아니었던지, 백현이도 내 등을 치며 무심하게 말한다. 거봐, 자주 안 와서 그렇지 오는 버릇 들이면 과방이 얼마나 편하냐.

 

 

“됐다. 과방 편해지면 뭐하냐.”

“또 이러네, 또. 지랄하지 말고 잠이나 자고 있어. 나중에 깨우러 올 테니까.”

 

 

빈 의자에 가방을 내려놓으며 앉는데 변백현은 어디 나갈 사람처럼 말한다. 뭔데. 나 여기 던져두고 어디 가는데. 물음표를 담은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으면, 변백현이 씩 웃으며 내 어깨를 두어 번 툭툭 친다.

 

 

“라운지에 좀 볼 일이 있어서.”

“..볼 일?”

“아, 어...”

 

 

애간장 녹이는 그 여자 만나러 가는 거겠지, 뭐. 대충 고개를 끄덕이자 백현이 갔다 올게, 말하며 빠르게 과방을 빠져나간다. 원래 사랑 앞엔 친구고 뭐고 없는 거다. 어휴, 짧은 한 숨을 내쉬며 의자에 기대었다. 변백현이 연애사업에 열심일 때 나는 잠이나 자야겠다, 싶어서.

 

 

“선배, 점심 드셨어요?”

“..아니.”

 

 

가까이 다가와 말을 거는 목소리에 눈을 뜨지도 않은 채 대답했다.

 

 

“잘 됐다! 저 밥 사주 세요, 도 선배.”

 

 

이럴 줄 알았다. 볼 때마다 밥 사달라고 들러붙는 놈이었기 때문에. 오늘은 왜 말 안하나 했지.

 

 

“넌 나한테 할 말이 그것뿐이냐.”

 

 

슬몃 눈을 뜨자,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눈웃음을 치는 얼굴이 보인다. 저리 치워. 보기 싫다. 손바닥으로 녀석의 얼굴을 밀자 왜요, 잘생겼잖아요. 능글맞게 따라붙는 말이 영 거슬린다.

 

 

“..학식 말고 맛있는 걸로.”

“…….”

“메뉴는 선배님이 정하시고 계산도 선배님이 하시는 걸로.”

“나 잘 거니까 꺼져.”

“그럼 제가 깨워 드릴까요? 30분 뒤에 밥 먹으러 가면 되는 거죠?”

“..나 수업 있거든.”

“헐?”

“너도 2학년이잖아? 그럼 너도 수업 있을 텐데.”

 

 

처음 듣는 말인 듯, 놀란 표정으로 눈을 깜빡이는 게 우습다. 정신을 어디다 빼놓고 살아야 수업도 까먹고 그러는 거냐. 어? 타박하는 내 목소리에 혼자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하던 녀석이 생각났다는 듯 박수를 한 번 치면서 나를 본다.

 

 

“아! 회화. 오늘부터, 맞죠?”

 

 

저번 주, 교수님 개인 사정으로 휴강한 과목이었다. 오늘이 첫 시간인데 깜빡한 모양이다. 겨우 생각해냈으면서, 떠올린 자신이 자랑스럽다는 듯 혼자서 난리가 났다. 역시 난 똑똑하니 마니, 못 들어 주겠어서 인상을 찌푸리며 녀석을 쳐다보자 그제야 입을 다문다. 그나저나 회화 수업은 두 명씩 짝 지어서 대화하는 거라던데…. 변백현이랑 하는 게 제일 마음이 편하지만 교수가 랜덤으로 정하는 거라 그럴 수도 없다.

 

마음이 맞고 안 맞고를 떠나서 그나마 정삭적인 사람과 붙어야 할 텐데. 조금 걱정이 된다. 아까부터 자꾸 밥 타령을 하는 오세훈 때문에 잠이 다 깨고 말았다. 여기서 잠을 자라고 날 던지고 간 변백현도 그렇고, 촉새마냥 시끄럽게 구는 오세훈도 모두 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선배 시간 언제 괜찮으세요? 선배 스케줄에 맞춰서 밥 먹으러 가요!”

“..시간 없어.”

“시간이 없으면 만들면 되는 거죠.”

“..만들고 싶지도 않다.”

“아, 또 단답! 계속 단답! 도 선배랑 말 하는 거 진짜 힘들다.”

“그럼 말 안 하면 되겠네.”

“저는 백현이 형이 존경스러워요. 진짜.”

“걘 왜 형이냐.”

“도 선배랑은 좀 거리를 두고 싶어서 이러는 거죠.”

“아깐 변 선배라더니.”

“..오랜만이라서 탐색전.”

 

 

놀고 있네. 시끄럽긴 한데 웃기단 말이지. 오세훈과 쓸데없는 대화를 나누며 픽픽 웃고 있는데 또 한 번 과방 문이 열린다. 그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다행히 이번에도 익숙한 얼굴이 서 있다.

 

 

“선배, 오랜만이에요.”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하자, 손에 뭔가를 쥐고 들어선 크리스 선배가 나를 발견하곤 환하게 웃으며 내 쪽으로 다가온다.

 

 

“Long time no see. 그동안 잘 지냈어?”

“..네. 선배도 잘 지냈죠?”

“그럼, 백현이 복학하니까 신났겠네, 도콩. 1학기랑 너무 다른 거 아니야?”

 

 

모자도 안 쓰고, 좋아 보이네. 차분하게 가라앉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는 얼굴에 따라 웃었다. 그러자 가만히 광경을 지켜보던 세훈이 녀석이 와, 도 선배 사람 차별하는 것 좀 봐! 억울하다는 듯 하는 소리에 크리스 형이 녀석에게 짐짓 엄한 목소리로 말한다.

 

 

“넌 선배가 들어 왔는데 인사도 안하고. 잘 하는 짓이다?”

“인사했어요! 형이 도 선배랑 담소 나눈다고 못 봐서 그렇지!”

 

 

세훈의 머리를 쓰다듬은 선배가 불쑥 나를 돌아보며 묻는다.

 

 

“도콩, 너 다음 시간 conversation이지?”

 

 

고개를 끄덕이기도 전에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선배가 씩 웃으며 손에 쥔 종이를 유심히 살핀다.

 

 

“그거 뭐에요, 선배?”

“어, 이거? 명단인데, 회화 두 명씩 짝 이뤄서 수업 듣는 건 알고 있지? 그 명단이야. 어디 보자, 내가 확인해줄게.”

 

 

아, 그 명단.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남 일인 양 구경하는 나와는 달리 오세훈은 난리가 났다. 명단이라는 소리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선배 옆에 딱 붙어 선다. 가까이에 얼굴을 맞대고 한 곳에 집중한 모습을 멀찍이 지켜만 봤다. 알아서 말해주겠지, 싶어서. 아 변백현 것도 봐줘야하나. 잠시 고민하는 사이 세훈이가 소리친다.

 

 

“아싸! 나 변 선배랑 붙었어요! 대박. 변 선배한테 매 시간 마다 밥 사달라고 해야지.”

 

 

따로 봐줄 필요도 없겠네. 이게 좋은 소식인지 나쁜 소식인지는 모르겠지만 잘 된 일인 것같다. 둘 다 편한 상대와 함께 하게 됐으니. 내심 변백현과 함께 하고 싶었는데, 아쉽게 됐다. 그래도 불편한 상대는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잠자코 기다렸다. 빤히 선배를 바라보고 있으면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짚으며 빠르게 읽어 내려가던 선배의 손이 한 곳에서 멈췄다.

 

 

“...어?”

 

 

선배가 나를 돌아보며 웃는다.

 

 

“도콩 부학이랑 짝이네.”

“...네?”

 

 

부학, 부학이라면…. 부학회장.

 

 

“부학 몰라?”

 

 

그 단어에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김종인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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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오마이갓ㅋㅋㅋ 확실히 종인이가 사람좋다해도 싫은사람에겐 짜증날법도하겠네요ㅠㅠ 세훈이도 귀엽고ㅠㅠ 저 카디좋아하지만 많이 가리는편인데 세디클디ㅜㅜ 좋아하는커플링들이네요ㅠㅠ
10년 전
독자2
ㅠㅠ도경수 드디어 웃었다ㅠㅠ왜 이렇게 재밌는거죠ㅠㅠㅠ종인이랑 회화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기대되네요ㅋㅋ
10년 전
독자3
밥사달라는 후배가 세후니라니 백번이고 사줄 수 있어 세후나ㅠㅠㅠㅠㅠ 다음 시간에 종이니와 경수가 짝이되는 모습을 볼 수있겧네요 경수가 경계하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말거는 종이니 얼른 보고싶어여ㅋㅋㅋㅋㅋ
10년 전
독자4
어머이런우연의일치가ㅠㅠㅠㅠㅠㅠㅠ앞으로 회화시간이 기대되네욬ㅋㅋ!!♥♥
10년 전
독자5
으ㅡ라아아궈러 역시종인이랑붙게됐네요 이학기에는 종인이랑 연이있나
10년 전
독자7
빠른업뎃 정말감사합니다ㅎ 잘보고가요ㅎ
10년 전
독자8
악 ,,안돼 벌써 다음편을 기다려야 하는겨 ㅠㅠ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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