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어서오세훈! 종대라떼 판다카이'의 스핀오프 작품으로
해당 작품의 내용 및 결말에 대한 스포를 상당히 많이..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용에 있어서 꼭 저 작품을 읽어야 한다던가 하는 부분은 없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Medical Court
세일러문 변호사와 악당 의사
BGM :: 울랄라세션 - Love Fiction (괜찮아 사랑이야 OST)
“너네 지금 다 뭐하는 거야! 정신 똑바로 안차려!” 아무래도 나는,
“너 이 환자 붙잡고 10분 동안 한 게 뭐야.” 정말로 아무래도 말이다.
“끝나고 봐.” 시간을 잘못 잡고 온 것 같다.
물론 내가 다치는 시간을 정해두고 다쳐야지. 하고 위험한 행동을 한다던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복잡한 상황에서 응급실에 덩그러니 앉아 마냥 기다리는 것은 상당히 고역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심 좀 하면서 다니는 건데. 근처에서 대형 고통사고라도 벌어졌는지 환자 반, 소방관 반이다. 올 때는 고통에 몸을 부르르 떨며 도착했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내 상처는 별 거 아닌 것 같이 느껴져서. 그냥 붕대만 감고 있다가 내일 날 밝으면 개인병원에 가서 꿰매달라고 할까.
저기요. 지나가는 간호사를 잡고 접수를 취소해달라고 말하려 했는데, 돌아보는 간호사의 얼굴에 피가 덕지덕지 묻어있는 것을 보고 관둔다. 최대한 사상자를 줄이려면 내가 가만히 있어줘야겠다. 최대한 피가 묻지 않도록 자켓을 살살 벗어냈다. 고통을 호소하는 다른 환자들을 보니 내 마음도 아파온다. 다들 무사해야 할 텐데.
분주하게 움직이는 여러 의사, 간호사들 사이에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평균적인 여의사의 모습이지만 입에서 나오는 소리들은 하나같이 거칠다. 누군가가 생각나는 사람이긴 한데. 그 사람과는 전혀 다른 사람. 이쪽은 조금 더..뭐랄까, 조금 더 아이러니 하다고 해야 하나. 전혀 입에서 나올 것 같지 않은 말들이 나오고 있단 말이지.
아직 피가 조금씩 새어나오는 새끼손가락을 붙잡고 호호 불어보았다. 휴지로 눌렀다간 휴지조각이 눌어붙을 것 같아서 흘러나오는 피만 손가락으로 닦아내는데 한계가 있다. 접수하면서 많이 기다리셔야 할 것 같다고 한 게 이거였구나. 화장실에서 흐르는 물에라도 씻어낼까. 주위를 둘러보다 화장실 표시를 발견했다. 비교적 가벼운 상처니까. 그래도 되겠지 뭐.
“어디 가세요.” 보기 좋게 잡혀버렸다.
“그 화장실에서 이거 좀 씻어내려고..”
아까 봤던 여의사가 내 손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다 큰 성인이, 그것도 이렇게 정장을 빼입고 새끼손가락 다쳤다고 응급실까지 왔다고 지금 한심하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바빠 보이시는데 그냥 집에 가서 소독이라도 하겠습니다. 벗어둔 자켓을 들고 일어서려 했다. 정말로 그랬는데.
“주먹.”
붙잡히고야 만다.
주먹? 무슨 주먹? 나는 첫 시도에 알아듣지 못하고 되물었다. 주먹 쥐어보세요. 그리고 그 말에 주문이라도 걸린 것 마냥 바로 주먹을 쥐어본다. 찢어진 부분이 아파서 조금 인상이 찌푸려지긴 했는데 그래도 무리는 없다. 나는 자랑스레 주먹을 내밀었고 여자는 그냥 무심하게 바라볼 뿐이다. 내민 주먹이 무안해지는 순간. 갑자기 의사는 혼란한 응급실을 뚫고 저 너머로 가기 시작한다. 주먹, 풀어도 될까. 아님 계속 이러고 있어야 할까. 마음이 혼란스럽다.
“원래 같으면 성형외과 가서 신경검사 받으셔야 하는데.”
여자가 들고 온 것은 그냥 평범해 보이는 물통이였다. 물론 그 속에는 내가 알고 있는 H2O가 아니라 다른 액체가 들어있겠다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까. 제가 간단히 봉합해 드릴게요. 큰 신경은 피해간 것 같으니까.”
그리고 나를 응급실 끝 쪽의 공간으로 안내한다. 나는 그저 따라갈 뿐, 봉합한다는 말이 꿰맨다는 말인 것 정도야 알고 있다. 그 정도로 상처가 깊은가. 정말 따갑기는 했다. 따갑다는 말보다 쑤신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로.
“마취 없이 갈게요. 시간이 없어서. 참으실 수 있죠?” 아니요. 아닌데요.
악소리를 지르려는 것을 간신히 참고 봉합을 완료했다. 살이 붙으면서 손을 굽힐 때에 어려움이 생기거나 걸리는 느낌이 생길 수 있다는데 신경 안 끊긴 것에 감사하며 병원을 나섰다. 내가 나설 때에도 이리저리 되게 바쁘던데. 모두가 무사하길. 기도를 해본다.
***
취직하고 나서는 주변 사람들을 만날 일이 별로 없었다. 사법연수원 졸업하고 나서 취업에 허덕이다 로펌에 입사하고. 물론 개인적인 자기계발을 시간을 주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 시간에 자료를 찾지 술 마실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고. 그래도 오늘. 1년에 한 번은 얼굴 보고 살아야 하지 않겠냐는 준면이의 제안으로 간만에 입에 알코올을 대어볼 것 같다.
익숙한 치킨 집 문을 여니, 매번 모이는 사람들이 보인다. 어떤 인연이라도 섣불리 판단하면 안되는 게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6년 하고도 1년이 더 지났다. 달콤했던 첫사랑이 지고 나는 이 사람들을 만났다. 나의 첫사랑은 지금 속도위반으로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잘 살고 있다. 그리고 이 자리에 내 첫사랑의 남편도 있고. 나보다 몇 살이나 어린.
“너 손은 왜 그랬어.”
“퇴근하다가. 누가 가로등을 박았는지 뭐가 튀어나와 있는데 그걸 못 봤네.”
“변호사 자격증 뒀다 뭐 해. 구청 고소해.” 치킨을 먹다 말고 준면이가 내 손을 이리저리 뜯어본다. 내 오랜 친구인 이쪽 김준면은 지금 대학 교수가 되기 위해 ‘아직도’ 공부중이다. 대학원에 무슨 과정에 무슨 과정에. 나도 오래 공부한 편에 속하지만 얘가 조금 더하다. 그래도 준면이라면야 잘 해내겠다는 확신이 든다.
“형이 여기서 돈 제일 잘 버니까 형이 쏘는 거 맞지?”
이쪽은 요식업계의 큰손이라는. 물론 자칭이다. 변백현. 내 첫사랑 남편의 친구. 이 모임의 남자들은 관계가 꽤나 복잡하다. 부모님의 국수가게를 이어받은 엄연한 사장님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중국 국적의 한식당 사장님인 루한이 있고. 변백현의 친구라인인 경수와 종인이는 오늘 불참이라고 했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참 아직도 신기한.
“이게 얼마만이야. 김 변호사님 아니세요?”
민호다. 도경수의 학교 선배로 처음 만났는데 지금은 어째 경수보다 더 친근한 것 같다. 경수의 선배라고 해서 그런 계통(?)의 사람일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학교만 같았다 뿐이지, 이쪽은 무려 의대생. 지금은 레지던트로 일하고 있는 민호는 나만큼이나 얼굴이 바쁜 사람이 되었다.
“손 크게 다쳤나보다. 근데 봉합 예술이다. 진짜 잘했는데?”
“엄청 대충하는 것 같았는데 니가 보기에 그래?”
응. 민호가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그렇다니 뭔가 안심이 된다. 살은 잘 붙겠구나. 민호는 손가락을 빤히 쳐다보다가 갑자기 상처부위를 꾹 누른다. 아프다고 소리를 빽 지르니 활짝 웃는데 갑자기 그 위로 악마의 얼굴이 겹쳐 보인다. 얘는 내가 아파하는 것을 즐기곤 했다. 전에도 소독 한 번 해달라고 했다가 지옥을 경험했지. 그 후론 레지던트 동생 있어도 굳이 전문 병원에 간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모이기 시작했던 이 모임은 어느새 정규 모임이 되었고 몇 명이 불참하더라도 주기적으로 만나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있다. 그동안 많이 친해져서 말도 텄고, 몸도 텄. 아니다. 모임의 일원에는 변함이 없다. 세훈이가 이 모임의 이름을 ‘내 마누라의 남자들’로 지었다가 한 번 퇴출 위기에 처했던 것을 뺀다면.
“형은 장가 안 가나. 이제 취직도 했겠다. 엄연한 변호사님인데 선 자리 안 들어와?”
“내가 무슨 결혼이야. 바빠서 여자한테 실례야.”
“형이 장가를 가야 내가 안심,” 세훈이가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다문다. 내 옆에서 방긋 웃고 있는 준면이 때문이다. 나야 이제 별 상관이 없는 일이 되었지만 얘네는 무슨 볼드모트라도 되는지 누나의 이야기를 꺼내려 하지 않는다. 정말로. 정말 나는 상관이 없는데 말이야. 다 옛날이야기고, 다 지나간 이야기고.
그러고 보니 따지고 보면 이제 서른인데 7년차 솔로라는 것은 조금 부끄럽다. 어머니도 조금씩 결혼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보면 정말 내가 늙었구나 싶기도 하고. 내 아이에게 너무 나이 많은 아빠이고 싶지 않다면 어서 결혼해야 할 텐데. 사람이 있어야 하지. 세상은 넓고 여자는 많다. 그러나 내여자는 없다. 이것이 불변의 법칙 아닌가. 백날 말해봐야 이것들은 들은 척도 안한다. 여자를 보는 눈이 까다롭다? 전혀. ‘느낌’을 본다고 말하면 하나같이 욕을 한다. 제일 어려운 이상형을 가지고 있다고.
“형은 자기를 머슴처럼 부려먹는 여자를 찾는 거 아니야?” 루한이 낄낄거리며 말한다. 얘는 요새 연애한다더니 얼굴이 활짝 폈다. 자기 인생에 있어서 첫 연애라던데 아주 연애 한 번 거하게 한다. 방송도 타고 방송에서 고백도 하고. 곧 결혼도 할 예정이라는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나까지 행복해지는 느낌이다. 아니, 근데 머슴이라니.
“왜. 누나 느낌은 완전 주인님 느낌이잖아.”
“내가 그렇게 보였어?”
“꼭 그렇다는 건 아닌데. 자꾸 형이 느낌 이야기해서. 도대체 형이 원하는 느낌이 뭔데?”
내가 원하는 느낌이 뭘까. 시간을 거슬러 처음 누나에게 반했던 때를 떠올려보면 기억이 나려나 싶어 곰곰 생각해보았다. 평소에는 그렇게 철벽을 두르고 말이 거칠던 누나가, 카메라를 들고. 아.
“예상치도 못한 모습을 보이는 여자?”
“낮져밤이. 이런 거?”
“그런 것보다는.. 외강내유라던가.”
“어렵다.”
그러게. 나도 어렵다.
술자리가 무르익어 갈 즈음, 민호는 전화를 받더니 황급히 일어났다. 오늘 오프라더니 결국 가는구나. 민호는 레지던트 생활을 한 이후로 제대로 모임에 끝까지 남아있던 적이 없다. 월급 유통과정에 염전이 끼어있는지 아주 짜다고 하던데. 대한민국 의사들 파이팅이다. 민호의 뒷모습이 안타까워서 눈동자로 쓰다듬어 주었다. 그 이상은 바라지도 않고, 해 줄 의향도 없다.
“그나저나. 민호는 매번 당직인거야? 왜 저렇게 불려 다녀?”
“쟤 응급실 팀이잖아.” 준면이의 말에 아무 생각 없이 대답하다가 갑자기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오늘 갔던 병원이 민호네 병원이네. 대형사고 때문에 불려가는구나. 근데 그렇다는 건. 그 여자를 알고 있을까? 레지던트 짬은 아닌 것 같던데. 허술한 레지던트들을 꾸짖는 것을 보니 보통내기가 아닌 듯 보였다. 한 번 물어나 볼까.
“일단 마시자.” 그래, 일단 마시자. 길게 생각할 것 없다.
***
“우리 악당쌤?”
“악당쌤?”
“그런 게 있어.”
결국 궁금증이 도져서 귀한 점심시간에 밥도 빼놓고 병원으로 직행했다. 민호는 원래 이 시간에 만날 수 없는 사람인데 어제 오프를 반납한 역사가 있어서. 어찌 되었든 나에게는 좋은 일이 아닌가. 내가 그 의사의 인상착의를 설명하니 단번에 알아챘다. 악당이라니. 말하는 투가 조금 거칠긴 해도 나쁜 사람처럼 느껴지지는 않던데. 민호는 궁금해 하는 나를 이끌고 병원 건물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암병동?
“이게 드라마보다 재미있을 걸.” 자신만만해 하는 민호를 따라 한 병실 앞에 섰다. 암병동이라고 해서 약간 가라앉은 분위기를 생각했는데 내 착각이었다. 아이들이 있는 병동인지 벽면에 나비며 꽃이며 시트 스티커가 잔뜩 붙어있다. 아이들이 무서운 병을 앓는다고 생각하니 마음 구석이 아파온다. 근데 어떤 점이 재미있다는 걸까.
“왜 우리 혜진이누나 괴롭혀요! 악당!”
“내가 니 누나를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괴롭혀.”
“맨날 뭐라고 하고! 혼내고!”
“아프다면서 소리만 빽빽 지르고. 다 나았네. 너 집에 가라.” 저게 뭐람.
그 의사가 한 침대 옆에 서서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렇게 표현하는 게 맞을까 싶다만. 코에 굵은 호스가 있고, 얇은 손목에는 주사바늘이 한가득. 그리고 그 팔을 따라 호스가 주렁주렁. 마른 몸 어디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는지 우렁차게 소리를 지르고 있다. 한마디도 지지 않으면서 대화하는 둘을 보자니 조금 꽁트같기도 하고.
“혜진이가 나랑 동기인데. 쟤가 혜진이 동생이야.”
“매일 혼나?”
“그런 편이지. 좀 어리바리하거든. 애가 좀 감성도 짙고.”
그렇구나. 나의 입에선 절로 대답이 나왔고 고개도 반사적으로 끄덕였다. 그렇다면 뭐, 악당소리 들을 만하지.
“레지던트 월급으로 꼬맹이 병원비가 다 해결되나. 쟤는 자기 병원비 악당 쌤이 다 내주는 거 모르니까 저럴 수 있는 거야. 혜진이는 혼나도 한마디도 안 해. 우리도 쌤 좋은 사람인 거 다 아니까.”
이 말은 조금 놀랍다. 소리를 지르다 말고 기운에 받치는지 잠깐 헥헥거리는 아이를 보던 의사는 이마를 만져보곤 이불을 끝까지 덮어준다.
“그러고 보니 악쌤이 딱 형이 좋아할 스타일 아니야? 어제 말했잖아. 저 쌤 욕 진짜 잘하는데 마음씨는 아마 따듯해. 맞지, 형 스타일.”
“맞는 것 같은데.”
어제보다 한 열배는 더 예뻐 보이는 거 보면.
***
좋은 여자를 찾으면 뭐하나. 업무량이 백두산 수준인데. 분명히 오늘은 주말인데 나는 회사 풍경이랑 별 다를 게 없는 방 안에서 노트북을 두드리는 중이다. 전에 파트너한테 좀 곤란한 부분을 떠넘겼더니 이번에 제대로 복수를 당하고 있다. 안 그래도 이쪽 사건은 받기 싫었는데 왜 나한테 이런 시련을. 판례를 뒤져봐도 이렇다 할 해답이 나오지 않아, 나는 그냥 조금 쉬기로 한다.
- 악쌤이랑 데이트중
아니나 다를까, 때맞춰 민호에게서 카톡이 왔다. 그 날 이후로 계속 이런 카톡을 보낸다. 내가 마음에 들어 하는 여자가 정말 그렇게 없었나. 이렇게 날뛰면서 나를 놀려대니 말이다. 준면이는 내게 이제와서 고백하는 거지만 내가 다른 성적 취향을 가진 것은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도 있다고 했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준면이 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그랬다고 공감의 의사를 표시한 것. 나는 지난 시간에 대한 심각한 회의감이 들었다.
- 너는 데이트를 응급실에서 해?
- 악쌤이 오늘 당직이라. 부러운 거 다 알아.
- 먹고싶은거 있어?
- 사오게?
당연하지. 눈치는 빨라서 내 의도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 친한 동생 기도 살려주고, 나도 기분 좋고 일석이조지. 사실 지금 병원을 다녀온다면 주말동안 해낼 일들이 조금 빠듯해지기는 한데 하루정도 밤새서 하면 금방 해낼 수 있는 분량이다.
- 크리스피 반짝반짝 빛나는 거
이 근처에 매장이 있나.
혼자 살게 된 것도 꽤 오래 됐는데 아직도 혼자 자는 것은 익숙하지가 않다. 혼자서 밥을 먹는 건 원래 익숙한 일이지만. 게다가 밤을 새는 일이 허다하니 애초에 방을 구해놓고 잠을 자는 용도로 쓰기보다는 추가 근무를 하기 위한 장소로 쓰고 있으니 익숙해질 터가 있나. 그런 내게 레지던트들의 이층침대가 잔뜩 모인 이곳은 꽤나 흥미롭다. 드라마에서만 보던 장면을 내가 보고 있다니.
“잘 먹을게요.” 얘가 혜진이구나. 하얀 의사가운에 ‘이혜진’이라고 자수가 놓아져 있는 걸 보고 알았다. 얼굴만 봐도 대충 왜 혼날지 그림이 그려질 정도다. 민호는 자기가 사온 것 마냥 도넛상자를 열고 여기저기 무료 나눔을 하고 있다. 내가 여기 온 것이 이러려고 온 게 아닌데. 민호야, 조심스레 부르자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씩 웃는다. 어깨동무를 하고 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긴다. 나도 모르게 긴장되기 시작했다. 첫마디는 뭐라고 해야 할까, 안녕하세요. 편하게 인사하면 될까?
“손가락 다치신 분이네.” 나보다 먼저 아는 척을 하는 것은 계획에 없었는데.
“봉합 잘 했는데 또 오셨네요.”
“아 쌤, 이쪽은 제가 친한 형….”
“악쌤입니다. 그렇게 전해 들으셨죠? 최민호 말했을 게 뻔하다 뻔해.” 나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는데 기가 쭉 빨렸다.
민호는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그런 적 없다며 애교 아닌 애교를 부린다. 나도 젊은 시절에 애교 하면 일가견이 있던 사람인데, 최민호한테 질 수 없지. 그런데 상대방이 지나치게 강해서 섣불리 입이 떨어지지 않고 있다.
“응급실 전임의입니다. 얘 같은 조무래기들과 함께하고 있어요.”
“아, 김민석입니다. 근처 로펌에서 일해요.”
“최민호 의외다?”
순간 이름이 전임의인 줄 알았다.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는데 한 번 더 생각해보니 전임 의사였다. 이렇게 생각이 짧은 사람이 아니었는데. 짧게 악수를 하고 악쌤은 민호의 배를 차트로 한 번 툭 쳤다. 얘가 평소에 병원 안에서 어떻게 하고 다니면 의외라는 소리가 나올까. 분위기가 괜찮은 것 같아 틈을 타서 도넛을 건넸다. 그리고 단번에 거절당했다.
“단 음식 안 좋아해요. 빨리 죽어요.”
네…. 그쵸.
“다 먹었으면 가자. 이제 우리 시간이야.” 악쌤의 말을 듣고 시계를 보니 시침이 7을 겨우 넘어가고 있다. 정규 진료가 끝나고 난 후, 밤이 다가올수록 응급실의 역할은 더더욱 중요해진다.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린 민호가 손을 탈탈 털고 울상을 짓는다. 돈 벌기 힘들지. 나도 그래. 나도 집에 가서 너와 근로의 고통을 공유하마. 비록 간단한 인사를 했을 뿐이지만 기분이 썩 좋다. 이런 문맥에 쓰는 단어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다음에 또 봐요 악당 선생님.
아, 그냥 때려치울까. 내 파트너 변호사의 입버릇이다. 이게 마음에 들지 않았으면 애초에 변경 요청을 했을 거다. 내가 저 소리에 민감하게 굴지 않는 것은 나도 크게 동감하기 때문이다. 주말을 달리고 출근했더니 배당 사건을 바꿔버렸다. 우리가 영 시원찮게 굴었던 것도 없잖아 있겠지만 이건 좀 아니잖아. 게다가 이쪽은 정말 아는 게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반갑수다.”
인사부터 남다른 분들을 상대하게 되었다.
우리 로펌은 규모가 꽤 커서 철저히 금액 위주로 움직인다. 돈이 잘 안 되는 이혼소송이나 소송 과정이 질척한 친족 간의 소송은 최대한 배제하며 운영된다. 그런 우리 로펌이 좋아하는 거? 기업 단위 소송. 청구 소송 정도. 나처럼 아직 경력이 적은 변호사는 적당한 단위의 청구소송을 배당받기 마련이었다. 그런 내게 중소기업 소송이라니.
말이 좋아 중소기업이지 말을 들어보니 조직 폭력배 사이의 소송인 것 같다. '세상이 달라져서‘라는 어구를 수미상관처럼 이용하는 이 분은 누가 봐도 한 주먹 할 것 같은 분이다. 하얀 와이셔츠를 입으셨는데 그 아래의 꿈틀거리는 용들이 천 너머로 위용을 뽐내고 있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걸 알고 그놈이 자기가 자처해서 판례 찾아오겠다고 했구나.
세상이 달라져서 이제는 주먹으로는 통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영업권 안에서-정확히 말하자면 나와 바리라고 표현하셨다- 방해 행위를 하는 다른 기업 놈들을 조금 혼내줬는데 이번에는 자신들의 영업방식을 그대로 모방한 가게-내가 들어보니 업소인 것 같다-를 동일 상권 안에 차렸고…. 대충 내용은 이랬다.
“근데 말입니다. 법정에 서면 그분들의 얼굴을 제가 보게 될 텐데.”
“개새끼들.” 갑자기 분노에 가득 찬 의뢰인이 책상 위에 있던 볼펜 하나를 부러트렸다. 파트너 오면 볼펜 물어내라고 해야겠다.
“그런데.”
“제 신변은 안전하죠?”
“생매장 정도는 막을 수 있는데 독을 타면 모르지. 변호사님 몸 조심하셔야합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기 시작했다.
( + 콩알탄이 결국 일을 쳤다.
오라이-갑을병정 이후로는 동시연재 안하겠다고 마음 먹었었는데 결국 이렇게 됩니다.
메디컬 코트는 두편씩 묶여 나오며, 그래서 연재텀이 조금 깁니다 (중요) ★★
콩알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자.. 제 동시연재가 성공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십사.
오라이 - 악덕사장 - 아고물 & 메코 수준으로 봐야 이해가 될 건데.. 사실 별 중요성은 없어요
근데 오라이 안 보신 분들께는 무한 스포.. 하하.. 그래서 경고를 해 두었눈데 말입니다 (후비적)
메코는 금방 끝날 것 같아요 왜냐면 생각보다 내용이 별루 없어.. 글ㄹ고 브금은 제가 질리지 않는 이상 러브픽션 박제. 노래 짱 좋음
메코에 딱 어울리는 브금같아요.. 하 너무 좋다.. 문단 배열 바꿔봤는데 불편하면 말해주세요!흐흐
암호닉은 $$ 사이에 넣어서 신청해주세요. 아고물이랑 따로 받습니다. 같이 받으면 불편함이 이만 저만이 아닌..
자, 메코도 아고물도 쉬지 않고 달리겠습니다. 잘부탁해요.. 하..하트..♡
저는 제 사람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부르는데요.
개구리들, 콩덕들, 꾹꾹이들, 추천요정들 이라고 부릅니다. 결론은 모두들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