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원을 어르고 달랜지 사흘 째였다. 그 날, 피곤한 모습의 김지원을 보내고 난 후로부터 여러 말들과 김지원의 행동이 여간 마음에 걸렸다. 처음에는 퇴원할 때까지만 만나지 말자고 말했다. 진지하게 꺼냈던 말이었는데 정작 김지원은 우습다는듯 내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딱 그 선까지만 하려고 했는데 미동도 없는 김지원 덕에 적정 수위는 하루에도 몇번이나 올라갔다. 기간을 점점 연장 시키니까 그제서야 점점 김지원의 미간이 이따금씩 찡그려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완전한 반응을 불러 일으킨 건 오늘이었다.
"우리 이럴 거면 언제라고 정할 거 없이 한동안 볼 생각하지 말자."
"○○○. 말이 심해진다."
"말이 심해지는 건 알아? 그러게 처음부터 대답했으면 됐잖아."
말이 한동안이지 기약 없는 무기한 연장에 김지원은 평생을 지내면서 처음으로 어이 없다는 표정을 대놓고 지어보였다. 그리고 김지원의 말투에는 미묘하게 날이 들어갔다.
"처음 대답을 싫다고 해도 지금이랑 똑같았을 거잖아."
"김지원."
"아, 진짜 너까지 왜 그러는데."
뭐라고 더 말하려는 건지 입을 달싹이다 멈췄다. 머리를 헝클이더니 이내 몸을 일으키고 동시에 가방을 들었다. 김지원 뒤로 보이는 시계를 봤다. 생각보다 이른 시간이었다.
"아픈 애한테 내가 무슨 화를 내……. 나 가볼게. 내일 올게."
"오빠, 김지원! 야!"
급하게 슬리퍼를 신고 김지원 뒤를 따르려는데 꼬여버린 수액 때문에 풀어내는데만 한참이 걸렸다. 겨우 풀어냈긴 했는데 나서서 찾아봤자 김지원은 이미 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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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이렇게 하면 엄마 모셔 올 생각하지도 말래."
김지원은 처음 피곤했을 때 했던 행동을 그대로 취했다. 이불에 얼굴을 묻은 채 웅얼거리며 말을 겨우 이어나갔다. 집중하지 않으면 뭐라 말하는지 들리지도 않을 기세였다. 일단 확실한 건 저 말을 들었으니까 내 표정이 좋을리 없었다. 이제 완전히 몸에 베인 습관인지 김지원은 한동안 묻고 있던 얼굴을 들고 몸을 일으켰다.
"얼음팩 꺼내줄게."
"그러니까 내 말 좀 제발 듣는 척이라도 해줘."
"나 너 마저도 없으면 어떡해? 갑자기 불안하단 말이야."
"오빠."
"엄마도 진짜 보고 싶은데 여기서 버티게 해주는 사람이 너야. 나는 너 없으면 엄마도 못 봐."
"나 때문에 망친다는 생각은 안 들어?"
"한번도, 단 한번도 한 적이 없어. 넌 했어? 네가 날 망친다고 생각했어?"
피곤한 눈가를 문지르며 내게 얼음팩을 주었다. 얼음팩을 받아들면서 나는 억지로 김지원과 눈을 맞추려고 했다. 꽤 단호한 목소리와 함께 김지원에게 말을 걸었다.
"어머니 봐야하잖아."
"봐야지. 봐야해."
"그런데 이렇게 쭉 있다간 어머니 모셔 올 생각도 하지 말라잖아, 거기서."
"○○아, 요즘 밉다."
"오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말이야."
"안 그래도 지금 엄청나게 여러가지가 섞여서 고민이 많은데. 제일 중요하다고 여기고 있는 네가 이렇게 빠져버린다고 하면 어떡해."
김지원은 다시 앉기 전 내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지친다는듯 고개를 저었다.
"속 좀 썩이지마."
"오빠도 마찬가지야."
"○○아, 얼른 누워라. 너 자는 거 보고 가야겠다. 오늘은 쉬는 게 안 돼."
"알았어."
"아이구, 예뻐."
웬 일로 얌전히 눕자 김지원은 기특하다는 듯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조금이라도 여기서 더 쉬었으면 하는 바람에 눈도 재빠르게 감고 완전히 자는 척 연기를 했다. 원망스러운 건 그러다 진짜로 자버리고 말았다. 김지원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자는 척 하는 나에게 얘기해 줄 거 같았는데 진짜로 자버려서 듣지 못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김지원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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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날, 김지원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김지원한테서 연락이 왔다. 처음엔 문자, 문자를 반복하다 내가 답이 없자 읽는 거라도 확인하려는 모양이었는지 카톡을 보내왔다. 전화도 종종 몇번. 전화는 한번도 받지 않았다. 문자의 내용은 대략 당분간 병실에 들리기 힘들 거 같다는 내용이었다. 화나지 않았다. 화낼 수가 없었다. 기껏 고작해야 연습생인데 얼마나 큰 지분을 차지하겠냐지만 내가 그만큼 눈치가 없는 것도 아니었고 김지원은 회사에서 유독 아끼는 티가 났다. 방법이 험악해서 그럴 뿐이지. 그런 아이의 데뷔 전부터의 연애는 딱히 좋은 소재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 어지간히 조용히 사귀고 있었던 터라 김한빈을 주축으로 꾸려진 팀 내에서도 나의 존재를 모르는 인물은 더러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래서 회사 스태프 쪽에 김지원의 연애 사실을 찔렀다. 그래서, 혼나서 안 오는 거겠지 했다. 김한빈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말이다.
"서바이벌 프로그램 찍는 게 확정이 됐어."
"아, 그래?"
"몸은."
"나아가고 있어. 오빠는?"
"내일 아마 너 보러 갈 거야."
"아… 내일이 거의 마지막이라고 보면 되겠네."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거 보니까. 말한 거, 너지?"
"뭘."
"너랑 바비 형 사이, 직접 찌른 거잖아."
김한빈 말에 깜짝 놀라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오빠는 알아?"
"야, 너 진짜 대단하다."
"오빠는 아냐고."
"몰라, 모르겠지. 내가 어떻게 알아."
"야, 김한빈."
"너도 그렇고 형도 그렇고 똑같아. 맨날 나 사이에 놓고 둘이 뭐하냐? 아, 직접 말해!"
"왜 성질이야!"
"답답하니까 그렇지, 답답하니까!"
"됐어, 됐거든. 김지원만 모르면 상관 없는 일이야."
김한빈하고 통화를 끊었다. 통화를 끊자 그 사이에 도착한 문자가 여럿 보였다. 그 중 하나가 눈에 밟혔는데 문자 주인공은 역시 김지원이었다.
[누구랑 연락해? 나 이거 몰래 하는건데.... 나랑은 왜 안돼?]
뭔가 점점 힘들다는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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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나흘만이었다. 내 열병이 우습게도 점점 사그라질 때 쯤이었다. 김지원이 들이닥쳤다. 평소와 달랐다. 내가 매일 다른 모습이더라도 항상 일관성 있게 그대로이던 김지원이 변해서 돌아왔다. 어느 정도 수긍할 수 밖에 없는 결과였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몰랐다.
"잘 지냈어?"
"보시다시피."
"항상 입은 살아있어서 좋단 말이야."
"내 매력이잖아?"
간만에 서로 편하게 웃었다. 하지만 곧 무안하리만큼 입이 다물어졌다. 적막 속에 김지원이 말을 이었다.
"나 잘하면 이번에 데뷔할 수도 있어."
김한빈한테 들었지만 모르는 척 김지원의 얘기를 잠자코 들었다.
"그게 팀 형식으로 나눠서 하는 건데, 그거 이기면 나 데뷔도 하고 엄마랑 같이 살 수 있대."
"와, 오빠가 바라던 거잖아."
"그런데 함부로 밖 출입이 안 된대. 그거 때문에 너 퇴원할 때까지만이라도 미루고 싶었는데……, 쉽지가 않더라."
김지원은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쳐진 상황이 어색하다는듯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머쓱하게 웃었다. 날 보고 웃은 것이 아니었음에도 나도 김지원을 보고 따라 웃었다. 김지원은 다시 나지막이 말을 덧붙였다.
"미안해."
"뭐가 미안해."
"말 안 들어서 갑자기 이렇게 못 보게 되는 건가 싶은 거 있지."
"내가 말했잖아. 우리 엄청 많이 봤다고. 이제 엄청 못 보는 날이 생기는 거야. 그 뿐인 거지."
"그럼 또 엄청 못 보고 나면 볼 수 있어?"
"응, 당연하지."
앉아있는 상태로 서있는 김지원을 올려다 봤다. 김지원은 짐짓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누구보다 평온하게 김지원을 쳐다보고 있었다. 손목에 차여진 시계로 시간을 확인한 김지원은 벽시계로 다시 한 번 시간을 확인했다.
"아… 나 가봐야겠다."
"잠깐, 잠깐만."
그냥 이유 없이 다급했다. 헛손질도 몇 번 했다. 그리고 나서 서랍장에 들어있던 지갑을 꺼냈다. 택시비로 맡겼던 용돈의 모든 액수 대신 천원짜리 지폐 한장을 내밀었다. 그때 그 사과주스 값이라도 하며 내밀었던 돈 액수였는데 보고 알아차렸던 건지 김지원은 고개를 저었다. 자기 손에 들린 돈을 내 손바닥 위에 올리고 손가락을 접어 주먹을 쥐게 했다. 돈이 떨어지지 않도록.
"이거는 다음에 보면 그때 줘."
"다음이 언제인 줄 알고."
"모르니까 이런 거로라도 다음을 약속하는 거야."
곧 주먹이 쥐어진 손을 환자복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김지원의 검지 손가락은 주먹이 쥐여진 내 손의 엄지와 검지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주먹이 펴지도록 했다. 돈이 손을 빠져나가 주머니에 들어 앉았다. 김지원은 다시 내 손을 빼내어 손등을 문질렀다. 언제나와 같이 엄지 손가락으로.
"나 이제 안 올 거야."
"응, 오지마."
"그러니까 더 이상 아프면 안 돼. 어머니 바쁘시잖아. 누가 챙겨줘, 너."
"응, 안 아플게."
터무니 없이 일찍 나온 김지원은 다시 연습을 들어 가야했다. 김지원이 내 손을 잡아오면 거의 항상 내가 김지원 손을 떼어냈었다. 손등을 문지르던 김지원의 엄지 손가락이 멈췄다. 손을 자신의 얼굴 쪽으로 가져갔다. 이끌려 가는데로 두었더니 이내 손등에 간지럽게 입을 맞췄다.
"이거 공주님 뽀뽀다. 신기하지."
"별게 다 신기하다."
"안 신기해? 어쩔 수 없지. ○○아, 나 사랑하지?"
"지금도 사랑하고 있어."
"… 그럼 됐어. 안심이다."
김지원은 나에게서 등을 보였다. 심장에서 이상한 물체가 쿵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갈게."
"잘 가."
"다시 만나자."
그 며칠 싫다며 완고한 고집을 피우던 김지원은 아무데도 없었다. 김지원은 그대로 직행해서 병실을 빠져나갔다. 엄마가 최선, 내가 차선인 건 김지원한테 있어서 당연한 거였다.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누구보다 김지원을 잘 이해한다고 생각했는데 너무나 당연한 거에 섭섭함을 느끼는 내가 짜증이 났다. 눈을 감았다. 쪽잠이라도 자지 않으면 무슨 짓을 할지 생각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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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김지원의 뒷모습을 마중 보내고 난 후였다. 밤에서 새벽으로 넘어가는 미묘한 시점에는 항상 열이 39도에서 40도를 넘어가는 일이 파다했다. 물론 김지원도 그걸 알고 있었다. 나 역시 말할 것도 없이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초기 때를 제외하고 항상 내 곁에 김지원이 있어서 잠시 망각한 모양이었다. 아파도 아픈 줄 몰랐던 열병이 밤새 돋았다. 혼자 견디는 밤이 어색해 발갛게 익은 얼굴인 상태에 해열제 수액을 꽂고 억지로 눈을 감았다. 2인실엔 여전히 나 혼자였기에 망정이었지 앓는 소리가 갈 수록 심해졌다. 잠을 자는게 아니라 정신이 혼미해져서 몽롱함을 느끼고 있었다.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간호사라 생각하고 해열제라도 한번 더 꽂아달라고 말할 생각이었다.
"아, 이게 뭐야."
김지원이다. 김지원 목소리가 들렸다. 정신을 겨우 붙잡았다. 지금이라도 그런 말 해서 미안하다고 그냥 옆에 있게만이라도 하게 해달라고 일어나서 빌고 싶었다. 애석하게 몸이 따르지 않았다. 대신 눈을 감았는데도 고여오는 눈물을 흘러내리지 않게 참는 것에 집중했다.
"바보야, 아프지 말라고 했잖아……."
그러니까 나는, 그 말을 듣고서야 가쁜 숨을 진정할 수 있다. 땀으로 흥건하게 젖은 머리칼인데도 개의치않고 쓸어 넘겨주는 김지원이. 내일도 당연히 올 거처럼 평소 하던 일을 하는 김지원이. 배를 천천히 다독여주며 허밍해주는 김지원이. 그리고 이제 진짜 간다며 마지막으로 입에 입술을 맞추고 뜸들이는 거 없이 매정하게 떼어버리는 김지원은 정말로 가버렸다. 고요함 속에서 미약하게 들리는 문 닫히는 소리는 김지원을 위해 김지원의 평소 습관에서 멀어지는 것보다 더욱 날 울리는데 충분한 요소였다. 그렇게 나는 울었다. 혼자 마음에도 없던 소리를 하던 그 며칠의 눈물을 한꺼번에 흘렸다. 그 와중에도 혹시나 소리를 듣고 다시 들어올까봐, 그런 김지원의 행동이 두려워 쥐어 짜내듯 손을 입가에 가져가 입을 틀어막고 숨 죽여 울었다.
행복하자, 우리. 너의 행복을 바라는 나는 언제부터인가 나의 행복을 버리기 시작했다.
행복하자 우리 |
엄마 생각하는 지원이 떠올리니까 어울린다기 보다는 생각나는 노래가 이 노래라서...
잠 오는 나의 한계 눈물이 흐르지 않는다 슬프다 생각할 때는 눈물이 흘렀는데 이건 대박이다 했는데 내가 망쳤다 나는 오늘 자야지
~ 암호닉 ~ 뭇, 바비아이, 모나리자, 저격탕탕, 갑신정변, 밥바이지, 김바비, 똑똑이, 이지, 꾹꾹이, 프라푸치노, 얄루, 헐, 푸, 시나몬, 김바비천국, 비니, 바비인형♡, 현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