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 놓인 스테이크를 한 입 크기로 작게 썰어 포크로 쿡 찍었다. 그대로 입 안에 고기를 밀어넣곤 우물거리는데, 고기를 좋아하는 내게 고기 생각이 아닌 다른 생각들이 자꾸만 머리 속을 어지럽혔다. 지금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영화를 볼 때에도, 잠깐 카페에 갔을 때에도, 하루 종일 내 머리 속은 단 한 가지 생각이 둥둥 떠다녔다.
어제 밤.
분명히 닿았던 바비의 입술. 그리고 조금은 길었던 입맞춤.
하지만 누군가 필름을 잘라내기라도 한 듯, 선명하지 않은 기억 때문에 나도 모르게 절로 살짝 인상이 써진다. 꿈이였을까? 얼핏 꿈이라고 말하던 바비의 모습이 기억나는 것도 같다. 하지만 꿈이라고 하기엔 분명 너무 생생했다. 꿈이 아니었는데… 분명 아닌데.
…그게 꿈이 아니라면, 바비는 내게 왜 키스한 거지?
그렇게 생각에 빠져 있는 내 앞의 테이블을 똑똑, 하고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멍한 정신을 깨어 앞의 남자를 바라보니 남자가 나와 눈을 맞추곤 물끄러미 바라보며 물어온다.
"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밥도 안 먹고. "
" 아, 그냥 어제 꾼 꿈이 떠올라서요. "
" 어떤 꿈이었는데요? "
어… 그냥 좋은 꿈이요. 베시시 웃으며 답하곤 다시 스테이크를 작게 썰어 입 안에 넣었다. 그러자 날 바라보던 남자도 씩 웃곤 다시 제 식사에 집중했다.
밥을 먹다 말고 힐끔, 맞은 편의 남자를 한 번 바라보았다. 예전에 클럽 안에서 봤을 때도, 그리고 동물원에서 명함을 주며 마주했을 때도 느낀 거지만 참 잘생겼다는 느낌이 든다. 어쩌다보니 몇 번의 연락을 주고 받게 되었고, 적극적인 저 남자 덕분에 오늘 하루 종일 저 남자와 영화도 보고, 카페도 가고, 이렇게 저녁도 같이 먹게 되었다. 처음엔 그저 잘생겼단 느낌이 다였는데, 종일 저 사람과 같이 있으면서 느낀 건 '저 사람 참 괜찮은 사람이구나.' 였다.
" 다 드셨으면 일어날까요? "
식사가 끝나고 수저를 내려놓자, 다정한 목소리로 물어오는 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종일 얻어 먹기만 한 것 같아서 저녁은 내가 사겠다는 말에, 남자가 고개를 젓곤 날 가게 밖으로 살짝 내민다. 이런 건 남자가 계산하는 거에요.
밖에서 기다리겠단 말과 함께 가게 문 밖으로 나오자 차가운 공기가 볼을 스쳤다. 꼭 베일 것만 같은 기분에 추워서 옷을 잠그려는데, 참 당연하다는 듯 늘 내 옷을 먼저 잠궈주던 바비가 떠올랐다. 씨이… 어떻게 떨친 생각인데. 왜 이렇게 자꾸 불쑥 불쑥 생각나서, 종일 날 괴롭히냔 말야. 괜히 툴툴대면서도 애써 떠오른 바비의 모습이 지우기 싫다. 참 아이러니한 느낌이었다. 바비를 생각하니 웃음이 나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혼란스러운 감정이 나를 뒤덮었다.
잠깐 생각에 빠져 또 멍하니 있는 내 목에 갑자기 목도리 하나가 둘러진다. 어, 어? 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를 올려다보니 빨간 목도리 하나를 내게 감아준다.
" 뭐에요, 이거? "
" 하고 가세요. 춥잖아요. "
" 아녜요. 제가 이거 하고 가면 그쪽이 춥잖아요. 게다가 이렇게 가져가면 언제 돌려줘요. "
" 다음 번에 만날 때 돌려주시면 되죠, 뭐. "
벌써 내 목에 목도리를 다 두른 남자가 됐다, 하고 씨익 웃는 모습에 나도 그냥 피실 웃어버렸다. 고마워요. 내 말에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가게 앞으로 차 한 대가 멈춰 서자 남자가 내 목도리로 손을 뻗어 목도리를 다시 한 번 매만져준다. 이 차가 데리러 온다는 그 차 맞죠? 남자의 말에 차를 한 번 보곤 고개를 끄덕였더니 남자가 한 걸음 물러서곤 내게 인사를 해왔다.
" 조심해서 가요. "
" 그쪽도요. "
" 계속 연락 해도 될까요? "
조심스레 묻는 남자의 질문에 잠깐 뜸을 들이다 살짝 미소지었다.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곤 차의 뒷문을 열자, 익숙한 향이 차 안에서 밖으로 밀려나온다. 자동차 특유의 향기, 내 옷이나 내 물건에서 나는 향기, 그리고 당연한 듯 운전석에 앉은 바비의 향기.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는 기분에 얼른 차 안으로 들어가 몸을 앉혔다. 남자에 의해 차 문이 닫히자 바비가 부드럽게 차를 출발시켰다.
" 춥다, 그쵸. "
조용한 분위기가 싫어서 괜히 먼저 말을 꺼냈는데 돌아오는 바비의 대답이 짧다. 네, 하고 짧게 답한 바비 덕분에 대화는 이어지지 않고 끝이 났다. 뭐야…. 바비는 이상하리만큼 오늘 아침부터 말수가 줄어든 것 같았다.
…기분 탓인가.
입술을 한 번 삐죽이곤 자세를 고쳐 편하게 앉았다. 따뜻한 차 안의 공기에 온 몸이 녹는 기분이었다. 추운 건 딱 싫어…. 칭얼대듯 말하곤 나른한 기분에 젖어 있는데, 바비가 갑작스럽게 물어온다.
" 집으로 바로 가실겁니까. "
" 네? 네. "
오늘 나한테 먼저 건넨 첫마디가 겨우 이거야? 왠지 모르게 야속한 마음에 바비의 뒷통수만 바라보다가 하아, 하고 짧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볼 것도 없는 창밖으로 애꿎은 시선을 돌렸다.
사실 모든 것이 의문 투성이였다. 어제 우리 키스한 거 맞아요? 바비는 왜 내게 키스한 거에요?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도무지 아무 것도 물을 수가 없었다. 혹시나 정말 꿈이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마음, 꿈이 아니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드는 부끄러운 마음. 여러가지 마음이 바비에게 묻는 걸 못하게 꾹 막고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이유는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날 대하는, 아니, 어쩌면 평소보다 더 싸늘하게 날 대하는 바비의 태도였다.
오늘 하루 종일 나눈 얘기가 겨우 두 마디야…. 울적한 마음에 아랫입술만 꾹 깨무는데 침묵을 깨고 바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 왜 한숨을 쉬십니까. "
" ……. "
" ……. "
" …아무 것도 아녜요. "
" 괜찮은 사람 같았습니까. "
" 네? "
" 오늘 만나고 오신 분 말입니다. "
" 잘 모르겠어요. "
그냥 그럭저럭.
어물쩡하게 대답하곤 힐끔, 룸미러를 바라보는데 때 마침 룸미러를 통해 날 바라보던 바비의 시선과 내 시선이 마주쳤다.
그리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둘 다 금방 시선을 피했다.
차는 금방 집 앞에 도착했다. 문 앞에 차가 천천히 멈춰섰고, 바비가 먼저 내려 뒷자리의 문을 열어주었다. 내가 차에서 완전히 내리자 금방 뒷자리의 문은 닫혔고, 오늘 처음으로 바비와 마주보고 서게 되었다.
늘 그렇듯 바비가 입은 검은색의 옷이 오늘따라 얇은 것도 같다. 저렇게 입으면 추울 것 같은데…. 괜한 걱정에 바비를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차가운 날씨 때문인지 바비의 손이 빨개져 있는 것이 보인다.
그 손을 잡으려고 조심스레 내 손을 뻗는데, 바비가 갑작스럽게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순간적으로 멈칫하며 움직이던 손을 멈췄다. 흔들리는 눈으로 바비를 올려다보니 바비도 물끄러미 날 내려다보고 있다. 뭐라고 바비에게 말을 하려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방금… 일부러 뒤로 피한 것 같았는데.
내 시선을 그대로 받아주고 있던 바비가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들어가세요, 아가씨.
* * *
그 남자와 처음 만났던 그 날 이후로 몇 번의 만남이 더 이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때마다 날 데리러 온 사람은 바비였다. 데리러 오지 않아도 된다는 내 말에도 바비는 늘 기다리겠다는 말과 함께, 내가 집으로 돌아갈 때면 어김없이 날 데리러 왔다.
만나는 횟수가 늘어날 수록 그 남자와 더 가까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바비와 있었던 그 날의 일은 점점 잊혀질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그 날의 일은 늘 선명했고, 시간이 지날 수록 내 머리를 더 어지럽힐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바비는 꼭 처음 만났을 때 처럼, 내게 그 때 만큼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늘 그렇듯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남자와 나란히 걷는데, 갑작스럽게 남자가 날 멈춰세우곤 나와 마주보고 섰다. 갑자기 뭐에요? 멀뚱히 자기를 올려다 보고 묻는 내게 남자가 씨익 웃어온다.
" 할 말이 있어서요. "
" 무슨 말이요? "
" --씨. 저랑 사귈래요? "
에? 생각도 못한 말에 당황한 얼굴로 남자를 바라보니 이미 내 반응을 예상하고 있었던 건지 남자가 씩 웃으며 내 머리를 살짝 넘겨주었다. 그 손길에 순간, 나도 모르게 바비가 떠올랐다. 그리고 고개를 몇 번 세게 내저었다. 바비 생각을 떨치기 위함이였다.
어, 저는, 그러니까…. 뭐라고 대답도 제대로 못한 채로 우물쭈물하는 날 보던 남자가 다시 내 옆으로 와서 섰다. 지금 대답 안 해줘도 돼요. 나중에 답 해줘요. 남자의 말에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어김없이 날 데리러온 차에 몸을 싣고도 남자가 한 말이 귓가에서 아른거렸다. 사귈래요? 이렇게 고백을 받아본 건 처음이었다. 묘한 기분에 멍하니 앞만 보고 있는 내가 이상했는지 바비가 아무 말 없이 운전을 하다 말고 내게 물어왔다.
" 무슨 일 있으십니까. "
" 어, 그게… 그러니까…. "
" ……. "
" 나 고백 받았어요. "
내 말에 바비가 잠깐 뜸을 들였다가 물어왔다. 어떻게 하실겁니까. 바비의 물음에 대답 대신 음, 하고 바보 같은 소리로 답했다. 잘 모르겠어요.
잘 모를 리가 없었다. 보나마나 내 대답은 뻔했다. 나는 여전히 바비를 좋아했다. 참 좋은 사람인 거 같아서, 만나다 보면 좋아질 것 같아서 그 남자를 몇 번을 만났지만 여전히 내게는 이 사람이 더 좋았다. 하지만 이 바보 같은 바비는 나한테 눈길 한 번 안 주고…. 나랑 사겨요, 하고 고백이라도 했다간 차일 것 같아서, 다시는 못 볼 것 같아서 꾹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또 다시 그 날의 일이 머리 속을 둥둥 떠다녔다.
그 날의 키스는… 날 좋아해서 한건가? 날 좋아할까, 바비가? 그게 아니라면 키스는 왜 한 거지. 아직도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또 많은 생각을 했더니 머리가 찡, 하고 아파오는 기분이었다. 작게 인상을 쓰곤 속으로만 웅얼거렸다. 나는 바비가 좋은데….
잘 모르겠다는 내 대답에 바비는 다른 말 없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늘 그렇듯, 얼마 지나지 않아서 차는 집 앞에 도착했다. 익숙하게 문을 열어주는 바비 덕분에 쉽게 차에서 내렸고, 집 안으로 들어와서 내 방 앞에 도착하기까지 둘 다 아무런 말 없이 걷기만 했다. 내 방에 도착해서 방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방 문을 닫아주려는 듯 바비가 내 방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 있잖아요, 바비. "
갑작스러운 내 부름에 바비가 문을 닫으려던 손을 멈췄다. 반쯤 열린 문틈 사이로 바비와 마주선 채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 저 내일도 그 사람 만나요. "
" 데려다 달라는 말씀이십니까. "
" 아뇨. 그건 아닌데…. "
아무런 표정도 없는, 딱딱하기만한 바비의 모습에 괜히 입 안이 마르는 것만 같다.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바비를 향해 말했다.
" 내일, 그 고백에 답해줄 거에요. "
" ……. "
" 뭐라고 답할 거 같아요? "
" ……. "
사실 바비의 반응이 궁금했다. 바비는 어떻게 생각할까. 괜히 꺼내본 내 물음에 바비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 그저 날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아무런 반응도 없는 바비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입술이 터진 건지 살짝 피맛이 느껴지는 것도 같다.
" 만나겠다고 답할 거에요. 사귀면서 손도 잡을 거고, 뽀뽀도 할 거고, 키스도…. "
괜한 심술이었다. 대답이 없는 그에게서 날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 점점 느껴졌고, 그 때문에 조금씩 느껴지는 화를 참지 못하고 생각 없이 내뱉은 대답이었다. 만날거에요. 손도 잡고, 뽀뽀도 하고, 키스도 하고… 말을 하다 말고 순간적으로 내뱉어진 키스라는 말에 나도 놀라서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바비의 그 눈동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잘못본 게 아니라면 바비의 시선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 하지만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바비는 그 특유의 무심한 표정으로 날 내려다보았다.
정말로 억울한 기분이었다.
…저 사람의 마음은 대체 뭘까. 그 안으로 들어가서 다 보고 나오고만 싶은 심정이었다. 천천히 입을 떼는 내 목소리가 작게 떨렸다.
" 바비는 내가 그 사람이랑 뭘 해도 아무렇지도 않아요? "
내 말에 여전히 바비는 아무런 답이 없다. 무표정으로 날 내려다보던 그는 잠깐의 정적 끝에 쉬십시오, 하는 짧은 말과 함께 손잡이를 놓곤 뒤를 돌아 걸어갔다.
그런 바비의 뒷모습을 바라보자 온 몸에 힘이 빠지는 기분이 든다. 긴장이라도 하고 있었던 건지, 순간적으로 숨이 탁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구나. 저 표정을 보니 이제야 확신이 든다.
…저 사람은 날 좋아한게 아니었구나. 그냥, 그 날은, 술 때문에 자제력을 잃어서 나에게 키스한 거 였구나. 어… 그래. 말하자면 실수였다. 나에게 관심이 있어서 그랬던 것이 아닌, 그저 술 때문에 일어난 실수.
그대로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꼭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씨이, 분에 못이겨 옆에 놓인 베개를 끌어 안곤 그 위로 얼굴을 푹 파묻었다.
" 짜증나…. "
* * *
약속을 가기 위해 준비를 마치고 나온 복도에서 바비와 마주쳤다. 내 옷을 물끄러미 바라본 바비가 살짝 인상을 쓴다. 길이도 짧고 몸에 꼭 붙는 원피스가 마음에 안 들어서겠지. 그런 바비의 시선에 잠깐 멈칫하다가 고개를 휙 돌리곤 먼저 계단을 내려가자, 내 뒤로 바비가 따라 계단을 내려오는 것이 느껴진다.
뚱한 표정으로 신발장까지 내려와선 익숙하게 신발장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익숙한 구두 하나를 꺼냈다. 바비를 처음 만났던 날 신고 있었던 굽이 높은 그 구두. 조심스레 구두 안으로 발을 넣는데, 아무런 말 없이 바비가 날 물끄러미 바라보는게 느껴진다.
그런 바비의 시선에도 못본 척 구두를 고쳐신고는 현관문을 열었다. 자꾸만 억울한 기분이 사라지질 않았다.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키스는 왜 한 거야.
차를 타고 약속 장소로 이동하면서도 바비도 나도, 입을 꾹 다물었다. 덕분에 차 안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조용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고나서야 바비가 먼저 입을 뗐다.
" 기다리겠습니다. "
늘 그렇듯 기다린다는 그의 말. 괜히 바비를 빤히 바라보다가 입을 꾹 다물고는 대답도 없이 그대로 차에서 내렸다.
약속 장소에 먼저 와있었던 그 남자가 나를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었다. 조금은 빠른 걸음으로 그 남자의 앞에 가서 섰더니 날 내려다보며 참 예쁘게도 웃어온다. 배 안 고파요? 밥부터 먹으러 가자고 날 이끄는 남자의 말에 잠깐 우물쭈물하다가 손에 들고 있던 종이가방을 먼저 내밀었다.
" 이거 목도리에요. "
" 이런 건 나중에 돌려주셔도 되는데. "
" 아뇨. 돌려드리는 게 먼저일 것 같아서요. 그리고…. "
" 네? "
" 죄송해요. 오늘 이 말 하려고 온 거에요. 어, 승윤 씨가 좋은 분인 건 아는데…"
내 말에 남자가 씨익 웃었다. 그리고는 내밀었던 종이가방을 받아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대답일 것 같았어요.
네? 하고 바보 같이 되묻는 내 물음에 그 남자가 어깨를 으쓱해온다.
" 늘 어디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린 것 같아 보였거든요. "
" 제가요? "
" 네. 혹시, 누구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거에요? "
그의 질문에 뭐라고 답을 해야 하나 망설이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미안한 마음이었다. 좋아하는 사람 있으면서 승윤씨랑 데이트도 하고… 저 나쁘죠. 내 웅얼거림에 그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뭐가 나빠요. 전 좋았는데.
" 그럼 대신 밥은 같이 먹어줘요. 친구로. "
" 어떻게 그래요. 미안해서…. "
" 미안하면 먹어줘요. 갑시다, 얼른. "
아무렇지 않게 내 팔을 잡고 이끄는 그의 행동에 미안한 마음이 크지만 참 아이러니하게도 웃음이 났다. 내 웃음에 덩달아 웃는 그와 함께 바로 앞 식당으로 들어갔다. 조금은 더운 가게 안의 공기 때문에 입고 있던 코트를 벗곤 마주보고 앉은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그래도 지금까지는 바비가 신경쓰였던 건지 조금은 불편한 마음이 있었다면 지금의 마음은 한결 편했다.
" 뭐 드실래요? "
" 전 이거요. "
" 매번 그런 것만 드시면 안 지겨워요? "
" 이게 좋은 걸요. "
전 한 번 좋아하면 되게 오래 좋아하거든요. 내 말에 남자가 피식 웃으며 종업원을 불렀다. 저기요.
메뉴가 나오고 생각 외로 정말 편하게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꼭, 대학 선배와 같이 밥을 먹는 기분이었다. 좋은 사람은 정말 좋은 사람이구나. 새삼스레 느끼며 마지막 숟가락을 입에 넣곤 우물거렸다.
후식으로 나온 음료수까지 모두 다 먹고난 후에 몸을 일으켰다. 오늘은 꼭 내가 계산을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지갑을 꺼냈는데, 언제 미리 계산을 해둔 건지 남자가 웃으며 뒤에서 내 양 어깨를 잡곤 날 밖으로 밀었다. 계산 다 했어요. 그냥 가도 돼요.
" 아, 뭐에요. 오늘은 꼭 제가 사려고 했는데. "
" 매번 말하잖아요. 이런 건 남자가 사야한다니까. "
" 그런게 어딨어요. 이런 건 남자가 꼭 사야한다는 걸 누가 법으로 정하…. "
그 남자와 웃으며 투닥거리는데, 갑작스럽게 내 시선에 잡힌 익숙한 인영에 순간 말을 멈추고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가 뭔가 잘못 보고 있는 걸까. 저 사람은….
" …바비? "
내 조심스러운 부름에 벽에 기대서서 바닥만 바라보던 바비가 고개를 들어 날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기대선 몸을 일으켜 내게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바비가 왜 여기 있어요? 하고 묻는 내 질문이 채 다 끝나기도 전에 내 손목을 꽉 잡은 그는 굳은 표정으로 나와 남자를 한 번씩 바라보다가 실례하겠습니다, 하는 짧은 말과 함께 나를 이끌었다.
뭐야, 이게…? 엉겁결에 끌려가는데 바비가 꽉 쥔 손목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잠깐만요. 바비. 잠깐만. 내 말에도 바비는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로 그대로 날 잡고 건물 밖을 걸었다. 어딜 향하는 건지 빠르게 걸음을 옮기던 바비를 따라가는데, 높은 굽 때문에 빠른 걸음을 채 따라가지 못하고 발목을 삐끗했다.
" 아! "
생각보다 세게 삐끗한 건지 걸음을 내딛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아픈 발목을 손으로 부여잡는데 욱씬거리는 느낌이 느껴진다. 아파… 이렇게 심하게 삐끗한 건 처음이라 눈물이 핑 도는 기분이었다. 내 목소리에 그제서야 걸음을 멈추고 잡은 손목을 놓은 채로, 날 내려다보는 바비의 표정이 묘했다. 화가 난 것도 같은데 아픈게 신경이 쓰이는 지, 살짝 인상을 쓴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는데 바보 같게도 조금씩 눈물이 차올랐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다짜고짜 날 데리고 나온 이유가 뭔지도 모르겠고, 지금 저 표정은 또 뭐냔 말야…. 게다가 자꾸만 욱씬거리는 발목과 쓰린 손목 때문에 괜히 더 서러웠다.
" 지금 뭐에요, 이게…? "
울음 가득 담긴 목소리로 물어오는 내 말에 바비가 내 맞은 편에 몸을 낮춰 앉았다. 인상을 쓰곤 잠깐 내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내 발로 시선을 옮기곤, 발에 신겨진 구두를 양쪽 다 벗겼다.
" 이런 거 신지 마. "
" 지금 뭐 하는 거에요? "
" 이렇게 짧은 옷도 입지 마. "
" 갑자기 날 끌고 나온 건 뭐고, 왜 마음대로 내 구두를 그렇게 갑…. "
" 그 놈도, "
" ……. "
" 만나지 마. "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눈물이 가득 맺힌 눈으로 바비만 바라보는데, 바비가 신경질적으로 제 머리를 쓸어넘겼다. 그리곤 목에 매어진 넥타이를 잡아 당기듯 거칠게 풀어냈다.
하, 하는 긴 한숨과 함께 바비가 내게 눈을 맞춰 온다.
" 그 때 그 키스는 왜 했다고 생각해? 설마 그냥 했을까봐? "
바비의 말에 나도 모르게 또 습관처럼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냥… 술 때문이었잖아요. 차마 내뱉지 못할 말이 속에서 차올랐다. 입을 꾹 다물고 바비와 맞춰진 내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바비는 내가 그 사람이랑 뭘 해도 아무렇지도 않아요?'
" 아무렇지 않을 리가 없잖아. "
그 말의 의미를 다 이해하지도 못한 채로 멍하니 바비를 바라보는데, 눈물이 또 한 방울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바비가 손을 뻗어 내 볼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조심스러운 그 손길, 그리고 화가 풀린 듯 다정한 목소리로 왜 울어, 하고 말해오는 그의 목소리에 기다렸다는 듯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 나 이기적인 놈이야. "
" ……. "
"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까 모르는 척 하는 건데, 자꾸 신경쓰이게 할래? "
이해할 수 있는 말이 반이었고, 이해할 수 없는 말이 반이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요…. 내 목소리에 바비가 짧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내 볼에 한 손을 올려 가만히 내 볼을 쓰다듬었다.
" 만나지 마. 그 놈. "
♡
안녕하세요, 제 이쁜 독자님들! 원래는 어제 올리려고 했던 글인데 어쩌다보니 이렇게 조금 늦어지게 되었네요
1일 1글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는데 결국 이렇게 무너졌어 ㅠ_ㅠ 흐엉..
여러분들이 보여주신 6화에 대한 사랑에 정말정말 감동 많이 받았습니다! 추천도 40이 넘을 만큼 많은 분들이 추천해 주시고, 암호닉 또한 참 많은 분들이 신청해주셨더라구요 덕분에 저 추천 빠순이 됐어요 ㅠ_ㅠ 추천 너무 좋은 거 같아요.. 행복해..! 댓글 하나 하나 다 꼼꼼히 읽으면서 정말 감동에 감동을 받았어요, 표현할 수가 없어서 아쉬울 뿐..♡ 어떡하면 여러분들이 제 맘을 알까요! 정말 어떡하면!
저번 6화부터 조금씩 터져나오는 지원이 마음이 느껴지시나요? 느껴지셔야 할텐데... (안절부절)
가끔 독방에 놀러가면 보이는 제 독자님들과 얘기하는게 넘 재밌어요 ㅠ_ㅠ♡ 언제 한 번 맘 편하게 독자님들과 얘기라도 도란도란 하고 싶은 마음.. 독방에서 한결같이 제 글 추천해주시거나 재밌다고 해주시는 제 사랑 콘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하트)
다음 편도 금방 올게요, 오늘도 재밌게 읽고 즐거운 하루 보내요 제 이쁜이들!♡
| ♡제 사랑 암호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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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많은 암호닉 분들이 저와 함께 해주시는 걸 생각하면 정말 영광이에요!
암호닉 분들도, 그리고 암호닉이 아닌 분들이 주시는 댓글도, 추천도 언제나 감사해요! 든든하고 힘이 나요, 정말로
암호닉 신청은 회원님, 비회원님 가리지 않아요! 신청은 <> 이 괄호 안에 원하는 닉네임으로 넣어서 신청해 주시면 되구요! 혹시나 제가 정리를 하던 중에 까먹은 분이 계시다면 상처 받지 마시고, 둥글둥글하게 말해주세요.. ㅠ_ㅠ ♡
여러분 사랑해요 좋은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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